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의 닮은꼴
차별의 닮은꼴
  • 지민
  • 승인 2019.12.28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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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대 징계무효 확인소송의 마지막 변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택시에 타자마자 함께 사는 식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재판 끝나서 기차 타러 포항역 가고 있어요.” 오늘 재판이 어땠는지, 상대가 어떤 변론을 했는지, 그것이 얼마나 이상했는지, 그래서 어떻게 반박을 했는지, 그럼에도 무엇이 우려되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통화가 끝나자, 묵묵히 운전을 하던 기사님이 기다렸다는 듯 말을 꺼냈다. “법, 뭐 이런 일 하시나 봐요.” “아, 제가 일하는 건 아니고요. 다니던 대학에서 2년 전에 부당징계를 당해서 징계무효 확인소송 중이에요.” 대답을 들은 기사님은 “아까 통화하실 때 징계 절차, 사유, 재판 이런 얘기하시는 것 같아서 여쭤봤어요”라며 “사실 저는…”을 시작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저는 2017년 7월에 15년 다닌 회사에서 부당해고를 당했어요.”

2017년 어느 날, 기사님(이하 A)은 새벽에 급한 일이 생겨 회사에 연차휴가를 신청했다. 당일 휴가 신청은 A가 재직하던 15년간 누구나 문제없이 해오던 일이었다. 더구나 A는 회사 동료에게 부탁해 자신의 업무를 대신할 대체 근로자까지 구해놓은 상황이었고, 휴가 신청도 인사담당자를 통해 절차에 맞춰 진행했다. 그야말로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범한 하루였다. 그러나 얼마 뒤 회사는 그날을 무단결근으로 처리하고, 이를 A에게 통보했다.

 

ⓒpixabay

소식을 들은 A는 담당자를 찾아가 항의했다. 담당자는 받아들일 수 없는 변명만 늘어놓았고, 그 과정에서 서로 언성이 높아지면서 날 선 말들이 오갔다. “이게 말이 됩니까? 대체 근로자도 구해놓고, 15년간 아무런 문제 없이 당일에 휴가 신청을 했었는데, 무단결근이라니! 똑바로 일 처리 안 할 겁니까!” 언성이 높아지던 그 날 다행히 아무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무단결근 처리는 변함이 없었고 A는 결국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

얼마 후 회사는 돌연 A를 인사위원회에 회부했다. A가 상사에게 폭언을 했다는 점과 무단결근을 했다는 점을 근거로 징계 절차를 시작한 거였다. 바로 그다음 날, 회사는 A에게 해고 통보를 했다. 이 모든 것이 단 이틀 만에 진행됐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던 A는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당연히 결론은 ‘부당해고’ 판정이었다. 

회사는 불복하고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 신청을 했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도 역시 부당해고 판정이 나왔다. 회사는 또 불복하고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에서도 역시 부당해고 판정이 나왔다. 회사는 또 불복하고 상소를 했다. 2심에서도 역시 부당해고 판정이 나왔다. 회사는 또 불복하고 상소를 했다. 그렇게 2년에 걸쳐 지금의 대법원까지 가게 되었다.

하늘이 뒤집어지지 않는 한 대법원 역시 부당해고 판정을 할 거라고 A는 말했다. 하지만 A는 이겨도 걱정이라고 했다.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부당해고 판정이 났기 때문이다. 법원이 ‘사유’를 문제 삼지 않았기 때문에 A가 재판에 이겨 복직하더라도 회사가 절차를 조작해서 억지로 또 다른 징계를 할 수도 있다. 대단히 악의적인 방법이지만,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문제였다. (해고 노동자에게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A는 한숨을 쉬었다. 설령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지금까지 내가 받은 고통과 그간의 시간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부당해고 기간의 임금을 받는다고 내 삶이 보상받지는 못한다고. 심지어 복직 후에 또 부당해고를 당하면 그때 또다시 지금의 시간을 겪어야 하는데 그땐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그때까지 나는, 지금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동안 A는 해고자의 신분으로 임금도 없이 회사의 괴롭힘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당장의 생계를 위해 찾은 일자리가 내가 탄 이 택시의 운전석이었다. 기나긴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택시가 포항역에 도착했다. 하고 싶은 말들이 입을 맴돌았지만, 할 수 없었다. 함부로 A의 삶에 말을 얹기가 어려웠다.

A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한동대와 A의 회사가 겹쳐 보였다. 위법하고 부당한 사유와 절차를 통해 구성원을 내쫓고, 자본과 권력을 이용해 교묘하고 악랄한 수단으로 개인을 괴롭히고, 뻔뻔하게 법정에 나와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모습까지 똑 닮아 있었다. 심지어 현재 한동대는 ‘퇴학을 시켜도 모자란데, 반성의 기회를 주려고 무기정학 처분한 거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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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한동대 부당징계 소송을 다녀오는 길에 A를 만난 사실이 공교롭게 느껴져서 나는 서울역으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하필, 공교롭게’라는 말을 곱씹었다. 그러다 새삼 실감했다. 그 ‘하필’이고 ‘공교로운’ 만남이 사실은 그리 특별하지 않은 일이라는 걸, 그래선 안 되지만 이미 누구나 겪었고, 겪고 있고, 겪게 될 차별과 부당함일 수 있다는 사실을. 

얼마 전, 삼성이 진보성향 시민단체를 ‘불온단체’로 분류하고, 직원들의 연말정산 정보를 불법적으로 이용해 개인의 단체후원 내역을 조사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드러났다. 이를 바탕으로 삼성은 ‘불온단체’를 후원한 직원들에 대해 회사 차원에서 감시하고 관리해왔다. 한마디로 사찰이다. 이런 일이‘세계 일류기업’이라는 곳에서 공공연히 일어난다는 사실이 경악스러우면서도 특별히 새삼스럽지 않은 건, 삼성뿐 아니라 이미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일 테다.

포항역에 도착하고서도 한참을 내리지 못하다 끝내 A에게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사님, 덜 힘드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어요. 정말 부당한 일이지만, 우리 함께 버텨요.” 이 말을 끝으로, 나는 쭈뼛대며 택시에서 내렸다.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하지 못한 말이 떠올렸다. “근데 꼭 버티지 않아도 돼요. 자신을 지키는 일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모두 투사가 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잖아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앞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뱉지도 삼키지도 못한 이 말조차 너무 연약해서 나는 자꾸 고개가 숙여졌다.

 

 

글 _ 지민

한동대 부당징계 당사자. 비혼생활공동체에서 폴리아모리 관계를 맺고 있으며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여행자>과 <갓길:같이 걷는 길>에서 활동합니다. 염치 아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