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의 현실과 일본 사람들의 마음”

 

△ 이케다 미노루 지음, 정세경 옮김, 두번째테제, 2019. 4

내 삶도 버거운데, 가족도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돌아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더라. 하지만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걱정해주는 이들도 있고, 더 나아가 그들을 돕기 위해 무언가를 시도하는 이들도 있더라.

이 책은 핵발전소 사고가 난 후쿠시마로 가서 제염작업과 제1핵발전소 현장에서 1년 남짓 하청 노동자로 일한 이케다 미노루가 자신의 경험을 직접 서술한 책이다.

저자 이케다 씨는 후쿠시마 사고를 접한 당시 도쿄에서 우체국 배달 업무를 하고 있었다. 정년을 2년 남겨둔, 한국 나이로 60세. 

그는 3·11 당일, 일본 도후쿠(東北) 3현에서만 61명의 우체국 직원들이 사망 및 행방불명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가 일하는 우체국에서도 큰 재해에 대처할 수 있는 매뉴얼을 본 적이 없을뿐더러 피난 훈련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나는 그때까지 후쿠시마 원전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도쿄까지 보내진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슬픈 일이지만, 3·11로 인해 후쿠시마는 도쿄에서 아주 가까운 존재가 되어 버렸다. 나에게도 그때부터 후쿠시마는 머릿속 한구석에서 계속 떠나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이케다 씨는 일본의 평범한 시민들이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사고를 접하며 느낀 당혹감과 그 의미를 덤덤히 드러내고 있다. 그는 왜 굳이 후쿠시마 피폭 하청 노동자가 되었을까?

그는 “우체국에 재고용되는 길도 있었지만, 나의 마음속에는 언제가 후쿠시마에서 일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가족들을 두고 혼자 후쿠시마로 가서 일하는 것은 확실히 불안한 일이었지만, 앞으로 40년, 50년, 혹은 100년 이상 걸릴지도 모르는 수습 작업의 역사적 진행에 한시라도 빨리 참여하고 싶었다”라며, 그 동기를 적고 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의 해양 방출, ‘2020년 방사능 올림픽’ 등을 우려하는 한국 현실에서 이케다 씨의 이런 고민을 접한 나는 잠시 의아했다. ‘후쿠시마의 부흥’을 뻔뻔하게 선전하는 아베 총리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데, 이케다 씨와 같은 생각을 하는 보통의 일본 시민들에게 그런 비판을 한다는 것은 뭔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생각을 하는 이는 이케다 씨뿐만이 아니었다.

“피폭당할 수도 있다는 막연한 불안을 가슴에 품고도, 후쿠시마의 부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후쿠시마에 일하러 왔으니 역시 이치에프(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에서 일하는 게 꿈이야. 편한 일이라기보다는 제염보다 이치에프가 일하는 보람이 있다.”

새삼스러웠다. 이 사람들이 ‘국가주의에 포섭된’ 엉뚱한 사람들이 아니라, 보통의 선량한 시민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여 년 전, 한국의 태안 기름유출 사고 때 숱한 사람들이 태안지역 바닷가로 기름을 닦으러 갔던 것처럼.

게다가 이케다 씨는 이 책에서, “이건 제염이 아니라 제초잖아. 공사 마감일이 다가오자, 표면의 풀만 베어도 좋다는 지시가 내려져 결국 형식뿐인 ‘제초’작업을 하게 되었다”, “‘부흥’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 듯 말들 하지만, 내 눈에는 후쿠시마의 ‘부흥’은 허풍 혹은 너무나 먼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지금 인부 7천 명이 일하는 이치에프, 2만 명 이상이 작업하는 제염 현장은 과연 40년 후, 100년 후에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이치에프의 폐로 작업은 앞으로 100년은 계속될 거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때쯤 일본은 ‘원전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을까?” 등과 같이 본인이 경험한 생생한 실태와 문제의식을 전하고도 있다.

이전까지는 한 번도 소개되지 않았던, 피폭 노동을 소개하는 책들이 최근 연이어 출간되었다. 『원전집시-피폭하청노동자의 기록』(호리에 구니오, 2017, 무명인)은 1970년대 말 일본 핵발전소 노동실태를 르포작가가 잠입하여 기록으로 남긴 고전. 

『핵발전소 노동자』(테라오 사호, 2019, 건강미디어협동조합)는 뮤지션이자 작가인 저자가 2000년대 이후의 노동실태를 전하기 위해 6명의 현장 노동자들을 만나거나 인터뷰한 뒤, 꽤 많은 자료를 숙독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한 저술. 

『후쿠시마 하청노동 일지』는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선량한 한 시민이 후쿠시마에서 체험한 실제 제염 및 폐로 작업의 실태, 그 안팎의 이야기를 평범한 일본 사람들의 눈과 마음으로 기록하여 전하는 도서.

굳이 덧붙인다면, 언론조차 쉽게 접근할 수 없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의 현장과 일본 사회 분위기를 실감 나게 드러냈다.

 

글 _ 윤종호 무명인출판사 대표

 


탈핵신문 2019년 12월 (73호)
출처 
https://nonukesnews.kr/1685 <탈핵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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