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이재각

매주 월요일, 사드부지 공사 강행을 규탄하기 위해 미군 숙소로 간다. 오후 1시 30분 소성리 마을회관에서 출발한다. 사드 철거를 요구하는 소성리의 투쟁이다. 우리는 평화행동이라고 부른다. 

미군 숙소로 오르는 산길은 낙엽이 쌓여 푹신한 오솔길이다. 산은 물을 가득 머금고 있다. 계곡은 쉴 새 없이 물이 흐른다. 가파른 비탈길을 두 번 정도 오르면 큼직한 무덤 하나 나온다. 제법 깊은 산속에도 무덤은 잘 관리되어 있었다.

무덤 위쪽 언덕에 올라서면 숨이 가빠 심장은 요란스럽게 뛰어댄다. 잠깐 호흡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요동치는 심장을 다독거린다. 다시 걷기 시작하면 금방 미군 숙소 건물이 보인다. 

소성리 부녀회장 순분 씨는 푸근한 마음으로 미군 숙소로 가는 길에 따라나섰다. 바쁜 농사철의 가을걷이를 끝냈다. 의성 콩으로 메주를 쑤었고, 일 년 먹을 양식을 장만해 두었다.

나는 산을 오를 자신이 없어 한동안 망설였다. 사드기지의 최전방으로 한 발을 떼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미군에게 직접 소성리 주민이 느낄 고통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산길은 겨울 추위에 얼었다 녹아 미끄러웠다.

미군 숙소가 있는 사드기지는 칼날 시퍼런 철조망이 견고하게 둘러 쳐져 있다. 다가갈 수 없다. 사드기지 둘레 철조망 길도 진밭이었다. 길은 좁고, 바닥은 기울고 울퉁불퉁하다. 감시 카메라는 사람의 말소리를 따라 빙글빙글 돌아간다. 최신형 감시 카메라임이 틀림없다. 

소성리 상황실 강현욱 대변인이 어깨에 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소형 앰프와 마이크를 꺼냈다. 미군 숙소를 바라보며 기다란 현수막이 걸려있다. 현수막은 영어로 구호를 적어놓았다. 우리 셋은 나란히 미군 숙소를 바라보았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고, 구호도 외쳤다. 

“STOP MD! NO THAAD! YES PEACE! US Troops! Get out of Korea”

“사드 운용비 어림없다, 사드 뽑고 평화 심자!”

“사드기지 공사 강행 반드시 저지하자!”

“한반도 평화의 걸림돌, 사드를 뽑아내자!”

 

사진 이재각
△ 사진 이재각

목청을 높여 구호를 외치다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나는 까무러칠 뻔했다.

나와 불과 1미터 거리에 시커먼 물체가 서 있는 거다. 다가오는 인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군복을 입고,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총을 메고,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선 앳된 군인이다. 

구호를 외치다가 화들짝 놀라 “엄마야” 비명을 지르자, 평화행동을 하던 우리 일행은 모두 놀라서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내 옆에 선 총든 군인을 발견한 강현욱 대변인이 앞으로 나섰다. 

군인은 앳돼 보였지만, 국군 장교 소위였다. 우리는 항의했다. 실탄이 없는 총도 위협적이다.

12월 23일 월요일 벌어진 사건이었다. 그날따라 미군 숙소 주변이 부산스러웠다. 왼편 초소 남자들의 잡담 소리로 유난히 웅성거렸다. 평화행동을 시작할 때쯤, 미군 숙소에서 괴성을 지르는 소리도 들렸다. 철조망 둘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니 급기야 총 멘 군인을 마주 보게 되었나 보다. 

철조망 바깥은 민간인의 구역이다. 우리는 날카로운 칼날이 촘촘히 꽂혀있는 철조망을 뚫고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국군 소위는 우리더러 시위를 계속하라고, 자신은 시위하는 장면을 증거 수집하겠다고 했다.

우리는“누가 시켰냐?”고 재차 다그쳤다. 소위는 “명령받고 나왔습니다”라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순분 씨는 “국방부, 미국의 개 노릇 좀 작작해라”라며 분개했다. 

산길을 오른다고 심하게 운동했던 심장이 휴식을 취할 새도 없이 다시 요동치고, 감정은 격해졌다. 철조망 안에서 또 한 명의 군인이 다가왔다. “황 소위 돌아가”라고 명령하자 그는 돌아갔지만,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제주 강정에서 군인들이 총을 들고 마을을 활보하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군산 공군기지 근처의 마을 길로 무기를 장착한 군사 차량이 이동하는 사진을 본 적 있었다. 

소성리로 총을 든 군인이 내려올 수도 있겠다는 불안이, 진밭에 약초를 캐거나 나물 뜯으러 가서 총을 든 군인과 맞닥뜨릴 수 있다는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군인들이 돌아간 후, 우리도 평화행동을 마무리하고 산길을 내려갔다. 내리막길 언 땅을 실감했다. 작대기에 몸을 의지해 보지만, 여지없이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어야 했다. 

소성리 할머니들의 젊은 날을 품고 있는 진밭은 미군이 점령했다. 젊은 새댁 시절의 추억은 아련해졌다. 군인의 군홧발에 짓뭉개지는 진밭에서 눈물을 훔쳤다.

 

△ 사진 이재각

진밭, 성주골프장, 사드 부지

국방부와 한미공동실무단은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에 있는 롯데 스카이힐 성주골프장을 사드 부지로 확정했다. 국방부와 롯데는 남양주에 있는 군용지(약 20만 제곱미터)와 성주골프장(약 147만 제곱미터)을 맞교환할 것을 합의하고 2017년 2월 28일 계약을 체결함과 동시에 성주골프장은 군사경계 작전이 개시되었다. 

“처음엔 성주뿐 아니라 다른 지역도 사드 배치 부지 물망에 올랐어요. 왜관, 평택, 충북 어디, 여러 군데가 있었는데, 다 똑같았어. 사드 배치 반대하는 대책위 만들어서 싸운 거지. 저항이 일어나니까 할 곳이 없었어. 가장 저항이 활발한 곳이 성주였는데, 아마 국방부가 제3부지라는 소스를 던졌을 거고, 군수를 비롯해서 관 조직들이 받아서 저항세력을 약화했던 게 가장 결정적이었을 거 같아요.” (소성리 상황실 김영재 팀장)

2016년 7월 13일 한미공동실무단은 사드 배치 지역으로 ‘경북 성주’로 공식 건의해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발표했다. 그 당시에 사드 부지의 최적지는 성주 성산포대라고 발표했다가 성주 주민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했다.

그러자 8월에 국방부는 ‘사드, 성주 내 다른 부지 가능성’을 시사했다. 제3부지 를 거론 말라는 성주군민들의 반발에도 당시 성주군수 김항곤은 군민의 뜻을 저버리고 군홧발에 무릎 꿇어 ‘성산포대를 뺀 제3의 장소를 결정해달라’며 사드 대체 용지 검토를 공식적으로 요청한다.

결국, 사드는 국방부의 계획대로 ‘경북 성주’로 배치된 셈이다. 2016년 9월 30일 성산포대의 대체부지는 초전면 소성리에 있는 롯데골프장을 확정하게 이른다. 

성주 주민뿐 아니라 사드 배치를 반대했던 대한민국 국민이 촛불을 들며 가장 많이 외쳤던 구호는 ‘한반도에 사드 배치 최적지는 없다’였다. 

소성리의 롯데골프장이 최적지가 아니라, 사드가 배치될 부지로 확정되어서 최적지가 되었다.

“국방부가 보기엔 최적의 장소가 된 거예요. 마을도 조그맣겠다. 철조망은 헬기로 실어 날라서 깔아버리면 되니까, 2017년 2월이었지, 이미 교환할 것을 상정하고, 철조망, 공사 자재와 공사에 투입될 장병들을 다 준비해서 스탠바이 하고 있었어요. 경찰이 대대적으로 소성리 마을을 지나서 진밭교로 들어왔어요. 진밭교부터 롯데골프장 정문까지 군사보호시설로 허가도 나지 않았는데, 경찰들이 경계근무 서고, 검문을 시작했어요.” (소성리상황실 김영재 팀장)

진밭교는 소성리에서 성주골프장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성주골프장이 사드 부지로 확정되자 경찰이 들어와서 진밭교부터 길을 막았다. 

사드 배치 부지로 확정된 성주골프장은 예로부터 진밭이라 불리던 넓은 농경지였다. 

“옛날 롯데골프장 자리가 진밭이야. 우리 8부녀회 아이들을 돌봐주었던 보육 선생님 오빠가 고랭지 배추 농사를 크게 했어요. 우리는 돈을 주는 대신에 고랭지 배추 심어주러 갔었어. 마늘도 심어주고, 그 당시 탁아소가 없었던 시절에 마을에 탁아소 같은 걸 만든 거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획기적이었고, 보육 선생님은 우리한테 돈 달라고 말 안 했어도, 우리는 8부녀회가 의논해서 그 집에 품앗이로 일을 해준 것도 대단했던 거 같아. 지금 같으면 생각이나 했겠어요.”(순분 씨)

지금은 사람들이 떠나고 농사를 짓지 않아 묵은 땅이다. 나무가 자라고 수풀이 우거져서 산이 되었다. 한 겨울날 잎사귀 하나 없이 앙상한 뼈대만 남은 나무 사이로 옛날 옛적의 소달구지가 지나갔던 아련한 풍경이 느껴진다. 구들장에 불 넣고, 나무 지펴서 밥해 먹던 시절 진밭은 무궁무진한 자원이었다. 

어린 소성리 이장님(66세)이 땔감을 주우러 다녔던 곳이고, 친구들과 목동 놀이하면서 뛰어놀던 놀이터였다. 

김의선 할머니(87세)가 새댁이었을 시절에 산나물을 뜯으러 올랐던 동네 뒷산이었다. 시부모 눈을 피해서 잠시라도 쉴 수 있었고, 비슷한 또래의 새댁들이 도시락 싸 들고 올라가 소풍을 즐겼던 곳이 진밭이다. 여럿이서 수건돌리기를 하면서 마음껏 웃고 떠들었던 소성리 젊은 새댁들의 은밀한 놀이터였다. 

“여기가 골이 깊고, 습기가 많아서 나물이 아주 보드라웠어요. 향도 진하고. 젊었을 때, 김의선 할매 따라 나물 캐러 다니면 고사리랑 취나물 두 종류만 가르쳐줬어요. 우리는 두 가지만 열심히 뜯었어. 그때는 송이 이런 건 몰랐었어. 취나물이랑 고사리가 지천으로 깔린 거야. 커다란 포대자루에 가득 담아서 머리에 이고 내려왔었어요.” (순분 씨)

진밭은 소성리 마을 주민들의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땅이다. 

임길남 할머니(89세)는 진밭이 사드부지로 확정되었을 때, “골프장이 들어온다고 했을 때, 죽어도 막았어야 했는데, 그걸 못 막아서 더 큰 화를 입었다”고 한스러워했다. 경찰이 마을로 들어섰을 때, 지팡이로 경찰의 엉덩이를 찌르면서 소리쳤다. 

“우리 아들, 딸이 낸 세금으로 와 경찰 놈들은 미국 놈들 뒤치다꺼리를 하노?” 

사드가 배치되고 2년이 지난 지금 김의선 할머니는 작년 12월 87세 나이로 세상과 이별하셨고, 임길남 할머니는 치매로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소성리 마을의 할머니, 할아버지, 주민들은 늙어가고, 진밭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미군 숙소에서 평화행동하는데 군인이 총을 들고 나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소성리 주민들도 깜짝 놀랐다. 분노했다. 소성리를 사랑하는 평화지킴이들은 군인이 마을 주민에게 총을 겨누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항의했다. 끝까지 사과를 받아내고 재발 방지의 약속을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총을 들고 민간인 앞에 섰던 건 그날만이 아니었다. 성주 사드기지 앞에서 평화행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도 군인은 총을 가슴에 메고 우리를 가로막았다. 사드기지 철조망 둘레길을 따라 산나물 뜯으러 다닐 때도 총을 멘 군인이 철조망 안팎으로 주민들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군사기지를 보호하기 위해 마을 주민을 감시하고 경계했다. 

소성리 막내 주민은 진밭교를 통과하는 군대 차량을 세웠다. 한국 장병이 미군을 도와 협조해선 안 된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군인이 총을 앞장세워 주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는 용서하지 않겠다는 경고를 한 셈이다. 

소성리에서 바라본 국방부는 주민의 생명을 지키고 안전을 위해 존재한 적이 없었다. 미국의 전략무기 사드를 지키는 것, 소성리 땅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지키는 것이 국방부의 임무가 되어버렸다.

군대를 머리맡에 두고 산다는 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 사드와 미군 그리고 군대를 향한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이유다.

우리는 성주 사드기지에서 국방부를 향해 질문한다.

국방부! 누구를 향해 총을 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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