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영화 포스터 이미지
               “월성” 영화 포스터 이미지. ⓒ리틀빅픽처스


1_ “뉴스타파”의 신작 <월성>, 12월 12일 개봉하다

뉴스타파는 속칭 ‘이명박근혜’ 시대, 공중파 방송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당시 정부의 입맛대로 좌우되던 시절 각 언론사에서 해직된 기자와 피디 등 언론인들이 중심이 되어 2012년 탄생한 인터넷 대안 언론이다. 

정부의 검열 문제가 아니라도 광고주의 구미에 맞지 않는 내용을 자체적으로 걸러내기 십상인 주류 언론과 달리, 시민들의 후원으로 제작비를 충당하며 성역이 없는 공정 보도를 표방한다. 인터넷 뉴스로 시작하여 단발 뉴스가 아니라 심층 취재를 통한 탐사보도를 지향하는 방향성 덕분에 국내에선 보기 힘들었던 탐사보도 다큐멘터리영화 제작에 이르렀고, 국내에선 생소했던 분야를 개척하게 된 셈이다.

2017년 이후 피디수첩 담당 피디였던 최승호 감독(현 mbc 사장)의 <자백>과 <공범자들>, EBS 지식채널 e를 담당하던 김진혁 피디의 <7년, 그들이 없는 언론>을 제작한 뉴스타파는 2019년에도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 성공을 거둔 <김복동>을 선보였다. 

<월성>은 그런 뉴스타파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의 최신 개봉작이다. 현재 뉴스타파는 자체 제작을 넘어 공모를 통해서 기존 ‘독립다큐멘터리’ 진영 작가들과의 협업을 추진하고 있다. <월성>은 그 시도의 첫 번째 주자라 할 수 있겠다. <월성>은 그동안의 뉴스타파 작품들이 다뤘던 간첩조작 사건(<자백>), 언론 탄압(<공범자들>, <7년>), 위안부(<김복동>) 주제에 이어 탈핵 문제를 다룬 첫 작품이기도 하다. 

한국의 첫 핵발전소는 1978년 준공된 경남 양산의 고리 1호기이다. <월성>의 배경이자 국내 두 번째 핵발전소인 월성 1호기는 그 5년 후인 1983년 준공되었다. 이후 한국은 24기의 원자로 체제를 갖고, 원전을 해외에 수출하는 유수의 원자력 강국으로 등극한다. 원전은 경제성장 와중에 기하급수적으로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자 ‘한국의 과학 기술력을 돋보이게 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고리원전을 비롯해 영광·울진·경주에서 원전이 현재도 가동 중이다. 

하지만 1986년, 구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 이어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고, 원전의 부산물인 핵폐기물 문제가 대두되면서 점차 미래의 대안에너지로만 생각되던 원자력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 1990년대 초부터 방사성 물질 폐기장을 설치하려던 후보지들-태안군 안면도, 옹진군 굴업도, 부안군-은 민란에 가까운 주민들의 반대로 계획이 무산되었고, 한국의 원전은 폐기물 처리 문제로 곤욕을 치르기 시작한다. 

세계 어느 나라도 방사능 폐기물 완전 처리 기술을 개발하지 못한 상황에서 막대한 주민 보상을 동반해 2007년 경주시 양북면에 중저준위 방폐장 공사가 개시된다. (물론 지역사회 일각에선 격렬한 반대 투쟁이 이어졌다) 2012년 월성원전 1호기는 30년의 유효 수명 경과로 가동이 중단된다. 지난 30년간 지금처럼 원자력의 위험성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이 부재하던 시절 방지 대책이 미흡한 채 가동하며 발생한 안전 문제와 피해 보상, 수명 초과로 운용이 중단된 폐원전과 핵폐기물 처리 방안 등이 과제로 남았다. <월성>은 이와 관련된 주민들의 싸움에 집중한다.

 

"월성" 영화 스틸 이미지
“월성” 영화 스틸 이미지. ⓒ리틀빅픽처스

2_ <월성>과 <동경원발>의 문제의식

현재 우리는 전기에 의존한 일상을 살고 있다. 탈핵이나 반핵을 주장하는 이들을 반대하는 이들이 비아냥거리듯 그들에게 던지는 첫 마디는 ‘전기 없이 살면 되겠네?!’이다. <월성>은 월성원전 주변에 거주하다 건강을 잃은 주민들의 현실과 투쟁에 주력하면서 이 쟁점과는 약간 벗어나는 태도를 보인다. 이 작품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원전이 위치하는 지역의 공통성에 주목한다.

국내 위치한 원전의 위치에는 공통점이 있다. 인구가 상대적으로 희소하고, 해변 어촌이라는 특징이다. 전자는 토지 수용의 용이성 및 유사시 인명피해 등에 대한 고려, 후자는 원자로의 사고를 막기 위한 냉각수 공급을 쉽게 취하고자 하는 데서 비롯된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 밤의 어둠을 몰아내듯 환하게 빛나는 서울의 야경을 월성 주민이 바라보는 풍경. <월성>의 영화 속 문제의식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집중한다. 전력을 필요로 하고 많이 쓰는 공간은 대도시(그리고 공장지대)이다. 도시지역의 1인당 전력 소비는 세계 최고 수준에 육박한다. 반면에 농어촌 지역의 수요는 도시보다 그리 크지 않다. 그런데도 원전의 잠재적 사고 위험은 물론 일상의 안전 문제들이 모두 시골에 전가되어버린다.

<월성>은 그에 휘말려 방사능에 노출되고 일반인에겐 생소한 ‘삼중수소’ 등의 피해를 본 당사자들의 애환과 싸움을 따라가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영화 전반에는 담담하게, 그리고 다소 나열식으로 ‘월성원전인접주민이주대책위’ 구성원이자 영화 속 주인공 격인 등장인물의 사연을 소개하고 이들의 일상과 투쟁 현장을 보여준다.

그러던 전개는 후반에 ‘균도네’ 가족을 위시해 원전 인접 지역 주민들 중 갑상선암 발병 환자 618명의 집단소송 과정에 집약된다. 원고인 대책위와 피고인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의 법리 공방이 지난하게 이어진다. 영화는 균도네 가족의 항소심에서의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패소, 그리고 판결을 앞두고 있는 집단소송 과정에 힘을 보태려는 의도를 주저하지 않고 드러낸다.

이 부분에서 같은 독립다큐멘터리의 범주에 넓게는 같이 포함되지만 ‘작가’ 개개의 정체성이 강조되는 ‘영화’로서의 작업과, ‘언론’의 확장된 취재와 보도에 가까운 작업 결과물의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물론 독립 다큐도 이런 측면은 강한 편이다) 

‘원자력 마피아’ 소리를 듣는 한수원과 이를 뒷받침하는 이해관계 집단의 위력은 비정규직을 무시하는 대기업의 전형에 그대로 겹쳐 보인다. <월성>은 그를 넘어서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건 어쩔 수 없다’라는, 집단의 잠재적 폭력의 희생양으로 주인공을 포함한 월성 시골 주민들을 조명한다.

‘억지를 써 보상금을 타려는’ 모럴해저드가 아닌, 어린 손자·손녀의 건강을 걱정하는 평범한 사람들로 그들을 형상화하는 데 많은 장면을 할애한다. 이 작품은 기계적 중립을 넘어 소외되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을 명백하게 편들고, 이들의 목소리와 일상이 ‘진실’임을 드러내려 노력한다.

 

"동경원발" 영화 포스터 이미지
“동경원발” 영화 포스터 이미지.

다른 영화 한 편을 소개하려 한다. 2002년 일본에서 만들어진 블랙코미디 영화 <동경원발>이다. “동경 핵발전소”라는 제목으로 국내 개봉을 거치지 않고, 환경운동 단체나 관련 문화행사를 통해 알음알음 소개되었던 작품이다. 야쿠쇼 코지 등 유명 배우가 대거 등장하는 본작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저예산 독립영화는 아니지만, <월성>이 중심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문제의식을 17년 전에 먼저 선보인 작품으로 그 존재를 재조명할 가치가 충분하다.

일본의 수도인 동경의 지자체장으로 등장하는 야쿠쇼 코지는 느닷없이 동경 한복판에 원전을 유치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한다. 그리고 방사능 폐기물을 졸속으로 운반하는 과정과 도지사를 비판하면서 전전긍긍하는 지자체 내 인사들의 군상극이 교차한다. 그 와중에 도지사의 진의인지 아닌지가 불분명한 심경 토로가 이어지고, 방폐물 관련 위기일발 상황 속에서 ‘원전 위치의 사회학’이 해설처럼 진행된다.

전기를 많이 쓰는 지역은 위험부담도 감수하는 게 당연한데, 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힘없는 비도시권에 책임과 피해를 전가하느냐는 일갈에 그 누구도 자신 있게 반론을 제시할 수 없다. 비정규직 기사의 우발적 사고로 방사성 물질을 잔뜩 실은 채 동경 시내로 진입하는 트럭에 도시가 발칵 뒤집어지는 클라이맥스 풍경은, 인구가 희소한 변방에 원전을 유배 보냄으로써 외면하고 있던 원자력의 위험성을 극대화해낸다.


3_ ‘탈핵’이냐 ‘찬핵’이냐의 이분법을 넘어

<월성>은 원자력 에너지 문제를 다룬 앞선 영화들과는 다소 다른 지점을 조명한다. 밀양과 청도의 송전탑 이슈를 다뤘던 여러 작품과 오히려 근연성이 많은 기획이다. 굳이 에너지 문제만이 아니라, 국가권력이나 기업의 이해관계 때문에 힘없고 주목받지 못하는 이들의 희생을 다루는 보편적 주제를 담았다.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철거민이나 세입자이건, 송전탑이나 사드 배치 과정에서 해당 지역 주민이건 사실상 현대 한국에서 당사자들이 겪는 문제는 같은 구조하에 있음을 <월성>을 만든 이들은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대립하는 견해 중 어느 일방의 편을 들려는 태도가 명백하기에 반대편의 입장에 동의하는 이들이라면 진입 턱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월성>은 언론의 ‘중용’을 중시하는 이들에게는 ‘편파적’으로 비칠 작품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 작품의 흠이 될 순 없다. 이미 한수원의 입장을 옹호하는 언론방송, 그리고 전문가들이 켜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99개의 광고와 기사가 한수원의 편을 든다면, 1편쯤 다소 일방적으로 주민들의 입장에 공명하는 영상물이 있는 게 그렇게 문제가 될 순 없을 터이다.

탐사보도 방송의 연장선에 있는 작업이다 보니, 사실 전달에 치중하는 편집과 구성으로 인해 심층 보도를 늘려놓은 듯 다소 단순한 구조가 개봉영화로서는 오히려 단점이 될 수 있겠다. 뉴스타파의 전작들 중 <자백>처럼 스릴러 영화를 방불케 하는 긴장감을 주거나, <김복동>이나 <공범자들>처럼 저명인사들이 우르르 출연하지도 않는다. 그런 지점들 때문에 <월성>이 크게 흥행하거나 선풍적인 이슈의 중심에 설 확률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의 본래 목적, 지금도 진행 중인 문제들, 월성원전 내 핵폐기물 임시저장시설 추가 건설 결정이나 원전 주변 갑상선암 환자 618명의 공동소송 1심 판결 등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픈 취지에 동의하는 이들이라면, <월성>은 대중적으로 접근하기 좋고 활용도 높은 작품일 것이다.

 



작품 정보


월성

한국, 다큐멘터리, 2019년12월12일 개봉, 전체관람가, 83분
감독 남태제, 김성환


동경원발 東京原発

일본, 코미디, 2002, 110분
감독 야마카와 하지메
주연 야쿠쇼 코지, 단타 야스노리, 히라타 미츠루, 타야마 료세이, 스가와라 다이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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