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조리 소성리] 천일을 넘어 비탈진 산길에 평화를 심다
[요리조리 소성리] 천일을 넘어 비탈진 산길에 평화를 심다
  • 기록노동자 시야
  • 승인 2020.01.20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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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소성리 상황실
△ 사진 소성리 상황실

성주군 소성리는 원불교의 2대 종법사이며 세계 평화와 상생 공영의 ‘삼동윤리(三同倫理)를 통해 평화 사상을 널리 세상에 전파한 정산 송규 정사의 탄생지이자 성장지이다. 사드가 배치된 진밭은 정산 종사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구도했던 구도길이었다. 

국정 농단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사상 초유의 탄핵 인용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던 날, 소성리 주민들은 팔을 반만 올려 만세를 불렀다. 원불교 종교인들은 정산 종사의 족적을 따라 걸었던 구도길이 경찰에 가로막혀서 진밭교를 건너지 못하고 길바닥에 주저앉아야 했다. 

“주민들의 통행길을 열라”
“스승님의 구도길을 열어라”

외치고 또 외쳤다. 가장 앞줄에 원불교 시민사회네트워크교당의 김선명 교무가 있었다. 제주에서 온 강은도 교무는 돌아갈 비행기 표를 포기하고 구도길을 열어줄 때까지 안 가겠다며 밤을 꼬박 새워 철야기도를 하기에 이르렀다.

2017년 3월 11일부터 진밭교의 평화기도는 시작되었다. 따뜻한 봄날에 사드 2기가 기습적으로 배치되고, 가을날 사드 4기가 추가 배치되는 수난을 겪으면서 2019년 12월 5일 1000일 기도를 맞이했다. (2017년 4월 26일 황교안 대통령 직무대행 상황에서 경찰공권력 8000명을 동원해 성주골프장에 사드 장비 기습반입을 강행했다. 2017년 9월 7일 문재인 대통령 당선되고, 성주골프장에 발사대 4기 등 사드 장비를 추가 반입했다.)

진밭 평화기도 1000일을 하루 앞두고 성주, 김천, 대구·경북 그리고 부산·울산,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평화의 종교인들과 평화지킴이들이 소성리 진밭을 찾아 주었다. 

한울안신문은 지면을 할애해서 진밭의 천 일 동안의 이야기를 실었다.

“성주 성지 달마산 초입으로 진밭교에 눌러앉아 평화의 기도를 올린 지 1000일이 되어갑니다. 재작년 첫 겨울을 이곳에서 날 때 천막 안 생수병이 꽁꽁 얼어 돌덩이가 되는 영하 18℃의 추위를 지냈습니다.” (※기사 보기 http://www.hanulan.or.kr/news/articleView.html?idxno=162736)

김선명 교무님이 진밭에서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혹독한 추위보다 더 차가웠을 고독한 진밭을 생각했다. 진밭에서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동지들이 ‘진밭의 천일야화’로 화답하며 길고 긴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소성리 부녀회장 순분 씨는 날마다 날아드는 ‘진밭의 천일야화’를 읽었다. 소성리 할머니들과 진밭교를 건너 사드기지 최전선으로 누구보다 전진했던 그는 가슴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볼펜을 손에 쥐었다. 밤마다 하얀 종이에 볼펜을 꾹꾹 눌러 몇 자 적었다가 지우길 반복했다. 끝내 편지를 부치지 못했다. 진밭 평화기도가 1000일이 되는 날 소회가 어떠냐고 물었다.

“감개무량했어요, 눈물 나고. 아이고 참, 소성리에 사드가 들어가기 전에 진밭에 교무님이 거기 앉았잖아요. 내가 본 그 여자 교무님이 강은도 교무님인 줄 나중에 알았지. 그때 3월이라도 진밭은 엄청 춥거든요. 밤에 견딜 수 있을까? 상징적으로 앉았다가 밤에 내려가지 않을까? 난 그럴 줄 알았어……” 

처음엔 교무님 몇 분이 ‘상징적’으로 철야 기도하다가 포기할 것으로 생각했다. 길바닥에서 얇은 비닐 한 장에 의지해 며칠이나 할 수 있을지. 달이 지고 해가 뜨면 주민들도 진밭교로 올라가서 기도하는 교무님 곁을 지켰다. 교무님들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기도를 하였다. 

“의심을 한 건 아니었어요. 궁금하더라고요. 정말 교무님들이 밤새도록 저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까? 기도만 했을까? 아무것도 없이 맨바닥에 비닐 깔고 덮고 있었지만, 경찰이 그러더라고요, 꼿꼿하게 앉아서 자리를 지키고 기도를 하셨다고. 화장실 다녀온 거 말고는 기도에 전념하셨다고. 그 이야기 듣고는 마을 주민들에게 전했죠.”

원불교 교무님들이 달마산에서 불어오는 거친 골바람과 땅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그대로 몸으로 받아안으며 철야 정진(徹夜精進)한다는 소식이 순식간에 소성리 마을로 알려졌다. 성주 읍내로 퍼졌다. 주민들은 비닐을 들고 와서 교무님을 추위로부터 감싸주었다. 주민들에겐 통행 길이요, 원불교 교무님들에겐 구도길인 이 길을 열기 위한 저항에 합류하였다.

“그때 우리 주민들 모두 기대도 컸었어요. 원불교가 적극적으로 개입했으니까, 우리에게 큰 힘이 될 거라는 기대. 교무님들이 꼿꼿하게 앉아있는 게 건강을 해칠 수도 있는 상황이고. 원불교 성지잖아, 구도길을 막았으니 가만있을 리가 없다고 막연하게 기대가 컸었지.” 

사드가 소성리로 배치된다는 소식에 분노와 공포에 휩싸였던 주민에게 진밭의 철야 기도는 깊은 감동이었다. 우리도 끈질기게 싸워야겠다는 결기를 다졌다. 

 

△ 사진 소성리 상황실
△ 사진 소성리 상황실

“소성리 진밭교는 사드 배치 저지 투쟁의 최전선”

주민들과 평화의 종교인들 그리고 수많은 연대자들이 하루가 멀다고 소성리로 달려왔다. 진밭교에서 경찰들과 충돌했다.

비닐 천막을 쳐서 교무님들이 찬 이슬을 피할 수 있는 교당을 만들었다. 사드를 둘러싼 국가공권력의 무력진압을 수차례 당해 부서지고 깨지고 망가졌지만, 진밭을 지켜내기 위해서 애썼다. 

“주민들이 진밭교에서 사드기지까지 접근 못 하게 경찰들이 철통봉쇄를 해버렸잖아요. 내가 심지어 밭에도 갈 수 없었을 만큼.”

경찰들이 막아선 건 진밭교 구도길뿐 아니었다. 진밭교 너머에 조상묘를 찾을 수 없게 막았고, 감나무밭으로 가는 길도 막았다. 봄이면 쑥 뜯으러 가던 길도 마음대로 갈 수 없었다.

순분 씨의 감나무밭은 진밭교를 건너야 했다. 다리를 건널 때마다 “국방부 군사 보호시설입니다. 주민들은 출입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농사를 짓는 농부는 작물을 돌보지 못해서 애가 탔다. 주민들은 길을 막는 경찰에 맞서서 대항했다. 국방부는 주민들에게 출입증을 발급했다. 순분 씨는 마을 주민이 마을 길로 자유롭게 못 다니게 하는 경찰의 처사에 분노했고, 국방부가 발급하는 출입증을 거부했다. 진밭교를 건너기 위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아무리 싸워도 안 되겠기에, 내가 선언을 했어. ‘지금부터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다 너희 책임이다. 나는 농사를 짓고 살아야 하는데 너희가 길을 막고, 감나무밭으로 못 가게 하니까, 농사를 못 지으면 굶어 죽을 거고, 가다가 죽으나 똑같다’ 하고는 다리 난간 있잖아요, 원불교 천막 뒤로 돌아가서 다리 난간 절벽에서 뛰어내렸어. 경찰들이 여럿이서 다리 위에서 쳐다보고. 높은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면 위험을 느꼈을 거잖아요. 내가 위험한 짓을 했던 거지.”

다리 난간 절벽에서 뛰어내려 발을 헛디뎠던 순분 씨가 넘어졌다. 경찰들도 놀랐는지 수십 명이 순분 씨에게 달려왔다. 순분 씨는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냇가를 건넜다. 수풀 사이를 비집고 언덕을 올라갔다. 

“여기는 군사보호시설이 아니고 민간인 시설이니까, 비켜라!”

감나무밭까지 가시에 긁히고 할퀴면서 가야 했다. 감나무밭에 도착했을 때, 경찰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순분 씨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감시했다. 순분 씨는 잔나무 가지라도 주우면서 일하는 척해야 했다. 

“그때는 진밭교에 천막을 쳤는데, 교무님들이 한두 명밖에 없어도 일단 사람이 있으니까, 그게 나한테 용기가 되더라고요. 만약에 나 혼자만 있었다면, 내가 아무리 대차도 경찰을 상대로 싸우지는 못했을 거야.” 

다음 날은 주민 두 명, 다음 날은 세 명이 쑥 캐러 올라왔다. 진밭교 경찰들을 뚫었다. 그다음 날은 네 명, 다섯 명… 날마다 순분 씨와 소성리 할머니들은 길을 열라고 싸웠다. 진밭교 1차 저지선을 뚫었다.

“국방부가 주민들한테 출입증 받으라고 했을 때, 우리는 출입증 거부하고 싸워서 진밭교를 뚫고 올라갔는데, 2차 저지선이 있는 거야. 또 막힌 거예요. 진밭교에서 1킬로 올라가다 보면 경찰초소가 또 있어요.”

당시는 진밭교부터 사드기지 정문까지 경찰들이 촘촘하게 보초를 섰다. 마지막 민가로 연결되는 삼거리 초소에서 경찰이 검문하고 있었다. 

“2차 저지선도 우리 할매들 하고 같이 올라가서 싸웠어요. 뚫었지. 우리 사드기지 정문까지 쉽게 올라간 거 아니야. 수구 보수단체가 소성리로 자꾸 찾아와서 사드 배치하라고 난리 쳤잖아요. 툭하면 난장판을 만들었어요. 우리더러 빨갱이라고 몰아대면서 온갖 욕설을 퍼붓고, 농성한다고 앉아서 더럽게 하고. 진밭교까지 집회신고 내고 올라온 거야, 경찰이 그걸 받아줬어. 

가만있을 수 없잖아. 나랑 몇몇이 먼저 사드기지 정문으로 올라가서 시위하고 있으니까 마을에 있던 할매들이 소식 듣고 쫓아 올라왔어. 그때 남자 하나 없었어. 나랑 할매들만 열네 명이야. 내가 숫자를 정확히 기억해. 사드기지 정문 앞에 놓여있는 칼날이 뾰족한 철조망 쳐진 바리케이트 안에 나랑 금연 할매랑 춘자 할매랑 셋이서 들어가 버렸고, 다른 사람들은 도로에 자리 깔고 누워서 팔짱 끼고 노래 불렀지.”

그날 소성리 할머니들의 용기가 대단했다. 열네 명의 할머니들이 똘똘 뭉쳐서 누구 하나 먼저 내려가자는 사람 없이 바닥에 누웠다. 바리케이드에는 순분 씨 홀로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순분 씨가 들어가자 두 사람이 순분 씨 곁을 지켜주러 따라들어와서 다리를 펴지 못하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모두 끝까지 가자는 결기가 느껴지는 그날의 저항을 회상하면 웃음이 절로 난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온 거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진밭교에서 교무님이 버텨주니까, 거기서부터 한발 한발 앞으로 내딛기 시작한 거야. 끝까지 갈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 주신 거지. 우리도 성취감을 느꼈지. 패배만 하면 못 버티잖아요. 한 발만 더 가자, 한 발만 더 가자, 더 가면 고지가 바로 저기 있다 하면서. 지금은 기지 앞은 우리 마음대로 갈 수 있게 되었잖아요.”

한 발 한 발을 떼어서 철통 봉쇄했던 사드기지 정문으로 올라갔다. 사드가 배치된 기지 앞에서 사드를 철거하기 위해 날마다 평화행동을 했다. 

“사드 뽑고 평화 심자!”

구호를 외치고 노래도 불렀다. 소성리 할머니들은 오후에 올라가서 하고 싶은 만큼 실컷 사드 배치에 항의했다.

 

노랑 풍선, 깃발 그리고 현수막

할머니들은 화장실이 없어서 산비탈 길로 내려가서 용변을 봐야 했다. 할머니들이 산비탈로 내려가면 경찰이 화들짝 놀라서 달려왔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돌렸다.

어느 날 평화행동을 마치고 노란 평화 풍선을 기지 정문 나뭇가지 위에 매달아두었다. 다음 날 평화행동을 하러 올라갔더니 국방부가 풍선을 거둬 가버렸다. 소성리의 평화를 되찾고 싶은 소원을 담아서 매달아 둔 풍선이 사라져버렸다. 빼앗긴 풍선을 되찾기 위해 항의했다. 

이후 소성리 할머니들은 화장실을 지어 꼭대기에 사드 반대 깃발을 꽂자는 목표가 생겼다. 화장실이 필요했던 터에 잘 되었다면서 직접 화장실을 짓기로 의견을 모았다. 맨손으로 돌멩이를 옮겼다. 용변을 보기 위한 것만 아니었다. 

“자들이 노란 풍선 하나 매달아 놓은 것도 저렇게 질색을 하는데, 사드 반대 깃발 꽂아놓으면 얼마나 질색을 하겠노? 우리 화장실 지으면 사드 반대 깃발 꽂아놓고 자들이 매일 보게 만들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평화행동하기 위해서 모였던 할머니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고 실행했다. 화장실을 짓는다고 돌멩이를 나를 때, 기지 안에서 군인들이 우르르 산을 타고 내려왔다.

“처음 보는 군인인데, 외곽경비팀이었던 거 같아요. 이상한 놈 둘이 나오더니, 이거 국방부 땅인데, 이거 우리가 확 밀어버릴 수도 있다고 하면서 ‘야, 쓸어버려’ 그러는 거예요. 우리도 막 소리를 질렀지.”

그들은 언덕 위에 서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거만하게 말했다. 군인 십여 명이 더 내려왔다. 한 판 부딪힐 듯 위기 촉발 상황이었다. 기지 앞에 상주하는 경찰이 중재한답시고 끼어들었다. 군청과 협의해서 간이화장실을 갖다 놓겠다고 했지만, 더는 진전되지 않았다. 

군인들의 협박에도, 경찰들의 회유에도, 소성리 할머니들은 덤덤하게 몸을 움직였다. 바닥이 딱딱해서 땅을 팔 수 없었다. 기술이 필요한 건 마을의 남자 주민에게 부탁해서 도움을 받았다. 옆 둘레는 천으로 감쌌고, 문도 만들었다. 허술하기 짝이 없고, 볼품없는 화장실을 지었다. 

마침내 사드 반대 깃발도 꽂았다. 

“너희 국방부가 우리 풍선 뺏아갔제, 우리 화장실에 깃발 떼기만 해봐라. 그때는 날밤을 새울 끼다. 가만 안 놔둔다.”

사드 반대 깃발은 풍찬노숙하면서 세월만큼 닳고 낡았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사드 반대’ 현수막도 기지 앞에 걸기 시작했다. 거기까지 해냈다.

“내가 지금 후회하는 게, 그때 그 열정으로 더 해야 했는데, 그랬으면 저걸 조금 더 뚫지 않았을까. 철조망으로 칭칭 감겨있는 기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 사드 반대 깃발을 꽂고 현수막을 걸 수 있게 되었다는 성취감에 빠져서 더 한 발 나가지 못했어. 딱, 거기까지만 뚫고 지금 더는 발을 내딛지 못하게 되었잖아.”

 

△ 사진 소성리 상황실

하루이틀 상징적으로 기도하고 말 줄 알았던 원불교 철야 기도는 999일에 하루를 더해 1000일을 채웠다. 천 일 동안 원불교만 진밭의 평화기도를 해왔던 게 아니다. 이웃 종교인 개신교와 천주교, 평화의 종교인들이 크고 작은 전투를 치르며 동고동락해왔다. 그리고 누구보다 진밭의 평화기도로 사드 반대 활동을 멈추지 않고 해왔던 이들은 소성리 주민들이다. 누구보다 사드가 철거되는 날을 손꼽아 기도한 사람들이다.

“원불교가 포기하지 않으면 1000일 기도를 기점으로 1001일, 1002일 계속 진밭 평화기도를 할 거잖아. 사드기지 정문에서 평화행동도 계속할 거고, 우리는 1000일을 기점으로 다시 한 발 내디뎌 봐야지.”

우리는 이제 사드기지의 최전선이 될 미군 숙소로 간다. 미군에게 소성리 주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주러 가자고 순분 씨는 말한다. 

“사드기지 미군 숙소까지 걸어 가서 평화행동한다니까, 태환 씨가 사과 다 따면 같이 걷자고 하더라고. 규란 씨도 용기를 내서 같이 걷겠다고 해. 그럼 광순 씨도 걸어갈 수 있을 거야. 할매들은 도토리 주우러 비탈진 산길로 잘 다니거든, 그렇게 할매들이랑 한 발 내디딜 방법을 찾아봐야지!”

한 발을 내디뎌 사드기지 정문까지 올랐듯이 한 발을 내디뎌 사드 뽑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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