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일 저녁, 경산역 앞

일명 ‘노예 계약’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차를 거부당했던 민주노총 택시지부 경산교통분회 조합원들이 ‘조건 없는 업무 복귀’라는 노사 합의에 따라 택시 운행을 재개한 28일.

가는 빗방울이 날리는 역전 승강장에 승객을 기다리는 택시가 줄지어 서 있다. 택시 노동자 너덧 명은 흰색, 검은색 마스크를 꼈다. 이날 업무에 복귀한 택시노동자가 말했다.

“우리가 일한 만큼 권리 찾으려는 거예요. 사업주는 기사를 머슴같이 알아요. 파업부터 시작해서 두 달 반 쉬었어요. 뉴스 봤다는 승객이 ‘노예계약서 쓰라는 데서 우예 일합니까’ 카길래, ‘묵고 살라 카면 우짭니까’ 했어요.”

동료의 이야기를 듣던 택시 노동자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더니 총총히 사라졌다. 체불임금 포기 동의서에 서명하지 않은 대림택시 중방점 소속 비조합원 15명은 2월 1일 자로 업무에 복귀한다고 했다.

설 연휴가 끝난 다음 날이었지만, 이날 만난 택시 노동자 대부분은 명절 휴가비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설 명절 보너스가 안 나왔어요. 동의서 쓰고 일했던 사람들은 받고요.”

명절 휴가비는 설과 추석, 일 년에 두 번 17만 원씩 지급되었다. 동의서 서명을 거부하고 업무에 복귀한 택시 노동자에게 사업주들은 명절 휴가비를 주지 않거나 절반만 지급했다고 한다. ‘사납금이 한 개라도 밀린’ 사람도 ‘보너스’를 못 받았다고 했다. 민주노총 조합원이라고 밝힌 택시 노동자가 말했다.

“회사랑 ‘윈-윈’하려고 했지만 안 돼서 투쟁했어요. 투쟁하면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지만, 아쉬움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도 남아요.”

 

이튿날 29일, 농성 시작 227일 만에 경산시청 앞 택시 노동자 천막농성이 마무리됐다. 

지난해 5월 3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대림택시분회 출범과 5월 8일 경산시청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사측의 ‘노조 탄압’은 본격화되었다. 이에 노동조합은 6월 17일 택시노동자 노동권 보장, ‘위법 운영’ 택시 업체에 대한 관리·감독과 처벌을 촉구하는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회사는 ‘한 명도 빼지 않고’ 조합원에게 징계 해고를 통보했지만, 경산지역 택시노동자들의 노조 가입은 계속되었다. 경산교통에도 민주노총 산하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투쟁에 동참했다. 올해 1월 17일, 18일 이틀간에 걸쳐 대구지방고용노동청은 대림택시 사업장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설 명절 연휴를 전후하여 ‘단 한 명의 낙오자 없이’ 조합원들은 현장으로 복귀했다.

7개월 동안 경산 택시 노동자 투쟁의 거점이었던 천막농성장에 빼곡히 자리 잡은 물품들은 이날 오전, 개소식을 앞둔 대림택시분회 노동조합 사무실로 옮겨졌다. 전국 곳곳에서 보내온 300Kg의 쌀과 수백 장의 연탄은 또 다른 ‘투쟁 현장’으로 보내진다고 했다.

 

△ 29일 경산시청 앞에서 열린 택시노동자 투쟁승리보고대회에서 발언 중인 이상국 대림택시분회장.

경산시청 앞 농성 천막이 철거된 자리에 빨간 노조 조끼를 입은 택시 노동자와 전국 각지에서 온 참가자들이 은색 스티로폼을 깔고 앉았다. 29일 오후 3시, 경산 택시노동자 투쟁을 지원했던 이삼형 택시지부 정책위원장의 사회로 ‘승리보고대회’가 시작되었다. 

이상국 대림택시분회장은 “소수노조지만 개별교섭권을 쟁취하고, 노동조합 사무실도 생겼다. 앞으로 시작될 교섭이 전국 곳곳에서 투쟁 중인 택시 현장의 표본이 될 수 있도록 버티고 싸우겠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연대 보내주신 마음 감사드린다”라고 인사했다.

김석곤 경산교통분회장은 “즐겁게 투쟁한 결과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택시지부와 많은 분들의 연대가 힘이 되었다”라며 “완전월급제 쟁취와 노조 사무실 확보 등 과제가 남아 있다. 현장에 가서도 열심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경북본부 김태영 본부장은 “노동자의 노동권과 인권 보장을 위해 노동조합의 깃발을 꽂자마자, 자기 주머니만 생각하는 사용자의 노조 탄압이 시작된다. 그 탄압은 앞으로 더 강해질 수 있다. 오늘은 중간보고의 자리”라며, “민주노조가 뿌리내릴 때까지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삼형 정책위원장은 “경산이라는 불모지, 노예 같은 노동조건 속에서 꿋꿋이 버텨낸 동지들이 자랑스럽다. 택시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노동조건을 함께 만들자”라고 말했다. 이어, 시청 농성이 무사히 마무리 되는 데 협조한 경산시청 공무원노조에 감사를 표했다.

 

△ 29일 대림택시분회 노동조합 사무실 현판식. 사진 왼쪽부터 이상국 대림택시분회장, 김태영 민주노총경북본부장, 이남진 공공운수노조대경본부장, 김재주 택시지부장.
△ 노동조합 사무실 개소식을 마치고 대림택시 평산점 마당에서 참가자들이 음식을 나누고 있다.

29일 오후 4시, 대림택시 평산점 건물 입구에 민주노총 노동조합 현판이 걸렸다. 현판 아래 차려진 고사상에는 돼지머리 대신 돼지저금통이 놓였다. 전남 곡성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우리밥 연대 김주휘 활동가는 100인분 식사 준비로 분주했다.

현수막을 겹겹이 둘러 바람막이하던 시청 앞 천막농성장을 철거하고 회사 건물에 노동조합 사무실이 문을 연 날, 회사 마당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여느 때보다 따뜻한 식사를 나누었다.

“정말 감회롭습니다. 그동안 힘들었지만, 감개무량합니다…”

개소식을 맞이한 소회를 전하던 대림택시분회 백영하 조합원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사 측의 배차 중단으로 지난해 10월부터 일을 쉬어야 했던 그는 이상국 분회장과 함께 오는 3월 1일, 일터로 복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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