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역사 이야기] 바다 너머로 눈송이처럼 흩어진 이름들
[근현대 역사 이야기] 바다 너머로 눈송이처럼 흩어진 이름들
  • 강철민
  • 승인 2020.01.03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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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율이에게

 

벌써 2019년이 저물어 간다. 얼마 전에 한 해를 시작한 것 같은데, 며칠 뒤면 2020년이라니. 마흔이라니. 시간은 쏜 화살처럼 소리도 없이 빨리 가네.

송년회를 한다고 반가운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시간이 훌쩍 갔어. 어둑어둑 일찍 해가 기울고 안개가 깔리더니,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12월 마지막 날에 눈이 아니라 비가 내리다니. 존재를 잊어버린 겨울인지, 한 해가 아쉬운 투정인지.

삼촌이 어릴 적 초등학교 때, 겨울 방학식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날 한밤이었어. 소변이 마려워 잠에서 깼는데, 황소바람으로 으레 요란스럽게 흔들리던 문풍지가 조용했어.

대신 창호지를 통해 스며져 들어오는 환한 푸른빛과, 아늑한 방 안 공기가 평소와는 너무 달라 이질적으로 느껴졌어. 맨드라미 꽃 같은 붉은 밍크 이불에서 나와 방바닥에 앉았지. 잠이 덜 깨서 그런가 하고 주의를 집중했어. 달빛과도 다른 빛이었고, 아랫목 온기와도 분명히 다른 아늑함이었어.

눈이다. 밖에는 분명 눈이 내릴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소설 주인공처럼, 살며시 문을 열었어.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어. 마당에는 이미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눈으로 꽉 찼고, 하늘에서는 둥근 민들레 꽃처럼 큰 눈송이들이 툭툭 떨어지고 있었어. 산골의 밤중이 얼마나 고요했는지, 바닥에 떨어지는 눈송이 소리가 들리는 듯했어.

함박눈. 내복 바람에 맨발로 뛰어나가 걸리는 대로, 신발을 아무렇게나 신고 마당 한복판으로 갔어. 머리 위에도, 목을 간지럽히며 어깨 위에도 눈이 내렸어. 하얀 눈밭을 이리저리 걸으며 발밑으로 납작 사그라지는 눈 소리를 듣고 숨을 들이켰어. 박하향처럼 상쾌한 공기가 시원했어.

 

오늘은 소율이에게 어떤 것을 소개할까 생각하다, 겨울방학도 하고 곧 6학년으로 올라가고 해서, 일제강점기 교육 관련 자료를 소개하도록 할게.

 

△ 겸백공립보통학교 졸업생 이재옥 학생의 자료

전라남도 보성군 겸백면 석호리에 있는 지금의 겸백초등학교인, 겸백공립보통학교(兼白公立普通學校)는 1925년 개교했어. 자료는 당시 이 학교를 다녔던 이재옥이라는 학생의 임명장, 상장, 졸업장, 졸일 앨범과 전라남도단기농민도장 수료증과 수료 사진이야.

이재옥 학생은 1926년생으로 1937년 겸백보통학교에 입학했어. 1942년 졸업을 할 때까지 5번 상장(품행 방정ㆍ학업우수)을 받고 2번 급장에 임명되었지.

그리고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제 말기인 1944년 고이즈미 히로시(小泉弘)가 장(長)으로 있는 전라남도단기농민도장을 49회로 수료했어. 당시 아주 유복한 환경은 아니지만, 자작농 수준의 중산층쯤 되는 가정 환경에서 생활했던 것 같아.

 

△ 일제강점기 급장 휘장
△ 일제강점기 급장 휘장

일제의 침략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경 본국의 젊은 청년들이 전쟁터로 징병되어 농업 생산성이 낮아질 것을 우려한 일제는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조선인 청년을 대거 일본으로 보냈어.

당시 일제는 조선총독부 산하에 각 지역 직속 기관으로 도립단기농민도장, 농업보습학교 등의 식민지 농업 교육기관을 설립하였는데, 여기에 지역 중산층의 자녀들 중 보통학교 졸업자 수준의 학력을 지닌 20살 이상의 청년을 모아 선별적으로 입학시켰지. 이렇게 조직된 농촌지역 청년들은 ‘내선일체’, ‘보국 농업’, ‘선진농업 견학’이라는 허울 좋은 선전 속에 *조선농업보국청년대 등으로 차출되어 일본으로 보내졌어.

말이 선진농업 견학이지, 본질은 양질의 농업 노동력을 무상으로 일제에 제공하는 것이었지. 일본 본국으로 차출되어 간 조선 청년들은 침략전쟁에 징병을 가거나, 전사한 일본인 농가에서 숙식을 하며 노동력을 착취당했어.

또한 일제는 이러한 사업을 통해 노동력 착취는 물론, 견학을 다녀온 이들이 귀향 후 식민지 조선의 농촌 사회를 견인하며 일제의 식민지 지배 정책에 동조하도록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까지 노렸어.

 

△ 전라남도농민도장단기생 제49회 수료 기념사진(1944)
△ 전라남도농민도장단기생 제49회 수료 기념사진(1944)

자료의 주인공인 이재옥 학생 또한 전라남도단기농민도장 수료 후 일본으로 강제 동원되지 않았을까? 수료 일이 1944년 6월 30일이니 혹시 강제 동원 도중, 일본에서 해방을 맞이하지는 않았을까? 혼자 여러 상상을 했어. 식민지 시절의 가슴 아픈 자료들이야.

일제의 이러한 농업노동력 강제 동원은, 1938년 국가총동원법 제정 이후 1945년 해방될 때까지 진행된 수많은 강제 동원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단다. 일제강점기 동안 약 700만 명에 이르는 강제징용의 역사가 이렇게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일본이 그것에 대한 반성은커녕 아직도 큰소리를 치고 있으니 환장할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친일세력 청산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야.

친일에서 친미로 이어진 75년.

2020년에는 그 변화가 시작되겠지.

 


소율이도 새해 복 많이 받고, 늘 건강해!

 

 


조선농업보국청년대(朝鮮農業報國靑年隊) : 1937년 중일전쟁 도발 이후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일본에서는 병력과 노동력 부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성인 남성 대부분이 군인으로 징집되어, 아직 징병제가 실시되지 않은 조선에서 노동력을 공급하고자 했다. 총독부가 제시한 조선농업청년보국대 선발 대상은 1) 도립(道立)의 농민도장(農民道場), 개조농업보습학교 졸업생으로 성적 우수한 자, 2) 귀향 후 농업생산보국운동에 진력하고 현재 부락의 중핵으로 활동하고 있는 자, 3) 몸소 농업에 종사하고 그 개선에 대해 상당한 체험을 가진 자, 4) 연령 18~30세 미만으로 품행 방정, 신체 강건한 자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발췌 요약)


글 _ 강철민 대구경북근현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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