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라!] “시인 할매”를 통해 본 농촌 여성 문맹과 노인복지
[이 영화를 보라!] “시인 할매”를 통해 본 농촌 여성 문맹과 노인복지
  • 김상목
  • 승인 2019.11.14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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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할매" 영화 포스터 이미지
               “시인 할매” 영화 포스터 이미지. ⓒ(주)스톰픽쳐스코리아


‘문맹’과 ‘검정고시’의 기억을 되짚어보다

가끔 버스를 타고 지나치다 보면 성인 검정고시 학원 광고를 지루한 김에 훑어보곤 했다. 왜 중장년층이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 자격시험을 봐야 하는지 궁금했다. 나중에야 부문 문맹이 그 세대에도 어느 정도 잔존해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이 문제를 다루는 방송 다큐멘터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런 다큐멘터리들이 재편집을 거쳐 극장에 걸리곤 하는데 특히 2019년 상반기에 관련 소재를 다룬 두 편의 영화가 극장을 찾았다. 이조은 감독의 <시인 할매>와 김재환 감독의 <칠곡 가시나들>이다.

1945년 8월, 광복 직후 남한 지역의 문맹률은 12세 이상 전체 인구의 78%에 달했다고 한다. 이는 말레이시아(62%), 짐바브웨(64%)보다도 열악한 수준이었다. 일본 제국주의 치하 식민지라는 이유로 문맹 퇴치 대책에서 당시 조선반도는 철저히 배제된 결과였다. 

‘악독한 일제의 만행!’이기도 했지만, 당시 서구 열강 식민통치의 일반 경향이기도 했다. 당시 프랑스 식민지 베트남과 영국 식민지 인도(+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스리랑카)도 80%대 문맹률로 기록되어 있으니. 

즉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겸비한 한 국민으로 대우하지 않고, 식민 제국의 일개 노동력으로써 필요한 기능만 수행하면 된다는, 식민지 인구를 그저 도구적으로만 설정한 열강의 차별적 면모의 결과물인 셈이다.

1945년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고, 전후 재건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성인 대상 문맹 퇴치 교육이 시행된다. 하지만 겨우 이름 석 자 쓰거나 단순한 숫자 해독을 하는 정도만 가능한 ‘부분 문맹’은 여전히 1960년대 초반에도 10~20% 수준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속성으로라도 문맹이 퇴치된 것은 억눌려 있던 교육열의 발흥과 가진 게 사람밖에 없었던 신흥 국가의 절박한 강제 동원 구조가 함께 어우러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초등학교-중학교 의무교육화가 완성되면서 정부 차원의 문맹 대책은 1960년대 말 종결된다. 이후 세대에서 ‘문맹’이란 개념은 사회적으로 소멸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08년 통계에서, 농촌 지역의 노인 문맹률은 아직도(!) 6.6%에 달하며 특히나 거의 대부분은 여성들이다. 

1950-60년대 문맹 퇴치 교육의 기회가 사회경제적으로 남성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대외 경제활동이나 국가의 동원 체제 아래에서 남성의 문맹이 더욱 심각한 과제로 인식되었고, 징병제 하의 군대 내에서 강압적이었을지언정 적극적인 교육이 이뤄졌다. 

산업화 와중에 수출무역 중심으로 제조업이 활성화되고, 행정 효율성을 위해 문맹 퇴치는 당시 국가의 중요한 과제였음은 자명하다. 국민 개개인의 권리 보장으로서가 아닌, 국가 인적 자원으로 동원하기 위한 목적 또한 명백하다. 그 과정에서 가내 노동이나 눈에 보이지 않고 수치화되지 않는, 일차 산업에 종사하던 비도시권 여성들은 교육 기회에서 낙오 대상이 되었다.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도서 이미지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도서 이미지

노인 유튜버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막례쓰’ 박막례 할머니의 일화가 가장 대중적인 예시일 것이다. 1947년 출생으로 해방 이후 세대인 데다 형편이 그렇게 나쁘지 않은 자영농 집안에 태어났지만, 교육 기회에서 배제되었고 일하는 사람들을 ‘먹이고 재우는 뒤치다꺼리’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놀랍게도, 공식적으로 무학이다. 그녀가 받은 교육은 실용 재봉 학원 6개월이 전부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스타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면서 70을 훌쩍 넘긴 나이에 맞춤법 등을 배우는 셈이다. 그렇게 지금 세대에겐 너무 당연한 것들이 불과 한두 세대 전까지만 해도, 생소하거나 운이 좋아야 가능했던 한국 근현대사의 낯선 풍경은 의외로 우리 곁에 흔히 존재한다. 

 

“시인 할매”의 탄생 과정과 조력자들

전남 곡성군의 외딴 마을 할머니들이 비가 오건 눈이 오건 구부정한 허리를 한 채 한 명 두 명 모여드는 곳이 있다. 평범한 시골 주택처럼 보이지만 ‘마을 도서관’이다. 도회지에서 몇 해 전 이주해온 중년 여성이 만든 곳이다. 

젊은 사람이 일상이 반복되는 마을에서 도서관을 만든다고 하니 심심한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고, 구경하는 할머니들에게 도서관장은 일손 좀 거들어달라고 했을 테다. 그리고 그녀는 할머니들이 책을 거꾸로 꽂는 광경을 목격한다. 여기서 ‘할매’들에게 한글 공부방이 시작된다. 

학습 효율을 높이기 위해 여러 수단을 강구했을 법하다. 아이들에게 처음 글을 가르칠 때처럼 그림책 교재가 사용되고, 그 과정에서 미술 교육도 함께 이뤄진다. ‘할매’들은 글을 배우고 문자를 해독하고 그림을 그린다. 글을 배우는 김에 도서관에서는 할머니들에게 구술사를 글로 집필하기를 권한다. 

긴 문장으로 글 쓰는 게 힘든 ‘할매’들은 운문으로 자신과 그간의 삶을 쓰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집이 나오고 그림책이 출간된다. ‘할매’들의 잠재력은 그렇게 순탄치 않았던 일생 만년에야 기어코 개화한다. 그렇게 영화 속 풍경들은 감동적이고 신비롭기까지 한 장면을 종종 제공한다.

아름다운 순간들, 특히 방송 다큐의 특성인 아기자기하고 예쁜 ‘휴먼 다큐’ 속성이 강한 작품인지라 갈등이나 어두운 측면 조명보다는 자칫 ‘신파’로 흐를 정도로 영화는 시종일관 진행된다. 그래서 관객은 영화를 보기 편하거나 심심하거나 둘 중 한 경우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이 작은 마을 도서관이 없었다면 ‘할매’들은 그 일생을 문맹자로 마쳤을 것이다. 그 순간, ‘그렇다면 이런 기회를 얻지 못한 또 다른 ‘할매’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섬찟한 충격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한다. 교육 기회의 박탈은 사회적 관계의 박탈로 직결된다는…. 

<시인 할매> 속에서 가장 관객에게 공감을 받을 장면들, 장성한 딸과 ’작가‘가 된 ’할매‘들의 재회, 손주와 친척들이 ’할매‘의 작업을 보고 경탄하는 순간들은, 저런 재능을 개화시키는 데 아무 도움을 주지 않았던 과거 남한 국가의 한계를 인식하는 역할로도 기능한다. (물론 영화에선 그런 부분을 의도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저 연례행사로 명절날 며칠 다녀와야 했을 시골 할머니 댁에서 후세대의 가족들은 ‘할매’들의 솜씨로 만들어진 글과 그림으로 장식된 풍경을 목격한다. 세대 간의 공감과 말로 다 전달되지 못했던 삶의 추억들이 교차한다. ‘작가’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초등학교 학생들과 ‘저자와의 만남’ 행사에 참석한 ‘할매’들의 표정에는 기쁨이 가득하다. 

대화 불가능한 존재로 그저 사라져가는 세대로만 치부하기에는 그녀들의 숨은 재능과 삶에 대한 열망은 뜨겁고 강렬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작은 마을 도서관 관장의 선의와 관심만으로도 이런 흐뭇한 풍경을 만들 수 있는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비용 대 투자 효과로만 인식하던 노인복지 문제는 새롭게 전환될 수 있다. ‘휴먼 다큐’의 얼개를 한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사회적 현실은 관객의 시선을 통해 그렇게 재해석될 수 있다.


‘인문학’ 열풍이 진정 필요한 곳을 찾아서

지금도 곳곳에서 인문학 붐은 이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문학이 계층과 집단을 ‘구별 짓기’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거나 변질하는 경우를 우리는 숱하게 본다. 영국의 경우 귀족과 중산층과 서민들은 같은 영어를 구사하지만, 그저 몇 마디만 대화해 봐도 그 출신 계급을 골라낼 수 있다고 한다. 언어 지형의 분화는 필연적일 수 있지만, 사회체제가 이를 용인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가 될 것이다.

누구나 "콘텐츠"와 “크리에이티브”를 운운하지만 정작 유행과 차이로만 귀결되는 우리 사회 세태에서 상대적으로 방치되는 공간과 집단(여성, 노인, 장애인, 빈곤층, 이주민, 非 도시권 거주민)에게 교육 기회가 풍부하게 제공되어야 한다. 그/그녀들이 가진 역량을 만개할 가능성을 확인하게 하는 복지·교육 체계가 만들어지는 것이 제대로 된 인문학 현상이 아닐까. 

평일 대낮 고급스러운 공간에서 높은 경쟁률을 뚫고 신청해야 들을 수 있는, 마치 사교모임 같은 인기 강사의 행사보다는, <시인 할매>의 마을 도서관 공부 모임이 더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저곳이 없었다면? 생각하기도 싫다.

 


 

<작품 정보>


시인 할매 The Poem, My Old Mother

한국, 다큐멘터리, 2018

2019년 2월 5일 개봉, 86분, 전체관람가

감독 이종은

주연 김막동, 김점순, 박점례, 안기임, 윤금순, 양양금, 최영자, 김선자

10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018) 초청(한국 다큐 쇼케이스)

 

"시인 할매" 영화 스틸 이미지
“시인 할매” 영화 스틸 이미지. ⓒ(주)스톰픽쳐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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