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지기들의 바이블이라 평가받는 책, 딥스카이 원더스(Deep Sky Wonders, ISBN-13: 978-1554077939).
△ 별지기들의 바이블이라 평가받는 책, 딥스카이 원더스(Deep Sky Wonders, ISBN-13: 978-1554077939).

 

 “딥스카이 원더스(Deep Sky Wonders)는 아마추어 천문인들을 대상으로 천체관측을 안내하는 서적으로, 아마추어 천문 동호인들의 잡지로 유명한 미국 스카이 앤드 텔레스코프(Sky & Telescope)에 연재된 내용을 1년 단위 총 100 개장으로 묶어 발행한 책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천체관측과 관련된 서적은 대개 어린이를 위한 안내서나 교양천문학 분야로 양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도 순수 천체관측을 목적으로 하는 아마추어 천문인이 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온라인 천문동호회인 네이버 카페  ‘별하늘지기’의 지속적인 회원 증가와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천문지도사 과정에 참여하는 인원의 지속적인 증가가 이를 반증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점에 아마추어 천문 분야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적당한 난이도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는 천체관측 가이드 서적이 필요하다고 판단됩니다.

이러한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책으로서 딥스카이 원더스를 번역하였습니다.”

 - 2018년 7월, 딥스카이 원더스 번역서 출간 요청서 중

 

21개월간의 기초 다지기

아마존에서 구입한 딥스카이 원더스가 우리 집에 도착한 건 2015년 9월의 일이었습니다. 

이 책은 네이버 카페 ‘별하늘지기’에서 구로별사랑이라는 닉네임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 저의 별 선생님, 정성훈 선생님께서 소개해 주셨습니다. 이 책을 소개해 주시면서 한 번 번역을 해 보면 어떻겠느냐는 말씀을 해주셨죠.

당시 저는 제 개인 블로그에 NASA, ESA, ESO, NRAO 등에서 발표하는 천문 뉴스를 번역하여 포스팅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개인 취미이긴 했지만, 천문 뉴스를 번역하고 있었고 밤하늘을 찾아다니기 시작한 지도 2년이 넘어가고 있어 관측 실력을 쌓을 겸 딥스카이 원더스를 번역해 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번역 작업은 우선 영문서적을 온라인 파일로 만드는 작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개월 분량씩 책 페이지를 잘라내어 회사에 가지고 다니면서 아침 출근 후 근무가 시작되기 전에 잠깐, 점심 먹고 쉬는 시간에 잠깐, 영어 원문을 하루에 1페이지씩 타이핑했습니다. 그리고 타이핑한 내용은 최대한 당일 번역을 끝내는 것을 목표로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21개월이 흐른 2017년 5월 30일 저녁 23시 1분. 비록 비공개이긴 하지만 12월 마지막 장인 ‘카시오페이아의 적경 0시’라는 단원을 제 블로그에 포스팅하면서 ‘딥스카이 원더스’ 1차 번역을 완료하였습니다.

 

△ 2017년 5월 30일, 21 개 월 만에 초벌 번역을 완료했다.

저는 지금도 어떻게 하늘을 봐야 할지 잘 모르는 아둔한 별지기입니다.

다만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딥스카이 원더스를 한 번 훑어낸 그 21개월의 시간 동안 하늘을 대하는 저의 자세가 어때야 할지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21개월의 시간 동안 저는 딥스카이 원더스를 통해 새로운 하늘을 만났습니다. 저는 제가 바라보는 그 검은 하늘에 이토록 많은 하늘이 숨겨져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마어마한 우주망원경과 첨단 장비가 갖춰진 천문대에서 발표하는 사진들, 그리고 아마추어 천문인들이 촬영하는 아름다운 사진들 하나하나가 모두 놀라웠지만, 더더욱 놀라웠던 건 그 사진들이 담고 있는 하늘이 전체 하늘의 일부의 일부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동시에 제가 알지 못하는 하늘이 아직도 얼마나 많이 남아 있을까에 대한 의문과 경외감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경외감 속에 비록 별 볼 일 없는 별지기일지언정 그 하늘을 최대한 많이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도 이 생각만 하면 마음이 타들어갑니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늘을 꿈꾸는 어처구니없는 시간들. 과연 제게 시간은 얼마나 남아 있는 걸까요?

 

미리내 별빛 찾기

2015년 3월 25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날 NASA에서 발표한 오늘의 천체사진(APOD)은 궁수자리 2015, 2번(Nova Sagittarii 2015 No. 2)이라는 새별(Nova)을 소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Nova’라는 단어가 잠시 저를 고민에 빠뜨렸습니다. ‘Nova’라는 단어,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요?

사실 번역은 조금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사전을 뒤져보면 ‘신성(新星)’으로 나와 있거든요. 그러나 당시 제가 이 단어를 접했을 때의 느낌은 정확하게는 ‘분노’였습니다. 왜 ‘별’이라는 우리말을 놔두고 ‘성’이라는 한자어가 버젓이 사전에 기록되어 있는 거죠? ‘신성’을 ‘새별’이라고 표현하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걸까요? 그때 마음먹은 게 있습니다.

 

내 블로그에 포스팅하는 번역문에서 ‘성’이라는 한자어를 죄다 ‘별’로 바꾸리라.

내 블로그에 포스팅하는 번역문에서 ‘은하수’라는 한자어를 죄다 ‘미리내’로 바꾸리라.

내 블로그에 포스팅하는 번역문에서 ‘광’이라는 한자어를 죄다 ‘빛’으로 바꾸리라.

 

그래서 저의 결심을 ‘미리내 별빛 찾기’라는 번역 원칙으로 이름 짓고 이 원칙을 기반으로 번역을 시작했습니다. 이 노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지만 그 경과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Milkyway Galaxy’라는 단어를 ‘미리내’로 바꿔서 쓰기 시작하자, 당장에 ‘은하수’, ‘우리 은하’, ‘Milkyway Galaxy’라는 검색어로는 제 블로그에 유입되는 사람이 사라지기 시작했죠.

각오했던 일이지만 그 어떤 공식 매체보다도 빨리 뉴스를 포스팅하고서도 전혀 찾는 사람이 없어지자 힘이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빛’으로 바꾼 단어들은 그 심각성이 훨씬 더 심각했습니다. 제가 써 놓고도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난무하기 시작했습니다.

 

△ 번역 작업을 하면서 항상 들여다봤던 천문학용어집. ‘미리내 별 찾기’ 번역 원칙의 단어들은 기본적으로 이 용어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천문학 관련 용어로서 고유어의 비중은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훨씬 높다. 그 용어를 다듬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천문학용어집에는 간혹 사막에 숨겨진 오아시스와 같은 우리말 단어가 존재한다. 이러한 단어들은 최대한 그대로 살려 쓰려고 노력했다.
△ 번역 작업을 하면서 항상 들여다봤던 천문학용어집. 번역 원칙 ‘미리내 별 찾기’의 단어들은 이 용어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천문학 관련 용어로서 고유어의 비중은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훨씬 높다. 용어를 다듬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 천문학용어집에는 간혹 사막에 숨겨진 오아시스와 같은 우리말 단어가 존재한다. 이러한 단어들은 최대한 그대로 살려 쓰려고 노력했다.

결국 저는 제 스스로와 타협을 해야 했습니다. 학창시절 내내 배웠듯이 언어는 사회성을 띤 생물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처절한 고민 없이 함부로 바꿔 쓴 단어들이 다른 이들의 호응을 받을 리 만무했죠. 

그 와중에 결국 ‘광’을 ‘빛’으로 바꾸자는 원칙은 포기했습니다. ‘미리내 별빛 찾기’라는 원칙이 ‘미리내 별 찾기’ 원칙으로 쪼그라드는 순간이었죠. 하지만 나머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번역문에서 번역투를 빼내고 단어들을 가다듬는 데 또 1년의 시간이 꼬박 걸렸습니다.

2017년 6월부터 초벌 번역을 기반으로 문장에서 번역투를 빼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때 저를 계속 괴롭힌 것이 ‘미리내 별빛 찾기’라는 제 스스로 만든 원칙이었습니다. 제가 써놓고도 못 알아먹을 문장과 이름이 난무했죠.

2018년 6월. 드디어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죠. 제가 번역한 “딥스카이 원더스”를 PDF 문서로 변환하여 온라인상에 공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문서에는 ‘미리내 별 찾기’ 원칙에 의해 ‘은하수’를 ‘미리내’로 바꾼 문장과 ‘성’을 ‘별’로 바꾼 단어가 가득했습니다. 

‘우리 말을 씁시다! 천문학의 진정한 독립을 이뤄냅시다!’라는 포효와 함께, 온라인상에 번역 파일을 공개할 날짜를 그 해의 한글날인 ‘2018년 10월 9일’로 잡았습니다.

 

 

-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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