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없는 노동자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퇴근 없는 노동자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 박지영
  • 승인 2019.10.0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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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휴일 오후, 강변을 산책했다.

경민 씨 어깨에 한 손을 얹고 속도를 맞춰 나란히 걷는 소점 씨의 어깨에 가을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김소점(46) 씨는 전 유도 국가대표 선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운동선수의 경험을 살려 헬스장을 열었고 사업은 대박이 났다. 결혼과 임신, 출산으로 모든 활동은 중단되었다. 소점 씨의 아이는 3살 무렵 희귀난치성 질환인 근육병 진단을 받았다.

아들 경민(18) 씨는 희귀난치성 질환인 근육병이 있는 와상장애인이다. 손가락의 근육으로 전동 휠체어 조작만 가능하다. ‘경산자인학교’를 다니는 경민 씨는 오후 4시에 집으로 돌아온다.

키 175cm, 몸무게 100kg의 경민 씨를 씻기고 옮기는 일은 두 사람의 힘이 필요하다. 2~3시간마다 한 번씩 욕창 방지를 위해 누워있는 자세를 바꿔줘야 하고 기침만 해도 들여다봐야 한다.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은 한 달 280시간, 활동지원사가 퇴근하는 밤 11시 이후부터 온전히 소점 씨가 돌본다. 선잠을 잘 수밖에 없다.

“청소나 빨래는 남편이 조금씩 해요. 요리하고 빨래 삶는 일은 많은 시간과 요령이 필요하죠. 그래서 내가 많이 하는 편이에요. 사실 집안일을 분담하고 살지 않아요. 누군가가 집안일을 하면 누군가는 경민이를 돌보고요. 경민이를 휠체어에 앉히는 일은 큰 힘과 요령이 필요한데, 그건 오로지 나만 할 수 있어요. 업는 게 익숙하지 않아 안아서 옮기죠. 몇 해 전에는 안아 옮기다가 실수로 놓쳤는데 양쪽 다리 대퇴부 골절로 경민이가 병원 생활을 오래 했어요. 몸집이 자그마한 엄마도 자기보다 큰 아이를 업고 휠체어에 태우고 차에 옮기고 다 해요. 내 아이니까요.”

희귀난치성 중증 장애 자녀를 둔 부모 중 돌봄노동에 자기 삶을 희생하는 다수는 ‘어머니’다. 사회적으로 ‘강요’된 어머니의 역할은 돌봄 노동에 병원 치료의 책임이 가중되어 고통으로 다가온다. 몇 번의 응급상황을 경험하면서 돌봄의 삶에 지치고, 심리적 스트레스와 육체적 고단함은 부정적인 감정 표현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3살 때 근육병 진단을 받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어 남편은 두고 경민이와 단둘이 무작정 제주도행 비행기를 탔어요. 생을 포기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웃는 경민이를 보고 살아야겠다 싶어 대형 운전면허를 따고, 가이드를 하고, 마트 캐셔도 했어요. 그렇게 1년 6개월 만에 육지로 나갔어요.”

소점 씨는 과로로 쓰러져 응급실에 갔지만, 입원을 할 수가 없었다. 

“경민이를 안아 옮기려면 힘이 많이 필요해요. 그러다 수술한 곳이 터질까 봐 자꾸자꾸 미뤘어요. 하혈이 심해 빈혈 수치가 6까지 내려갔어요. 경민이를 안아서 이동하고, 학교에 보내고, 배변을 돕는 것은 내 일이에요. 어지러워 쓰러지고, 수혈을 받으며 버티다가 자궁 근종이 10cm 넘게 커져서 수술을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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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권유로 파크 골프에 입문한 소점 씨는 2008년부터 문경대학교 레저스포츠학과 비정규직 교수로 7년을 재직하기도 했다.

지금은 (사)경북신체장애인복지회 경산시지부 사무국장으로 주 5일 상근활동을 하며 장애인을 위한 전화 상담, 사례관리, 법률상담 연계, 생활 불편 상담 및 지원 업무를 한다. 언어장애인의 의사소통이나 수영장 수강 등 인터넷 신청이 서툰 장애인을 지원한다. 전세금 반환과 휠체어 사고 처리 등 법률적인 부분을 상담하고, 법률사무소에 연계한다. 익숙하지 않은 회계와 복잡한 서류작업, 처리해야 할 일은 많지만 상근하는 활동가는 소점 씨 한 명이다.

처음 비장애인으로 장애단체의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주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러나 열성적이고 긍정적인 태도, 탁월한 장애감수성을 강점으로 십수 년간 장애단체의 무급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장애단체에서 일하는 비장애인 활동가들에게 말해 주고 싶어요. 임금노동이 봉사로 희석되는 것을 그냥 두지 마세요. 소외되고 배제되는 이들을 위한 자신의 직업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프로답게 일했으면 좋겠어요.”

만 18세 이상의 와상장애인이 학교를 졸업하면 갈 수 있는 주간보호센터가 없다는 사실에 소점 씨는 센터 설립을 추진했다. 소점 씨가 와상장애인 주간보호센터를 세우겠다고 했을 때, 그간의 열정과 노력에 80여 명의 후원자가 응답했다.

지금은 대한장애인골프협회와 경북장애인골프협회 이사, 경북특수교육위원, 와상장애인 주간보호센터의 총괄까지 겸하고 있다. 장애인 골프 대회가 열리는 주말에는 선수를 코치하고 지원하는 일을 한다.

장애인 복지제도 개선에 목소리를 보태는 일에도 빠지지 않는다. 와상장애인의 처우 개선을 위해 대통령을 면담하고, 국회 앞 집회에 참여하고, 시위를 위해 며칠씩 집을 비우기도 했다.

“장애 정도에 따라 지원받는 복지서비스는 또 달라져요. 중증 장애인에게 기본으로 제공되는 휠체어는 와상 장애가 있는 경민이에게 무용지물이에요. 맞춤형 복지서비스로 가되 조금 더 촘촘해지고 세분화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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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장애 아이를 돌보는 엄마로, 단체의 활동가로, 임원으로 어느 하나 놓지 못하는 소점 씨에게 쉬는 날이 있을까. 활동하는 힘은 어디서 나는 걸까.

“기적을 바라보고 사는 것보다, 아들과 나를 위해 무엇이 더 필요할지 생각했어요. 일을 많이 하는 것을 걱정하는 분도 있어요. 몸을 쉬면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아져요. 생각하면 두렵고 우울해져요. 몸을 움직이고, 일을 만들고 찾으면서 이겨내려고 해요. 퇴근 후 이틀에 한 번 배드민턴을 치면서 체력을 유지하려고 해요.”

식당에서 소점 씨는 경민 씨에게 먹고 싶은 반찬을 물어본다. 밥과 반찬을 부지런히 떠서 경민 씨에게 먹이면서 자신도 재빠르게 식사를 한다. 소점 씨 숟가락이 경민 씨 숟가락이 되고 경민 씨 숟가락이 소점 씨 숟가락이 된다. 18살의 경민 씨가 엄마에게만 유일하게 숟가락 공유를 허락했다고 소점 씨가 귀띔했다.

휴일, 영화 보기가 취미인 모자의 나들이에 동행했다. 소점 씨는 차량 뒤쪽 휠체어 리프트를 능숙하게 조종해서 경민 씨를 차에 태웠다. 마치 대형 주차타워의 리프트를 움직이는 엔지니어처럼 보였다. (장애인 차량 휠체어 리프트 설치에 대한 국가 보조금은 일절 없다고 한다.)

대형면허가 있는 소점 씨는 9인승 차량을 아주 능숙하고 부드럽게 운전했고, 창밖을 보는 경민 씨는 편안하고 익숙해 보였다. 영화를 보면 꼭 먹는다는 팝콘을 사서 영화관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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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점 씨는 자신의 모든 감정을 경민 씨를 통해 보고 말하려고 했다. 영화가 재미있었냐는 질문에 직접 대답하지 않고 경민 씨에게 물었다. 경민 씨가 재미있으면 소점 씨도 재미있다고 느낀다. 경민 씨를 따라 즐거운 것이 되었다가 슬픈 것이 되었다. 인터뷰 중 자꾸 경민 씨에게로 향하는 소점 씨 마음을 돌리느라 애를 먹었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소점 씨는 말했다.

“근무하다가도 경민이한테 일이 생기면 쫓아가요. 힘들지 않아요. 내 일상이 그래요. 대신 잠 한 번 푹 자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