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3월 22일 프랑스 파리 근교. 낭테르 대학이라고 불리는 지금의 파리 10대학. 낭테르 대학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학생 수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하자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급조된 대학으로 세세한 기숙사 규정, 비현실적이고 경직된 교수 내용, 위압적이고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만연해 있었다. 이에 대해 학생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을 즈음, 이 대학 학생들이 남학생들이 여학생 기숙사를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는 요구를 학교 측에 하게 되었다. 요구는 묵살 당했고 이에 반발한 일단의 학생들은 대학 내 자율성 확대 등을 요구하면서 이 대학 행정처를 점거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68혁명의 시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기숙사 혼숙을 금하고 있다. 단순 이성교제에도 징계를 내리는 학칙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중, 고등학교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우리나라 대학생들에게는 기숙사를 남, 녀 따로 쓰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세계의 많은 대학들은 기숙사 혼숙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리고 우리는 기숙사 야간 통금 제도도 당연하게 여긴다. 우리나라의 대부분 대학들은 기숙사 통금 제도가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 기숙사 통금 제도가 없는 대학이 있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다. 기숙사 통금 제도의 수위는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 중에서 최고 수위는 역시 ‘군대식 점호’ 를 하는 것이다. 사립대, 특히 여대에서 그러한 군대식 점호를 하는 경우가 많으며 적게는 주 1회, 많게는 매일 실시한다. 점호를 하지는 않더라도 대부분의 대학은 야간통행금지 규정이 있다. 통행금지 시간대는 학교마다 다르지만 보통 11시에서 새벽 1시부터 시작해서 새벽 4시에서 5시 정도에 끝이 난다. 통행금지 시간대엔 아예 문을 걸어 잠그는 경우도 있고 그냥 벌점만 주는데도 있다. 또, 외박에 대해서도 무조건 외박 사유를 적어서 외박계를 제출해야 하고 무단외박 시, 부모님에게 문자를 보내는 학교가 있는 반면 무단외박을 허용하는 경우도 있다.

당사자인 학생들은 이 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대구대, 영남대, 경북대 학생 중 기숙사에서 거주하는 40명을 대상으로 무작위 설문을 진행해보았다.(참고로 대구대와 영남대 기숙사는 군대식 점호를 하고 12시부터 출입을 통제한다. 경북대 기숙사는 군대식 점호는 없고 새벽 1시부터 새벽 5시까지 출입하는 자에 대해서 벌점을 부과한다.)



                                           경북대 기숙사 , 기사 내용과는 관련없음

통금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14명,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24명이었다. 6:4 정도로 통금 제도의 폐지를 요구하는 학생들이 많기는 했지만 통금 제도의 존치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수도 만만치 않았다. 통금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더니, 늦은 밤 통행이 빈번하면 먼저 수면을 취하고 있는 다른 사생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6명)이라거나 통금 제도가 없으면 사생들이 통제가 되지 않기 때문(6명)이라고 대답했다. 반면 통금제도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어봤더니, 대학생은 성인이므로 행동의 자율성을 보장해주어야 하기 때문(13명)이라거나 비용을 지불하고 생활하는 기숙사에서 통행의 자유가 없다는 것이 비합리적(11명)이라고 대답했다. 결국 사생들을 통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기숙사 통금 제도에 대해서 찬성하고 통제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기숙사 통금 제도에 대해서 반대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지점에서 필자는 통제를 당하는 사람들이 통제를 반긴다는 것이 신기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기숙사 관리팀 관계자는 “안전 사고 예방과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해 만든 가이드라인”이라며 “기숙사는 공동 생활인만큼 규칙이 필요하며 학부모들도 반긴다”고 말했다.

물론 정답은 없다. 하지만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통제’ 시스템에 대해서 의문을 던져볼 필요는 있다. 어쩌면 우리는 ‘통제’ 국가에서 살고 있어서 ‘통제’ 시스템에 대해서 익숙한 것이 아닐까? 교도소에서도 하지 않는 두발 검사를 하는 중,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우리는 그것이 부당하다는 생각보다 두발 자유가 되면 학교가 난장판이 될 거라는 걱정을 하지는 않았던가. ‘통제’ 가 유의미한 것은 ‘무질서’ 보다 더 나은 점이 있을 때이다. 통제를 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자유권을 침해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합당하려면 통제했을 때의 이익이 분명히 커야 한다. 이익이 없다면 그건 그냥 ‘자유권’ 이라는 기본권 침해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숙사 통금 제도에 대해서 찬성하는 사람들이 ‘늦은 밤 통행이 빈번하면 먼저 수면을 취하고 있는 다른 사생들에게 피해를 준다’ 는 것은 나름 합당한 근거인 듯 하다. 그러나 단순한 통행이 수면에 방해를 주는 정도가 통행에 대한 자유권을 침해할만큼 큰 것인가 한다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결국 우리는 ‘통제 당하지 않으면 카오스가 될 거야’ 하는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통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에 포섭된 것은 아닐까.

1968년 봄, 파리 근교 낭테르 대학 학생들은 자신들을 설득하기 위해 학교를 찾은 교육부 장관을 ‘올림픽 규격 수영장’ 에 ‘내던졌다.’ 그 중 일부 학생들은 그 자리에서 담배를 피기도 하였다. 그들은 ‘예의 없음’ 을 감수하면서 ‘통제 받지 않음’ 을 선택했다. 그 ‘통제 받지 않겠다.’ 는 정서는 결국 전 세계를 뒤흔든 68혁명의 정신이 된다.
(기사제휴 = 뉴스꼴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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