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록밴드의 평양 방문”과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

 

1.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으로 다시 보는 북한

<사랑의 불시착>이라는 케이블 채널 tvN 주말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 후 얼마 전 종결을 맞았다. 현빈과 손예진, 두 중량급 주연 배우들의 열연도 호평을 받았지만, 남한의 재벌 가문 여성과 북한 군부 고위층 남성의 로맨스라는 소재를 받쳐주는 2020년 현재의 북한 묘사가 꽤 세밀하다는 평이다. 어느 정도 자본주의적 요소가 도입된 ‘장마당’ 경제와 그 여파로 빈부 격차가 심화하고 남한 문물과 정보 교류도 물밑에선 꽤 가능해진 변화된 세태가 오히려 판타지처럼 보일 지경이다.

물론 현 정부 들어 남북-북미 정상회담 등으로 지난 정권 시기보다 화해 평화 기운이 성큼 다가온 것처럼 보이던 때와 비교해 현재 남북 관계는 교착 상태에 처해 있는 게 사실이다. 남북한 경제의 장기 불황에 대처하기 위한 목적 용도로 급물살을 탈 것만 같던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사업 등 경제협력도 불투명하고 이산가족 상시 상봉 면회소 등의 조치도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남침 야욕에 광분하는 ‘북괴’를 상상하는 이들보다는, 핵을 움켜쥐고 반대급부를 노리는 성가신 존재로서의 북한을 사고하는 이들이 훨씬 더 많아지기는 했다. 분명 북한에 대해 과거의 냉전적 사고와 반공 이데올로기로 치우친 색안경은 어느 정도 바뀐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도 북한을 방문하거나 교류하려면 정부의 허가를 구해야 한다. 이를 무시할 경우 국가보안법의 처벌 대상이 되는 건 여전하다. (<사랑의 불시착> 결말부에서 그런 부분이 잘 묘사되었다)

그런 지점을 인지한다면, 시각의 차이나 관점의 상이함을 감수할 때 제3자의 시각으로 북한을 비교적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는 외국·외국인의 경험과 작업은 상당히 보완적 측면을 가진다. 이후 소개할 몇 편의 영화들은 우리가 현재 북한의 변화를 잘 알고 있다는 편견을 교정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2. 제3자의 체험으로 엿보는 또 다른 북한①

: 영화 <어느 록밴드의 평양 방문 Liberation Day>

 

"어느 록밴드의 평양 방문" 영화 포스터
“어느 록밴드의 평양 방문” 영화 포스터

2015년 8월, (당시엔 유고슬라비아 구성국이었던) 슬로베니아에서 1980년 결성된 인더스트리얼 록 밴드 ‘라이바흐’가 평양에서 1,500여 명의 관객을 앞에 두고 이틀간 공연을 진행했다. 북한의 유명한 ‘보천보 전자음악단’이 팝과 록, 전자음악까지 가리지 않고 소화하는 생경한 풍경은 이제 어느 정도 국내 언론과 방송을 통해 익숙해졌지만, 언어적 제약이 있는 서구 전위음악 록 밴드의 평양 공연은 상당한 파격일 수밖에 없었다. 이 공연과 준비과정은 “해방의 날 Liberation Day”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외 여러 영화제에서 소개되어 작은 화제가 되었다. EIDF(EBS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를 통해 2019년 공중파로 방영되기도 했다(!).

일전에 남북 친선 농구시합에서 평양을 방문한 우리 대표 팀 귀화선수 ‘라건아’를 보는 북한 경비원들의 놀라워하는 사진이 국내 언론에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외국과의 교류가 제한되어 있고 특히 서구 대중문화에 대해선 여전히 진입 장벽이 높은 북한에서 문화적 전위주의를 표방하는 라이바흐 밴드의 공연 준비과정은 심의·검열의 밀고 당기기 연속이었으리라. 영화는 그 진풍경을 무겁지 않게 다루려 노력했다. 

이 밴드의 공연 섭외는 8.15 광복절을 기념하기 위해 이뤄졌다. 2015년 8.15는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제국이 항복해 종전을 맞은 ‘해방의 날’ 70주년이었다. 즉, 추축국(樞軸國)의 파시즘이 무너지고 이들의 압제에 시달리던 전 세계 인민들의 해방이 한반도에는 (미완의) 광복으로 다가왔다는 기념을 그 나름대로 세계적 보편성으로 접근해 기념한 셈이다. 하지만 그 ‘해방의 날’ 기념 축하공연은 북한 당국의 예민한 심의 속에서 위태로운 순간을 여러 번 겪으며 웃기만은 어려운 풍경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어느 록밴드의 평양 방문" 스틸샷
“어느 록밴드의 평양 방문” 스틸샷

물론 영화는 북한의 태도를 희화화하는 고약한 풍자의 의도로 치우치진 않는다. 말 그대로 낯설고 생경한 두 문화의 충돌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해방의 날’ 기념 축하공연에서 하나라도 더 자유로운 표현과 퍼포먼스를 보이려 갖은 꾀를 짜내는 밴드, 문화충격에 빠진 북한 관계자들과 생경한 가운데에서도 살며시 공명하는 객석을 본다면, 누군가는 검열의 어두운 그림자를, 다른 누군가는 그래도 우리가 상상하던 엄혹한 체제가 아닌 북한의 이면을 확인할 것이다.



3. 제3자의 체험으로 엿보는 또 다른 북한②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 Aim High in Creation!>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 포스터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 포스터

이어서 소개할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 Aim High in Creation!>는 심지어 국내 극장 개봉까지 이뤄진 영화다. <어느 록밴드의 평양 방문> 못지않게 코믹한 터치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호주의 영화감독 안나는 주민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강행되려는 가스 광 굴착을 저지하기 위해 선전영화를 준비한다. 쉽고 선명한 선전영화를 만들기 위해 안나는 대중적으로 강력한 인상의 선전영화를 제작하는 북한을 주목한다. 북한 영화인들의 협조로 고향 마을의 난개발을 막으려는 안나와 일행들이 오랜 선전영화 전통이 살아 있는 북한 현지 스태프들의 조언을 받으며 단편영화 제작에 돌입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국내 언론에서 조롱 혹은 비난을 위해 자주 인용되기도 하지만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은 엄청난 영화광이었다. (그래서 최은희, 신상옥 두 국내 영화인을 납치하기도 했지만) 그 컬렉션이 개방되면 국내외 영화계에 큰 반향이 일어날 거라는 호사가들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영화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고 전한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인민에 대한 선전·선동은 단지 문화예술을 넘어 정치적으로도 중요했다. 초창기 후계구도 수업을 위해 그가 맡았던 업무 가운데 주요한 분야였고, 영화 교본을 집필할 정도로 본인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안나와 그 일행들은 그 ‘영화 교본’에 의거해 자신들의 외로운 투쟁을 홍보할 단편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그 과정에서 북한 영화인들과 밀고 당기는 일화들을 보여주는 데 공을 들인다. 완성품인 북한 영화가 아니라, 현재도 왕성하게 작업 중인 북한 영화계 현주소의 일부를 엿볼 수 있음은 귀한 경험이다. 영화 제작은 물론 서구 세계에선 잊힌 ‘프로파간다’를 위한 연기 방식까지 ‘이방인’들은 편견보다는 호기심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그 과정에서 북한 국립영화제작소의 국내에선 보기 힘든 웅장한 규모의 세트와 야외촬영장의 생소하지만 흥미로운 풍경들, 그리고 북한 영화에서 활약 중인 여러 분야 영화인들이 속속 소개된다.

작업이 완성되어갈수록 남북한의 체제 경쟁과 이념 대립에서 자유로운 안나 일행과 그들의 ‘멘토’ 격인 북한 영화인들은 우애를 쌓아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 영화인들의 호의는 충분히 이해될 법하다. 서구의 나라에서 온 손님들이 자신들의 작업을 긍정하고 배우려는 데 고무되기도 했으리라. 그렇게 국경과 이념의 장벽을 넘어 한 식구처럼, 동종업계의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풍경은 기이한 한편으로 훈훈한 인간미를 전달한다.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 스틸샷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 스틸샷

그 작업의 결과물은 영화 말미에 소개되는 북한 영화 스타일의 단편 선전영화 <정원사>로 드러난다. 영화를 완성한 안나 일행은 자신들의 멘토인 북한 영화인들에게 그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 다시 북한을 찾는다. 너무 노골적인 ‘예술의 정치화’라는 명목으로 사라진 선전선동영화의 전통은 기이한 방식으로 기념되는 셈이다. ‘극중극’ 형식으로 삽입된 <정원사>의 일부분은 남북 갈등을 넘어 영화 자체에 주목한다면 무척 흥미로운 시도이기도 하다.

본 작품은 영화에 대한 영화로서 지금껏 소개될 기회가 없었던 현대 북한 영화계와 영화인들에 대한 조명 측면에서 유용한 자료이기도 하지만, (비록 평양만 공개되긴 하지만) 북한(중산층)의 평범한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영화인도 사람이니 연출, 기술, 연기, 음악과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영화인들은 물론, 영화 관련 공간으로 이동하거나 작업 중에 마주치는 평양 시민들의 모습 또한 영화의 주안점은 아니더라도 재미나게 관찰할 수 있다.


4. 사상과 이념을 넘어 ‘실재하는 북한’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두 편의 영화를 소개했지만, 국내에선 주로 가을에 경기도에서 열리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북한 관련 작품들을 <DMZ 비전> 등의 섹션에서 집중적으로 소개되는 중이다. 

"북녘의 내 형제 자매들" 포스터
“북녘의 내 형제자매들” 포스터

영화 소재의 다양성을 위해 스스로 남한 국적을 버리고 외국 국적을 취득해 <평양 연서 Far East Devotion - Love Letters from Pyongyan>, <북녘의 내 형제자매들 My Brothers and Sisters in the North> 등 관련 작업을 지속하고 있는 조성형 감독 같은 이도 등장할 정도로 북한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지만, 정치적 차원을 넘어 흥미로운 공간으로 새롭게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영화 수집 컬렉션 이야기도 언급했었지만, 남북 화해와 교류가 본격화되면 본의 아니게 한반도 최대의 생태 보전 공간이 되어버린 DMZ 비무장지대 관리 유지 문제도 환경문제를 고민하는 이들에겐 강 건너 일이 아니다. 이런 변화된 상황에 대한 자료는 사실 어느새 우리 주변에 적지 않게 존재하고 있다.

<사랑의 불시착>은 통속 드라마의 한계가 명확한 작품이지만, 북한의 변화된 일면을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데 참고할 가치가 충분하다. 두 권의 외국인 필자가 쓴 책은 이 드라마가 담은 풍경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라 소개해본다. 좌우의 입장을 넘어 분명히 실재하고 변화되는 북한에 대한 객관적 이해는 필수이니까.
 

조선자본주의공화국

- 맥주 덕후 기자와 북한 전문 특파원, 스키니 진을 입은 북한을 가다!

North Korea Confidential (2015년)

지은이 다니엘 튜더, 제임스 피어슨|옮긴이 전병근|비아북|2017|17,000원


북한 여행 - 유럽 최고 북한통의 30년 탐사 리포트

Unterwegs in Nordkorea: Eine Gratwanderung (2018년)

지은이 뤼디거 프랑크|옮긴이 안인희|한겨레출판|2019|20,000원


작품 정보


어느 록밴드의 평양 방문 Liberation Day

라트비아, 노르웨이, 슬로베니아|다큐멘터리ㆍ뮤지컬|2016|100분

감독 우기스 올테, 모르텐 트라빅

18회 전주국제영화제(2017) 초청(전주 돔 상영)

64회 시드니영화제(2017) 초청(사운드 온 스크린)

21회 판타지아국제영화제(2017) 경쟁(다큐멘터리 프롬 디 엣지)

66회 멜버른국제영화제(2017) 초청(뮤직 온 필름)

9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017) 초청(DMZ비전)

7회 북한인권국제영화제(2017) 초청(북한 인권 들여다보기)

16회 EBS 국제다큐영화제(2019) 초청(월드 쇼케이스)

<어느 록밴드의 평양 방문> EBS D-BOX에서 유료 스트리밍 대여 가능

https://www.eidf.co.kr:444/dbox/movie/view/478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 Aim High in Creation!

오스트레일리아|다큐멘터리ㆍ어드벤처ㆍ코미디|2013

2018.09.13 개봉 전체관람가 96분

감독 안나 브로이노브스키

1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2014) 초청(새로운물결)

7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015) 초청(분단 70년 특별전)

네이버 VOD 유료 다운로드 

https://serieson.naver.com/movie/detail.nhn?productNo=370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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