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라!] 우산혁명이 끝난 후
[이 영화를 보라!] 우산혁명이 끝난 후
  • 김상목
  • 승인 2019.07.26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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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점의 홍콩을 표상하다

 

"우산혁명이 끝난 후" 영화 포스터 이미지
                   △ 영화 <우산혁명이 끝난 후> 포스터

 

1. 홍콩 小史

 

pt.1 중화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지다
 
1841년, 아편전쟁의 결과 홍콩섬은 영국에 점령된다.

1842년 전후 처리 과정에서 홍콩섬은 영국에 할양된다.

1860년에는 제국주의 시대 불평등조약의 하나인 베이징 조약의 결과로 구룡반도까지 포함된 홍콩 일대가 영국에 영구 할양된다.

1898년, 홍콩섬과 맞닿은 광동성 해안 일대의 “신계” 지역이 99년간 영국에 조차(租借, ‘특별한 합의에 따라 한 나라가 다른 나라 영토의 일부를 빌려 일정한 기간 동안 통치하는 일’)된다. 이 결과로 현재의 행정구역상 홍콩이 완성된다.

 

pt.2 격동의 20세기를 헤쳐나가다

영국과 불평등조약으로 홍콩을 넘겨준 청제국은 1912년 신해혁명으로 사라진다. 이후 홍콩은 영국이 동남아시아 거점으로 영구적인 자국령화를 추구했던 싱가포르와 함께 무역항으로 번성한다. 물론 식민통치의 전형적 구조였다. 영구 지배를 목적으로 최소한의 인프라 정비 등이 이뤄지고, 지배구조 하층에는 중국계가 중용되기 시작한다. 

그동안 중국은 군벌과 국민당 정부의 대결 끝에 장제스가 북벌에 성공해 중화민국으로 통일이 이뤄지지만 곧이어 일본과의 전쟁으로 홍콩에 대한 영토 회복 요구를 적극적으로 진행하지 못한다. 이 시기 홍콩은 중국의 정치적 망명객과 동남아시아계 노동력, 서양인들이 어우러지는 다국적 도시로 변모한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군의 점령 치하에서 영국인, 중국인 모두 탄압받았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륙의 중화민국은 영국에게 홍콩반환을 요구하지만 4년 후 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배해 대만으로 패퇴하며 대륙의 요구는 이어지지 못한다. 

본토에서 수십만의 정치·경제적 망명자가 홍콩으로 밀려들면서 극심한 빈부격차는 더 심화하지만, 경제성장 역시 고도로 진행된다. 빈부격차는 대륙에서 이후 진행된 문화대혁명의 영향을 받은 시위와 폭동을 낳고, 한바탕 홍역을 치른 영국총독부는 부의 분배와 부정부패 예방을 중점으로 사회개혁을 진행한다. 

특히 1970년대 중후반에는 ‘영국병’을 앓고 구제금융에 손을 빌리던 본국에 인프라 정비예산을 식민지 홍콩이 물 쓰듯 타 쓴다는 혹평을 들을 정도였다. 그리고 덩샤오핑 집권 후 경제개방을 시작하는 초반의 중국은 홍콩을 무역항이자 창구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된다.

 

영국 총독부 치하 홍콩 깃발
              △ 영국 총독부 치하 홍콩 깃발

pt.3 영국에서 중국으로 : 통일인가 소유권 이전인가
 
1997년 신계 조차 시한이 다가오자 영국은 조차 연장을 시도하지만 중국 공산당정권은 이를 일소에 부치고, 반환을 요구한다. 지난한 협상 끝에 ‘일국양제로 홍콩의 기본체제를 반환 후 50년간 유지하고 대륙의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도입하지 않는다’는 것을 골자로 1984년 ‘중영공동선언’이 발표되고 1985년 발효된다. 

이후 영국총독부는 반환을 예비해 홍콩의 정치체제를 정비하기 시작한다. 기초의회는 직선제로 전환하고 국회에 해당하는 입법회도 일정 부분 직선제를 도입한다. 그러나 중국공산당 정부는 일련의 조치에 대해 항의하면서 공동선언의 발효 시점에 대한 이견이 증폭된다. 

그렇게 1997년 7월 1일 자정을 기해 홍콩은 중국으로 반환된다. (덩샤오핑은 반환을 4개월여 남기고 별세해 반환된 홍콩을 밟지 못한다. 그는 유언으로 화장한 유골을 홍콩 앞바다에 뿌리게 했다) 곧이어 마카오도 포르투갈에서 중국으로 반환되면서 대륙의 중국공산당 정부로서는 대만만 통합되면 아편전쟁 이후 150여 년이 넘는 오욕의 역사를 종결지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나의 중국’은 그만큼 중화제국의 전통에서는 포기할 수 없는 개념인 셈이다.

하지만 150년 가까이 중국 본토와는 유리된 체제로 살아온, 반쯤 넘게 서구화되었고 특히 영국의 통치 후반기에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일정 부분 정착되었던 홍콩 사회는 그 당시만 해도 낙후하고 두려운 죽의 장막 너머 존재였던 중국 정부의 치하로 들어가는데 극도의 공포를 느끼고 다수가 캐나다나 호주, 대만, 싱가포르 등으로 이민 붐이 일어난다. 

반면에 대륙 정부와 다리를 놓으려는 시도도 진행된다. 1990년대 황비홍 시리즈 등으로 국내에도 인지도가 컸던 이연걸이 주연한 <이연걸의 보디가드> (1994, 왕정 감독, 이연걸·종려제 주연)는 덩샤오핑의 경호원 출신 보디가드가 암살 위협에 노출된 권력형 살인사건의 증인인 홍콩의 여교사를 구해내는 정치적 은유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반면, 이 시기 홍콩영화 다수는 허무주의적인 경향을 보이거나 상징적인 이미지로 대륙을 상징하는 소품을 버리거나 훼손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반환 후 10여 년이 지나면서 중국 본토에서 수십만의 인구가 홍콩으로 밀려들어 다양한 사회문제가 발생한다. 그런 혼란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경제성장 창구로서 홍콩은 반대급부로 혜택도 받으며 이민 열풍도 수그러든다. 대륙 정부 또한 1989년 천안문 사건 이후 서구와의 관계 경색을 교훈 삼아 ‘홍콩특별자치구’에 대한 노골적인 개입을 자제한다. 그렇게 ‘일국양제’가 정착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경제성장의 통로 역할을 하던 홍콩의 위상은 상하이 등 중국 해안지대로 역할이 분산되면서 점차 쇠퇴하기 시작한다. 경제성장은 정체되고 대규모로 유입되는 대륙에서의 이민은 청년층 실업난과 살인적인 부동산 등의 부작용으로 점점 악화된다. 

그리고 경제성장을 통해 G2로 등극할 정도로 초강대국의 위신을 세운 중국은 시진핑 집권 이후 ‘일국양제’에 대한 개입을 시작하게 된다. 2014년의 우산혁명과 2019년 현재 진행 중인 범죄인 인도법 반대시위는 그런 맥락 아래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2014년 우산혁명 당시 시위대 측 포스터
                 △ 2014년 우산혁명 당시 시위대 측 포스터


2. 우산혁명, 분출하다
 
<우산혁명이 끝난 후>는 2014년 우산혁명이 소강상태로 접어든 후, 당시 혁명에 참여했던 다섯 활동가의 후일담이자 새로운 모색의 기록인 셈이다. 그렇다면 영화 이야기에 앞서 이들이 참여한 우산혁명은 왜 일어난 것일까?

홍콩의 짧은 역사에서 소개한 바대로, 영국은 초기의 전형적인 식민지배에서 이후 영구적인 자국 영토화를 목적으로 영국식 체제를 상당 부분 도입했다. 총독은 본국 정부에서 보내지만, 홍콩주민들의 정치참여를 상당 부분 허용한다. 심지어 1980년대 이후 기초의원은 직선제, 입법회 의원도 2/3 직접선거제도를 도입한 상황이다. 

반환 전까지 15년간 진행된 이런 직접민주주의 활성화는 1997년 중국 반환 이후 대륙의 정치체제와 긴장감 조성에 한몫하게 된다. 

결정적인 시위 촉발 사유는 홍콩주민 대다수가 원하던 자치 행정구의 수장,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도입에 대한 중국 정부의 조삼모사 입장 발표였다. 직선제는 허용하지만, 선거에 나설 후보 2~3명은 중국 정부에서 지정하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친중파 일색으로 채워질 후보 중에서 택일하라는 중국 본토의 입장은 기만으로 받아들여졌고 그 결과가 2014년의 우산혁명으로 폭발한 셈이다. 

흔히 친중파와 민주파(자치확대파) 구도로 인식되던 홍콩 정치계에 본격적으로 본토파 혹은 독립파가 소수지만 등장하게 되는 계기였다.

특히 우산혁명을 주도한 주요 그룹 중 학생운동 활동가의 비중이 매우 높았던 것이 우산혁명의 특징이다. 레스터 셤 등으로 대표되는 홍콩지역 8개 대학 전체 학생운동조직은 물론, 중고등학생 활동가 출신인 조슈아 웡의 ‘학민사조’가 강경하고 유력한 운동세력으로 대두된다. (조슈아 웡은 1996년생으로 2011년부터 국민교육 반대 운동을 했다) 이 세대는 2010년대 이후 경제침체와 대륙의 정치개입 심화기를 겪었으며 윗세대보다 중국 본토와의 연결고리가 희박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홍콩인’으로 정의하는 비중이 극히 높은 세대이다.

그렇기에 청년세대 운동의 성격과 분리주의적 측면이 상대적으로 기존의 민주파 자치 확대 정도를 표방하던 홍콩의 야권세력과도 차별화되는 측면이 강한 편이다. 우산혁명은 이들의 주도로 맹위를 떨치지만, 공식적으로는 행정장관 직선제를 쟁취하지 못하고 소강상태로 들어간다. 

그러나 당시 친중파로 강경 진압을 주도하던 행정장관은 임기를 못 채우고 물러나야 했으며, 중국 정부가 일국양제를 훼손하려 한다는 혐의를 세계적으로 공인시켜내는 성과를 일군다. 영화 <우산혁명이 끝난 후>는 바로 그 직후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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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우산혁명이 끝난 후>에서, 조슈아 웡

3. 우산혁명이 끝난 후, What is to be done?
 
영화는 130분이라는 적지 않은 분량으로 완성되었지만 우산혁명에 대한 설명이나 정리는 최소화되어 맥락을 따라가려면 어느 정도의 예습이나 복습이 요구된다. 이 영화는 우산혁명 자체를 정리해 보여주는 설명형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제목 그대로, 우산혁명에 참여한 5명의 이후 약 4년간의 궤적을 따라가며 그/그녀들의 고민과 모색을 기록영상처럼 보여주는 식이다.

우산혁명에 참여했던 다양한 그룹에게 분량을 할애해 분배하기보다는 청년세대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캐릭터 선정 때문에 학술적으로 우산혁명을 알고 싶은 이들은 별도의 학습이 필요하다. 이 작품은 우산혁명을 통해 대두된 청년세대의 사고와 의식을 실감나게 전달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5명의 주요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3명의 동선이나 활동은 겹쳐지는 측면이 많은 편이다. 아마 5명의 주인공 격 등장인물 중 가장 인지도 있는 인물일 조슈아 웡이 우산혁명 이후 겪는 재판과 정당 설립 및 홍콩 입법회 선거 대응이 중심골격을 차지한다. 

기업가 출신으로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 마냥 선거에 나서는 이와 조슈아 웡의 정당에 참가하며 기업가 청년과 연계를 가진 대학생 활동가의 정치 동선은 겹쳐지며 지층을 이룬다. 홍콩 민주파와 독립파의 중간보다 조금 더 왼쪽 혹은 급진적 흐름을 상당 부분 대변하는 작용을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3명의 캐릭터는 모두 다르다. 감독은 영화 속에서 각자의 포지션을 구분하고 감독이 이들 캐릭터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역할들에 충실하게 조명되고 있다.

 

"우산혁명이 끝난 후" 영화 포스터 이미지(에드워드 라오)
                  △ 영화 <우산혁명이 끝난 후> 스틸컷 

조슈아 웡은 정치적으로 탄압도 받고 징역도 살았지만, ‘스타’가 되었다. 18세 나이에 타임지 표지에도 올랐고 세계 곳곳에서 초청도 받는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함께 투쟁했던 세대를 결집해 ‘데모시스토’라는 혁신민주주의 정당을 만들고 선거에 참여한다. 

조슈아 웡과 그 동료들이 2011년부터 중고생운동단체 활동을 하면서 단련되었고, 네트워크를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선거 전술을 밀어붙이며 활약하는 조슈아 웡과 네이선 로를 위시한 갓 스물 남짓한 동료들의 모습은 통쾌함마저 준다.
 
에드워드 라오는 자수성가한 청년기업가이다. 사회적으로 처세만 잘하면 정치체제와 관계없이 잘 먹고 잘살 전형적인 유형이다. 그는 임종이 임박한 병상의 어머니와 대화하며 정치참여를 주제로 토론한다. 모자간의 가끔은 날이 선 대화. 하지만 진지한 논쟁이 이어지고, 그 와중에 이전 세대와는 다른 서구화된 홍콩 청년세대의 가치관과 정체성이 노출된다.
 
데릭 람은 철학도 대학생이다. 인터넷 토론을 즐기며 다양한 사회활동을 추구하지만, 그는 에드워드 라오와는 다르게 알바 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처지이다. 우산혁명에 열성적으로 참여한 전력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는 게 쉽지 않다. 에드워드 라오에게 투자 제안을 요청하기도 하고, 여자친구에게 푸념도 하며 고군분투한다. 실업과 경제난에 빠진 청년세대로서 조슈아 웡이나 에드워드 라오와는 다른 전형성을 담보하는 캐릭터이다.

웡 양닷은 극작가, 시나리오 작가이지만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유튜브 등 인터넷 방송으로 정치적 반대 견해를 가진 이들과 설전을 거듭하고 ‘현피’(온라인 싸움이 실제 오프라인 싸움되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 도전도 받아들인다. 한판 대결을 위해 격투기 훈련을 하며 어느새 무도가가 되어버린다. 익숙하지 않은 격투기 때문에 다치고 힘들어하지만, 정치적 입장을 설명하기보단 청년세대의 도전정신을 형상화한 듯한 인물이다.

 

"우산혁명이 끝난 후" 영화 포스터 이미지(웡 와이만)
               △ 영화 <우산혁명이 끝난 후>에서, 웡 와이만


웡 와이만은 인기가 제법 있는 대중가수였지만 우산혁명에 옹호적 입장을 가지고 활동했기에 소속사와 불화를 겪고 홀로서기에 나선다. 그는 다른 이들처럼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식은 아니지만, 홍콩의 민주화와 동 세대의 고민을 담은 노래를 만들고 단독공연을 준비한다. 직접 정치 행동으로 영화 속 내용을 채우기보다는, 자작곡 가사나 공연 풍경을 통해 활성화된 음악으로 자기 분량을 채운다. 인물들의 행보가 그다지 설명이 친절하지 않은 채 겹쳐졌다, 떨어졌다 하면서 관객이 다소 지치거나 혼란스러울 때, 연습과 공연 장면들이 챕터 나누기를 해준다. 그의 자작곡 가사는 관람객이 영화 속 내용을 복기하도록 일익을 담당한다.

5명의 주요 캐릭터는 각자의 목표를 향해 영화 내내 매진한다. 조슈아 웡과 에드워드 라오는 각자 홍콩 입법회 선거에 치열하게 도전하며, 데릭 람은 그 선거운동에 결합하면서도 끊임없이 생계 문제 해결을 위해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웡 양닷은 실전 격투기 선수로 데뷔하기 위해 여러 어려움을 돌파하고, 웡 아이만은 독립된 기획사를 만들고 단독공연을 성사하기 위해 준비에 골몰한다. 

그런 일련의 목표를 향한 도전이 서로 분리되었다 합쳐졌다 하는 반복이 영화 내내 이어진다. 처음 병렬적으로 5명의 캐릭터를 소개하며 시작했던 영화는 다시 4년간 그/그녀들의 모색과 도전의 결과를 조명하며 약간의 후일담- 조슈아 웡과 동료들은 재판에서 유죄를 받고 선거 참여가 제약되었다-과 웡 아이만의 공연 풍경으로 끝을 맺는다.

친절한 정치ㆍ사회 관련 상황 설명이나 캐릭터별 분량 나누기보다는, 5명의 독자적인 행보가 강물이 합쳐지듯 모여 하나의 체험으로 형상화되길 감독은 바랐던 것 같다. 아마 2019년 6월, 우산혁명을 몇 배 초월하는 대규모의 시위가 폭발하기 전이라면 이 작품 <우산혁명이 끝난 후>는 국내에선 그저 이런 작품도 있다는 정도로도 회자되기 어려웠으리라. 하지만 모든 것이 바뀌었다.

 

4. 2019 범죄인 인도법 반대시위
 
6월 도쿄에서 벌어진 G-20 정상회담 전후로 2014년 우산혁명을 가뿐히 능가하는 초 대규모 시위가 홍콩에서 재개되었다. 다들 알다시피 중국 본토로의 범죄인 송환을 허용하는 ‘범죄인 인도법’ 반대시위가 그것이다. 

홍콩 행정장관 케리 람을 위시한 친중파와 중국 정부가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대다수의 홍콩주민들은 이 법안이 일국양제를 사실상 부정하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720만 주민 중 100만 200만이 시위에 참여하는 가공할 규모는 G-20에서 미국과 G2 구도를 공고히 하려던 시진핑의 대륙을 당황케 했다. 

중국 공안이 홍콩 경찰로 위장하고 시위 진압에 나섰다거나, 인민해방군이 홍콩 바로 앞에서 무력시위를 벌인다는 흉흉한 소문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급기야 얼마 전에는 폭력조직 삼합회가 시위대를 무차별 폭행하는 백색테러까지 일어나는 상황이다. 

시위가 장기화하고 문제의 인도법안이 폐기되면서 중산층 다수는 생업으로 복귀하고 남은 강경 시위대는 입법회를 점거하거나 중국 정부 연락사무소 항의시위에 나서는 등 투쟁 수위는 비폭력이긴 해도 시위 강도나 요구 수준은 오히려 상승하고 있다. 영국 총독부 시절이 좋았다는 의미로 유니언 잭이 나부끼는 것은 일종의 퍼포먼스이긴 하지만, 결국 홍콩의 정체성을 중국이 아닌 서구화된 도시국가로 상정하는 함의를 갖는다.
 

“우산 혁명 - 소년 vs. 제국” 영화 포스터
         △ 영화 <우산 혁명 - 소년 vs. 제국> 포스터

<우산혁명이 끝난 후>의 주인공이기도 한 조슈아 웡은 시위 관련해서 국내 언론에도 오르내릴 만큼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2014년 시위와 관련하여 1심보다 2심에서 훨씬 강화된 형기를 치르고 나오자마자 현재 시위에 결합한 그의 행보는, 홍콩 민주파 내 급진계열의 향후 행보와 직결될 정도의 영향력을 보여 준다.(조슈아 웡은 ‘본토파’처럼 독립요구는 하지 않고 있다.)

아마 다른 4명의 주인공들도 그/그녀가 2014년에 했던 것처럼 거리에 나섰을 것이다. 시진핑의 대륙 정부의 입장은 확고해 보인다. 일국양제를 형해화하고 대륙의 개입을 강화해 대만까지 통일하는 시나리오는 멈출 수 없는 롤러처럼 가동되고 있다. 일견 대만 독립이나 자치 확대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제 죽의 장막 뒤에 숨은 체제가 아니다.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양대 패권국이란 위상은 그만큼의 부담으로도 작용한다. 이미 개혁개방 초기 1989년 천안문 사건으로 심대한 위상 실추를 겪었던 중국 정부로서는 국제 무역항이자 세계경제 허브 역할로 열강의 이권이 집중된 홍콩을 마음대로 처분하기 어렵다. 대신에 포기할 수도 없다. 중국 정부와 홍콩 민주파는 그 서로 제약된 조건 속에서 줄타기를 하는 셈이다.

대륙 정부의 입장에선 사회주의가 희미해져가는 상황에서 국가주의로 내부 단결을 일구면서 ‘하나의 중국’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추진해야 한다. 대만과 홍콩의 중국 본토로의 흡수는 그 과정에서 필수적이다. 반면에 또다른 국가적 과제인 경제성장을 통한 초강대국으로의 진입을 위해서는 홍콩의 기능은 보전되어야 한다. 어느 한쪽만 고집하면 다른 한쪽은 훼손될 위기에 놓인다.

홍콩의 민주파(+독립파)는 서서히 결이 나뉘고 있다. 자치 확대와 일국양제를 고수하는 선에서 일단락 지으려는 민주파에 대해 독립파는 홍콩이라는 공간의 역사성을 재구성하려 한다. 이미 150여 년 이상 독자적으로 발전한 홍콩은 홍콩주민들 스스로 정치체제나 국가형태를 결정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시진핑은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 우리는 뭉뚱그려 친중파 VS 민주파로 구분하는 정도이지만 실제 내부 논쟁은 매우 다양하고 여기에 대만이나 중국 대륙 내의 쟁점들도 결부되기 때문에 쉽사리 입장을 정하거나 판단하기 어려운 지점이 곳곳에 암초처럼 숨어 있는 셈이다.


5. <우산혁명이 끝난 후>의 상영 기회 확대를 제안하며

본 작품은 현재의 중국-대만-홍콩이라는 동아시아의 거대한 이웃이 직면한 현실에 대한 풍부한 논쟁에 활용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우리의 정치ㆍ사회적 상황에서 특히 청년실업 세대의 정치 운동 과제에 접근하는 통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역에서 소규모로라도 순회 상영회를 추진하고, 관련 정세 토론이나 해설을 가미한다면 다양한 각도에서 동아시아 정세에 대한 이해를 높임은 물론, 다가올 국내 정치적 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으로도 유용할 것이라 기대한다. 

 


[작품정보]
 
우산혁명이 끝난 후 Last Exit to Kai Tak
다큐멘터리|2018|홍콩|129분|매튜 토너
10회 DMZ국제다큐영화제(2018) 아시아경쟁
 
※ 넷플릭스에서 관람 가능한 관련 작품으로 <우산혁명 - 소년 vs. 제국 Joshua : Teenager vs. Superpower(2017)> 이 있다. 조슈아 웡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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