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제법 쌀쌀하네.

추석 때 만난 소율이가 몰라보게 훌쩍 키가 큰 모습에 세월의 빠름도 다시 한번 느꼈어.

어릴 적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추석이 참 기다려졌어. 친지들이 벌초하러 오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사촌들과 모여 재미난 장난도 치고. 골짜기 외딴 집에 살았던 삼촌은 우리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어.

특히 숙부님은 손재주가 좋으셨는데 등유 횃불을 만들어 밤늦게까지 불을 밝혀 가재며, 물고기를 잡으셨어. 굵은 철사를 못 쓰는 천 조각과 함께 야구공처럼 둥글게 말아 횃불 심지를 만들고 거기에 막대로 길게 손잡이를 만들어 불을 댕기지. 

온 사방이 훤해지면 개울가로 가서 몇 시간 전에 던져 놓은 닭 뼈를 살펴봐. 음식에 파리 떼가 모이듯 가재들이 빼곡히 모여들어 닭 다리를 뜯고 있어. 그렇게 잡은 가재와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여 친지들과 나눠 먹으면 정말 맛이 있었어. 

그런데 그 맛도 좋았지만, 어른들과 함께 도깨비불같은 횃불을 따라 이리저리 다니며 물고기를 잡는 재미가 훨씬 컸어. 꼭 뭔가 대단한 일에 한몫 단단히 한 개선장군처럼, 성인식을 통과한 소년처럼 짜릿한 희열을 느꼈어. 

그렇게 추석이 지나갔어. 

 

소율아, 지난번 금전출납부 기억나? 목포에 살던 문태중학교 학생의 용돈 기입장.

목포는 일제강점기에 엄청나게 큰 항구였어. 전남지역의 비옥한 농토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수탈해가는 항구였지. 아직도 이 목포의 온금지구에는 많은 적산가옥이 남아있는데, 그 이유는 당시 가장 번화가였기 때문이야. 

오늘은 우체국에서 송금을 하면서 발행한 소액환증서(증서에 적힌 일본말로는 ‘소회태증서小匯兌證書’)를 소개할게.

1945년 8월 16일 만주국이라는 생소한 나라에서 이 목포시의 온금동으로 보낸 우편물인데, 같이 살펴보도록 하자.

 

       △1945년 8월 16일 만주국에서 발송한 소액환증서(우편 송금). 
       △소액환증서 뒷면.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의 무조건 항복으로 일제는 패망했어. 한반도에서는 해방 만세, 독립 만세 소리가 울려 퍼지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많은 사람이 일어났어.

그러나 한반도는 9월 2일 연합국 합의서에 따라 미국과 소련에 의해 각각 위도 38도를 경계로 남과 북이 나뉘었어. 이때부터 한반도 분단과 예속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지. 

한반도 북쪽 지역에는 일제가 만든 만주국이라는 나라가 있었어. 1932년 3월 1일 건국되어 중국 청나라의 마지막 황태자인 푸이를 데려다 황제로 앉힌 괴뢰국인데, 국토는 요녕(遼寧), 길림(吉林), 흑룡강(黑龍江) 등 동북 지방 모두를 지배하였지. 인구는 삼천만 명이나 되는, 한반도보다 약 4배 정도 큰 나라였어.

△1945. 8. 16 만주국 대호산 소인(위의 사진 확대)

일제의 중국 침략의 상징이며 교두보였던 이 만주국은 1945년 8월 18일 일본이 망하면서 함께 망했지.

세계 2차대전 말인 1945년 8월 15일, 소련군이 만주국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만주국의 관료와 일제 부역자들이 혼비백산하였고 피난을 떠나기 시작해. 이때 만주국 황제 푸이도 피난길에 올라 며칠 못 가고 압록강 근처에서 소련군에게 체포되어 수용소에 갇히는 신세가 돼. 

만주국이 아수라장이 되어 해외로 피난 가거나 돈을 부친다고 각 은행이며 우체국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을 이때, 어떤 이가 만주국 대호산 우체국에서 지금으로 치면 ‘천만 원’ 정도 되는 돈을 부치고 영수증을 받았어.

수취인이 ‘조선 목포부 온금정 일정목 59번지’에 사는 ‘윤복춘’으로 적힌 이 증서야. *미군정 시기인 1947년 4월 21일, 목포시 온금동의 한 우체국에서 누군가 돈으로 교환했지. 

아마도 1945년 12월 6일 미군정법령 제33호 ‘조선 내 소재 일본인 재산 취득에 관한 건’에 의해 일제의 모든 재산을 미군정이 취득했어. 그리고 개인의 재산은 자유롭게 취급할 수 있게 되면서 소액환증서로 돈을 찾은 것 같아. 

△1947. 4. 21 목포 소인

세계 2차대전 마지막 시기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소련, 중국, 일본 등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 민족이 겪은 아픔과 생활상 등 역사적인 한 장면을 보여주는 유물이라 할 수 있어. 

 

오늘은 생소한 나라와 숫자들이 너무 많이 나왔지? 

혼란기와 과도기의 상황도 많이 겹쳐진 역사를 살펴봐서 더 머리가 아팠을 거야. 

태풍이 한반도를 가로질러 간다고 해. 지난번 태풍으로 큰 피해가 있었어. 아직도 그 피해가 수습되지도 않았는데 또 태풍이라니.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서글프다.

 

 

* 미군정 : 미국과 소련은 1945년 8월 25일 북위 38°선 분할 점령을 발표하고, 9월 2일 일본의 항복문서가 조인됨에 따라 점령지역 연합군의 분할 진주를 발표했다. 

하지 중장 휘하의 미 제24군단은 서울에 도착해 9월 9일 포고령 제1호로 “38°선 이남의 조선과 조선민에 대하여 미군이 군정을 펼 것”이라 포고하고, 9월 12일 아널드 소장이 미군정 장관에 취임했다. 미군정은 일제강점기의 악법들은 폐지했으나 신문지법·보안법 등은 존속시켜 통치에 활용했다.

1946년 5월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미군정은 신탁통치 문제를 좌우합작으로 해결하고자 하였으나 실패했다. 국제연합의 조정으로 1948년 5월 10일 남한에서 총선거가 시행되어 국회가 구성되었고,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미군정은 끝났다. (발췌 / 다음백과)

 


글 _  강철민 대구경북근현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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