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라!] 우리는 “벼꽃”을 알지 못한다
[이 영화를 보라!] 우리는 “벼꽃”을 알지 못한다
  • 김상목
  • 승인 2019.08.08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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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꽃" 영화 스틸샷
"벼꽃" 영화 스틸 이미지


1_ 태양과 물과 바람의 문명

 

동양 문화권에서 ‘쌀’이란 존재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동아시아 식생과 기후에 적합하기도 하지만 밀보다 압도적인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결정적이었다. 근대 이전까지 인구 부양 능력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쌀은 다른 지역에 비해 인구밀도가 조밀했던 동아시아에서는 대안이 없는 주곡 작물이 되었다.

그 선택의 결과는 동아시아 농경사회에서 하나의 기준으로 규범화되었다. 기후나 농사기술의 한계로 쌀 대신 다른 곡류(‘잡곡’이라 불리던)를 먹는 이들을 주눅 들게 했다. 쌀에 대한 열망은 북만주나 북해도까지 재배한계선을 확대했고 동남아시아 고산지대의 계단식 논이라는 경이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쌀은 그렇게 단순한 식량 작물을 넘어 (특히 동아시아)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집약적인 노동이 필수적으로 수반되긴 했지만, 이모작 삼모작을 가능케 한 쌀의 존재는 동아시아 문명의 중심축으로 확고부동한 위상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쌀의 단위면적당 최고 수준의 수확량은 전근대 농경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던 농민들의 고도로 조직화 된 중노동이 전제되지 않고는 성립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좁은 농지에서 온종일 물에 종아리까지 들어간 채 허리를 구부리고 고된 노동을 하는 피지배층 농민들은 서구 문명보다 육류 섭취가 현저하게 적은 탄수화물과 채소 위주의 식생활에 익숙해졌다.

쌀을 중심으로 한 자급자족 농촌사회는 동아시아의 이상이었고 상공업 발전은 상대적으로 뒤처졌다. 유교 질서는 그런 쌀 재배 농경사회에 최적화된 통치 철학이라 하겠다. 하지만 근대 이후 전통으로는 남아 있을지언정, 점차 쌀의 소중함은 퇴색해갔다.

중국에서 도시가 발달하면서 어느 순간 자신들이 먹는 ‘쌀’이 ‘벼’의 낱알이라는 것을 모르는 세대가 등장한 것을 문헌에서는 개탄한다. 상업이 발달한 송 왕조 때부터는 확실히 그런 경향이 두드러졌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제 현대를 사는 우리는 쌀로 만든 밥을 먹어치우면서도 여러 유사 작물 중에서 벼를 구별하는 건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한민족의 식사량’ 변천을 보면 밥그릇 크기가 현저하게 감소한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서구에서도 과거에 비해 빵 소비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나마 한두 세대 전까지만 해도 밥을 굶는 이들이 많아 쌀 생산량은 중요한 국가적 과제였던 나라에서 이제 추곡 수매가 논란도 사회적으로 소수가 된 농민들 외에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수입되건 어찌 되건 그저 서민들은 적정가격에 기본품질의 쌀을, 중산층 이상은 유기농이나 몸에 좋다는 품종을 좀 더 비용을 내고 찾을 뿐이다. 쌀이 어떤 경로로 식탁에 오르는지 그 경로에 대해선 그리 관심을 보이지 않는 세태가 된 지 벌써 한참 되었다. 다큐멘터리 <벼꽃>은 바로 그 지점을 집요하게 끄집어내 동아시아 문명의 기초가 된 쌀의 순환을 정석적으로 보여준다.

 

2_ “벼꽃”이 선보이는, 우리에게 잊힌 벼의 순환

 

오정훈 감독의 “벼꽃”에는 음성해설이나 자막설명 같은 부가정보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작품의 배경이나 촬영장소, 등장인물 등의 정보는 영화가 막을 내리는 끝까지 공개되지 않거나 엔딩크레디트에 아주 조금 제공되는 텍스트 정보를 통해 유추할 수밖에 없다. 사실 그 내용을 몰라도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그저 이 영화는 초봄부터 추수에 이르기까지, 벼가 자라고 수확되고 다시 모판을 준비하는 한 흐름의 순환을 보여줄 뿐이다.

이런 접근방식은 뭔가 구체적인 이야기 전개나 과도하게 소상한 설명에 익숙해진 미래의 관객들에게 상당한 당혹감으로 다가갈 것이다. 불친절하게 받아들일 이도 여럿 나오리라 예상된다. 벼가 자신의 성장 과정 순환을 아주 최소한도로 삽입된 연주 음악을 배경으로 묵묵히 보여주는 느낌이다. 화자가 벼인 셈이다.

 

"벼꽃" 영화 스틸샷
"벼꽃" 영화 스틸 이미지

80분이라는 장편으로는 길지 않은 호흡 동안 영화는 담담하게 벼의 생육과 순환과정을 정직하게 선보인다. 파종한 볍씨는 싹을 틔우고 농부는 메마른 논 터에 물을 대기 시작한다. 모판에서 커나가던 벼를 물이 찬 논에 심는 과정에서 익명의 일손들이 추가되고 트랙터가 굉음을 내지만 그저 지나가 버린다. 자연의 효과음과 정제된 현악기 연주에 익숙해지려던 관객에게 인간과 기계가 개입된 부분은 불편하고 부자연스런 느낌으로 어느새 다가온다.

동남아시아 논을 배경으로 하는 일군의 “쌀의 노래” 유형의 다큐멘터리들이 영화제 등을 통해 국내에 종종 소개된다. 이런 작품군에서는 대개 기계보다는 인력 집약적인 전통농법을 보여줌으로써 수천 년 동안 뿌리내린 농경문화를 묘사하는 게 전형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벼꽃>에서는 사실 지극히 당연한 풍경이지만 도시에 사는 우리가 목가적으로 상상하는 것과는 다른 현실의 농업을 드러낸다. 산간벽지의 다랑논도 아니고. 동남아 고산지대의 부족 전체가 개간한 장대한 계단식 논도 아니다. 일손 구하기 어렵고 판매 위주의 상업 농에서 기계 활용은 당연한 귀결이지만 도시인들은 그 풍경을 모른다. 그저 이식된 목가적인 과거의 농경사회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을 따름이다.

 

"벼꽃" 영화 스틸샷
"벼꽃"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시작 후 1/3 이상 지난 시점에서 모내기 장면이 끝나면 다시 영화는 벼들이 서로 부대끼며 대화하는 것만 같은 고즈넉한 풍경으로 돌아선다. 논의 벼들을 물결치게 하는 바람 소리가 배경음악이 되고, 논두렁에서는 우렁이가 천천히 지나다닌다. 그렇게 그저 풍경의 일부로 지나치는 소소한 디테일이 <벼꽃>에서는 놀라울 만치 정갈하게 표현된다.

그래서 이 작품은 극장에서 큰 화면과 좋은 음질로 감상할수록 더 극대화된 간접체험을 제공한다. 그저 1년 내내 투박하게 풍경을 담은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적’인 특성이 두드러짐을 인지하게 하는 대목이다.

장마를 지나고 한여름의 뙤약볕을 거치며 벼는 무럭무럭 자란다. 정말로 태양과 물과 바람이 어우러지는 속에서 벼는 꽃을 피운다. 그리고 관객 대부분은 벼가 피운 꽃을 실물로 처음 맞이하게 된다. 영화 중반을 훌쩍 지나서 1시간이 다 되었을 때 선보이는 벼꽃은 소박한 결실로 낱알을 낳는다. 바로 벼가 쌀이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다시 인간이 움직이는 기계가 굉음을 내며 고랑을 밀어대며 수확을 한다. 추수와 탈곡이 이어지고 농부의 드문드문 지나는 몇 마디 내뱉음을 넘어 (이 작품에선 보기 드문) 농민들의 정치적 구호와 집단적인 시위 풍경이 등장한다. 물론 매우 절제되어 사용되며 지금껏 이어왔던 영화의 흐름 중앙에 쐐기처럼 돌출하기보다는 벼가 아닌 인간들의 효과음처럼 들리는 연출 기조는 여전하다. 그리고 다시 한참이 지나 추수가 끝난 메마른 논에 농부는 물을 대기 시작하고 모판을 준비한다. 또 다른 순환의 시작이다.

 

"벼꽃" 영화 스틸샷
"벼꽃" 영화 스틸 이미지

 

3_ 독특한 표현방식을 통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들

 

국내에서는 오히려 세계적으로는 익숙한, 중국의 강남이나 동남아시아 일대를 배경으로 하는 “쌀의 노래” 유형의 다큐멘터리보다는 농민운동과 결합한 사회고발 형식의 독립 다큐멘터리가 더 익숙한 형태일 것이다. 그런 작품들에서 벼ㆍ쌀은 농민들의 애환을 형상화하거나 상징하는 객체로 자리매김 되곤 한다.

그런 와중에 등장한 <벼꽃>은 기존의 농민운동 위주 다큐멘터리의 사회적 의견 제시 역할을 최소한도에서 계승하면서 환경주의ㆍ생태주의 경향을 전면에 내세우는 새로운 형식을 제시한다. 이런 특징은 거칠게 표현하자면, 종래의 독립다큐멘터리와 내셔널 지오그래픽 자연다큐멘터리의 순기능을 접목했다고 볼 수 있겠다. 다만 이런 혼성 요소는 강점이기도 하지만 둘 중 한 유형을 극대화해 보고 싶은 관객이라면 아쉬울 수 있는 부분이 될 수도 있겠다.

차분하게 관찰하는 방식으로 관람하게 되는 작품이지만 1시간 남짓 지나고 추수가 한창인 논에서 농부가 너구리를 몰아대는 부분은 잔재미와 함께, 벼가 자라는 공간이 상업성 위주로 흘러가지만 다양한 생물들이 부대끼는 하나의 생태계라는 점을 드러낸다. 너구리는 몸이 불편해 보이고 그 때문에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벼 이삭이 무성한 논에 접근하지만, 눈이 없는 트랙터가 곧 들이닥쳐 고랑을 밀어버릴 근 미래에는 죽음의 공간이 될 테다. 안쓰러워하며 내쫓는 농부와 버티고 안 나가려는 너구리의 사투는 다소 정적으로 흘러가던 영화 속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자 재미로 끝나지 않는 상념의 순간이기도 하다.

2017년에 완성된 본 작품은 가치와 완성도에 비해 그리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자연 다큐멘터리로도, 사회참여를 격려하는 독립 다큐멘터리로도 전형적이지 않은 구성방식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벼꽃>이 구현해낸 신선함과 파격성이 좀 더 많은 이들에게 검증되고 이야기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종종 들어 어렵게 지면을 빌어 소개해보고자 한다. <벼꽃>은 유튜브 등에서 공개되어 전편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제대로 체험하는 방식은 대화면으로 극장에서 보는 것이라 믿는다. 작품을 접하고 주변 지인들과 함께 봤으면 하는 이들이라면 참고해주시길.

 

 


 

작품 정보

 

벼꽃 Rice Flower

다큐멘터리|2017|한국|80분|오정훈

9회 DMZ국제다큐영화제(2017) 한국경쟁 심사위원특별상&관객상

43회 서울독립영화제(2017), 23회 인디포럼(2018), 4회 서울국제음식영화제(2018) 초청작
 

"벼꽃" 영화 스틸샷
"벼꽃" 영화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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