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장애인의 생명” 이강덕 포항시장 면담을 요구하며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장애인의 생명” 이강덕 포항시장 면담을 요구하며
  • 김성열
  • 승인 2020.02.1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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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과 경제 활성화에 초점 맞춰진 포항지진특별법
고립된 일상… 24시간 장애인활동지원 시행해야


재난이 발생하면 복지 취약계층은 재난 취약계층이 된다.

한국에 그간 ‘없을 것’이라 여겨지던 지진이 2017년 11월 15일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서 규모 5.4로 발생했다. 포항시 지진대책은 포항지진특별법 목적이 말해주듯 보상과 경제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포항 인구 약 50만 명 중 등록 장애인이 2만 6천 명에 이르지만, 포항시는 지진대책에서 장애인을 외면했다.

지진 이후 회원들의 대피 상황 파악을 위한 전화 통화에서 장애인들은 “그냥 여기서 죽지 뭐, 나가긴 어딜 나가? 나갈 수나 있나?”라는 대답이 대다수였다. 우리 사회가 수십 년 동안 장애인을 어떻게 대했는지 그들의 대답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후 포항지역 장애인 당사자 활동가들은 재난에 취약한 사람들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다큐멘터리 영화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에 출연했다. 이 영화는 포항 지진을 겪은 뇌병변, 근육, 청각, 지체장애인들이 재난 시 방치되는 참담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서 놀라운 점은 입을 맞춘 것도 아닌데 출연한 모든 당사자가 하나같이 “내 옆에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이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내 옆에 사람이 있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지만, 이들은 최소한 혼자서 고립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

또 중증 장애인 대부분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 저소득층이 많다. 많은 중증 장애인이 포항지역 영구임대 아파트에서 밀집해서 거주한다. 재난이 일어난다면 영구임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중증 장애인들은 고립될 가능성이 크다. 대책 없는 구조와 환경 속에 재난 시의 대형 인명 참사는 예고되어 있다.

 

재난취약계층 다큐영화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에 출연한 포항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들. 사진 포항장애인자립생활센터
△ 재난 취약계층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에 출연한 포항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들. 사진 포항자립센터

포항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포항자립센터)에서는 이강덕 포항시장이 후보 시절부터 재난취약계층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알렸다. 이후 장애인 자립생활 권리를 꾸준히 요구했지만, 포항시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우선순위에서 배제했다.

 

“중증장애인에게 활동지원서비스는 목숨”

장애인들은 재난이 아닌 일상생활에서도 고립되어 있다. 중증 장애인은 밥을 먹거나, 이동하거나, 체위변경 등의 서비스를 낮이든 밤이든 언제든 지원받을 수 있어야 일상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다.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타인의 지원이 필요하다. 소변 줄이 빠진다거나 호흡곤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혼자 있는 시간은 매우 위험한 시간이 되기도 한다.

2012년 10월 26일 서울 성동구에서 활동지원사가 퇴근한 야간시간에 뇌성마비장애인이 화재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2013년 12월 대구에서도 아흔을 바라보는 노모와 단둘이 살던 지체장애인 이 모(56)씨가 불이 난 집에서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해 숨진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활동 지원 24시간이 보장되었더라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2019년 7월 장애등급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되면서 장애등급과 관계없이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활동지원서비스는 장애인 자립 생활에 매우 중요한 제도이다. 포항지역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지원 시간은 최대 보건복지부 391시간과 경상북도 90시간이 전부이다. 합하면 481시간, 하루 평균 14~15시간 정도이다. 이마저도 중증 독거장애인만 해당한다. 지원받는 시간을 빼면 하루 9~10시간 혼자 고립되게 된다.

포항자립센터에서는 야간에 혼자 체위변경을 할 수 없어서 다음날 활동지원사가 출근할 때까지 잠을 안 자고 버티는 생활을 하다가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진 동료가 있다. 이 동료를 위해 작년 8월부터 센터 직원들과 회원들이 야간시간을 함께하며 체위변경과 신변 처리를 지원하고 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사람을 살려야 하기에 주저할 수 없었다.

중증 장애인에게 활동지원서비스는 목숨과도 같다. 그렇기에 활동 지원 24시간 지원이 꼭 필요하다. 이런 내용을 포항시청 복지과 면담을 통해 수차례 전달했지만 늘 돌아오는 대답은 기다리라는 말뿐이었다.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이 센터만 고민해야 할 일인가? 또, 활동 지원 24시간 요구가 중증 장애인들의 요구로만 생각할 문제인가? 살고 있는 곳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당연한 권리는 헌법에도 보장되어 있듯 누구에게나 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인간의 존엄이 무시당하고 생명마저 경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포항 인구수와 비슷한 경기지역 기초 지자체는 활동 지원 24시간 서비스를 시행하기 위해 부족한 시간을 지자체 예산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는 지자체의 의지만 있다면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포항시는 활동 지원 24시간 서비스 시행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었던 포항에서 경북 최초로 24시간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시행한다면, 재난 취약계층인 장애인의 안전과 생존권 보장에 대한 의지를 포항시가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장애인 복지 수준 전국 최하위인 경북에서 장애인 자립 생활정책이 한 걸음 더 나아가 복지를 향상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13일 포항자립센터와 경북지역 연대단체는 24시간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지원이 가능하도록 포항시 장애인자립생활지원조례 제정과 재난 취약계층의 안전망 구축을 요구하는 성명을 내고, 오는 19일 포항시장 면담을 요청하였다.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일 때까지 물러서지 않고 죽을 각오로 임한다는 입장이다. 고립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포항시가 외면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