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힘을 키우는 3박 4일 순회투쟁”

※ 11월 5일부터 11월 8일까지 톨게이트 노동자 투쟁 승리와 노동 개악 저지를 위해 투쟁 현장을 방문하고, 간담회와 선전전 등의 연대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톨게이트직접고용시민대책위와 ‘비정규직 이제 그만’ 공동투쟁 3박 4일의 기록을 2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1편에서 이어집니다)

 


자본은 망하지 않는 손쉬운 폐업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9월 9일 공사로 들어갔을 때 다섯 개 노조가 공동투쟁을 하고 있었다. 민주노총 일반연맹 소속의 민주연합노조와 공공연대노조 그리고 경남일반노조와 인천일반노조의 조합원들이 있었고, 한국노총 톨게이트노조 소속 조합원들이 있었다. 

다섯 개 노조가 협력하여 서울고속도로 캐노피에서 80일 넘는 시간 동안 공동투쟁을 한 것도 신기하지만, 공사로 내려와서 상당수가 건물 안을 점거할 때 바깥마당 구석구석에 텐트촌을 형성해서 노숙농성을 하는 한국노총 ‘톨노’의 조합원들이 있었다. 김천본사 건물 안 농성은 민주연합노조와 공공연대노조, 인천일반노조 그리고 경남일반노조의 조합원들이 골고루 모여서 9월 9일부터 두 달여 기간을 넘기면서 점거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경남일반노조의 거점은 창원지역이다. 창원지역의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들은 투쟁사업장 3박 4일 순회버스가 오기를 기다려 민주당경남도당에서 톨게이트 사태를 악화시키는 여당을 규탄하는 집회를 했다. 

틈새 시간이 남았다. 민주노총경남본부 건물의 강당에 모인 우리는 순회투쟁이 끝나는 마지막 날에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를 도로공사 김천본사에서 가질 예정이었다. 순회투쟁단의 해단식과 더불어 멋진 문화공연을 선보이기로 했는데, 의욕 넘치는 톨게이트 노동자 주영 씨가 ‘비정규직철폐연대가’를 몸짓 선언에게 한창 배우고 연습할 때여서 우리더러 비정규직철폐연대가 몸짓을 하자고 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뒤에서 따라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막상 한 소절씩 손동작과 발 동작을 배웠더니 손을 쭉쭉 뻗더라도 각이 나와줘야 하는 동작이었다. 어설프게 따라 했다간 망신만 당할 게 뻔했다. 도저히 초보자들이 짧은 시간 안에 배울 수 없는 레벨이었다. 

이런저런 말들이 많은 가운데 전체 집단 몸짓은 ‘내일의 노래’로 배우고 따라 하기로 했다. 노동조합 사회에선 알아주는 몸짓패 아사히비정규직지회의 ‘허공’ 과 창원지역 노동자몸짓패 ‘세모단’이 함께 하고 있어서 초보자들은 뒤에서 잘 따라하기만 해도 괜찮았다. 거기다 이제 갓 민주노총으로 옮겨온 신출내기이지만 지금 한국에서 제일 잘 싸우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김천본사에서 날마다 몸짓 연습을 하면서 베테랑이 되어있었다. 

문화공연 한 파트를 뚝딱 해결하고는 한국지엠 창원공장으로 이동했다.

한국지엠 창원공장은 10월 24일 하청업체 7개사에 대해 12월 말까지 계약 해지 통보를 한 상태이다. 주간 2교 근무를 1교대 주간근무로 전환하면서 비정규직 공정을 정규직으로 대체하겠다고 알려온 거다. 생산물량이 줄어들 것을 예상하여 조치한 것이라지만, 사내하청 노동자 650여 명 가량 대량해고를 예고했다. 

지엠은 한국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조건으로 한국정부로부터 8100억 원을 지원받았다. 그러나 지엠의 구조조정은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구조조정으로 인한 해고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정부는 국민 혈세로 8100억 원을 지원한 기업이 한국에서 무슨 짓을 해도 제재를 가하지 않고 오히려 해고 이후의 대책으로 취업알선을 이야기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올 연말에 벌어질 일들이 불안하기만 하다. 손 놓고 당할 수만 없어 노조는 해고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화와 투쟁을 해보려고 노력한다. 

순회투쟁단은 오후반 출근과 퇴근 시간에 맞춰서 지엠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공장문 앞에서 한참 동안 선전전을 했다. 퇴근하고 나오는 노동자들은 발길을 멈추고 우리가 들고 있는 현수막 사이사이로 들어와서 자리를 잡았다. 지나가는 사람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을 붙잡아 선전지를 나눠주었다. 방송차에서 마이크를 집고 목청껏 이야기했다. 


평범한 사람이 담대하게 투쟁하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쉴 새 없이 이동하고, 사람 만나고, 선전전 하는 와중에 끼니는 꼬박꼬박 잘 챙겨 먹었다. 

울산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청와대로 올라갔던 톨게이트 노동자 100여 명이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진격 투쟁하던 중 경찰폭력에 의해 실신하고 쓰러져서 병원으로 후송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톨게이트 노동자 일부는 민주당 이해찬 대표 사무실로 점거 농성 들어갔다는 소식과 또 다른 일부는 세종시에 있는 국토부 김현미 장관실로 점거 농성을 들어갔다는 소식이 연이어 들려왔다. 

김천본사 점거 농성하고 있는 대오는 여전히 거점을 사수하고 있었다. 새로운 거점을 확보하고 투쟁 전술은 변화하였다. 버스 안은 다친 동료의 소식을 듣고 침울했지만,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과감하게 투쟁하면서 자신의 투쟁을 확대하고 있었다. 

울산의 노조운동 단체들이 3박 4일 순회투쟁단 울산 순회 일정을 웹포스터로 만들어 sns에 띄운 걸 발견했다. 울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아는 듯 버스는 신나게 달렸다. 저녁 6시만 되면 어둠이 살포시 내려앉는다. 울산의 북구비정규직센터가 간담회 장소였다. 널찍한 공간에 우리 대오와 우리를 맞이한 울산의 노동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 현대자동차 하청 노동자, 현장조직과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자리를 가득 메워주었다.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울산지역 노동자들은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톨게이트 노동자의 투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나눴다. 

 

“톨게이트 직원들이 다 그렇지만, 노조 활동 시작한 지가 일 년 정도, 해고돼서 투쟁한 지는 겨우 5개월 정도 되었는데 투쟁이니, 동지니 이런 말이 엄청 낯설었어요. 우리 영업소에서 직원이 18명인데, 저 빼고 다 자회사를 선택했어요. 저만 직접 고용을 선택하고. 제가 엄청나게 강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고는 ‘나는 직고용 갈 거야’ 그런 생각만으로, 누가 뭐라든. 

아까도 이야기 들으셨겠지만, 밤 12시에도 찾아오고, 주말, 휴일에 공사 직원이 찾아와서는 자회사로 가라고 회유하고 협박하고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제가 그 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서 끝까지 자회사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치 않게 제가 서울고속도로 캐노피 고공농성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81일을 살고, 올해는 왜 그렇게 비도 많이 오고, 태풍도 많이 오는지, 새벽 3~4시가 되면 자다가 비가 쏟아져서 이불이 젖어서 울면서 빗물을 털어내고, 태풍이 오면 저희가 캐노피에서 날아갈까 봐 천막을 막 붙들고 있었어요. 제일 힘든 건 화장실 문제였어요. 어떻게든 다 살아지더라고요. 

그러면서 한국노총 톨노 위원장이 먼저 내려갔고요. 저 같은 사람은 판결을 못 받았고요. 지방은 노조 가입한 지도 얼마 안 되고, 직고와 자회사 가르던 때에 노조를 시작해서 노조가 뭔지도 모른 상태로 소송에 참여했어요. 진짜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2박 3일만 올라갔다가 내려오면 되겠지 했는데, 81일을 캐노피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게 한국노총의 야합에 동의할 수 없었고, 저는 그 합의문에 동의한다는 것이 저한테 너무너무 미안했습니다. 제가 임시직 기간제 갈려고 그렇게 싸운 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민주노총으로 와서 끝까지 투쟁해서 직접 고용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요. 기회가 될 때마다, 순회투쟁하는 것처럼 연대하면서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자신은 평범한 주부였다고 소개한 투쟁하는 톨게이트 노동자 명선 씨는 뜨거운 뙤약볕 아래 서울고속도로 캐노피 고공에서 81일을 살아낸, 담대한 사람이었다. 


우리의 투쟁은 연대로서 지속된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새벽 5시에 주변 여기저기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6시 10분까지 버스로 탑승하기 위해서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순회투쟁단을 실은 버스는 현대중공업 정문에서 우리를 내려주었다. 준비한 선전지를 챙기고,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내렸다.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위치에 자리를 잡고 아침 선전전을 시작했다. 새벽 6시 30분인데도 오토바이 군대가 지나갔다. 신호등 건널목에 서 있는 인파들 사이로 선전전을 하는 우리 편이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왔는지 현대중공업 정문으로 꾸역꾸역 들어가고 있었다. 

도대체 현대중공업의 출근 시간은 몇 시인지 궁금했다. 8시라고 한다. 이렇게 일찍 출근하는 이유야 알 길 없지만, 사내에서 아침 식사도 해결하고, 헬스클럽이 있어서 운동하고 샤워하고 밥 먹고 작업장으로 가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정규직이거나 사무직원이라면 가능할 수 있을 텐데, 현장직이라면 가능할까? 미처 중공업에 대해서 잘 파악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선전전을 마치고 현대중공업 노조에서 대접해준 아침 식사로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톨게이트 노동자 투쟁은 많은 관심과 애정을 받으면서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을 만나러 이동했다. 

톨게이트 노동자 갑순 씨는 아이들 키우는 동안 가정 살림만 해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일이 첫 사회경험이나 다름없었다. 노조도 한국노총 톨게이트노조에서 민주노총으로 옮겨왔는데, 천막농성을 하는 아사히비정규직지회와 경산의 택시노동자들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서울고속도로 캐노피 고공농성과 청와대 앞에서 노숙농성을 해보기도 했고, 지금은 공사를 점거하고 있지만, 자신들보다 더 열악하게 농성하는 곳이 많다는 것을 순회투쟁하면서 보고 느낀 것이었다. 갑순 씨가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의 오래되고 낡은 천막농성장을 보면 얼마나 놀랄까. 

울산과학대 김순자 지부장과 조합원들은 여전히 농성을 이어가면서 순회투쟁단이 오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농성장은 오래되어 닳고 낡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를 농성투쟁을 대비하듯 벽 한쪽에는 생수병이 가득 쌓여있었다. 

장구 하나만 있으면 머릿속에 노래 천곡이 저장되어 있어서 어디서든 노래 1000곡은 부를 수 있다는 김순자 지부장은 입담도 대단하다. 사회자가 말을 짧게 해달라는 요청을 하지 않으면 두 시간 동안도 쉬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의 농성투쟁 6년의 사연이 술술술 나온다. 노조를 만들어서 지금까지 싸웠던 이야기를 다 들으려면 두 시간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최근에 울산과학대와 협상이 있었나 보다. 울산과학대 측에서 다른 좋은 곳으로 취업을 알선해주겠다는 안을 낸 모양인데 단칼에 거부했다는 소식이다.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은 2007년에 투쟁하다 해고된 적이 있었다. 그때도 싸워서 일하던 곳으로 복직을 한 경험이 있다. 조합원을 쫓아내고 새로 채용한 청소노동자들이 있었지만, 울산과학대는 복직을 시키려고 자리를 마련했다. 조합원들은 이겨서 학교로 들어갔다. 학교 측이 해결할 의지만 있다면 지금 사람이 찼다고 하지만 충분히 원직 복직이 가능하다. 자리는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부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또 있다. 

청소노동자들의 지난 6년 동안의 투쟁은 자신들만의 힘으로 한 싸움이 아니다. 지역의 여러 노동조합과 전국의 수많은 연대자들의 후원과 보살핌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싸울 수 있었다. 그들이 후원하고 연대한 건 좋은 곳에 취직하라는 뜻이 아니다. 권리를 박탈당한 청소노동자들이 민주노조 깃발을 움켜쥐고 현장에 복직할 것을 소원했었다.

청소노동자들의 평균연령은 67세이다. 익숙하게 일해왔던 곳으로 돌아가서 명예롭게 정년퇴직을 맞이하겠다는 소원이 무리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김순자 지부장은 학교 측에 경고했다. 

“내 당장 복직 안 돼도 괜찮다. 나는 이 자리에서 늙어 죽을 때까지 울산과학대 괴롭히면서 계속 투쟁할 끼니까, 괴롭힘당하고 싶으면 너거 마음대로 해라. 좋은 일자리는 젊은 세대들한테 주고 우리는 학교에 청소하면 된다.”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는 김순자 지부장의 지난 6년 투쟁이 헛되지 않았음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다. 

해고를 당한 건 청소노동자들의 잘못이 아니다. 청소노동자가 최저임금만 받으란 법도 없다. 생활을 꾸려나가기 위해서 일하러 나온 노동자들이 생활임금을 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다. 청소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 생활임금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하고 거리로 내쫓은 울산과학대의 야만적인 노무관리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청소노동자들이 원직 복직을 요구하며 명예를 회복하고자 하는 뜻은 노동자의 자존심을 세우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 

 

역시 가을 여행은 바다다. 울산까지 와서 바다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순회투쟁단은 바다를 향해 달렸다. 주전이라는 곳이다. 모래 대신 몽돌이 몽글몽글 모여있는 해변에 보라물결 순회투쟁단이 내렸다. 울산에서 후원금 봉투를 두둑이 만들어주셨다는 기쁜 소식과 바닷가에 온 김에 회는 못 먹어도 회덮밥과 물회 중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기쁨을 맛보았다. 

 

가짜 정규직화 포장지를 벗긴 목소리 “자회사 꺼져!”

대구로 향했다. 한국가스공사 퇴근선전전을 하기 위해서다. 어둑어둑해지는 대구의 동구 혁신도시로 들어서자 휘황찬란한 가스공사 건물이 윤곽을 드러냈다. 김천에 있는 한국도로공사는 마치 거대한 성처럼 높고 웅장했었다. 가스공사는 낮지만 굴곡 있는 선을 가진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건물이었다. 공공기관 본사 건물의 규모에 순회버스를 탄 탑승자들은 저마다 혀를 차대면서 놀랐고, 비난이 쏟아졌다. 저 성은 누구의 피땀으로 지은 것인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화려한 성문 앞에 붉은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자회사 정책 폐기, 직접 고용 요구’를 적은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선전전을 시작했다. 

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용역업체에 소속되어 있다. 노조를 만들기 전에는 업체가 변경될 때마다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했지만, 노조를 만들고 나서는 그런 불안은 좀 가신 듯 보였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을 때 정규직화에 대한 기대가 컸다. 정권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감언이설로 기대를 키워준 거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정규직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정규직화가 아니었다. 가스공사도 비정규직 노동자를 자회사로 밀어 넣으려고 움직인다. 아직은 말만 무성한 상태라고 한다. 문정권 들어서고 지금까지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투쟁해왔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자회사를 거부하고 1500명 직접 고용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더욱 분발하게 되었다고 한다.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기 위한 전선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어 큰 투쟁으로 확장되지 못해 안타까웠다. 

순회투쟁의 마지막 밤은 대구에서 보냈다. 잠자리는 전교조대구지부에서 제공해주셨다. 

마지막 밤을 보내기 전에 순회투쟁 중간평가 시간을 가졌다. 넓은 대강당에서 동그랗게 둘러앉아 서른 명의 순회단이 3박 4일간에 대한 소감을 들어보기로 했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3박 4일을 돌아다녀 보니까, 저희가 제일 힘든 줄 알았는데, 우리보다 힘든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고 했다. 해옥 씨는 말했다.

“저희가 투쟁하면서 호환·마마 보다 더 무서운 게 발언이라 했거든요. 3박 4일 순회투쟁이 처음이라 어떻게 하는 줄도 모르고 따라나섰는데, 가는 곳마다 마이크 잡고 발언하라고 해서 엄청나게 부담스러웠고, 주최 측에서 사전에 알려주지 않아서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어요.”

가는 곳마다 낯선 노동자들 앞에서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을 알려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이다.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발언을 용기 있게 해냈다. 고충도 있었지만 해옥 씨는 감격스러웠다고 한다. 

“너무 감동적인 것은, ‘저희’ 일이잖아요. 물론 크게 보면 비정규직 문제이긴 하지만, 지금 현재 톨게이트 문제로 여러분이 함께 해주시는 것이고, 저희보다 더 열악한 환경의 분들을 위해서 여러분이 해주시는 걸 보고는 아주 큰 감동을 받았어요.”

순회투쟁단에 참가자들은 돌아가면서 소감을 한마디씩 발표하였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도 들렸다. 

보성에서 토종 씨앗을 보존하고 농사짓는 농부는 톨게이트 투쟁 중에 나타난 문제점을 지적했다. 

“대법원에서 승소한 판결을 받은 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들이 일했던 요금수납이 아닌 곳으로 발령을 받아 복귀했고, 또 어느 날 갑자기 2심 재판 승소자들이 현장에 복귀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분명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1500명 직접 고용을 쟁취하겠다고 투쟁에 나섰고, 연대는 조직되었다. 오늘까지 2박 3일 동안 반드시 직접 고용 쟁취할 수 있다고 자신했고, 그 이유는 우리가 옳다고 믿기 때문인데, 지금까지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했던 사람들에게 솔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사용자 측의 갈라 치기에 말려드는 것은 굉장히 아쉬운 문제이다. 연대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 정리를 한번 해야 한다.”

나는 울산 숙소에서 잠들기 전, sns를 통해 김천본사 점거 농성 중인 톨게이트 노동자 중 2심 판결 승소자들이 현장으로 복귀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톨게이트 노동자 6500명 중 1500여 명이 자회사로 전환되는 것을 거부하고 직접 고용을 스스로 쟁취하겠다고 서울고속도로 캐노피 고공농성을, 청와대 노숙농성을 하면서 지금껏 지켜왔던 원칙은 ‘자회사 꺼져! 직접 고용 쟁취!’였다. 한국노총 톨게이트노동조합이 먼저 굴욕적인 야합으로 투쟁이 좌절할 위기도 있었지만, 그 순간에도 원칙을 고수하면서 현장을 지켰던 민주노총 소속의 조합원들과 한국노총을 탈퇴하고 민주노총으로 넘어온 사람들로 투쟁은 지속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민주노총 소속의 노동자 중에도 대법원 승소 판결자들은 현장 복귀를 하였다. 현장으로 들어가서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도로공사 이강래 사장은 애초부터 대법원 승소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더라도, 요금수납원 업무에 배치하지 않겠다는 견해를 분명히 밝혔다. 보조업무에 배치하겠다고 강조해왔다. 아니나 다를까 현장 복귀한 노동자들은 요금수납원 업무가 아닌, 졸음쉼터에서 청소하거나 잡초 뽑기 등의 온갖 험한 일을 하고 있다. 

우리가 순회투쟁을 시작한 날도 현장 복귀한 노동자가 풀을 베다가 낫에 손가락을 베였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다치자마자 병원에 가지 못하고, 다음날 손가락을 꿰맸다는 소식도 들렸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한국노총 톨게이트 노조위원장이 산재처리는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는 것이다. 

분명 공사의 현장 복귀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불이익이 있고, 해고에 대한 위협과 부담이 존재한다. 현장 상황을 파악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노조의 지도부는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싸움의 과정을 통해서 투쟁은 더욱 단결하고 더욱 확장되어야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학습해왔다. 

이미 1500여 명 중 한국노총 조합원 수백 명이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이강래 사장의 간교한 술수에 넘어가고 말았다. 파업 대오의 수는 이전보다 턱없이 줄어든 상황이다. 노조 지도부가 나서서 대법원 승소자를 뚝 떨어뜨려 현장으로 밀어 넣는다면 매 순간 어떤 법적인 결정이 발생할 때마다 투쟁 대오에서 이탈하는 사람이 꾸준히 발생하게 될 것이다. 투쟁 대오는 점점 줄어들고 약화할 게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다. 전선은 흔들린다.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바로 그들인 셈이다. 사 측이 갈라 치기 하는 방식을 모르지 않는 노조가 사 측이 의도한 대로 따라간다면 백전백패의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노동자 단결만이 살 길이라고 믿고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우는 조합원들이 좌절하는 일은 만들지 않아야 한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거침없이 전진했다. 순회투쟁단이 3박 4일간 투쟁사업장 순회투쟁을 하고 있을 때, 서울 광화문광장에 천막을 8동 쳤고, 오후 2시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러 청와대를 향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사무실과 국토부 김현미 장관 사무실로 점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순회투쟁단은 대구 수성구에 있는 민주당 김부겸 사무실로 항의 방문을 했다. 

보라색 ‘비정규직 이제 그만’ 조끼를 입은 순회투쟁단이 건물에 들어서자 경비 아저씨는 당황한 듯이 우왕좌왕하였고,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유유히 김부겸 사무실을 찾아 올라갔다. 민주당사로 들어갔을 때, 당직자가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경멸과 비웃음 가득한 시선으로 쳐다보더니, 슬리퍼를 신고 온 것을 트집 잡는다. 우리들의 항의에 마지못해 사과했지만, 반성 없고, 영혼 없는 사과는 거부했다. 

민주당 당직자가 자신도 한때 민주노총이었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해댈 때, 나는 순간 머리 꼭대기까지 분노가 차올랐다. 그를 향해 ‘배신자 그 입 다물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나는 이내 부끄러웠다. 그는 뭘 배신한 걸까?

천오백만 명의 노동자를 대표하고 민주노조로 표상되었던 민주노총 전 위원장 출신 A 씨가 자리에서 내려오자마자 민주당 의원의 보좌관으로 들어갔다. 민주노총이 비판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않았고, 원칙을 견지하기 위해 엄격하지 않았다. 저들은 민주당으로 스스럼없이 건너가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데 앞장서고도 민주노총 출신이라고 뻔뻔하게 말할 수 있었다.

얼마 전 민주노총대구본부장 출신 B 씨가 민주당으로 옮겨갔다. 노동자를 위한 정치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노동자 정치를 할 겨를도 없이 여당 민주당은 노동법을 개악하기 위해서 칼을 빼 들고 칼춤을 추고 있다. 이미 최저임금은 밥값과 방값을 삭감할 수 있게 되었고, 노동시간은 고무줄처럼 늘릴 수도, 줄일 수도 있게 만들어졌다. 근로기준법은 걸레가 되어 너덜너덜해졌지만, 노조 할 권리는 땅바닥에 내려놓으라고 한다. 

노동자를 위한 정치를 누가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그런 민주당의 일개 의원에게 톨게이트 직접 고용에 관한 입장을 묻는 것도 난센스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순회투쟁단은 영대병원으로 향했다. 


우리의 투쟁이 민주노조운동의 나침반이 되길

영대병원 옥상에서 박문진 씨가 양팔을 힘껏 벌려 순회투쟁단을 환영한다. 너무 멀어서 사람의 형체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지만, 아주 작은 몸짓도 그녀로선 최선을 다한 몸짓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더 가까이서 그녀를 볼 수 있는 4층 주차장으로 올라갔다.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자 바람에 휘청거리는 작은 몸으로 커다란 현수막을 펼쳐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힘내라 박문진!”을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한때는 조합원이 천명도 넘는 노동조합의 위원장이었다. 영대병원의 노조파괴 시나리오로 희생당한, 해고 13년 차 간호사이고 노동자이다. 그는 완강하게 뜻을 굽히지 않았다. 고공농성을 버텨내고 있다. 

더 늦기 전에 현장으로 복직해야겠지만, 그보다 해고의 원인이 되었던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실행했던 자의 책임자 처벌을 원한다. 병원 꼭대기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는 그는 민주노조운동이 어디서부터 무너져왔고, 무엇을 복원해야 하는지 많은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3박 4일간의 순회투쟁 일정은 끝을 달린다. 처음 시작한 곳이자 마지막 목적지는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이다. 공사의 너른 마당 텐트촌은 쓸쓸해 보였다. 제법 많은 사람이 청와대로 올라가 버렸기 때문이다. 

쓸쓸한 자리는 투쟁사업장 3박 4일 순회투쟁단이 채웠다. 순회투쟁하면서 만났던 자동차를 만드는 노동자들과 배를 만드는 노동자들, 화약을 만드는 노동자들, 그리고 철도공사, 가스공사, 병원 등 공공기관의 노동자들, 세상을 움직이는 주역들이 속속 한국도로공사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투쟁문화제가 개최되는 도로공사 후문의 너른 마당은 연대하러 온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 건물 안에서 농성 중인 톨게이트 노동자의 기세는 우리를 떠나보낼 때 보다 더 활기차고 기운 넘치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순회투쟁하는 가운데 짬짬이 연습한 ‘내일의 노래’ 집단 몸짓도 무사히 마쳤다. 

무대에 선 3박 4일 순회투쟁단을 대표해서, 투쟁하는 톨게이트 노동자 주영 씨의 발언으로 이 글을 갈무리한다. 

 


동지 여러분

저희 8명의 톨게이트 요금수납원과 전체 참가자 35명으로 구성된 순회투쟁단은 빠듯했던 3박 4일의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복귀하였습니다. 

우리는 해고당하고 나서 살을 녹이는 여름날 뙤약볕조차 어떻게 이겨냈는지 기억에 없을 정도로 정말 가열차게 투쟁하면서, 우리만큼 억울하고 우리만큼 힘든 사람은 세상에 다시는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고개를 조금 돌려보니까 도처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신음이요. 대한민국이 온통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아우성으로 몸살입니다. 

저희가 방문한 어느 현장 할 것 없이 한 곳도 가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지만, 특히 한 달에 27, 28일을 근무하고도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금액으로 팍팍하게 살아가야 하는 대림택시 노조 동지들을 보며 가슴이 아렸습니다.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다가 다치거나 죽어도 모든 책임을 노동자의 부주의로 돌리면서 사장 놈들한테 내려지는 처벌이라고는 고작 벌금 30만 원으로 면책시키고, 부상당한 노동자를 트럭에 싣고 병원으로 후송한다는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 동지들을 보며 입이 있되,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13년 동안 갖은 고초 다 겪으며 복직 투쟁하시는 평균연령 66세의 울산과학대학교 청소노조 동지분들을 보면서 겨우 3개월 싸우고 힘들다고 회사의 회유에 맥없이 나가떨어져 나간 수납원 동지들을 생각하며 부끄러운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이 몹쓸 놈의 비정규직이 어떻게 탄생했습니까?

22년 전 무능한 위정자들의 잘못으로 무리하게 OECD에 가입했다가 국가를 부도 직전까지 몰고 갔었고, 위기 극복을 핑계 삼아 고통 분담을 요구하면서 노동자들의 고혈을 짜냈던 거 아니겠습니까?

위기를 졸업했으면 시스템을 정상으로 돌려놔야 하는데, 기업들에겐 산업용 전기료 공짜 수준에 법인세 할인 등 각종 특혜를 베풀어 배를 불려주고, 대한민국 전체 노동자의 절반가량을 비정규직으로 내몰아서 사회를 튼튼하게 지탱해주는 중산층이 무너지고, 가진 자들은 배 터져 죽고, 서민들은 배고파 죽는 세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자본가들이 이렇게 착취한 우리의 피와 눈물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양질의 일자리 창출, 연구개발 등 건전한 곳에 재투자하지 않고, 유보금이란 이름으로 곳간에 쌓아놓은 채 부동산 투기 등으로 오로지 자기네들 재산 부풀리기에만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한 가지 예로 약 8년 전 현대그룹에서 시가 3조 5천억 원짜리 강남의 한국전력 부지를 무려 세배에 달하는 10조 5천억 원에 사들인 적이 있습니다. 

자기들이 피땀 흘려 번 돈이라면 그렇게 물 쓰듯이 펑펑 쓸 수 있겠습니까?

이 괴물 같은 비정규직을 이제 우리들의 손으로 끊어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운동의 중심에 우리 수납원들이 있습니다. 

우리 수납원들의 투쟁 반드시 승리해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드는 데 초석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노력하는 만큼 대가가 돌아가고, 열심히 일하면 나도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물려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한 가지는 이번에 국회 통과를 앞둔 노동법 개악, 이것은 우리가 필사적으로 막아내야 합니다. 

노조를 무력화하고 노동자를 노예화하려는 이 악법이야말로 원청, 하청, 정규직, 비정규직 가릴 거 없이 이 땅의 노동자라면 너 나 할 것 없이 하나로 결집하여 목숨을 걸고 막아내야 합니다. 

어제 청와대 앞에서 우리 동지들이 경찰들의 폭력 진압 과정에서 방패에 찍혀 다친 동지가 발생했습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끓어오르는 분노를 금할 길 없었는데요. 

이 법이 통과되면 우리는 이제 어떤 부당한 처우에도 저항하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는 대로 받고 그야말로 정말 개돼지처럼 살아야만 합니다. 

제발 바라건대 주위 동료들, 가족 친지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널리 알리고, 내일 우리 전국노동자대회 10만 아니 100만 대군이 결집하여 우리의 우렁찬 목소리가 세상을 바꾸고 비로소 노동이 존중받고 노동자가 정당한 대접을 받는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 투쟁하는 톨게이트 노동자, 윤주영 

 

 


※ 본 기사는 <민중언론 참세상>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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