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September 11” & “Fahrenheit 9/11”

 

9.11 테러 당시 사진(퍼블릭도메인)
△ 9.11 테러 당시 사진 (퍼블릭도메인)


1_ 2001년 9월 11일 이후 변해버린 세계

2001년 9월 11일, 전 세계에서 뉴스 속보를 보던 이들은 픽션을 초월하는 현실에 경악했다. 여객기를 납치한 무장 테러범들이 각각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빌딩과 미 국방성 펜타곤 건물에 자폭 공격으로 충돌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세계무역센터 건물은 무너져 내리며 수천 명의 사상자를 냈다.

미국의 상징이라 할 두 건물에 대한 공격과 희생에 격노한 당시 부시 2세 대통령은 사건의 배후인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조직 ‘알 카에다’, 그들을 비호하는 국가와 조직에 대한 응징을 천명했다. 이후 현재까지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테러의 배후이자 빈 라덴을 보호하는 우산으로 지목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은 ‘대 테러 전쟁’의 주전장이 되었고 이미 이란-이라크 전쟁과 걸프전쟁으로 붕괴 직전이던 후세인 정권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기나긴 내전 상태였던 탈레반 정권의 아프가니스탄은 쉽사리 초강대국 미국의 군사력으로 정복되었다. 부시 2세 대통령과 그의 측근, ‘네오콘’이라 불리던 보수 강경파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20세기 내내 진행된 미국과 소련의 동서 냉전 시기 대규모의 정규군에 의한 정규전이 아니라 비정규전이 중심이 되었다. 중동과 무슬림의 정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힘에 의한 지배를 추구하던 네오콘의 정책과, 서구와는 다르게 근대 시민사회가 확립되지 못하고 강력한 독재통치만 붕괴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은 이후 10여 년 넘게 미국을 이길 수 없는 전쟁으로 끌고 들어갔다. 천문학적 군사비와 줄줄 새는 원조는 ‘밑 빠진 독’이 되었다. 미국 경제는 붕괴 위기에 처했고 부시 2세 이후 오바마와 트럼프 대통령들은 어떻게든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온갖 수를 써야 했다. 

후세인이 독재자이긴 했지만 이라크는 911 주범인 빈 라덴 세력과는 오히려 적대적이었으며,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은 몰아냈지만 빈 라덴의 신원은 오랫동안 오리무중이었다. 오히려 무의미한 전쟁 과정에서 파탄 국가가 된 양국과 비교하면, 무슬림 극단주의가 팽배해 과거 미국이 테러집단으로 규정했던 하마스나 헤즈볼라는 중도세력으로 비칠 지경이다. 알 카에다에서 다에쉬(IS)가 분화되었고 유럽과 아시아 곳곳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전쟁은 국경 개념이 사라지고 SNS를 이용한 연락과 선전이 무차별 테러와 조합되는 21세기형 전장이 등장했다. 현재 시리아 내전까지 이런 상황은 급속 진화 중이다.

동서 냉전이 끝나고 서구의 승리로 세계는 통합될 것이라는,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을 선언하던 낙관은 사라졌다. 그 빈자리를 4차 세계대전이 메웠다. (냉전 시기 벌어진 수많은 대리전쟁과 체제대결을 3차 세계대전으로, 냉전 이후 현재 상황을 4차로 분류하는 식) 그 모든 기원에는 2001년 9월 11일의 사건이 자리하고 있다.

 

2_ 옴니버스 영화 <2001년 9월 11일, 11'09''01 - September 11> (2002)

할리우드에서 이후 직간접적으로 911을 다룬 수많은 영화들이 제작되었다. 그 영화들의 다양한 소재와 경향, 구성을 분류하자면 논문으로도 부족하다. 여기에선 단 2편의 영화만을 다루려 한다.

시기적으로 가장 일찍 나온 영화들 중 하나로 대서양 건너 프랑스의 유명 영화-미디어 기업 ‘카날’이 세계 각국 11명의 거장 감독에게 의뢰한 <2001년 9월 11일, 11'09''01 - September 11>이 있다. 11명의 감독에게 각각 11‘분’ 9‘초’ 1‘프레임’의 분량으로 제작사의 특별한 간섭이나 소재 제한 없이 감독 각자의 견해를 담아 만들어진 작품이다. 당시 세계 각국의 911에 대한 입장을 읽어낼 수 있는 흥미로운 단편이 여럿 나왔으며,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는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국제평론가협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에선 특히 1편만 언급하겠다. 영국의 거장 켄 로치의 단편이다.

 

"September 11" 포스터 이미지
△ “September 11” 포스터

11편의 단편 모두 별도의 제목이 없다. 그저 1편이 끝나면 다음 에피소드 감독의 지역이 지도에 표시되는 식이다. 한 남자가 편지를 쓴다. 기록 영상이 나오는 사이, 남자가 쓰는 편지가 내레이션처럼 읽힌다. 남자는 영국에 거주하는 칠레인으로 밝혀진다. 911로 가족을 잃은 미국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아마 미국의 관객들은 형제국가처럼 친밀한 영국인들이 테러로 상심에 찬 미국인들을 위로하는 영화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단편의 감독은 “켄 로치”이다.

켄 로치는 2001년 9월 11일이 아닌 1973년 9월 11일을 다룬다. 미국인, 그리고 꼭 미국인이 아니라도 대부분의 관객은 당혹스러울 것이다. 1973년이 왜 나와?

켄 로치는 덫을 쳐 놓고 관객을 끌어들인다. 영국에 망명한 칠레인으로 추정되는 화자의 해설과 기록영상을 통해 관객은 또 다른 ‘911’로 빨려 들어간다. 망각을 강요받았던 역사가 기록영상으로 재현된다.

그날은 바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가 군부 쿠데타로 무너진 날이다. 미국의 비호와 지원으로 친미 군부는 자신감을 갖고 합법정부를 무력으로 붕괴시켰다. 대통령 궁을 칠레 공군 전투기가 폭격했다. 아옌데 대통령은 망명 요구를 거부하고 대통령 궁에서 총을 들고 저항하다 최후를 맞았다. 쿠데타의 지도자로 이후 오랜 기간 독재자가 되었던 피노체트를 미국의 키신저 국무장관이 반갑게 환영하는 화면이 깔리고, 아옌데 지지자에 대한 탄압이 화면에 펼쳐진다.

알 카에다의 테러로 인해 희생된 이들은 억울한 죽음을 맞이할 이유가 없었으며, 민간인에 대한 테러는 용인될 수 없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과거 수많은 타국에 대한 군사개입과 배후 공작을 저지른 사실을 외면하거나 동조해 왔었다. 켄 로치는 당시 토니 블레어 총리의 노동당 정부가 ‘부시의 푸들’이라는 조롱을 당할 정도로 친미적인 상황에서 언론의 표적이 되었고, 한동안 미국에 갈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거장 감독은 이후에도 자국의 아일랜드 식민지 탄압과 저항을 배경으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을 만들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자국 언론의 집중포화를 함께 받아낼 정도로 뚝심이 강했다.

켄 로치 외에도 이 옴니버스 영화에서 중동 지역의 거장들은 그런 미국인의 둔감함을 비꼬거나 질타하는 내용 위주로 단편을 만들었다. 미국인은 위로받기를 원했지만 정작 세계의 반응은 차가웠다. 당황한 미국은 신경질적인 작품 평가로 화풀이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카날 사의 혜안과 거장들의 통찰이 옳았음을 세계는 알고 있다.

아쉽게도 이 옴니버스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 상영된 후, 친미국가인 이곳에서 정식 개봉하거나 소개되지 못했다. 본 작품을 보기 위해선 유튜브나 비메오 등의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에서 한글 번역 없이 영상을 시청해야 한다. 하지만 짧은 단편 특성상 자막이 없이도 대략적인 분위기는 이해할 수 있다.

※ 1973년 칠레에서 벌어졌던 일련의 상황들에 대해선 파트리시오 구스만 감독의 <칠레 전투 3부작(제1부 : 부르주아지의 봉기(1975), 제2부 : 쿠데타와 아옌데 대통령의 최후(1977), 칠레 전투 제3부 : 민중의 힘(1979))에서 소상하게 확인할 수 있다. 정식 극장 개봉은 없었지만 여러 영화제에서 소개되었고, dvd 등으로 구할 수 있다.

 

3_ 마이클 무어 <화씨 911 Fahrenheit 9/11> (2004년)

미국 내에서 대안적인 911 관련 영화는 조금 더 시간이 걸려 등장한다. <로저와 나>, <볼링 포 콜럼바인> 등의 사회 비판 소재를 담은 다큐멘터리로 성공을 거둔 마이클 무어에게 57회 칸영화제(2004) 황금종려상을 안긴 <화씨 911 Fahrenheit 9/11>가 그 작품이다.

앞서 소개한 <2001년 9월 11일, 11'09''01 - September 11>가 미국인들의 기대(?)와 다른 세계의 시선을 보여준 작품이라면, 마이클 무어의 영화는 다양한 음모이론을 검증하고 911 직후 부시 2세 정부가 실제로 주범 빈 라덴과는 무관한 이라크 침공에 나선 데 대한 의문을 여러 각도에서 제기한다. 

우리가 지금도 ‘마이클 무어’ 스타일로 인식하는 유머 감각과 집요한 고집은 정치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넘는 블랙 유머로 완성되었다. 논증을 위해 전문가 검증을 거치고, 탐사보도 형식으로 빈 라덴의 고국인 중동의 대표적 친미국가(!) 사우디아라비아의 911 테러 연계성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간다.

부시 집안은 텍사스의 석유재벌이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 최대의 산유국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라비아반도 대부분의 산유국들은 중세적 왕정 체제가 대부분이다. 최근 사우디의 실권자 빈 살만 왕세자의 자국 내 비판적 언론인 암살 의혹처럼 사우디를 포함한 이들 국가는 국내에서 왕정 독재를 펼치며 여성이나 소수자의 인권을 무시하지만, 미국 입장에선 중요한 동맹국들이다. (반면 중동에서 가장 ‘세속화’되었고 소수민족이나 여성인권이 비교적 보장되는 국가 대부분은 미국의 적국이다)

 

"Fahrenheit 9/11" 포스터 이미지
△ “Fahrenheit 9/11” 포스터

영화는 탐사보도 방식으로 부시 집안의 간략한 역사, 부시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 정가와 사우디 왕가, 그리고 유력한 재벌 가문인 빈 라덴 일가와의 돈독한 친분 관계를 파헤쳐 드러낸다. 그리고 빈 라덴이 과거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의 친미국가들이 아프가니스탄의 친 소련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육성했던 ‘무자헤딘’ 게릴라 출신임을 알린다. 즉 미국의 자금과 훈련으로 알 카에다를 키운 셈이다. 영화는 그런 사실을 드러내며 미국인의 입장에선 당혹스러운 상황을 연거푸 터뜨린다.

그리고 마이클 무어의 카메라는 ‘대 테러 전쟁’을 명분으로 미국 내에서 진행되는 일련의 상황으로 시선을 돌린다. 정작 테러를 막는 데에는 별 소용이 없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외부의 적’에 대한 전쟁을 핑계로 미국 시민의 기본권을 훼손하는 ‘애국 법안’들이 속속 만들어지며 인권이 부정되는 풍조를 지적한다. ‘국토안보부’라는 서슬이 퍼런 부서가 출범한다. 공권력은 중무장하지만 정작 국내 치안이나 국경수비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이어서 감독은 전쟁에선 쉽게 승리했지만 점령 후 오히려 인명피해가 늘기 시작한 이라크 전쟁을 조망한다. 군인들은 무차별 테러와 적과 민간인이 구분되지 않는 낯선 타국의 전선에서 시달리지만, 부시 2세 대통령의 정부는 ‘전쟁 승리’ 퍼레이드를 기획하고 이라크의 석유 자원 활용에 골몰한다. ‘네오콘’ 정치인과 거대 에너지 기업의 커넥션은 일심동체로 보일 지경이다. 반면 점점 전사자가 늘어나고 군인이 부족하자 하층민 자녀를 집중 공략하는 모병 풍경이 펼쳐지고, 소방관이나 군인들에 대한 지원은 허술하거나 삭감되는 행태를 고발한다.

심각한 내용들이지만 유머와 풍자를 적절히 포함해 지루함을 최소화하고 아이러니를 관객에게 던지는 마이클 무어 특유의 구성 방식은 큰 흥행 성공으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미국 사회에서 911 사태에 대한 ‘애국적’인 정부 공식 입장 외에도 다양한 토론이 기능하는 데 큰 역할을 해냈다. 다행히 이 작품은 국내에서 극장 개봉을 통해 상당한 관객이 들었고 현재도 여러 경로로 입수할 수 있다.


4_ 두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 그리고 이제는 역사가 된 9.11

<화씨 911 Fahrenheit 9/11>의 제목은, 국내 영미/과학소설 애호가들에게는 잘 알려진 고전 SF 소설 “화씨 451”에서 (무단으로) 따온 것이다. 보수우파적 정치 성향을 가진 원작자 레이 브래드버리는 이 일로 마이클 무어를 심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소설 원작의 제목이 주는 서늘함, 미래사회에서 사상 통일을 위해 책을 불태우는 직업인 ‘방화수’가 주인공인 암울한 배경을 영화가 잘 차용한 셈이다.

당시 미국의 일방적 전쟁 주도에 냉소를 보내던 유럽, 특히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마이클 무어 감독이 대상인 황금종려상 수상 연설을 통해 미국의 전쟁 행태를 5분 넘게 비난하자 관객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그 직후, 마이클 무어 감독은 박수를 보내는 유럽 관객들에게 일갈한다. ‘당신네 나라도 과거에 식민 지배 시절에 학살과 수탈을 저질렀고, 지금 부시 대통령이 미친 짓 하는데 앞잡이 노릇하거나 구경만 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순간 장내는 어이를 상실한 관객들로 인해 적막해졌고 마이클 무어는 유유히 단상을 내려갔다고 전한다. 그로 인해 미국 내에서도 수많은 안티가 생겼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Fahrenheit 9/11" 스틸 이미지
          △ “Fahrenheit 9/11” 스틸 이미지. 오른쪽 인물이 마이클 무어 감독.
켄 로치 감독
     △ 켄 로치 감독

켄 로치의 단편을 특별히 1973년에 벌어졌던 미국의 위선과 더불어 소개했지만, 중동 출신인 유세프 샤힌(이집트), 아모스 기타이(이스라엘), 사미라 마흐말마프(이란) 감독은 전쟁과 테러가 일상화된 중동의 현실을 보여주며 미국인 관객들이라면 등골이 서늘할 인상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켄 로치는 반골 기질을 유감없이 선보이며 미국은 물론, 당시 미국의 파트너로 움직이던 영국 내 보수우파 세력들에게 오랜 기간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은 그들의 통찰이 옳았음을 보여주었다. ‘잠수함 토끼’ 같은, 시대의 징후를 읽어내는 문화예술가의 섬세함과 결의는 국내에서도 여전히 일군의 독립영화ㆍ예술인에게 계승되고 있다.

 

 


 

작품 정보

 

2001년 9월 11일 (September 11, 11'09''01 - September 11)

2002드라마프랑스, 영국, 이집트, 일본, 멕시코, 미국, 이란 13315세 이상 관람가

감독 유세프 샤힌, 아모스 기타이, 알레한드로 곤잘레츠 이냐리투, 이마무라 쇼헤이,

끌로드 를르슈, 켄 로치, 사미라 마흐말마프, 미라 네어, 이드리사 우에드라고, 숀 펜,

다니스 타노비치

 

화씨 911 (Fahrenheit 9/11)

2004전쟁ㆍ다큐멘터리미국 12315세이상관람가

감독 마이클 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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