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역사 이야기] 금전출납부에 적힌 네 글자… “해방 만세”
[근현대 역사 이야기] 금전출납부에 적힌 네 글자… “해방 만세”
  • 강철민
  • 승인 2019.08.29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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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율이에게

 

소율아 잘 지내고 있어? 

여름방학은 잘 보내고 있는지, 휴가는 잘 갔다 왔는지, 방학 생활이 궁금하구나. 요즘은 실내 수영장과 스포츠센터 실내 놀이터 등 아이들이 놀러 갈 곳이 아주 많은 것 같은데, 삼촌 어릴 때는 그런 것들이 별로 없었어.

기껏 해봐야 바다나 계곡으로 놀러 가는 게 다였어. 화물차 짐칸에 솥 하나, 수박 한 덩이, 염소 한 마리 싣고 친지들과 계곡으로 떠나지. 가까운 곳으로 가기에 삼십여 분이면 도착해. 

어른들이 음식 준비를 하면 아이들은 물놀이를 시작하지. 이리 첨벙 저리 첨벙 깨끗한 계곡물에서 버들치며 ‘뿍지’, ‘가재’를 잡았어. 양파 자루 한가득 가재를 잡아 보이면 어른들이 잘했다며 용돈도 많이 주셨어. 

솥을 걸고 불피우면 우리 꼬맹이들도 열심히 따라 모닥불을 피워. 불이 어느 정도 피워지면 종이컵을 걸 수 있게 주먹만 한 돌을 주워 모닥불 주위에 놓아. 종이컵이 신기하게도 가장자리 끝만 타다가 물이 끓기 시작해. 

그러면 가재 두 마리와 된장을 집어넣고 팔팔 끓이면 가재가 발갛게 되면서 먹음직스럽게 변해. 

한 마리 꺼내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어.

 

△ 목포시 문태중학교 학생의 금전출납부(1943~1947)

여름방학 기간에 8.15 광복절이 있었지?

삼촌도 티브이를 통해 대통령의 경축사와 8.15 자주평화대회를 보았어. 올해는 특히나 북미 관계, 남북관계, 일본과의 경제침략문제 등으로 큰 의미가 있는 행사였어.

오늘은 이런 8.15 광복절 74주년에 특별한 유물 하나를 소개할게. 보기에는 별 볼 일 없게 생긴 명함 2장 크기의 조그맣고 허름한 금전출납부야.

1943년부터 1947년까지 5년 동안 작성된, 당시 4대 항구(원산·인천·부산·목포) 중 하나였던 전라남도 목포시의 문태중학교(文泰中學校) 학생의 금전출납부인데, 지금의 용돈 기입장 정도 될 것 같아. 문태중학교는 1941년 개교하였는데, 초대 교장은 ‘횡전봉삼랑’ 이라는 일본인 교장이었다는 사실을 지금 보고 있는 금전출납부에서 확인할 수 있었어.

 

△ 1940년대 금전출납부 기재 물품과 가격
1940년대 금전출납부 기재 물품과 가격
△1940년대 금전출납부 기재 물품과 가격

이 작은 금전출납부를 열어보면 당시의 일제강점기 세상이 펼쳐진다. 지금 살아있다면 90세 정도 되는 이 학생은 당시 15세 정도로 추정되는데, 전라도 지역유지의 자식으로 보여.

월초에 아빠한테 돈 받으면 뱃삯(1엔 30전) 내고, 같은 날 떡(30전) 먹고, 찌개(40전) 먹고, 영화(15전) 봤어. 그리고 밀려있던 식대도 내고 복숭아(7전), 포도(50전)를 사 먹고 목욕(9전)과 이발(30전)을 하고 칫솔(45전), 신발(50전)도 구입해.

또 학교생활로는 방독면(3엔 85전)을 사고 빵 50개(2엔), 서예 용품(48전), 공작기구(9엔 25전), 연필 한 다스(70전), 하모니카(4엔), 펜(1엔 20전), 엽서(3전), 우표(5전), “국민도덕대의”(20전) 도서, 양말 5족(2엔 15전) 등을 샀어. 물론 빌렸던 친구들의 돈도 갚았고.

금전출납부는 1945년 8월 16일까지 일상적으로 쓰이다가 8월 15일 독립을 맞이해.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독립을 맞이하는 그 순간을 기재한 대목이야. 

독립 소식을 하루 늦게 알았는지 하루가 지난 후에 다시 15일 날짜를 쓰고 “조선독립만세”, “해방 만세”라는 가슴 뜨거운 문장을 기재했어. 얼마나 기뻤겠니. 15세 소년의 가슴에 불을 댕겨준 그 날.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아.

 

△ 8월 15일 ‘조선독립만세’, ‘해방만세’ 기재

일제 식민지 시절 국민도덕대의 정도의 책을 읽다가 독립이 되니 새로운 시각의 책들을 수없이 읽었던 것 같아. 1946년 5, 6월 두 달 사이에 9권(진학, 춘추, 철학사화, 중등조선말본, 조선역사, 할리우드 위클리, 신세대, 영어사전, 잡지)의 책을 구입했어. 또 “절약”, “조선의 금전을 아끼자”라는 글을 쓰며 새 조국 건설의 마음도 다졌던 것 같아.

 

△ 해방 직후 ‘절약’, ‘조선의 금전을 아끼자’ 
사진5. 독립직후 "절약", "조선의 금전을 아끼자" 건국2년(1946년) "새로운 학기다 아니 년도다", "새로운 정신으로 나가자"
△ ‘건국 2년’(1946), ‘새로운 학기다 아니 년도다’, ‘새로운 정신으로 나가자’

 

오늘은 109년 전 8월 29일인 “경술국치일”이야.

아직도 친일청산이 되지 않고 있고 일본의 경제보복 등으로 나라가 어지러운 상황이야. 백 년 넘게 이어져 오던 동북아정세와 국제정세가 그 근본부터 변화되는 오늘인 것 같아. 앞으로의 백 년을 잘 준비해 나라의 자주, 남북의 평화, 노동 존중의 새 시대가 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만 줄일게.

 

올해는 추석이 빨라서 다음 달이면 만날 수 있겠구나.

그때까지 건강히 지내고 방학 마무리 잘하고!

 


삼촌이.

 


* 경술국치 : ‘경술년에 일어난 치욕스러운 일’이라는 뜻으로, 1910년 8월 29일 일제에 우리나라가 주권을 완전히 빼앗긴 사건을 말합니다. 


글 _ 강철민 대구경북근현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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