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8일 한밤중이었다. 소성리 평화마당 단체 카톡방에 몇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줄이 끝도 없이 이어졌고, 현란한 불빛으로 거리를 가득 메운 서울의 모습이었다. 서초동 대검찰청 앞은 촛불 인파 50만 명이 모여서 ‘조국수호와 검찰개혁’을 외친다는 소식이었다. 조금 후에 촛불은 1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했고, 또 마지막 순간에는 200만 명의 촛불이 서울 도심 한복판을 다 차지했다고 들뜬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나도 검찰개혁이 이뤄지길 바라는 한 사람이다. 그러나 200만 촛불이 야속했다. 벌써 3년이 훌쩍 지난 일이 되어버렸지만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킬 때도 수만, 수십만의 촛불이 매주 토요일 서울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범국민행동 촛불은 시급한 적폐 청산 6대 과제로 사드 한국 배치를 중단 시켜야 한다고 했었다. 연인원 1700만 국민이 촛불을 들고 ‘한반도 어디에도 사드 배치의 최적지는 없다’고 외쳤다. ‘백해무익한 사드를 배치하는 건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고 군사긴장감을 높인다’며 서울 광화문 일대를 들썩거리게 할 정도로 “사드 배치 결사반대” 구호는 울려 퍼졌다. 가슴 벅찼다. 사드가 배치되지 않을 거라 기대했었다.

박근혜 정권이 탄핵되고 촛불은 시들어졌다. 정권이 교체되었지만 사드는 소성리 마을로 들어왔다. 경찰 공권력 1만여 명이 소성리 마을을 짓밟고 진공상태로 만들었다. 유유자적 미국 사드는 미군이 운전해서 달마산 꼭대기로 옮겨졌다. 사드를 반대했던 소성리 주민들과 한반도 사드 배치를 반대했던 평화지킴이들 500여 명이 20시간 동안 밤새워 도로를 막고 싸웠지만 불가항력이었다.

 

세월은 어느덧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소성리 주민들은 여전히 사드 배치에 반대하면서 마을을 지키고 있다. 마을 앞 도로는 미군이 지나갈 수 없다. 미군 차량과 군대 차량은 절대 마을 길을 이용할 수 없다. 수년 동안 마을을 지켰다는 것은 사드 부지에 미군 기지를 건설하려는 자들과 그만큼 치열하게 몸을 맞대고 싸워왔다는 뜻이다.

달마산 꼭대기 사드 기지로 가는 길목인 진밭교에는 원불교 교무님들이 진밭평화교당을 세웠다. 길목을 지켜주는 평화의 종교인들이 소성리에 들어왔다. 예수살기의 장로님이 고집스럽게 아침기도회를 진행했다. 날마다 아침 6시 50분에 아침기도회가 열린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도 미련스럽게 사드 기지 정문 앞에서 아침 평화행동을 해내고 있다.

최근에 사드 부지 공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주민들과 마찰을 우려해 육로가 아닌 하늘길로 공사 자재를 운반한다고 국방부가 밝혔다. 날마다 시누크 헬기가 커다란 컨테이너를 매달고 수시로 마을 하늘을 들락날락한다. 밭에서 일할 때 내 머리 꼭대기 위로 헬기가 떠다닐 때마다, 언젠가 저기 매달린 컨테이너 박스가 툭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과 소음의 공포가 다가와 소름이 쫙 끼친다.

군대는 철조망으로 둘둘 쌓여있다. 안으로 전혀 접근할 수 없어 공사현장을 지켜볼 수 없다. 결국 화, 목, 금요일 오후 시간에는 산길을 타고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사드 기지에서 미군 숙소에 가장 가까운 곳까지 올라간다. ‘미국 안보 위한 사드 가지고 주한미군 철수하라’고 항의 행동을 펼치고 있다.

매주 수요일이면 오후 두 시, 소성리 마을회관 앞 마당에서 사드 철거 결의를 모으는 집회가 열린다. 토요일 밤 소성리 촛불문화제는 다채로운 프로그램과 공연으로 화려하다.

지난 일요일은 한반도 사드 배치 결사반대 김천 촛불이 809번째 촛불을 밝혔다. 부산에서 원불교 교도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자주 오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씀을 늘 앞에 밝히시지만 사드를 철거할 때까지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신다.

우리에게 촛불은 일상이 되었고,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드 반대 촛불문화제에도 남을 사람만 남았다. 자주 오지 못해도 때가 되면 찾아주는 사드 반대 평화지킴이들이 있어 우리는 외롭지 않게 긴긴 시간을 버텨내왔다.

때 되면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에서 소성리로 밥 연대를 왔다. 먹거리와 함께 십수 명의 밥알단까지 입성하여 소성리 마을이 시끌벅적해졌다.

때 되면 <십시일반 밥묵차>는 소성리에서 일박 이일을 머무르며 소성리 주민들과 평화지킴이들의 따뜻한 밥을 챙겨주었다. 밥심으로 싸우라는 정성스러운 기도 같은 밥상이었다.

때 되면 소성리로 찾아와 진료를 해주시는 한의사 선생님들

때 되면 찾아와주는 평화지킴이들

이름 하나하나 다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우리에게 싸움의 기술이랄 게 뭐가 있을까? 처음에 먹었던 마음처럼 끈질기게 가는 수밖에 없구나, 매 순간마다 깨닫는 시간이었다. 200만 검찰개혁 촛불에 내 속 좁은 투정에도 “함께해요”라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댓글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처음 사드 배치 결사반대 촛불에서 밝혔던 나의 약속을 되새긴다.

비록 3년 전의 촛불이 오늘날의 검찰개혁 촛불과 같을 순 없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촛불로 약속했던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사드 배치 결사반대’ 목소리가 쉽게 잊히지 않기를, 그날 촛불의 약속이 되새겨지길 바란다.

 

 


#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 웹 소식지에 동시 게재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뉴스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