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라!] 홀로도모르, 고뇌하는 지식인의 초상 “미스터 존스”
[이 영화를 보라!] 홀로도모르, 고뇌하는 지식인의 초상 “미스터 존스”
  • 김상목
  • 승인 2020.01.21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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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와 ‘진실’ 사이에서... 우크라이나 대기근을 기록한 언론인, 가레스 존스

 

"미스터 존스" 포스터 이미지
영화 “미스터 존스” 포스터 이미지

1_ 1933년 당대의 “현재”적 상황


1929년, 대공황이 전 세계를 휩쓴다. 서구 제국주의 강국들은 식민지를 묶어 경제블록을 구축하고 불황에 납작 엎드리며 견디고, 지난 세계대전에서 패했거나 이득을 얻지 못한 여러 후발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파시즘과 군부독재가 횡행하는 것을 방관한다. 한편 1917년 혁명 이후 구 러시아 제국이 탈바꿈된 “소련”,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은 혁명 직후 러시아 내전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열강이 철수한 뒤, 전 세계 육지의 1/6을 차지한 채 서구 세계 바깥에 존재하고 있었다. 파시즘과 장차전(將次戰)의 징후를 느꼈던 몇 사람 중 당시 영국 수상 로이드 조지의 젊은 보좌진인 가레스 존스라는 언론인은 소련에 주목한다.

전 세계가 대공황의 여파로 불황에 허덕이는 가운데, 소련은 5개년 계획으로 괄목할만한 수치의 경제성장과 공업화를 이룩한 것처럼 보였다. 영국과 프랑스 등 서구 강대국들은 낌새뿐인 파시즘 세력보다는 현실사회주의 세력에 더 큰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당시까지만 해도 오히려 중재자 역할을 유럽에서 담당하고 있었고, 히틀러는 그저 운 좋게 권력을 잡았을 뿐, 기존의 독일 내 보수정치의 변종으로 이해되던 시기였다.

하지만 가레스 존스는 유럽 세계를 파괴해버릴지도 모르는 파시즘의 잠재력에 주목하고, 동서에서 포위망을 만들기 위해 소련과의 동맹관계 수립을 계속해서 열성적으로 제안한다. 총리의 신임장을 온갖 수단으로 확보한 그는 프리랜서 언론인으로 소련에 도착하지만, 철저한 통제 하의 모스크바는 그가 원하던 취재를 이끌어내는데 협조하지 않는다. 마침내 가레스 존스는 ‘우크라이나에서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다!’는, 석연찮은 죽음을 맞이한 다른 기자의 메시지를 접하고 밀행을 결심한다. 기차에서 몰래 내린 그는 어떤 ‘사실’을 접하게 된다. “미스터 존스”는 바로 가레스 존스가 우크라이나에서 접한 일들과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일들을 극화한 내용이다.


2_ “The Holodomor” (“Голодомор”)

가레스 존스는 밀행 전, 우크라이나에 대해 피상적으로 ‘스탈린의 돈줄’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세계지리 교과서에 나오는 우크라이나의 비옥한 흑토 지대가 곡창이라는 사실 정도의 상식 수준이었다. 우크라이나의 곡물을 수출한 자금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소련은 대공황 속에서도 경제성장과 산업화에 성공해 국력을 쌓아가고 있으며, 파시즘 세력에 맞선 동맹으로 끌어들인다면 다가올 세계대전을 막을 유력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가레스 존스는 서방 세계의 편견을 허물고 동맹을 수립하는 데 젊은 언론인이 기여할 수 있다는 야심찬 기대에 부풀어 모험에 나선 셈이다. 다소간의 위험은 겪더라도 자신의 목적이 소련 당국에도 좋은 일이니 큰 봉변까지야 당하겠냐는 로망 섞인 기대도 있었으리라.

 

"미스터 존스" 스틸 이미지
영화 “미스터 존스” 스틸 이미지

하지만 가레스 존스가 목도한 것은 ‘홀로도모르’였다. 세계 역사상 최악의 대기근 중 하나였던 바로 그 ‘우크라이나 대기근’을 일컫는 말이다. 물론 동서고금에 기근은 끊이지 않고 자연재해의 일부로 존재해 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대기근의 차이점은 실제로 자연재해보다는 인위적 수탈과 정책의 실패로 인한 ‘인재’에 가까운 참상이라는 점이다. 물론 당시 러시아 전역에 걸쳐 기근은 동시 진행형이었으며 다양한 학설과 논쟁이 여전히 존재하는 쟁점이긴 하지만, 적어도 수확된 농산물은 행정과 무력을 사용해 ‘수출’되고 있었고, 강제적인 농업 집단화의 혼란은 기근을 부추기고 있었다.

당시 스탈린 치하의 소련은 고립 상태에서 내부적 역량만으로 경제개발과 군사력 강화를 동시에 이룩해야 했다. 아무리 자체 역량만으로 공업화를 추진하려 해도 자국 내에서 생산할 수 없는 것들을 수입하고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외화가 필요했다. 공업화를 위해 도시와 공단으로 집중되는 인구를 부양하기 위한 안정적 식량생산 관리도 절실했다. 그리하여 후대에 알려진 집단농장 정책을 강행했고, 그 결과 생산물의 통제와 관리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자기 토지를 가진 농민들의 애착을 간과했고, 농민들은 이제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 국가의 소유가 된 농경지와 가축들을 소모하거나 몰수당하기 전에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가가 할당한 생산량은 어떻게든 확보해야 했고, 국가 내에서 마치 전시 징발과 같은 상황이 도처에 벌어졌다.

그 결과는 자연적 기근과 함께 닥쳐온 끔찍한 참사였고 연구자에 따라 다르지만 700만에서 1,100만이 이 시기에 사망했다고 전한다. 물론 모두가 아사한 것은 아니다. 굶주림에 지친 이들에게 전염병이 창궐하고 저항력이 약해진 이들은 사소한 질병에도 우수수 죽어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레스 존스가 주목한 지점과 정확히 닫는) 외국의 침략을 두려워한 당시 소련 정부의 군사력 확보를 위한 공업화는 중단되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농업지대에서 수백수천만이 굶주리다 아사에 이르는 지경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는 당시 폐쇄되고 고립에 처한 소련의 사정 때문에 국경 밖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암행을 결심한 가레스 존스가 내린 곳은 바로 그 대기근의 한복판이었고, 가레스 존스의 기록에 근거했을 영화 속 풍경은 마치 현세에 강림한 지옥도를 방불케 한다. 한겨울의 설원 속 기근으로 산송장이 되어 있는 우크라이나 농민들의 풍경은 거대한 죽음의 무도를 방불케 하며, 가레스 존스는 급기야 인육까지 맛보게 된다. 결국 소련 당국에 의해 강제 송환된 그는 정치적 거래를 거쳐 추방되고, 그가 목격한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자 시도한다. 처음 소련에 입국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목적으로 말이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가 시작된다.

 

3_‘진영논리’에 대항하다 : 가레스 존스 vs 월터 듀란티

하지만 가레스 존스의 홀로도모르 참상에 대한 기사는 당시 소련 주재 서방 언론사 특파원들에 의해 반박당하기 시작한다. 본시 그의 목표대로였다면 우군이 되었어야 할 모스크바의 주재 기자들은 왜 그런 선택을 집단적으로 하게 되었을까? 역사의 미스터리 중 일부인 셈이다.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은 이 부분에 대해 영화 속에서 치부를 감추기 위한 소련 정부의 매수와 향응 제공 탓으로 돌린다. 그 필두에 월터 듀란티가 있다. 소련에 상주하는 서방 언론인들의 대표 격인 듀란티는 뉴욕 타임즈의 대기자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경력을 가졌고, 그가 앞장서서 존스의 기사를 반박하자 가레스 존스의 주장은 신뢰를 잃게 된다. 듀란티는 그의 강력한 입지를 활용하고, 소련 정부의 금품에 길들여진 다른 매체 특파원들 또한 당근과 채찍에 길들여진 공범으로 비친다.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은 현대사에서 소련과 악연이 꽤나 많은 폴란드의 대표적 여성 감독이며, 감독과 폴란드 영화계가 소련 체제에 대해 그다지 좋은 인식을 갖기가 힘든 조건임을 감안하면 영화 속 묘사는 익히 예상된 지점이기도 하다.

 

"미스터 존스" 스틸 이미지
영화 “미스터 존스” 스틸 이미지

당시 서구 일반에서 갖고 있던 소비에트 연방에 대한 공포와 혐오 속에서 고립된 소련을 취재하던 주재 기자들은 정서적으로 소련 체제에 상대적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그들에게도 통제되어 있던 우크라이나 대기근 상황에 대한 가레스 존스의 폭로는 (처음 존스 본인이 의도했던) 소련과 서방 세계와의 화해와 교류 시도를 완전히 박살 내버릴 성격의 것이었으리라 유추할 수도 있다. 당시 통제된 소련 체제는 반대급부로 외국의 간섭과 개입이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이었고, 월터 듀란티를 비롯한 친 소련 성향의 언론인들은 가레스 존스의 폭로가 정작 도움은 되지 못하고, 소련의 고립과 그로 인한 파시즘의 통제 불능을 초래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졌을 수도 있다.

그렇게 가레스 존스의 용감한 폭로는 잊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기상천외한 돌파구를 생각해낸다. 퓰리처와 허스트는 엘로 저널리즘 경쟁을 벌이던 라이벌. ‘황색언론’의 대명사인 신문재벌 월리엄 허스트의 휴가철 별장에 잠입해 ‘특종’이라며 기사를 제공하기에 이른다. 퓰리처상 수상자를 향한 비장의 카드였다. ‘보다 많은 변호사를 두고 계시기 때문에’ 기사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예상대로 기사는 뒤늦게 빛을 보고, 우크라이나 대기근은 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그리고 2년 후 존스는 당시 소련의 영향력이 강하던 외몽골 지역에서 취재활동 중 도적에 의해 살해당한다. 그 죽음에 석연치 않은 배경이 있어 보인다는 후일담과 함께. 냉전 시기 서방세계에서 소련을 대표로 하는 현실사회주의권의 모순을 거론할 때 일 순위로 호명되는 조지 오웰의 역작 <동물농장> 집필에 존스의 기사가 영향을 끼쳤다는 묘사가 펼쳐지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조지 오웰의 반 소련 성향은 주로 그가 참여했던 스페인 내전 과정에서 굳어진 것으로 전해지지만, 우크라이나 대기근을 접한 경험에서 출발한 것으로 영화는 언급하고 있다)


4_ 우크라이나 대기근, 대약진운동, 고난의 행군......

우크라이나 대기근은 소련 체제에 대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계열의 무장투쟁과 지하운동으로 이어졌고, 2차 대전 초반 독-소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의 독일 협력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나치 독일은 해방자가 아니라 정복자로 소련을 초월하는 착취와 학살을 일삼았고, 전후 우크라이나는 다시 소련의 일부가 되었다.(우크라이나 민족주의 게릴라의 활동은 2차 대전 종전 이후로도 상당 기간 더 이어진다) 소련의 해체와 함께 독립했지만 최근 크림반도 분쟁과 돈바스 전쟁 등으로 여전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는 복잡하기 그지없다.

소련과 영국, 프랑스는 이후 나치 독일의 대두 과정에서 협력을 모색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 결과 소련은 오히려 독-소 불가침 협정을 맺고 독일의 서부 침공을 묵인한다. 그 과정에서 서방 세계의 뿌리 깊은 ‘빨갱이’에 대한 불신이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가레스 존스는 그가 처음 소련으로 떠날 때의 기대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역사에 족적을 남긴 셈이다. 그의 용감한 시도와 경력을 건 폭로는 우크라이나 대기근에 대한 외부자의 희소한 기록으로 남았지만, 그가 처음에 의도했던 정치적 방향과는 동떨어진 결과를 낳았다. 역사의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으리라.

하지만, 수백만 이상이 기아로 목숨을 잃었음이 증명된 역사적 대기근이 인위적으로 은폐되고 통제되는 참상을 눈으로 목격한 이가 어떤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서방세계 혹은 반 소련 계열의 주장, 우크라이나 내 여론처럼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와 부농들을 소멸시키기 위해 스탈린이 의도적으로 기아를 조장했다는 ‘썰’까지 아니더라도, 자국민을 제대로 책임지기는커녕, 수탈을 감행한 당시 소련 체제를 옹호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눈앞에 아사자가 속출하고 인육 섭식이 자행되는 지옥도를 봐버린 이에게 무슨 정치적 판단을 요구한단 말인가.

월터 듀란티의 퓰리처상 수상은 21세기에 들어 취소되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가레스 존스의 기록들은 1933년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인류 역사에서 손꼽을 만한 참상에 대한 귀중한 자료로 남아 있다.

이후 역사에서도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현시창’이 되어버린 파국적 사건은 이어진다. 국-공 내전을 거쳐 ‘인민’을 해방한 사회주의 신중국은 1950년대 의욕적으로 ‘대약진운동’과 이에 관련된 ‘제사해운동’, ‘반 우파 투쟁’을 거듭 실험한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저 새는 해로운 새다’라는 권력자의 단순한 한 마디에 의해 모기, 파리, 쥐, 참새 등 해로운 것들을 없애 농민들을 돕는 목적으로 추진된 제사해운동(除四害運動)은 대흉년과 기아로 이어졌다. 외국의 도움 없이 공업화를 이루려던 시도는 ‘토법고로’의 악몽과 함께 재앙으로 돌아왔다. 반 우파 투쟁은 노동교화라는 미명하에 서북지역 황무지에서 떼죽음을 불러일으켰다. 굳이 학술자료를 찾아보지 않더라도, 국내에도 유명한 중국 작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에 진하게 풍자되는 당대의 상황은 그저 의도만으로 인위적 재앙을 옹호하기 어려움을 말없이 증명하고 있다.

물론 역사적 사건을 당대인이 미리 알 도리는 없다. 과거의 역사를 훗날 정리된 상태로 해석하는 것과, 동시대에 판단하고 실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다만 현재의 목적이나 이익을 위한 “진영 논리”로 역사적으로 입증된 사건에 대해 위악적이고 일방적 해석을 일삼는 것은 정치적 입장을 떠나 여전히 우리 주변에 횡행한다. 물론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를 떠나 상식과 합리를 결여할 때 벌어지는 일이다. 같은 사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바벨탑 현장도 아닌데 ‘사슴’을 보고 ‘말’이라는 식의 왜곡은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객관성에 기반을 둔 토론이 아닌 ‘내로남불’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2020년 초 한국 사회에서, 치밀한 정치적 고려보다도 솔직한 반성과 인정이 더 희소해진다고 느낄 때 <미스터 존스>는 씁쓸한 뒷맛을 남길 영화다.

 

작품 정보

 

영화 “미스터 존스” 포스터 이미지
영화 “미스터 존스” 포스터 이미지

미스터 존스 Mr. Jones

폴란드ㆍ영국ㆍ우크라이나, 스릴러ㆍ드라마ㆍ전쟁, 2019, 119분

감독 아그네츠카 홀란드

주연 제임스 노튼, 바네사 커비, 피터 사스가드

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2019) 경쟁부문

38회 밴쿠버국제영화제(2019) 초청(스페셜 프레젠테이션)

24회 부산국제영화제(2019) 초청(아이콘)

31회 팜스프링스국제영화제(2020) 초청(모던 마스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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