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여름 숲에서 상처와 죽음을 만나다
깊은 여름 숲에서 상처와 죽음을 만나다
  • 이현정
  • 승인 2019.08.01 15: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원산밑들이메뚜기

 

어느새 차가운 이슬이 데워지는 조금 이른 아침.

옅은 붉은빛 태양이 떠올라 있다. 머뭇거리듯 구름 가장자리로 햇빛이 새어 나온다. 저 멀리 바라본 하늘엔 먹구름 파도가 넘실대고 있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한 태양의 빛은 바람이 몰아 더욱 겹겹이 쌓인 검은 구름 뒤로 가려진다. 그렇다 한들 이른 아침의 체감온도는 26도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오전은 내내 흐린 날씨로 이어진다. 7월의 마지막 주 체감온도 33도. 훅훅 거칠게 몰아쉬는 숨이 이끌고 터질 듯 쿵쾅거리는 심장을 앞세워 산허리에 올랐다. 다행히 쌓이고 쌓여 자유롭게 퍼진 먹구름에 가려진 해는 정오를 알린다. 

거친 목마름과 허기진 뱃속은 짙은 녹음 속을 즐길 잠시의 순간마저 본능에 충실하게 했다. 간편한 점심을 해결하고 일어난다. 입가엔 깊은 반원이 생긴다, 온몸을 뒤덮은 소금기가 불편한 줄도 모른 채.

이제 옅은 하늘빛이 비친다. 

앗! 흰 구름이다! 흩어지다가도 뭉쳐지고 새 깃처럼 갈라져 하얗게 채색된 마냥 파란 바탕 위에 바람이 이리저리 가르고 뒹굴게 한다. 검은 테를 두른 커다란 뭉실 구름은 저편으로 물러선다.

이내 쏟아져 내리는 빛은 아프게 이글거린다. 분명한 건, 숲의 모든 생명체는 온몸으로 맞서고 있고 타는 듯 여름 햇볕 아래 놓였다는 것이다. 

걸음을 옮기는 내내 병든 나뭇잎을 가득 단 비목나무들, 그리고 이리저리 살갗이 찢긴 나뭇잎들이 잔바람에도 버둥거리고 있다. 산등성이를 오르기 전부터 구멍나고 찢기고 곤충들의 집이나 먹이로 먹혔던 흔적들은 훈장처럼 늠름하기까지 했다. 

굽이져 하늘과 가까워지는 능선의 숲길에서 또 다른 다양한 죽음의 흔적들과도 마주한다. 

뙤약볕이 더욱 강하게 반사되는, 마사토로 쭉 뻗은 숲길 중앙엔 원산밑들이메뚜기가 벌써 곰개미들의 잔칫상에 올려진 음식이 되어 있었다. 숲 생태계에선 개미들에 의해 미스테리한 숲길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몇 시간만 지나면 원산밑들이메뚜기가 이곳에 잠든 것이 맞는가 할 것이다. 다시 이 길을 지날 때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기에. 

아차! 벨이 울린다. ‘빨리와~’ 휴대전화 밖으로 새어 나오는 남편의 목소리는 오히려 차분하다. 뭔가 발견한 확신을 속삭였다. 들썩이는 어깨를 감출 기세로 사라져 버리더니 불쑥 신명이 난 것인가. 우리는 얼마 전 식물모니터링을 위해 올랐던 숲길을 그대로 지나가고 있었다. 

 

△ 곰개미들에게 먹히고 있는 원산밑들이메뚜기
△ 또 다른 팔공산밑들이메뚜기의 죽음

드디어 훅훅 새어 나오는 호흡을 기어코 삼키며 성큼 다가가자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거린다. 그 자리는 짙고 어두운 갈색으로 달라진 모습이었다. 다부지게 풀줄기를 잡은 그때 그 모습이다. 다시 떠오른다. 이 숲길에서 영롱한 눈빛을 발산했던 팔공산밑들이메뚜기 말이다. 무한 초록의 윤기를 반사하며 큐티클로 무장해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연이어 떠오른다. 꿈쩍도 하지 않던 팔공산밑들이메뚜기. 채 얼마 지나지 않았다. 두 마리나 근처에서 이렇게 생을 마쳤다. 알 수 없는 미생물에 감염이 된 듯 말이다.

팔공산밑들이메뚜기와 원산밑들이메뚜기는 처음 발견된 지역의 이름을 붙여 지어졌다. 이들을 잘 만날 수 있는 곳은 타들어 가는 빛이 가득한 숲길. 강한 빛에 적응도가 높다. 봄부터 어린 원산밑들이메뚜기와 팔공산밑들이메뚜기는 땅속으로부터 깨어나 1령부터 5령까지 껍질을 벗어야 살고 다시 자란다. 물론 주변 환경과 자신의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큐티클이라는, 우리의 뼈에 해당하는 껍질에 갇혀 죽기도 한다. 

강렬한 모진 빛이 쏟아지는 숲길에서 만난 원산밑들이메뚜기와 팔공산밑들이메뚜기의 죽음은 다양한 생명체들로 가득해진 여름 숲이기에 더욱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이들의 삶일 것이다. 한참 동안 나의 일상을 전개하고 돌아갈 때쯤 곰개미들에게 점령당한 원산밑들이메뚜기의 죽은 몸체는 역시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언덕 아래 어두운 숲으로 걸어간다. 

늦은 시각 그늘 속은 멀리서 고라니의 ‘크에켓켕켕!’ 대는 소리조차 무더위 속에 누그러지며 숲 바닥에 떨어진 초록의 잎들은 오히려 환하게 보인다. 초록낙엽인 것이다. 여름 숲의 생태계는 초록낙엽 이전부터 식물이 이른 봄부터 피고 지고 떨어져 곤충과 미생물에게 분해가 되어 다시 양분으로 살아난다. 

여름의 이 고통스러운 빛을 견뎌내며 대낮에 활동하는 곰개미가 원산밑들이메뚜기의 죽음을 승화시켰다. 최고 분식자인 개미들에게 또는 분해자인 균류, 알 수 없는 미생물들에게 먹이로 내어주고 또다시 이 숲 땅에 태어나 숲을 만들기 시작한다. 

오늘 만난 원산밑들이메뚜기와 팔공산밑들이메뚜기의 죽음에 묵념을 올린다.

이 또한 한 생명체로서 숭고하기에.

 

초록낙엽들
                    △ 초록낙엽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