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율아 잘 지내고 있어?

오늘 아침 마당에는 하얗게 서리가 왔어. 창문을 열어놓으니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덮친다. 이쯤 되면 겨울이 왔다고 할 수 있겠지.

삼촌이 어릴 적 살던 집은 산골의 기역 자 한옥이었어. 당연히 보일러 대신 아궁이에 장작을 넣어 불을 때 온돌방을 덥히고 물도 데웠어. 그러다 보니 겨울철에 따뜻한 물이 귀해 머리를 잘 감지 못했어. 

하루는 머리가 가려워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더니, 머리에 이가 생겼다는 거야.

어머니께서는 시간이 지나 쓸모가 없어진 지난달 달력 한 장을 찢어 하얀 면이 나오게 뒤집어 펼치셨어. 그 옆에 앉으시더니 이리 누워보라며 나를 누이셨지. 어머니 품에 누워 눈을 감고 있으면 내 머릿결을 이리저리 쓸어 보시며 이를 잡아주셨어.

그때 들려주셨던 옛날이야기며, 노래들이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 저편에 스며 있는 것 같아. 

논에 심은 모에 붙어 있는 우렁이 알처럼 머리카락 사이에 서캐(이의 알)가 있었어. “딱, 딱, 딱” 어머니께서 양손 엄지손가락 손톱을 마주 비비며, 이며 서캐를 터트릴 때마다 입안에서 터지는 연어알처럼 경쾌한 소리가 났어. 

대충 잡는 것이 끝이 나면 내 머리둘레에 맞는 적당한 비닐봉지를 찾아 머리에 씌우셨어. 미용실 파마 덮개처럼 말이지. 그리곤 파리, 모기 잡을 때 쓰는 살충제를 머리 이곳저곳에 뿌리셨어. 살충제가 효과가 있었는지, 이미 서캐를 다잡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비닐봉지를 쓰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머리도 가렵지 않고 이도 사라졌어. 

 

오늘은 특이하기도 하고 삽화가 재밌는 자료를 소개하도록 할게.

일본강점기 경상북도 영주군의 영주경찰서에서 만들어진 “늑대를 조심하시오”라는 포스터인데, 늑대 피해 방지를 위해 제작하여 배포한 것 같아.

당시에는 사람이나 가축에 대한 늑대들의 공격이 자주 있었어. 또한 “호환(虎患)”이라고 해서 호랑이의 피해도 상당했어. 

 

△ 일제강점기 영주경찰서 발행 “늑대를 조심하시오” 포스터

이 포스터는 가로가 40cm, 세로가 30cm 정도 되는 갱지로 되어 있어. 특이하게 제목 위에 강조를 위한 분홍색 굵은 선이 있어. 그 분홍색 선 밑으로 제목과 5가지 주의사항이 적혀있어. 

       늑대를 조심하시오

1. 늑대는 무서운 짐승이오

2. 요사이 영주군에서 물려간 아이가 많이 있소

3. 늑대는 어린아이부터 팔, 구세되는 아이까지 물어가오

4. 간간히 열두세 살 되는 아이와 노인까지라도 피해되는 일이 있소

5. 한 데(실외) 자는 것은 제일 위험하니 조심하지 아니하면 아니되오

그리고 포스터 하단으로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너와 지붕과 대청마루가 있는 이 집의 방문은 활짝 열려 있어. 그 앞마당에는 돗자리를 깔아놓고 쪽 머리를 한 어머니가 남자아이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누워있어. 얼마나 더운 여름인지 남자아이는 윗옷만 입고 바지는 아예 입지도 않은 것 같아. 한여름 열대야를 피해 방보다는 시원한 마당에서 잠을 청한 것 같아.

그 옆으로는 어머니 두 배 정도 되는 크기의 늑대 한 마리가 이빨을 드러낸 채 수염과 흙먼지를 날리며 모자(母子)의 머리맡으로 달려들고 있어. 주의사항에서도 알 수 있듯, 8~9세 되는 아이들도 물고 갔다고 하니 얼마나 피해가 컸겠나 싶어.

 

일본강점기 당시 늑대 피해에 대한 자료를 찾아봤는데 여러 기사가 있었어. 그중 하나를 읽어 볼게.

 

■ 당시 늑대 피해를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

“영주에 늑대 횡행”

“산중에서 송아지 교살”

【영주】지난 24일 경북 영주군 장수면 성곡리에서 두 살 된 송아지 한 마리를 “늑대”가 물어 죽였다는데 이제 자세히 듣건대 지난 14일 오전 8시경에 동리 신응희의 송아지를 뒷산에 매었다가 아침 후에 가서 본즉 “늑대”가 달려들어 벌써 배를 헐어놓고 창자를 내었음으로 당황한 주인 신 씨는 동리 사람들을 출동하여 달려가 본즉 벌써 방법이 없어 주재소에 보고하여 처치하였는데  죽은 소는 싯가 60여 원 치라하며 요즘 동리 부근에서는 돼지 등 가축 피해가 상당히 많다고 하며 수일 전에는 동리에서 늑대 새끼 5마리를 붙들어 죽인 일도 있다는데 송아지를 교살한 늑대는 상당히 나이가 많은 짐승으로 얼마 전에 한쪽 다리를 덧틀에 치여서 세 발로 다니는 중이라는데 요즘 가정에서 어린아이들의 노숙은 절대 금물이라 한다. 동아일보 (1939. 6. 27)

 

일제는 해로운 동물로 인한 사람과 재산의 피해를 구제한다는 명목으로, 이른바 해수구제(害獸驅除)사업을 한반도 전역에서 정책적으로 펼쳤어.

물론 해로운 동물의 피해를 막아야 하겠지만, 의병 봉기 등 일제에 대한 저항과 항쟁을 막기 위해 1907년 시행한 ‘총포급화약류단속법’과 1912년 시행한 ‘총포화약류취체령’ 등으로 오히려 해수 피해는 더 증가했어.

특히, 일제가 진행한 대대적 호랑이 사냥으로 최상위 포식자가 사라지니 늑대로 인한 피해는 일제 후반기에 더욱 늘어났어.

이러한 사업의 본질은 식민지 조선의 인적ㆍ물적 재산을 관리하고, 일본 자국인들의 이주정책에 도움을 주는 것이었어. 또, 일제 황실이나 관리들의 전리품을 챙겨주려는 목적이었지. 정호군(征虎軍)을 조직하여 호랑이 사냥에 나선 “야마모토 타다사부로”가 기자들을 대동하여 그 기록을 담은 ‘정호기’를 통해 잘 알 수 있어. 

삼촌이 어릴 때, 지금으로 치면 유튜브 동영상 같은 ‘비디오테이프’가 있었는데 테이프를 넣고 비디오를 플레이시키면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虎患),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라는 첫 화면이 나왔어. 아마 삼촌 또래들은 한 번쯤은 다 들어봤을 것 같아.

이제는 호환, 마마, 전쟁은 박물관으로 들어간 것 같아. 평화로운 한반도에서 꿈을 펼치길 바랄게.

 

소율아 건강해!

 

 


*야마모토 타다사부로 : 1917년 11월, 야마모토는 “근래에 점점 퇴패하여 가는 우리 제국 청년의 사기를 드높이기 위하여 칠, 팔만 원의 큰돈을 들여 이같이 장쾌한 행동을 하는 것”이라며 거금을 들여 원정대를 이끌고 한반도로 호랑이 사냥을 나섰다. 그의 이름을 딴 야마모토정호군(山本征虎軍)은 대단한 주목을 받았다. 조선총독부의 해수구제 정책과 같이 조선인의 생명과 재산에 피해를 주는 해로운 짐승을 퇴치한다는 맥락을 내세워 조선인들의 환대를 받은 한편, 자신의 부에 대한 과시이기도 했다. (‘나무위키’에서 발췌, 요약)


글 _ 강철민 대구경북근현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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