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 한국토지주택공사

나는 아파트에 산다. 현대 사회에서 허락된 거주 공간 중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곳도 아파트다. 아파트에 사는 건 왠지 벌을 받는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은희경은 아파트 단지에서는 “공기의 냄새마저도 도식적”이라고 했던가. 그런데도 나는 아파트에 산다. 다른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이. 왜 나는 아파트에 살아야 할까? 언제부터 아파트에 사는 것이 당연하게 된 것일까? 

사회의 산업화는 인간의 개조와 집의 개조를 동시에 요구했다. 기존의 삶의 양식을 박탈당하고 새로운 자원으로 거듭나야 했던 이들을 수용할 ‘산업화된 집’이 필요했던 것이다. 1970년대의 개발 광풍 속에서 태어난 한국의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공간의 의미를 넘어 축적과 투기의 대상이 되면서 온 국토를 뒤덮었고, 이는 한국식 발전 모델을 간명하게 보여주었다. 어쩌면 아파트는 한국이라는 거대한 아파트의 모델하우스였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해진 이 풍경을 낯설게 보는 데는 이방인의 시선이 주효했다. 프랑스의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기이한 한국의 풍경 앞에서 어떻게 이런 ‘아파트 공화국’이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의문을 품었다. 아파트의 이미지가 빈민 대상의 실패한 공공주택 실험으로 확고하게 자리한 서양인의 눈에 중산층이 거주하는 선망의 대상이자 상품으로써의 한국 아파트는 매우 독특한 것이었다. 그녀가 보여준 한강변의 축적지도를 보고 ‘군사기지 규모가 대단’하다고 했던 동료의 말은 결과로서의 경관뿐 아니라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던 아파트 건설 과정에 대해서도 들어맞는 것이었다. 그녀가 지적하듯 국가-재벌-중산층의 이익연합에 의해 만들어진 아파트 대량생산체제는 성장 이데올로기에 대한 완벽한 통합을 의미했다. 추한 시멘트 건물을 얻기 위해 그렇게 우리는 아름다운 모래톱을 헐값에 넘겼다. 

돈이 되는 시멘트 덩어리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며 중산층의 지위에 오른 이들은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었지만, ‘조국 근대화’의 사명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과정은 자발적 선택이었다는 최면이나 눈앞의 이익으로 무마될 수 없는 상흔을 남긴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하인’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발레리 줄레조가 인용하고 있듯, 1990년대에 한국의 아파트 단지를 관찰한 데니스 렛은 말 그대로 온갖 일을 다 하는 경비원을 “봉사를 의무로 저임금에 고용된 하인들”로 지칭했다. 경비노동자의 삶은 여전하다. 2019년에 발간된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경비노동자들은 경비업법으로 규정된 방범 업무 외에 분리수거, 청소, 택배, 주차관리 등의 비(非)경비 업무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24시간 교대제로 저임금과 고용불안, 열악한 노동조건 등에 시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에서 소외된 존재는 경비노동만이 아닐 것이다. 발레리 줄레조는 경비시스템을 마을공동체가 해체되면서 등장한 합리화된 감시체계로 보고, 사람들이 ‘하인을 부리는 권리’를 비롯한 통제와 감시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현상을 정치적 민주화와는 대조되는 일상의 비민주화로 해석했다. 소외는 또 다른 소외를 부르는 법이다. 태생적, 본질적으로 소외의 공간인 아파트는 소외된 존재들이 자신의 소외를 망각할 수 있게 돕는 각종 장치를 필요로 한다.

<대한민국 쓰레기 시멘트의 비밀>은 사회적 소외의 공간으로서 아파트에 대한 관점을 환경적 소외로까지 확대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책에 따르면 자연적 재료로만 만들어도 해로운 시멘트를 한국에서는 폐기물을 가지고 만들 수 있도록 합법화되어 있다. 나아가 아파트를 포함한 건물로서의 ‘집’은 원초적으로 외부 세계로부터의 분리를 추구한다. 이제 당연함은 두려움의 다른 이름이 된다. 우리는 자신을 감금하고 유폐하는, 스스로 내린 형벌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개념미술가 제니 홀저의 메시지처럼, 지금은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해달라”고 외쳐야 할 때 인지도 모른다.

 

글 _ 김혜나 대구대학교 연구중점교수

 


※ 이 글은 2019년 12월 16일 경북노동인권센터 주최 <세계인권선언 71주년 기념토론회: 소외된 노동을 찾아서>에서의 발표 내용을 바탕으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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