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의 로렌스”부터 “사마에게”에 이르는 연대기

 

"사마에게" 포스터 이미지
“사마에게” 포스터 이미지

1_ 끝나지 않는 전쟁과 <사마에게>

 

영화 <사마에게>가 개봉했다. 시리아 내전의 최대 격전지 중 한 곳인 알레포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만난 부부가 딸 ‘사마’를 낳고, 참혹한 전쟁 와중에 아이가 자라는 풍경을 담은 다큐 영화다.

영화 속에 담긴 내전의 잔혹함과 그 상황에서도 깊게 배어나는 가족애에 적잖은 반향을 일으키는 중이라 한다. 

하지만 정작 영화 속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고통을 받는 시리아 내전 상황에 대한 국내의 관심과 인식은 초보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내외 영화제에서 최근 몇 년간 시리아 내전을 다룬 작품들은 꾸준히 소개됐고, 극장 개봉이나 넷플릭스 및 VOD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영화도 몇 편은 된다.

그렇지만 시리아 내전은 그 여파로 발생한 500만의 난민 문제를 더해도 그저 남의 일처럼 치부될 뿐이다. 한국에도 저렇게 난민이 몰려들면 어떻게 하냐는, 난민 공포증의 소재로만 치부되는 게 현주소가 아닐까. 시리아 내전은 한국에서 이슬람 혐오나 난민 공포의 대명사로 과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대체해버리고 있다. 

2,200만 인구 중 500만이 지금도 난민으로 중동과 유럽을 떠돌고 있으며, 남은 인구 중 절반 정도만이 주거지가 명확하게 파악된다고 한다. 2020년 현재 국토 대부분은 시리아의 기존 정부가 통제하고 있지만, 여전히 일부 지역엔 반군과 심지어 IS 세력이 횡행하고 있고, 터키와 맞닿은 북부 지대는 터키군의 배후 지원을 받는 친 터키 반군이 장악한 상황이다. 주변국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근본적인 해결을 책임지지 않으려는 열강의 방치로 시리아 내전의 완전 종결은 요원한 상태다.

2011년, 훗날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중동 민주화 바람이 불었다. 튀니지를 시작으로 리비아, 이집트 등으로 번진 민주화 시위는 각국의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면서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시위의 확산에 당황한 아랍의 왕조 국가들은 약간의 민주화 조치라도 취해야 했고,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나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같은 독재자들의 타도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낳았다. 시리아 역시 그런 열풍의 연장 선상에서 투쟁이 시작되었고, 여기에 시리아 국내의 다양한 사정들이 결부되었다.

하지만 10년 가까이 지난 현재, 초창기 민주화 열망의 현주소는 참담한 전쟁의 상흔으로만 남은 듯하다. <사마에게>가 보여주듯, 서방의 뜨뜻미지근한 지원 아래 무력진압으로 일관하는 기존 독재 정권에 대한 무장투쟁이 길어지고, 그 와중에 온건하고 민주적인 입장은 힘이 약화한다. 그 자리를 메운 건 잘 조직되고 물불 가리지 않는 극단주의 세력이었다. 반군의 주도권은 IS와 알카에다를 양대 축으로 하고, 군자금 스폰서에 따라 친 터키계, 친 사우디계 식으로 외세의 도구로 이용되는 지경에 이른다. 

미래와 진보에 대한 희망을 대신한 건 오직 자기 세력의 생존과 이해관계였다. 민주화 운동이 배반당한 자리, 격전의 한복판인 알레포에서 민주화 투쟁의 동지로 만난 남녀에게 딸 ‘사마’가 태어난 것이다.

이 비극성은 영화를 보는 순간, 시청각적으로 극대화된다. 그 압도적인 참상과, 그 와중에도 소중한 자녀를 지키려는 가족의 분투가 이어진다. 만든 모양새가 그렇게 빼어나지 않고, 열악한 환경으로 인한 촬영의 한계가 상당 부분 존재하지만, 그런 단점을 뛰어넘는 압도적 사실에서 비롯된 울림이 있다. 

이런 강점은 비단 <사마에게> 뿐 아니라 시리아 내전을 목숨 걸고 근접해서 담아낸 다수의 다큐 영화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면모이기도 하다. 그런 특징 때문에 다양한 각도와 시각으로 시리아 내전을 조망하는 작품들이 계속 이어져 나오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으로 ‘선정주의’ 화 되어가지 않느냐는 비판 또한 제기된다. 국내 모 영화제에서 인상 깊게 관람한 시리아 관련 영화의 감독이 ‘서구에서 선호하는 시리아 상황 관련 코드가 있다’라고 자조하듯 언급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도덕적인 측은지심은 보편적 인류애를 기반으로 시리아 문제에 관심을 촉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지만, 시리아 내전의 비극이 어떤 원인에서 기인했고 왜 21세기에 이런 참혹한 전쟁이 이어져야 하는지, 그리고 이 비극을 종식하기 위해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에 대한 객관적인 고민 또한 절실하다. 우리는 시리아 내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2_ 현대 시리아의 기원, <아라비아의 로렌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포스터 이미지
“아라비아의 로렌스” 포스터 이미지

시리아 내전 과정에서 인류의 문화유산이 파괴되고 있다는 비보가 들려오곤 한다. 시리아는 바로 인류 4대 문명의 발상지인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의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나일강의 이집트 문명 간을 연결하는, 인류 문명의 보고라고 해도 마땅한 지역이다. 그만큼 사람이 살기 좋은 땅이었고, 그런 지역을 노린 수많은 세력의 각축이 고대부터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곳이다. 

수천 년 역사를 아우를 순 없지만, 근현대 오스만튀르크 제국 아래 통합되어 있던 중동의 정세는 그 제국의 쇠락과 함께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의 간섭 아래 노출된다.

연결된 땅인 이집트는 이미 나폴레옹 시절부터 유럽의 침략에 시달렸고, 오스만 제국이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동맹으로 참전하면서 영국과 프랑스는 제국 치하의 중동을 공략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너무나 유명한 고전 대작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적대국 독일의 동맹인 오스만튀르크의 지배하에 있던 중동을 장악하기 위해 독립을 꿈꾸던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예로 알려진) 하심 가문의 영주들에게 반란을 부추긴다. ‘후세인-맥마흔 서한 McMahon – Hussein Correspondence’으로 알려진, 투르크 제국을 몰아낸 땅에 아랍 통일국가를 인정하겠다는 협상을 한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는 세계대전이 끝나면 아랍을 양분하자는 ‘사이크스-피코 협정 Sykes – Picot Agreement’을 비밀리에 체결한 상태였다. 어디까지나 아랍의 독립투쟁은 연합국의 대 투르크 전선을 위한 총알받이로만 간주한 셈이다.

거기에 더해 영국은 현재까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뿌리라 할, 유대인의 독립국을 보증하는 ‘밸푸어 선언’까지 이중으로 진행해버린다. 사기 계약도 이런 사기 계약이 없다.

하심 가문의 영주 후사인은 연합국의 약속을 믿고 대대적인 반란을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아랍 세력과 협조해 게릴라 전쟁을 조직한 이가 바로 ‘아라비아의 로렌스’다. 영화는 로렌스 대위의 활약과 그 과정에서 아랍 부족과의 관계, 그리고 전후 연합국의 배신에 환멸을 느낀 주인공이 은둔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담아낸 작품이다.

영화 속 배반의 역사를 거쳐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시리아와 레바논은 프랑스가, 요르단과 이라크는 영국의 보호령이 된다.(이집트는 이미 영국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후사인의 하심 가문은 요르단과 이라크의 국왕이 되지만 이라크에선 군부 쿠데타로 몰락하고, 요르단의 군주로 유지되고 있다. 

한편, 원래는 하심 가문이 다스리던 헤자즈 지방(성지 메카와 메디나를 포괄하는)은 신흥세력인 이븐 사우드의 가문이 일어나 현재의 사우디아라비아를 건국하게 된다. 그리고 유사한 지방 영주들이 현재의 카타르,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 등의 왕국을 형성한다. 그렇게 중동의 현재 지도는 이 시기를 거쳐 형성되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을 거쳐 식민지들이 독립하기 시작하지만, 시리아 아래 지방의 팔레스타인은 ‘밸푸어 선언’으로 인하여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 다시 말해 같은 ‘성서의 백성’들이 원수지간이 되는 참극이 벌어진다. 거듭된 전쟁은 대규모의 난민과 정세 불안을 낳는다. 이집트와 시리아는 아랍 통일을 꾀하며 통일 아랍 공화국을 건설하지만, 곧 다시 분리되어 거듭된 전쟁과 패배는 각국 사회에 독재와 군사주의를 불러온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인접한 중동 여러 나라로 흩어져 사회문제가 된다. 중동전쟁에서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을 제외하면 이스라엘의 주적이라 할 이집트와 시리아 양국의 역사는, 1980년대를 기점으로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화해하고 친서방 군부독재로 기울어지면서 차별화된다.

시리아는 아랍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은 바트당의 바사드 정권이 독재체제를 유지한다. 바사드 정권은 무슬림 소수세력인 시아파와 유사한 알라위파가 주류였고, 다수 수니파에 대항하기 위해 다양한 소수교파와 동방정교회 기독교 세력들을 한편으로 삼는다. 여기에 ‘시리아’라는 통일국가의 역사 개념이 미약한 가운데 고대부터 이어져 온 지역주의의 결과로, 수도인 다마스쿠스와 그에 버금가는 대도시 알레포를 위시한 지역 갈등 또한 심각한 상태였다.

바사드 정권은 지역주의에 대해 군대를 투입해 1980년 홈스 학살 같은 무력진압으로 철권통치를 이어나간다. 그리고 2011년 중동을 뒤흔든 ‘아랍의 봄’은 이런 시리아의 내부 사정과 결합하여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치닫기 시작한 것이다.


3_ 영화로 살펴보는 시리아 내전의 풍경들1

홈스는 시리아 굴지의 유서 깊은 대도시 중 하나다. 앞서 언급했던 현 대통령의 부친 바사드 집권 시절 정치적 암살에 대한 보복으로 군대를 투입한 홈스 학살이 자행된 곳이고, 시리아 민주화 투쟁에서도 초기부터 반정부 투쟁의 세가 강했던 곳이다. 

<홈스는 불타고 있다>는 시리아 민주화 운동 초반인 2011년부터 3년간 시리아 축구 국가대표 골키퍼였던 주인공이 민주화 시위에 결합해 싸우는 풍경을 미디어 활동가 친구가 기록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아랍의 봄’의 기운을 타고 영화 초반은 비록 힘들고 괴롭지만, 변화에 대한 열망에 불타는 기운이 넘실댄다. 

하지만 타국과 달리 서방세계의 개입이 자유롭지 않은 시리아 내부 상황에서 독재 정부는 무력진압 기조로 버티며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군의 반격 앞에 비교적 평화적으로 진행되던 민주화 시위는 반군의 무력투쟁으로 전환되고, 그 과정에서 각자 다른 꿍꿍이속을 가진 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여러 계열의 군사집단과 ‘성전(지하드)’을 앞세운 극단주의 세력들이 득세한다. 

내전은 교착되고 반정부 투쟁에서 민주화를 중심에 놓던 이들은 힘을 잃어간다. 희망은 좌절되고 누가 덜 나쁜지 차악을 찾는 지경에 이른다. 정부군의 무자비한 공격 속에 생존이 목표가 되어가는 내전은 끝날 줄 모른다.

 

영화 “화이트 헬멧” 포스터 이미지
“화이트 헬멧” 포스터 이미지

넷플릭스가 제작한 단편 다큐 <화이트 헬멧>은 시리아 내전 당시 반군 지역에서 활동하며 정부군의 공습과 폭격 후 민간인을 구조하는 조직, ‘화이트 헬멧’의 활약상을 다룬 작품이다. 

이 조직의 명칭은 구조대원들이 착용한 헬멧 색깔에서 기인한다. 시리아 내전의 한복판에서 연속되는 폭격 와중에 인명 구조를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드는 화이트 헬멧 구조대원들의 활약과 그 구조 과정에서 노출되는 민간인 피해의 참상이 어우러진다. 

하지만 화이트 헬멧의 창시자가 영국군 퇴역 장교이며, 서구의 자금 지원으로 유지되고, 반군과 사상을 같이 하다 보니 지역별로 활동의 편차가 심하다는 주장이 바사드 정권은 물론 독립적 언론기구에 의해 제기된다.

현재 시리아 반군이 겪는 문제점, ‘우산 조직’의 특성들이 거울처럼 고스란히 화이트 헬멧에도 적용되는 씁쓸한 한계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현재 화이트 헬멧은 시리아 반군의 패퇴와 함께 친터키 반군이 통제하는 북부 일부 지역으로만 활동 영역이 축소된 상태이다.

 

영화 “유령의 도시” 포스터 이미지
“유령의 도시” 포스터 이미지

<유령의 도시>는 시리아의 또 다른 도시 라카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라카는 시리아 민주화 운동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지만, 내전 3년 차에 새롭게 대두된 강력한 군사조직이 지배권을 차지한다. 그 조직은 바로 IS였다. 그리고 민주화의 본산으로 불리던 라카는 이제 중세적 극단주의 신정 통치의 본거지, IS의 수도로 변모한다. 

IS의 활동을 감시하는 시민기자들로 구성된 인권단체 ‘라카는 조용히 학살당하고 있다’의 지하 언론 활동을 담은 이 작품은 이번에 소개되는 시리아 내전 관련 작품 중 가장 수위가 높다. 미국 영화 관람등급에서 ‘청불’에 해당되는 R 등급을 받았다.

인류의 공적인 IS의 본산이 되어버린 주인공들의 고향 라카에서 벌어지는 시대착오적인 잔혹하고 야만적 IS의 만행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IS는 이들을 추적하고 잔인하게 보복한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촬영했던 만행을 고스란히 ‘라카는 조용히 학살당하고 있다’의 멤버들이 겪는다. 이들의 활동은 세계적으로 주목받지만, 그만큼 IS 세력의 테러에 노출되고,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희생은 늘어만 간다. 살아남은 이들 또한 생명의 위협과 활동의 제약 속에서 하나둘 라카를 떠나거나 그 속에서 고립되어간다.

다행히도 라카는 2017년 IS의 손에서 해방되었다. 하지만 민주화 운동 초반까지만 해도 시리아 내에서 가장 세속적이고 다양한 종파들이 활동하던 이 고대 도시는 영화 제목처럼 유령의 도시가 되어버렸고, 요충지인 이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바사드 정권과 반군이 갈등을 일으켜 혼란은 상당 기간 계속되었다고 한다.

 

<시리아의 비가: 들리지 않는 노래>는 심지어 국내 극장에서도 개봉된 작품이다. 내전 과정에서 겪는 참상과 함께 아이들의 시선과 활동으로 전쟁의 비참함을 전하고 세계의 관심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번에는 시리아 내전 참상의 상징이라 할 대도시 알레포로 돌아간다. <알레포의 마지막 사람들>(국내 영화제에서는 “라스트맨 인 알레포”로 공개되었다)은 앞서 다뤘던 ‘화이트 헬멧’의 활동을 중심으로 바사드 정부군에 5년간 포위되었던 도시의 긴장과 현실을 담았다.

 

"라스트맨 인 알레포" 포스터 이미지
“라스트맨 인 알레포” 포스터 이미지

4_ 영화로 살펴보는 시리아 내전의 풍경들2

앞서 설명한 작품들은 국내에서 영화제와 넷플릭스 등을 통해 소개되었거나, 개봉을 거쳐 어느 정도 노력하면 관람이 가능하다. 이번에는 난이도가 높지만 다양한 각도와 소재로 시리아 내전을 조망하는 수작들을 알리려 한다.

<은빛 수면, 시리아의 자화상>은 앞에서 언급한 <홈스는 불타고 있다>의 배경, 홈스에서 1001명의 주민이 보낸 영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프랑스로 망명한 감독이 편집과 사운드 효과를 가미해 만든 속보 형식의 작품이다.

1001명이 보낸 영상은 아랍의 이국적 느낌의 대명사인 ‘천일야화’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 속은 극단적으로 판이하다. 목숨을 잃거나 장애를 갖게 된 사람과 동물들, 그 현장을 촬영하던 이들 중 상당수 또한 같은 처지가 되어 고인이 되거나 탈출해 난민이 되었으리라 짐작케 한다. 작품의 이미지는 잔인하기 그지없다. 비교적 초반에 소개된 작품이고 동일하게 홈스의 살풍경을 다루고 있지만, 국내에는 영화제 외에 추가 상영은 이뤄지지 않았다.

 

“워쇼” 포스터 이미지

<워쇼>는 <사마에게>와 근연성이 많은 작품이다. 라디오 진행자인 주인공과 친구들은 시리아 민주화 시위 초반부터 거리 시위에 합류한다. 주로 예술가와 미디어 활동가 그룹에 속한 이들은 투쟁에 참여하면서 그들의 활동을 기록하고 문화적 실천도 병행한다. 혈기방장한 젊은이들이라 영화 초반은 고통 속에서도 마치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듯, 자유분방한 파티 같은 이미지도 곧잘 보인다. 

하지만 이미 모두가 알고 있듯이 점차 시리아 민주주의 혁명이 희망에서 좌절로 바뀌고, IS 등 극우세력의 준동을 겪어가며 출구가 없는 내전으로 치닫는 과정을 겪으며 하나둘 희생되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함께 어울리던 동료들의 죽음과 이탈을 전하는 후반부 장에서 관객들은 지나가는 뉴스 기사로만 접하던 내전의 참상을 마치 거울로 직면하듯 각인하게 된다.

 

<시멘트의 맛>은 독특한 관점으로 시리아 내전을 다룬 작품으로 주목할 만하다. 유럽이 시리아 난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지만, 정작 난민을 백만 단위로 감당하고 있는 나라들은 인접국인 터키와 레바논, 이집트 등이다. 가장 난민을 많이 수용했다는 독일조차 7만에 불과하며, 가장 부유한 아랍 형제국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약간의 금전 지원 외에 난민을 한 명도 받지 않는 정책을 상당 기간 고수했다. 인구가 500여 남짓한 소국 레바논에는 100만이 넘는 시리아 난민이 몰려들었고, 전체 인구의 1/5이 넘는 이들 난민은 생존을 위해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한다. 

"시멘트의 맛" 포스터 이미지
“시멘트의 맛” 포스터 이미지

이 작품은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의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시리아 노동자들의 풍경을 관찰로 형상화한다. 전화(戰火)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시리아의 고향을 떠나 지중해에 인접한 휴양지의 마천루를 짓는 시리아 난민들의 기이한 일상은 그 자체로 형언하기 힘든 인상을 남긴다. 이들은 자유롭게 시내에 출입할 기회도 없다. 난민이기 때문에 야간엔 통행이 제한되고, 마치 자신이 짓고 있는 빌딩의 일부인 양 현장 숙소에서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에 매달릴 뿐이다.

그런 와중에 외부의 소식을 접하는 매체에선 끊임없이 고향 시리아의 파괴와 참상이 반복된다. 하지만 고달픈 노동 현장에서 어쨌든 삶을 이어나가려는 노동자들의 꿈과 희망이 내레이션으로 들릴 때 느껴지는 울림은 의지적으로 들려온다.

시리아 내전 중반까지 바사드 정부의 다마스쿠스, 반정부 세력의 알레포 구도가 오랜 기간 계속되었다. 어깨를 겨루는 시리아의 두 대도시의 대립은 내전을 상징하는 조건이었고, 정부군은 알레포를 공략하기 위해 오랜 기간 포위를 계속한다.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통 폭탄을 비롯한 공습과 폭격은, 서방세계의 미지근함에 대비되는 러시아 공군의 강력한 지원 아래 쉴 틈 없이 죽음을 뿌려댄다. 

 

"알레포 함락" 영화 스틸 이미지
“알레포 함락” 영화 스틸 이미지

<알레포 함락>은 그 알레포의 한복판에 제 발로 찾아 들어간, 노르웨이에 난민으로 정착한 알레포 출신 감독이 겪는 이야기다.

감독은 고향으로 돌아와 자유 시리아군(FSA: Free Syrian Army)을 취재하기 시작한다. 이미 감독이 결합한 시점에서 바사드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희망은 희미해져 가고, 알레포 등의 근거지를 사수하기 위한 절망적 투쟁이 이어진다. 혼란스럽고 단결되지 못하는 반군을 상대로, 더욱 격렬해지는 정부군의 공세 아래 고통 받는 알레포 주민들의 현실이 카메라에 담긴다.

머나먼 북유럽에서 고국의 내전 상황을 간접적으로만 체험하던 감독은 알레포에서 생생한 현실을 접하지만, 그 현실은 그가 감내하기엔 너무나 당혹스럽고 괴로운 일의 연속이다. 친밀해져 가던 반군은 하나둘 전사하고, 전황은 악화 일로를 걷는다. 그 와중에도 반정부 세력은 어수선하고, 분열을 극복하지 못한다. 끝내 함락 직전의 알레포에서 탈출하며 독백하는 감독의 내레이션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난다.

 

<알레포에서의 하루>는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 중 가장 보기 힘든 영화일 것이다. 역시 알레포를 배경으로 한 옴니버스 영상들의 연속인 이 단편 다큐 영화는 함락 전의 도시와 그곳의 삶을 다룬다.

주민들은 거듭되는 폭격과 포격에 죽어 나가면서도 인간적인 삶을 유지하려 애쓴다. 영화 전반부에서 인터넷상으로 유명한 알레포의 캣대디가 주인 잃은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거나, 공습 후 이웃을 구하기 위해 애쓰고, 폐허가 된 건물 벽을 꾸미는 등 어떻게든 일상을 이어나가려는 풍경은 작은 희망을 전한다.

하지만 이 작품의 잔인함은 그런 소박한 열망을 신의 장난처럼 서서히 뭉개버리는 현실 묘사에 있다. 취재와 구조 활동 주변으로 포탄은 점점 다가온다. 급기야 촬영하던 취재진과 촬영되던 주민들이 희생당하는 급박한 풍경이 후반으로 갈수록 펑펑 터져 나온다. 지옥도 같은 현실, 그러함에도 삶을 살아내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오랜 촬영을 거쳤을 텐데도 실제 1일을 1/60로 축약해 25분여 동안 ‘하루’를 표현하는 압축의 경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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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포에서의 하루” 포스터 이미지

5_ 더 많이, 더 자주 만나야 할 시리아

시리아 내전은 민주화의 좌절을 넘어 IS의 창궐을 낳았고, 강대국과 주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끝나지 않는 전쟁으로 흘러가고 있다.

<사마에게>는 국내에서 아마 가장 잘 알려진 시리아 내전 관련 영화가 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사마에게>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여기에 소개된 12편의 시리아 관련 영화 외에도 훨씬 더 많은 작품이 다양한 경로로 국내에 소개되었고, 이후로도 한동안 계속 등장할 것이다.

우리에게 중동 문제는 그저 석유가격 등락으로만 인식되고 있지 않은가 가슴에 손을 얹어야 할 때다. 안되고 불쌍하지만 남의 동네 일이라는 전형적인 반응에 대해, 유럽 전체의 보수화(심지어 극우화)로 확산하는 반이민, 난민 수용 반대 정서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살펴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유럽 등 서구 세계에서 벌어지는 ‘외로운 늑대’들의 테러로 인한 각종 사건·사고, 사회불안은 외부인에 대한 공포와 혐오의 악순환으로 귀결된다. 그 사회는 더 폐쇄화되고, 기득권의 구미대로 놀아나게 마련이다. 

시리아 문제에 대해 어쩌면 국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도 시리아에서 외세의 이해관계 혹은 극단주의 세력의 만행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새로운 증오로 무장하여 괴로움을 방치한 세력을 공격하는, ‘가해자가 된 피해자’로 거듭날 지 모르는 끔찍한 진실만은 유념해야 한다.

 

작품 정보

 

사마에게 For Sama

영국, 다큐멘터리, 2019

2020.01.23 개봉, 15세관람가, 95분

감독 와드 알-카팁, 에드워드 왓츠

20회 뉴포트비치영화제(2019) 다큐멘터리상

26회 핫독스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019) 심사위원특별상-국제경쟁

35회 로스앤젤레스 아시안퍼시픽 영화제(2019) 심사위원대상-국제장편다큐멘터리경쟁

72회 칸영화제(2019) 초청(특별상영)

37회 뮌헨국제영화제(2019) The BAYERN 2 and SZ 관객상

68회 멜버른국제영화제(2019) 초청(다큐멘터리)

11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019) 초청(글로벌 비전)

32회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019) 관객상

32회 유럽영화상(2019) 유러피안 다큐멘터리상

91회 미국비평가협회상(2019) 표현의 자유상

92회 아카데미시상식(2020) 후보(장편다큐멘터리상)

 

아라비아의 로렌스 Lawrence of Arabia

영국, 어드벤처ㆍ전쟁, 1962

1998.10.24 개봉, 12세관람가, 216분

감독 데이비드 린, 주연 피터 오툴

 

“홈스는 불타고 있다” 포스터 이미지
“홈스는 불타고 있다” 포스터 이미지

홈스는 불타고 있다 The Return to Homs

시리아ㆍ독일, 다큐멘터리, 2013, 87분

감독 탈랄 데르키

26회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013) 후보(장편경쟁)

57회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2014) 금문상-장편다큐멘터리 심사위원특별상

11회 EBS 국제다큐영화제(2014) 대상

30회 선댄스영화제(2014) 심사위원대상-월드시네마 다큐멘터리

 

 

 

화이트 헬멧: 시리아 민방위대 The White Helmets

영국, 다큐멘터리, 2016, 15세관람가, 40분

감독 올란도 폰 아인지델

89회 아카데미시상식(2017) 단편다큐멘터리상

 

유령의 도시 City of Ghosts

미국, 다큐멘터리ㆍ전쟁, 2016, 92분

감독 매튜 하이네만

33회 선댄스영화제(2017) 후보(미국 다큐멘터리경쟁)

18회 전주국제영화제(2017) 초청(프론트라인)

24회 핫독스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017) 초청(스페셜 프레젠테이션)

14회 서울환경영화제(2017) 초청(개막작)

35회 뮌헨국제영화제(2017) 프리츠 게를리히상

70회 미국감독조합상(2018) 감독상-다큐멘터리

 

시리아의 비가 : 들리지 않는 노래 Cries from Syria

미국ㆍ체코ㆍ시리아, 다큐멘터리, 2017

2017.11.16 개봉, 15세관람가, 111분

감독 에브게니 아피네예브스키

33회 선댄스영화제(2017) 초청(다큐멘터리 프리미어)

 

알레포의 마지막 사람들 Last Men in Aleppo, De sidste mænd i Aleppo

덴마크ㆍ시리아, 다큐멘터리ㆍ전쟁, 2017, 101분

감독 페라스 파이야드

33회 선댄스영화제(2017) 심사위원대상-월드시네마 다큐멘터리

31회 워싱턴DC국제영화제(2017) 관객상-다큐멘터리

14회 EBS 국제다큐영화제(2017) 후보(페스티벌 초이스)

11회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드(2017) 최우수다큐멘터리상

90회 아카데미시상식(2018) 후보(장편다큐멘터리상)

6회 디아스포라영화제(2018) 초청(디아스포라 월드와이드)

36회 뮌헨국제영화제(2018) 독일영화평화상-특별상

 

은빛 수면, 시리아의 자화상 Silvered Water, Syria Self-Portrait, Ma'a al-Fidda

시리아ㆍ프랑스, 전쟁, 2014, 청소년관람불가, 92분

감독 오사마 모하메드, 위암 베디르산

67회 칸영화제(2014) 초청(특별상영)

39회 토론토국제영화제(2014) 초청(다큐멘터리)

19회 부산국제영화제(2014) 초청(와이드 앵글-다큐멘터리 쇼케이스)

58회 BFI 런던영화제(2014) 그리어슨상(다큐멘터리상)

36회 카이로국제영화제(2014) 초청(스페셜 프레젠테이션)

36회 낭트 3대륙 영화제(2014) 초청(스페셜 스크리닝)

14회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015) 국제경쟁 우수상

 

워쇼 The War Show

덴마크ㆍ독일ㆍ시리아ㆍ터키, 다큐멘터리, 2016, 100분

감독 안드레아스 달스가르드, 오바이다 쉬툰

73회 베니스국제영화제(2016) 초청(베니스 데이즈)

41회 토론토국제영화제(2016) 초청(다큐멘터리)

40회 예테보리국제영화제(2017) 북유럽다큐멘터리 드래곤상

5회 디아스포라영화제(2017) 초청(디아스포라 월드와이드)

9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017) 심사위원특별상-국제경쟁

 

시멘트의 맛 Taste of Cement

레바논ㆍ독일ㆍ시리아ㆍ카타르ㆍ아랍에미리트, 다큐멘터리, 2017, 85분

감독 지아드 칼소움

비종 뒤 릴 국제영화제(2017) 최우수 작품상

9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017) 후보(국제경쟁)

30회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017)

후보(카메라 인 포커스)/초청(베스트 오브 페스트)

14회 두바이국제영화제(2017) 아랍 장편-논픽션 작품상

6회 디아스포라영화제(2018) 초청(디아스포라 월드와이드)

 

알레포 함락 Aleppo's Fall

노르웨이ㆍ덴마크ㆍ프랑스, 다큐멘터리, 2017, 85분

감독 니잠 나자르

30회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017) 초청(파노라마)

10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018) 심사위원특별언급-국제경쟁

 

알레포에서의 하루 One Day in Aleppo

시리아, 다큐멘터리, 2017, 24분

감독 알리 알리브라힘

30회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017) 후보(쉬프팅 퍼스펙티브/단편경쟁)

10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018) 초청(다큐패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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