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하늘을 만나는 설렘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되도록 많은 분께 말입니다

번역이 완성된 PDF 파일을 공개하는 데 사실 마음에 걸리는 게 한 가지 있었습니다. 제가 만든 문서들이 해적판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죠. 딥스카이 원더스를 번역하고 문장을 가다듬었던 지난 3년간 노력을 해적판으로 마무리하자니 저 자신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든 생각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온라인상에 PDF 파일을 풀어놓으면 유용하게 사용하실 분들은 분명 있으실 겁니다. 딥스카이 원더스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니까요. 하지만 아마추어 천문학에 새로 진입하시는 분들이나 막연한 관심을 가진 일반인, 학생들이 비공식적으로 배포된 번역서를 접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더 많은 분께 우리가 바라보는 하늘이 그저 그 하늘뿐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서점에 들러 교양과학서적을 모아둔 코너에서 번역서를 출판한 경험이 있는 출판사를 찾아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그 목록에 따라서 2018년 7월 9일부터 독자 투고를 시작했습니다. 책 소개와 번역 동기, 이 책을 소비하게 될 예상 독자층을 정리하여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습니다.

한 달 동안 메일을 보낸 출판사는 모두 26군데였습니다. 대부분 반응이 없었고 세 군데에서 정중한 거절 메일이 왔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자 열정도 점점 식어 갔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아마추어 천문인의 관측기를 세상과 나누는 건 시기상조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갈 즈음. 출판사 한 곳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동아시아 출판사였죠.


검증, 검증, 검증…

출판사와 계약서를 쓰고, 담당 편집자가 지정되고 나니 정말 제가 목말라했던 갈증이 풀려나갔습니다. 바로 ‘미리내 별 찾기’라는 번역 원칙을 검증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전문가의 검증은 확실히 달랐습니다. 아닌 것은 아니었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오히려 격려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그 와중에 번역서에 담길 새로운 별 단어들이 선정되었죠.

먼저 ‘은하수’, ‘우리 은하’ 등 우리 은하를 말하는 단어로는 모두 우리의 고유어 ‘미리내’가 사용되었습니다. 
‘성도’라는 단어 대신 ‘별지도’가 사용되었습니다.
‘이중성’, ‘다중성’이라는 단어 대신 ‘이중별’, ‘다중별’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중별이나 다중별에서 가장 밝은 별’을 일컫는 ‘주성’은 ‘으뜸별’로 표기하였으며 주성과 짝인 ‘반성’은 ‘짝꿍별’로 표기하였습니다.
모두 쉽게 읽고 쓸 수 있는 우리말이며 그 뜻이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단어들입니다.

한편 우리말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단어도 우리 말로 표현했습니다. 아스테리즘(Asterism)은 별들이 특정 형태로 모여 있지만, 공식 별자리로 등재되지 않은 별들을 말합니다. 이에 대한 우리말로서 ‘자리별’을 만들었습니다. ‘자리별’이란 ‘특정한 모양으로 자리 잡은 별들’이라는 표현을 압축한 것입니다.

 

△ ‘훈민정음해례본’에서 다룬 용례의 마지막 단어는 ‘별’입니다.

‘별’이라는 아름다우면서도 강력한 우리말이 버티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별지기로서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한편 딥스카이 원더스 한국어판에는 특별한 변화를 하나 더 넣고 싶었습니다.

딥스카이 원더스에는 화려한 천체사진이 가득합니다. 그 천체사진들은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천체사진가들에 의해 촬영된 것들이죠. 애덤 블록이나 로버트 젠들러, 아키라 후지 등은 이미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천체사진작가들입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한 대한민국 별지기들의 천체사진 수준은 이보다 훨씬 우수합니다. 그래서 딥스카이 원더스에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의 별지기들이 찍은 사진과 스케치를 추가해 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행히 이러한 우리의 생각이 잘 전달되었던 것 같습니다. 딥스카이 원더스 판권 계약 과정에서 정식 허가를 받아 딥스카이 원더스 한국어판에는 우리나라의 별지기들이 우리나라에서 촬영하고 그려낸 사진과 그림이 추가되었습니다.

출판을 목표로 한 날짜가 다가오면서, 그리고 문제가 발견되어 목표로 한 날짜가 자꾸 밀리면서 ‘검토에, 검토에, 검토’가 다시 진행되는 빡빡한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2018년 10월에 PDF로 뿌리려고 했던 번역서는 전혀 어디에 내놓을 수 없는 번역서였습니다. 

그저 블로그에 포스팅하거나 제가 볼 목적으로 번역을 대충 하는 것과 그것을 책으로 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경험 많으신 편집자님 덕택에 저로서는 처음 겪는, 결코 쉽지 않았던 여정을 걸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설렘이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책을 번역하면서 단어나 문장으로는 읽어내기 어려운 천체들이 간혹 있었습니다. 이럴 때는 직접 망원경을 들고 관측지에 나가 검증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책에서 읽은 그 천체를 꼭 내 두 눈으로 보고 싶어서 월령이 맞는 주말을 손꼽아 기다렸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월령이 맞는 주말에, 그것도 날씨가 받쳐주어야 관측할 수 있다 보니 실제 책에 등장한 대상을 현장에서 직접 만나볼 수 있었던 경험은 열 번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만나지 못한 밤하늘의 왕국은 그대로 저의 버킷 리스트에 새겨졌습니다. 이 천상의 왕국들은 저를 설레게 만들고 지금 제가 살아가고 있는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당분간은 그 왕국을 방문 드리는 것으로 제 일상이 진행될 것 같습니다.

물론 저자인 수 프렌치 여사께서 관측을 진행했던 그 하늘과 제가 다니는 관측지에서 만나는 하늘은 차이가 있어 책에서 설명하는 그 구경으로 그 대상을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그대로 고스란히 제가 더 쏟아부어서 메꾸어야 할 노력의 공간이 될 것입니다.

번역서를 출간하게 되면서 수 프렌치 여사님께 메일을 보냈습니다. 수 프렌치 여사님께서 담아낸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대한민국 별지기들에게 소개될 거라는 사실을 알려드렸죠.

수 프렌치 여사님께서는 원서가 출판될 당시 싣지 못한 서문을 보내주셨습니다. 어쩐지 딥스카이 원더스 원서에 수 프렌치 여사님의 서문은 없었죠. 그런데 아쉽게도, 이런저런 이유로 그 서문은 한국어판에도 실리지 못했습니다.

수 프렌치 여사님께서 보내주신 서문을 여기 첨부파일로 여러분께 공유드리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이 서문을 통해 별지기로서의 열정이 가득한 수 프렌치 여사님을 만나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 딥스카이 원더스 한국어판. 2019년 9월 27일부터 시중에서 만날 수 있다.

 

〈딥스카이 원더스〉

지은이 _ 수 프렌치 Sue French

《스카이 앤드 텔레스코프》의 유명 필진 중 한 명이며, 30년 이상 하늘을 관측해 온 별지기. 천문학에 대한 그녀의 관심은 대학 시절 수강한 물리학 수업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 천체물리학을 접하게 되면서 천체관측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녀의 남편인 앨런은 관측 결과를 함께 나누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광범위한 관측 경험을 쌓는 한편, 18년간 플레네타리움에서 교육자로 재직했다. 또 천문학 연구를 지원하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단체인 더들리 천문대 이사회의 명예 이사이기도 하다.

그녀의 망원경은 스키넥터디 인근, 그녀의 집 뒷마당에 세워져 있다. 하지만 집에서의 관측에만 머물지 않고 남편과 함께 정기적으로 여러 곳을 다니며 다양한 관측지에서 관측을 진행하고 있으며, 다른 별지기들과 관측지에 따른 관측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옮긴이 _ 이강민

서강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LG CNS에서 시스템 엔지니어로 재직하였다. 영어공부를 할 목적으로 NASA에서 발표되는 뉴스들을 번역하다가 밤하늘의 매력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2017년부터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의 천문지도사 연수를 총괄하는 연수국장을 맡아 아마추어천문학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으며, 현재는 경남 산청 간디마을에서 밤하늘 관측 및 집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강민의 블로그 http://blog.daum.net/bigcrunch/12349708


(출처: 딥스카이 원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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