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갯소리지만… 어떻게 하면 학교에서 그렇게 징계를 받을 수 있어요?”
“아, 모르시는군요? 제가 만든 명언인데… 노력 없이 징계 없다! 노오~력을 해야죠.” 

지난달, 한동대와 장신대의 부당징계 당사자들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당사자 개그’라는 게 있다면 아마 이런 식일 거다. 일곱 명의 ‘쫓겨난 사람들’이 모여 각자가 경험한 부당징계 사건을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헐 그 학교도 그랬어요? 저희 학교가 제일 문제인 줄 알았는데.”
“징계 과정도 지난하고 아팠지만, 징계 이후의 삶도 확 달라졌어요. 앞으로 뭐를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에요.”
“제가 다른 학교 사람들 만나면 누구네 대학이 제일 이상한지 배틀 같은 걸 하거든요… 여태 한 번도 진 적이 없는데, 오늘은 왠지 비길 것 같아….”

다르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우리는 첫 만남부터 잘 통했고, 만난 지 한 시간 만에 부쩍 가까워져 여섯 시간 내내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다. 

장신대 부당징계 사건은 한동대가 페미니즘 강연을 열었다는 이유,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나를 무기정학 처분한 지 세 달쯤 뒤에 벌어졌다. 일명 장로회신학대학교(장신대)의 ‘무지개 퍼포먼스’ 부당징계 사건이다. 당시 장신대 재학생 일곱 명은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IDAHOT)을 맞이해 무지개 색으로 옷을 맞춰 입고 채플에 참석했다. 한국 교계의 ‘반동성애 광풍’에 저항하는 작은 행동이었다. 그로부터 사흘 뒤, 장신대는 이 일을 문제 삼아 해당 학생들을 엄중히 조사하고 조치하겠다고 공표했다. 두 달 뒤, 학교는 다섯 명의 학생에게 정학 6개월, 근신 및 사회봉사 100시간, 엄중경고라는 징계를 내렸다.

 

이미지 출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이미지를 클릭하면 보도자료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부당징계 이후 1년 만에, 장신대 학생들은 학교를 상대로 한 징계무효 확인 소송에서 승소했다. “징계처분이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명확한 판결이었다. 판결 후에도 학교는 당당하게 침묵으로 일관했다. 지금까지 한 마디 사과도 없이, 되레 ‘세속법’이 잘못되었다며 자신들의 만행을 정당화하고 있다. 장신대가 교단을 중심으로 교묘하게 징계 당사자들을 괴롭히는 동안, 목사를 꿈꾸던 다섯 명의 학생들은 한순간 ‘이단아’가 되어 학교와 교계, 사회에서 밀려났다.

2017년 말부터 각기 다른 대응과 소송을 이어가던 두 학교의 징계 당사자들이 만나게 된 건 불과 한 달 전이다. 사건이 일어나고 거의 2년 만이었다. 특별히 무언가를 하려는 건 아니었다. 그저 서로의 안부를 묻고, 경험을 나누고 싶었다. 한창 사건이 시작될 때에도 서로의 소식을 알고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었지만, 각자 사건에 대응하는 것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에 이제야 만날 수 있었다. 

만남은 기대 이상이었다. 두 학교 모두 개신교 기반의 대학교라는 점, 두 학교 모두 ‘반동성애 광풍’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 두 학교 모두 여성·이주민·난민·장애인 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일삼는다는 점, 두 학교 모두 학내 분위기가 매우 보수적이라는 점,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 학교라는 공간에서 우리가 내쫓겼다는 점을 각자의 경험을 통해 확인했다. 

이 일은 비단 우리만의 일이 아니었다. 기독교만의 일도, 대학교만의 일도 아니었다. 최근 정부와 국회가 보인 모습은 우리가 공유한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지난 11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MBC에서 진행한 ‘국민과의 대화’에 출연해 성소수자에 대해 말했다. “원론적으로는 차별에 반대하나, 동성혼을 합법화하기에는 아직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이 한 마디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한동대와 장신대 사건과도 연결된다. 누군가의 인권을 사회적 합의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과 어떤 존재를 반대할 수 있다고 믿는 시선은 그리 멀지 않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사회적 합의에만 인권을 전적으로 맡긴다는 건 곧, 언제든 그 인권을 박탈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박탈은 어떤 존재를 반대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왜 어떤 혼인과 존재는 당연한 것이 되고, 어떤 혼인과 존재는 “사회적 합의” 씩이나 필요한 것이 될까. 성소수자의 혼인평등권이 보장되지 않은 지금의 한국 사회가 바로 차별 그 자체라는 걸 정부는 전혀 이해하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의 발언 이틀 후, 국회의원 44명은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을 재발의했다. 현행 인권위법의 차별금지사유 중 ‘성적지향’을 삭제한다는 내용이다. 다시 말해, 성적지향을 근거로 차별을 자행해도 인권위가 개입할 수 없다는 뜻이다. 개정의 근거는 교계가 성소수자 혐오를 퍼뜨리기 위해 생산하는 가짜뉴스와 정확히 일치한다. 아무런 근거 없이 동성애와 에이즈를 연결하고, 어떠한 근거도 없이 다수의 국민이 동성애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식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정부와 국회가, 제도와 정책이, 문화와 인식이, 각종 기관과 단체들이 두 팔을 걷고 각종 차별을 자행한다. 그로 인해 어떤 존재들은 계속해서 쫓겨나고 있다. 단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성소수자와 함께 한다는 이유로, 여성·장애인·이주민·난민… 소수자라는 이유로 밀려나고 지워진다. 장신대와 한동대 사건도 그 무수한 차별의 역사 중 한 장면에 불과하다. 전혀 특수하지도, 전혀 유별나지도 않은. 그래서 아주 보편적인, 그러나 동시에 절대 보편적이어서는 안 될 그런 장면이다.

장신대 학생들과 오랜 시간 대화를 이어가던 밤, 우리는 함께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모았다. “먼저 우리의 이야기를 다시금 사람들에게 알리고 우리 스스로도 사건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는 간담회부터 열어볼까요?”, “자조모임 같은 건 어때요? 우리랑 비슷한 일을 겪었는데 ‘사건화’되지 못한 무수한 차별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로요”, “지금도 어디선가는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거잖아요. 그런 걸 함께 대응하고 예방할 수는 없을까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견과 질문들로 우리는 며칠씩 밤을 지새웠다. 서울과 경기 각지에 사는 열 명의 구성원은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만나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회의했고, 먹고 마시고 떠들고 위로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시작을 간담회로 정했다. 간담회 주제는 <쫓겨난 사람들 : 장신x한동 부당징계 이야기>. 피해가 단지 피해로만 머무르지 않도록, 우리가 그저 학생이나 피해자만으로 남지 않도록, 이 일이 우리만의 특수한 사건이 되지 않도록, 유사한 일이 또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말하기로 다짐했다. 그곳이 학교든 학교 밖이든 어디든, 나중으로 밀려도 되는 존재는 없으니까.

아픔이 연대가 되는 순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쫓겨난 사람들: 장신x한동 부당징계 이야기

 

“학교에서 쫓겨난 지 어느덧 2년, 
우리는 아직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 일시: 12월 6일 금요일 저녁 7시
 △ 장소: 종로3가 낙원상가 520호 청어람홀(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428)

채플 시간에 무지개 색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부당징계를 한 장신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페미니즘 강연을 열었다는 이유로 부당징계를 한 한동대. 차별의 역사 한편을 장식한 장신대와 한동대가 만났습니다. 

성소수자 혐오와 여성 혐오가 만들어낸 부당징계를 깊이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쫓겨난 학생들이 모여서 더는 학생이나 징계 당사자, 피해자만이 아닌, 활동가로서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합니다. 꼭 해야 할 이야기를 시작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 사회자: 한채윤(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 패널: 장신대와 한동대 징계 당사자 서총명, 지민
 △ 게스트: 장서연(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오현선(호남신대 전 교수)

많은 분들이 오셔서 함께 이야기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 참가 신청: https://forms.gle/2iEJx83qS8qpGb3i8

- 문자 통역이 제공됩니다.
- 비건 다과가 제공됩니다.
- 휠체어ㆍ유아차 접근이 비교적 용이합니다.
- 건물 사정상 성중립 화장실은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 개인 텀블러를 지참해주세요.

 △ 문의: 지민(010-8670-6575)

어떠한 지원금 없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행사입니다.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본 행사와 장신x한동의 추후 활동에 소중히 사용하겠습니다.

 △ 후원 계좌: 하나은행 229-910313-26907 조수아

감사합니다.

 

 

글 _ 지민

한동대 부당징계 당사자. 비혼생활공동체에서 폴리아모리 관계를 맺고 있으며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여행자>에서 활동합니다. 염치 아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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