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누가 우리의 일자리를 흔들 권한을 가지는가 
[칼럼] 누가 우리의 일자리를 흔들 권한을 가지는가 
  • 윤지영 변호사
  • 승인 2019.10.1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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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지난 2014년 10월, 구미시청 앞 'KEC폐업반대' 기자회견 현장>
           2014년 10월, 구미시청 앞 “KEC 폐업 반대” 기자회견

산업혁명의 발원지이자 한때 세계 경제를 이끌었던 나라, 그러나 지금은 쇠퇴일로에 있는 영국.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최빈국으로 떨어졌던 나라, 그러나 지금은 유럽 최강국인 독일. 영국과 독일의 극명한 차이는 제조업 정책에서 비롯된다.

영국은 수십 년 전 제조업을 버리고 서비스업을 택했다. 노동자를 버리고 금융가, 변호사, 경영컨설턴트를 택했다. 영국의 고임금 경제로는 제조업 분야에서 중국과 같은 개발도상국가와 경쟁이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같은 처지에 놓인 독일은 다른 선택을 했다. 오히려 제조업 투자를 늘리고 기술 혁신으로 그 수준을 높이는 방식을 택했다.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자 어떤 선택이 옳았는지 판가름 났다. 영국은 죽었고 독일은 살아남았다. 독일뿐만 아니다. 금융위기 이후 제조업 강국은 경제 복원력과 고용 유지율이 뛰어났다. 최근 들어 독일 경제가 휘청하고 있지만 그것이 제조업을 버릴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경제에서 제조업의 비중은 매우 높다. 국가가 세금을 들여 산업단지를 건설하고 산업단지 중심으로 제조업을 주도적으로 육성해 온 데에 기인한다. 제조업의 메카, 산업단지! 한때는 공단이었고 지금은 ‘산단’이라고도 불리는 곳. 대한민국 생산, 수출의 70%를 차지하는 곳. 그래서 2016년 11월 산업통상자원부도 이런 발표를 했다.

“산업단지는 제조업의 메카로서 산업단지의 혁신 없이는 우리 제조업의 혁신도 불가능하다.”

이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산업단지는 제조업의 중심이라는 것, 그리고 제조업의 혁신을 위해 산업단지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 산업단지의 혁신이 필요한 이유는 산업단지가 늙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단지 중에는 쉰 살을 넘는 곳이 많다. 노후화된 산업단지를 새롭게 만드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런 이유로 노후 산단 혁신 정책들이 시행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구조고도화사업이다.

법상 정의는 “입주업종의 고부가가치화, 기업지원서비스의 강화, 산업집적기반시설ㆍ산업기반시설 및 산업단지의 공공시설 등의 유지ㆍ보수ㆍ개량 및 확충 등을 통하여 기업체 등의 유치를 촉진하고, 입주기업체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사업”이다(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0호, 제45조의2 제1항).

간단하게 설명하면 산업단지의 구조(structure)를 upgrade시키는 사업이다. 구조고도화사업은 공공재인 산업단지를 관리하는 하나의 방식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공적인 성격을 가진다. 그래서 법률은 정부를 구조고도화사업의 승인 및 관리 주체로 정하고 있다. 국가산업단지의 관리권자는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이고 사업의 시행자는 공공기관인 한국산업단지공단이다. 법은 민간에게 사업 중 일부를 대행하게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이런 경우에도 사업시행자는 한국산업단지공단이 된다.

그러나 현실은 좀 다르다. 지금까지 시행된 구조고도화사업은 대부분 민간에 의지한 것이다. 2018. 6월 말 기준 총 사업비 2조 2천2억 원 중 민간 자본의 비중은 70%에 이른다. 민간 기업이나 자본이 구조고도화사업에 그냥 들어올 일은 없다. 수익성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참여하는 것이다. 투자의 대상, 이윤 창출의 대상인 구조고도화사업은 공적이기 어렵다.

민간 기업이 주도하는 구조고도화사업은 자칫 수익 확보만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 그것도 부동산 개발 사업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이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사업의 시행 여부가 수익 가능성에 좌우된다는 것, 즉 노후화가 심해서 재배치가 절실한 산업단지라도 수익의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는 사업이 시행되지 않고 아직은 보수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도심과의 근접성 등을 이유로 개발 시 수익이 발생할 수 있는 산업단지는 사업이 시행되는 것이다.

둘째, 수익을 내기 위해 산업단지의 기능과 본질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민간 업체는 수익을 내기 위해 분양률이 높은 상업시설을 짓고 시설의 분양가 및 임대료를 높게 책정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단지 기우가 아니다. 구조고도화사업의 목적은 입주기업체의 경쟁력 강화와 유치 촉진이고 시설의 개량 및 확충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현실은 시설의 개량 및 확충, 그것도 호텔, 백화점, 영화관과 같은 대형 상업시설의 건설이다. 더 많은 시세 차익과 임대 수입을 위해 산업단지라는 노른자 땅을 재개발하는 사업, 신종 뉴타운사업이 구조고도화사업이다.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산업단지 가운데 산업시설구역에는 공장 외의 시설은 지을 수 없다. 상업 시설은 지원시설구역에만 지을 수 있다. 그런데 그간의 민간대행 구조고도화사업 대부분이 산업시설구역을 지원시설구역으로 용도 변경하였다. 제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면서 공장 부지는 줄이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런 사정을 사업시행자인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적극적으로 용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지난 8월에 발표한 <산업단지 구조고도화 대행사업자 모집 공모지침서>는, 아예 쇼핑몰과 같은 대규모 점포의 도입에 관한 별도의 내용을 담고 있다.

 

(주)KEC 구조고도화사업 조감도
(주)KEC 구조고도화사업 조감도

사업 계획과 승인 과정도 문제적이다. 법대로라면 사업시행자인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수립한 계획에 따라 사업의 일부를 민간에게 대행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민간대행사업자가 대행계획을 먼저 수립하고, 한국산업단지공단은 이에 맞춰 구조고도화사업계획을 짠다.

노후 산단의 혁신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먼저 계획하고 이에 맞춰 사업을 수립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민간대행사업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구조고도화사업이 계획되고 한국산업단지공단은 이에 끌려가는 상황이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은 왜 이러는 것일까.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민간 기업으로부터 참신한 아이디어를 끌어내기 위함일까. 그러나 산업단지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은 입주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이다. 노동자들이 없으면 기계는 돌아가지 않고, 제조업은 죽을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법에서도 산업단지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에 대한 지원을 한국산업단지공단의 중요한 사업으로 열거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산업단지공단에게 노동자는 관심 사항이 아니다.

지난 8월 한국산업단지공단은 민간대행 사업 설명회를 가졌다. 여기에 초대된 사람은 입주기업, 금융투자사, 시행사, 건설사,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였다. 산업단지라는 부동산을 개발하기 위해 민간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겠다는 목적에서였다. 구조고도화사업의 공익적인 목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최근 제조업체인 (주)KEC는 공장 부지에 복합환승센터, 레지던스 호텔, 쇼핑몰 등을 짓는 내용으로 대행 사업을 신청했다. 참고로 (주)KEC는 반도체기업이다. 제조업의 메카, 구미국가산업단지의 1호 기업이다. 그런데 이 기업은 10여 년 전부터 이상한 짓을 벌여왔다. 공장을 없애고 그 자리에 복합쇼핑몰, 호텔, 영화관 등의 대형 상업 시설을 지으려 했다. 직원들을 정리해고하고, 장애물인 노동조합을 깨부수고, 저항하는 노조 조합원들을 상대로 법원에 300억 원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주)KEC는 이미 3차례 대행 사업을 신청했다가 공공성 부족을 이유로 탈락한 바 있다. 올해는 정관에 주류판매업, 영화상영업, 호텔업, 백화점 문화센터업까지 명시하고 다시 신청서를 제출했다.

 

(주)KEC의 2019년 정관 변경 내용
(주)KEC의 2019년 정관 변경 내용

거의 동일한 내용으로 다시 대행 사업을 신청할 수 있는 것은, 반복적인 신청을 제한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무분별하게 민간대행 구조고도화사업이 시행되고 민간대행 구조고도화사업이 부동산 투기사업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 사업이 가능해지면 남아 있는 노동자들도 대거 정리해고 될 것이 분명하다. 노동조합은 열심히 싸우고 있다. 지난주에는 국회에서 토론회도 개최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을 초대했지만 한국산업단지공단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이 사업의 결정권, 노동자들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공공기관들은 금융투자사, 건설사, 기업주들은 찾아서 만날지언정 노동자들은 외면한다. 토론회에 참여한 민주노총 경북지역본부 구미지부의 배태선 사무국장이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누가 우리들의 일자리를 흔들 권한을 가지고 있는가.”

 

 

글 _ 윤지영 변호사


※ 이 칼럼은 공익인권법재단공감(http://www.kpil.org)에 최초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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