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도 일상이 있다”
“내게도 일상이 있다”
  • 지민
  • 승인 2020.02.10 20: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포항에는 나의 20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대학교 입학 후 학기 중은 물론 방학을 해도, 휴학을 해도 나는 포항에서 지냈다. 무기정학이 아니었다면, 아마 서른 살도 포항 바다 앞에서 맞이했을 확률이 높다. 비록 월세였지만 하나둘 살림을 꾸린 나만의 원룸이 좋았고, 집 근처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좋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오밀조밀 모여 사는 동네가 좋았다. 포항 토박이도 잘 모르는 나만의 히든 플레이스도 몇 군데 있었다. 인적 드문 바닷가라던가, 구석에 숨겨진 호수 산책로라던가, 잘 알려지지 않은 맛집 같은 곳들.

징계 무효 확인 재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늘 가던 바닷가였다. 건물 5층 정도 되는 높이의 방파제에 차를 대면, 눈앞에는 푸른색 바다가 펼쳐졌다. 눈에 걸리는 것 하나 없이 수평선까지 쭉 이어지는 동해 바다. 그 앞에 서서 포항 특유의 거센 바닷바람을 흠뻑 맞으며 한참을 바라봤다. 그리웠던 장소와 기억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마음으로.

 

ⓒpixabay
ⓒ pixabay

나는 왜 이 평온한 일상을 빼앗겼을까. 이 사랑하는 시공간을 누가 앗아간 걸까.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다 눈물이 고였다. 2년 전, 나는 포항에서 쫓겨나다시피 경기도로 이사했다. 더는 그곳에서 지낼 수 없었다. 부당징계 이후 학교와 교계는 끝없이 혐오 뉴스를 생산했고, 그 과정에서 내 실명과 얼굴이 악의적으로 드러났다. 학교 안을 걸을 때는 물론, 학생들이 많이 사는 원룸촌을 걸을 때도 두려웠다. 누군가 날 손가락질하고 수군거리며 욕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지난 1월 말, 트랜스젠더 학생 A가 숙명여대에 합격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한차례 큰 파장이 일었다. 그저 성별 정체성대로 살아가는 일이 왜 파장까지 되어야만 하는지, 그 이면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와 별개로, 나는 이 일이 남 일 같지 않았다. 학교 안팎으로 차마 의견이라고 할 수 없는 차별적인 표현들이 A를 향해 쏟아졌다. 불쾌하거나 더럽다는 이야기부터 “트랜스젠더는 여성이 아니다”, “여성들을 위한 공간에 들어오지 말라”는 말까지. 심지어 올해 신입생 460여 명이 참여한 메신저 대화방에서는 트랜스젠더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학교에 항의 전화를 하자”는 말과 이에 동의한다는 말이 이어졌다. A가 그 방에 함께 있는데도 그랬다.

불현듯 지난 2년의 시간이 떠올랐다. 사건 직후, 한동대 학생처장은 전 교직원과 교수들에게 메일을 보내며 나를 악의적으로 아웃팅했다. 그다음 날, 한동대 교목실장은 수천 명이 듣는 예배에 올라 설교를 하던 중 나를 “곰팡이”와 “암세포”에 비유하며 “떼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학생들은 나를 제적하라고 대자보를 붙였고, 어떤 학생들은 내가 있는 한동대 익명 대화방에서 나를 더럽다며 학교의 수치라고 비난했고, 어떤 학생들은 SNS에서 내가 다른 학생들에게 위험한 존재이며 그러니 하루빨리 쫓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한동대 학부모 기도회를 포함한 전국의 교회에서는 기도라는 명목으로 나의 실명과 사적인 관계(폴리아모리)를 언급하며 “음란”하다고 비난했다. 이는 또다시 전국 교회의 네트워크를 통해 각종 SNS와 메신저로 퍼졌다. 웬만한 언론보다 파급력이 컸다. 부당징계 사건을 보도한 기사에는 하루에도 수백 건씩 나를 비정상으로 취급하며 음해하거나 저주하는 댓글이 올라왔다. 재판을 위해 법원에 갔을 때는 나를 째려보고 한숨을 쉬다가 심지어는 귀에 대고 쌍욕을 하고 도망치던 사람들이 우글거렸다.

 

ⓒpixabay
ⓒ pixabay

왜 나와 당신, 또 어떤 누군가는 무엇이라는 이유로 악의적인 비난을 감내해야 하는 걸까. 왜 그 공간에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없는 걸까. A가 인터뷰에서 한 말을 봤다. “하루 종일 너무 무서웠어요. 온갖 욕을 다 먹었더니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기분이에요.” 그 말 앞에서 나도 따라 눈물을 흘렸다. 인터뷰를 보며 지난 2년간 너덜너덜해진 내가 떠오른 건 과한 동일시인지 모른다. A는 그저 자신의 성별 정체성대로 살아가며, 성적에 맞춰 대학에 입학했고, 용기를 내서 자신의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한순간 마녀가 됐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학교에서 열리는 페미니즘 강연을 도왔고, 차별적인 학교의 행태에 저항했을 뿐인데 한순간 마녀가 됐다.

A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 중에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일컫는 어떤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여성 인권보다 남성 트랜스젠더의 인권이 우선시되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다”며 혐오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는 페미니즘 단체들에서 “여성의 권리를 위협하는 성별 변경에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내고, “공론화 과정, 사회적 합의 과정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을 당장 중단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오고 있다. 이들과 나를 괴롭힌 기독교 혐오 세력이 얼마나 다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그 사이에서 A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대학 입학을 축하받기는커녕 입학을 반대한다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 성별 정정 자체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마주할 때 A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는 결코 A의 심정을 온전히 알 수 없겠지만, 그래도 A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멈추고 싶지 않다. A와 함께 설 것이다.

이 글을 다 쓴 지 며칠 뒤, A는 결국 입학 등록을 포기했다. 이에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일컫는 어떤 사람들은 “성별 변경 남성의 숙명여대 입학 포기를 환영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갈수록 의문이 확신으로 변한다. 이들은 기독교 혐오 세력과 다르지 않다. ‘인권’이란 이름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더 해롭다. A는 등록을 포기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게도 일상은 있다. (...) 내 삶은 다른 사람의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무시되고, ‘반대’를 당한다. 그렇게 나는 일상을 영위할 당연함마저 빼앗겼다.” 부디 나도, 당신도 평온하고 평범한 일상을 지킬 수 있기를 작은 목소리로나마 빈다.


 

글 _ 지민

한동대 부당징계 당사자. 비혼생활공동체에서 폴리아모리 관계를 맺고 있으며 트랜스젠더 단체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와 <갓길:같이 걷는 길>에서 활동합니다. 염치 아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