“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고리 1호기의 가동 영구정지는 탈핵 국가로 가는 출발입니다.”

고리1호기가 영구정지 된지 6월 18일로 만 2년이 되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시 기장군 고리핵발전소에서 열린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참가해 한국사회의 “탈핵국가”를 선언했다. 만 2년이 지난 오늘 한국사회는 탈핵 국가로 얼마나 나아갔을까? 최근 한국사회 탈핵운동진영의 이슈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탈핵정책을 평가해보고자 한다. 

<이야기 순서>

① 체르노빌 사고 직전 까지 간 한빛1호기, 원안위의 무능력
② 신고리 3․4호기 운영하가와 기장연구로 건설 승인, 늘어나는 핵시설 
③ 삼척 핵발전소 지정고시 해제, 영덕은?
④ 고준위핵폐기물 10만년의 책임, 사용후핵연료 재검토위원회?
⑤ 총평, 핵발전소 수출과 가짜 탈핵


 

4부_ 고준위핵폐기물 10만 년의 책임, 사용후핵연료 재검토위원회?

 

사진 환경운동연합
△ 사진 환경운동연합

 

가장 민주적이다 평가받는 정부의 가장 비열하고 비겁한 속내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인 지난 2017년 7월 19일,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 역할을 맡은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70여 일간의 활동을 종료하며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습니다. 

그중 “탈원전 정책으로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전환”이라는 과제에 <공론화를 통해 사용후핵연료정책을 재검토>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한차례 고준위핵폐기물 관리 정책을 공론화를 통해 수립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공론화위원회 출범부터 위원들이 사퇴를 하는 등 파행을 겪었습니다. 공론화 과정이 공정하게 설계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공론화를 진행하는 과정 중에 일부 위원들이 사퇴를 하고, 보고서가 나오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일부 위원들은 최종 보고서에 서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공론화 설계에서부터 과정과 내용, 모든 측면에서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고준위핵폐기물 재검토를 약속했습니다. 이는 탈핵운동 진영의 주요한 요구사항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5월, 고준위핵폐기물 관리정책 재검토를 위한 준비단이 발족되었습니다. 재검토준비단은 신고리 5ㆍ6호기 공론화 평가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국민의 의견을 물어 신고리 5ㆍ6호기 건설 중단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신고리 공론화’에 대해서 정부는 그 과정과 결과를 자화자찬 했지만, 시민단체를 포함한 일부 전문가들은 문제를 지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부는 공론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공론화 과정을 일방적으로 만들었고, 결국 기계적 중립에만 충실한 공론화위원회는 지역사회의 목소리와 여러 이해당사자들의 요구를 공정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배제해 버렸습니다. 그 결과 신고리 5ㆍ6호기 공론화는 정부의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겼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신고리 공론화에 대한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정부는 고준위핵폐기물 문제를 재검토하기 위해 “재검토준비단”을 먼저 구성했습니다. 재검토의 대상과 원칙, 의사결정 원칙 등을 여러 이해당사자들이 먼저 논의하자는 취지였습니다. 

핵발전소 각 지역주민 대표와 환경단체, 핵산업계, 산업부 관계자가 함께한 재검토위원회는 2018년 5월부터 11월까지 약 6개월이 가까운 시간 동안 논의를 가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부산과 울산을 비롯해 여러 핵발전소 지역주민과 단체들의 항의가 있었을 정도로 논의와 합의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산업부와 핵산업계는 2021년 포화를 앞두고 있는 월성핵발전소의 상황을 고려해 재검토준비단의 논의뿐만 아니라 재검토위원회의 설계를 자체를 신속성에 초점을 맞추어 합의를 보고자 했습니다. 재검토준비단의 합의는 쉽지 않았고, 결국 준비단의 보고서는 합의되지 않은 내용을 나열하는 수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그나마 합의된 내용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재검토 대상이 되는 의제이고, 다른 하나는 의제별로 논의순서를 달리해 순차적으로 논의해야한다는 원칙이었습니다.

그러나 재검토준비단의 보고서는 공개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비공개로 되어 있습니다. 

그 사이 지난 5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가 출범했습니다. 준비단이 만든 최소한의 합의가 무엇인지도 공개되지 않은 채 재검토위원회가 출범한 것입니다. 

재검토위원회가 출범하자 준비단에 참여한 환경단체와 핵발전소 지역주민단체 및 지자체는 재검토위원회 출범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문을 일제히 발표했습니다. 핵발전소가 있는 영광군, 울주군에서 재검토위원회 보이콧을 선언했고, 경주시의회가 재검토위출범 규탄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또한 영광핵발전소를 바로 옆에 두고 있는 고창군도 재검토위원회 보이콧을 선언했습니다. 부산과 울산, 전국의 여러 시민환경단체에서 재검토위원회 출범을 규탄하고 보이콧 선언을 한 것을 헤아리자면 지면이 모자랄 정도입니다. 

지난 5월에 출범한 재검토위원회는 신고리 공론화 때처럼 ‘중립적’ 인사로 구성된 위원회입니다. 말만 중립적이지 이들 전문가들을 평가하자면 “1도 상관이 없는 자”들입니다. 재검토위원회는 기계적 중립만을 최우선의 가치로 출범을 했습니다. 그 안에는 고준위핵폐기물 10만 년의 논의를 성실하게 책임질 어떠한 방향과 원칙도 보이지 않습니다. 

고준위핵폐기물은 최소 10만 년 이상을 생활권으로부터 완전 격리해서 보관해야합니다. 그러하기에 재검토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진행되어야 합니다. 경주 월성핵발전소처럼 재검토 기간 동안에 고준위핵폐기물 임시저장수조가 포화된다면, 책임 있는 논의를 위해 잠시 핵발전소 가동을 멈출 수도 있다는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고준위핵폐기물 관리 정책이 마련되기 전에 임시저장시설 문제를 먼저 논의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의제 논의 순서와 규칙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임시저장시설처럼 핵발전소 지역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지역주민들의 ‘유치권’이 아니라, 이를 거부할 수 있는 ‘비토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전기를 사용하는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의무적으로 고준위핵폐기물에 대한 논의에 참여하도록 공론화 과정을 설계하고 시행해야 합니다. 이 최소한의 원칙들이 지켜져야만 10만년의 책임을 논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기계적 중립만 내세운 재검토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그 결과는 보지 않아도 명확합니다. 지난 2005년 노무현 정부가 경주에 중ㆍ저준위 핵폐기장을 주민투표로 밀어붙였던 것처럼, 핵발전소 각 지역마다 임시저장시설을 공론화라는 이름을 빌어 밀어붙일 것입니다. 

가장 민주적이었다고 평가되는 두 정부가 가장 비열하고 비겁한 방식으로 핵폐기물 문제를 처리하려 하고 있습니다. 결국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 것일까요?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는 이제 3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문제투성이인 재검토위원회의 결정은 핵산업계가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에 면피를 줄 뿐만 아니라, 탈핵사회를 더욱더 머나먼 미래의 일로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이대로라면 문재인 정부가 고준위핵폐기물 문제에 손을 떼는 것이 탈핵사회를 위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5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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