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라!] 현실이 비현실 같은 노부부의 78년 해로담 “나부야 나부야”
[이 영화를 보라!] 현실이 비현실 같은 노부부의 78년 해로담 “나부야 나부야”
  • 김상목
  • 승인 2019.12.11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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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야 나부야" 영화 포스터 이미지
                “나부야 나부야” 영화 포스터 이미지. ⓒ인디스토리

1_ 78년간의 순애보, 마지막 7년을 담아내다

<나부야 나부야>는 지리산 기슭에 있는, 경남 하동군 화개면 단천 마을에서 78년을 함께한 이종수, 김순규 두 노부부의 말년을 7년여에 걸쳐 담아낸 기록이다. 

방송용 다큐를 15년간 제작해온 최정우 감독은, 2011년 이 부부를 촬영하기 시작해 2012년 방송에 내보낸 뒤, 거듭 특집 다큐를 기획했지만, 데스크에서 승인을 받지 못한다. 이미 노부부의 삶을 담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다큐멘터리 영화로서는 공전의 흥행을 기록한 뒤라 그 아류로 비교를 당하는 데 대한 우려였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연로한 주인공들을 염려한 감독은 극장용 다큐로 제작할 것을 결심한다. 그 결과 방송용 다큐멘터리와는 정반대의 형식, (상투적) 내레이션을 배제하고 가족이나 주변 관계에 대한 설명도 최소화한 형태의 <나부야 나부야>를 2018년 5월에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뒤 그해 가을 극장 개봉을 진행하게 된다. 

영화 속에 담긴 내용처럼 할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은 할아버지는 회한에 잠긴 만년을 보낸다. 영화제에서 소개되기 전 할머니를 따르듯 할아버지도 세상을 떠난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부모님의 감춰진 일화들을 확인한 가족들은 극장에서 대성통곡했다고 전한다. 그렇게 <나부야 나부야>는 늘 청춘 남녀들이 주역인 로맨스물에서 보기 드문 노년 세대 주인공의 작품으로 남았다. 최대한 별도의 사회적 배경이나 내력을 설명하기보단 온전히 주인공들의 일상에만 집중하는 선 굵은 연출이 돋보이는 다큐멘터리이다.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연령대(와 본인 체험)에 따라 다양한 입장으로 작품을 감상하게 될 테다. 노년을 준비하는 이들이라면 ‘늙으려면 저렇게 늙어야지!’라 할 테고, 연로한 부모님을 둔 이들이라면 눈시울을 붉히며 효행을 다짐할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같이 사는 00도 좀 저랬으면!’하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할 것이다. 원작이 공전의 베스트셀러이고 영화화되어 2019년 후반 반향을 일으킨 <82년생 김지영>에서 한국 사회에서 보기 힘든 비현실적 캐릭터라는 소리를 들었던 극중 공유 배우를 초월하는 남편 캐릭터가, <나부야 나부야> 속에는 실재하기 때문이다. 비현실 가상의 판타지가 정작 현실을 뛰어넘기 어렵다는 역설이 증명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주인공 할아버지의 지고지순함과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에 대한 배려는 특출하다. 아무리 환경이 따라준다 해도 훌륭한 품성이 뒷받침하지 않고는 쉽지 않을 것이다. 영화를 만든 감독 또한 그 부분에 주목했을 것이고, 본 영화의 흥미의 과반 또한 여기에서 나온다. 이를 전제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나부야 나부야" 영화 스틸 이미지
                                      “나부야 나부야” 영화 스틸 이미지. ⓒ인디스토리 

 

2_ 실재 미담이 비현실로 느껴지는 순간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부야 나부야>의 노부부는 일제 식민 지배 초반에 출생했다.(할아버지는 1920년생, 할머니는 1921년생이다!) 이후 주인공 내외는 일제강점기에 성인이 되고 혼인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리산 자락 해발 600미터 고지대에 있는 마을에서 해방 전후부터 한국전쟁과 지리산 유격전이라는 현대사의 비극을 겪었을 테다. 장년기에 이들은 1960~70년대의 조국 근대화와 경제성장기를 거치며 5남 1녀 육 남매를 고이 길러냈다. 

이 지난한 삶의 여정을 보낸 노부부가 어떻게 하면 저런 해맑은 표정과 고운 말씨, 소년 소녀 같은 애정을 간직할 수 있었을까? 100살에 근접한 삶에서 무려 78년을 함께 보낸 노부부의 경지에 근접할 수 있는 이가 동 세대는 물론 2019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 과연 몇이나 될까?

물론 <나부야 나부야>를 관람하는 이들의 절대다수는 뭉클한 눈빛과 감동 어린 소감, 눈시울을 붉히며 영화를 볼 것이다. 그 감상법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다큐가 담은 경이로운 현실이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순간, 영화 속 노부부의 안온한 말년이 대다수의 노인세대에겐 꿈처럼 실제 누리기 어려운 기회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저 상상일 뿐이지만 이 주인공들이 겪거나 피해왔을 지리산 자락 한국 근현대사의 상흔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나부야 나부야" 영화 스틸 이미지
   “나부야 나부야” 영화 스틸 이미지. ⓒ인디스토리

3_ 노인복지의 방향을 상상하다

영화 속에서 노부부는 이것저것 소일거리를 찾으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밥을 해서 먹고 치우는 반복이 영화에선 가장 주요한 전개가 된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 자유로운 삶이 이 노인들의 장수 비결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은근히 ‘먹방물’로서 면모도 많다. 

초반, 마을에서 공동으로 김장을 해서 노부부에게 전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지, 노인들이 김장을 해서 김치를 먹기 어렵겠구나!’ 뒷북처럼 퍼뜩 생각이 든다. 두세 마리 남짓한 암탉을 키우는 닭장에서 할아버지가 갓 낳은 달걀을 챙기며 할머니에게 닭이 알을 낳았다고 흐뭇하게 말한다. 달걀은 곧바로 노부부의 밥상에 올라간다. 

자녀들이 모시겠다고 해도 노부부는 서로 불편하다며 힘닿는 한 이렇게 쉬엄쉬엄 부부만의 일상을 보내는 게 편하고 즐겁다고 말한다. 정말 그렇게 보인다. 자식들이 신경 쓸까 봐 애써 핑계를 대는 게 아니라 실제로 노부부가 편치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같이 어울려 살면 서로 눈치도 봐야 하고 생활 리듬이 다를 텐데 그걸 억지로 맞춰가며 살기보단 각자의 생체 주기에 따르는 게 자유로울 테다.

영화를 보면 확실히 연고성이 유지된다면 대도시의 속도와 변화 속에서 고립되기보다는 시골의 익숙함이 노인들에게는 적합해 보인다. 디지털화되고 개인이 이를 이용하려면 끊임없는 학습과 속도 중독에 끌려가야 하는 도시의 문명을 노년층은 강요당하듯 맞닥뜨린다. ‘적정 기술’이라는 개념처럼, 노인들이 활용할 수 있는 수준과 접근법을 대도시의 속도감에선 온전히 배려하기 힘든 2019년의 대한민국이다. 분식집을 들어가도 디지털 자동판매기를 이용해 주문하고, 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보려 해도, 은행 창구에서 금융 업무를 보려 해도 노인세대는 낙오자의 열패감에 휩싸인다.

단순 비용으로 따지기만 하면, 시골에 산재한 수많은 인프라는 비효율의 극치이며 유지 보수하기보다는 ‘통폐합’이 답이다. 노인 몇 가구 사는데 인터넷과 상하수도, 전력을 끌어넣는 게 낭비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사고의 결과는 더 파괴적이고 회복 불가능한 비도시 공간의 포기와 황폐화로 귀결될 것이다. 대도시의 삶이 갈수록 각박해지고 따라가기 어려운 것은 비단 노인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슬로 라이프’가 어려운 건 비도시권 지역사회가 붕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가용이 없이는 시장 보기도 힘들고, 의료나 교육, 문화를 누리는 게 불편하기 짝이 없다면 아무리 자원과 예산을 투입하더라도 그 지역에 정착하기 어렵다. 

<나부야 나부야>의 경이로운 노부부의 아름다운 노년에 경탄하다가도, 저런 삶은 기적과도 같은 드문 사례일 뿐이라는 생각이 미치면, 우리가 쉽게 접하는 대한민국 비도시권의 “지역 소멸” 현상을 씁쓸하게 곱씹게 된다. <나부야 나부야>의 미담을 감동으로 받아들이기엔 우리 주변 현실이 너무나 스산하고 미래가 암울하게만 보인다.

 

"나부야 나부야" 영화 스틸 이미지
                                    “나부야 나부야” 영화 스틸 이미지. ⓒ인디스토리 


작품 정보

나부야 나부야 (Butterfly)

한국, 다큐멘터리, 2018년 9월 20일 개봉, 65분, 전체관람가


감독 최정우

주연 김순규, 이종수

19회 전주국제영화제(2018) 초청

12회 서울노인영화제(2019) 초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