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의 사회 풍자 가상 리포트

 

1. ‘역병의 시대’?

‘코로나19’의 확산과 지역 감염 공포 속에서 한국 사회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특히나 ‘31번 확진자’ 이후 경북·대구지역은 마비 상태에 빠진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외출을 자제하고 타인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린다. 선의건 악의건 유언비어에 가까운 온갖 정보와 가짜 뉴스의 경계가 모호한 이야기들이 ‘고립’된 이들에게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것처럼 쉽게 퍼지고 있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코로나19는 ‘성공적인’ 바이러스다. 이 바이러스는 아마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인류 역사상 거쳐 갔거나 여전히 악명을 떨치고 있는 여러 병균이나 바이러스처럼 변형을 거쳐 자리를 잡을 것이다. 즉 새롭게 인류를 괴롭히는 악성 감기나 독감으로 정착한다는 이야기이다. 성공적인 바이러스의 조건은 ‘숙주’를 살려두고 자신을 퍼뜨리도록 제어하는 것이다.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는 자기 자신마저 죽여 버리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치명적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소멸하거나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마련이다.

상대적으로 국가 차원의 행정력과 보건 의료 시스템이 갖춰진 한국에서 벌어진 이 바이러스 대 인간의 ‘전쟁’은 사실 인류의 역사에서 이미 수십수백 차례 반복되어온 형태이기도 하다. 그런 인간의 경험에서 기원한 상상력은 수많은 작품으로 기억된다.

정체불명의 전염병이나 다른 요인으로 인해 국가적 혹은 전 인류적인 위기에 처한다는 이야기는 문학과 영화에서 숱하지만 이번에 소개할 이야기는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월드 워 Z> (2013)의 원작, <세계 대전 Z World War Z>(2006)이다.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도서 이미지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도서 이미지

맥스 브룩스라는 미국 작가는 <세계 대전 Z> 이전에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The Zombie Survival Guide> (2004)라는 작품으로 명성을 얻었다. 제목 그대로 이제는 대중문화에서 하나의 상징으로 익숙해진 좀비 관련 대응 해설서 같은 이 책 전반부의 내용은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나열에 가깝다. 재미있는 부분은 후반에서 작가의 필력으로 그려진 가상의 인류 역사상 좀비 대응 기록들이다.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여러 시대와 지역에서의 좀비와 관련한 가상 역사는 꽤 그럴듯한 (대중적 흥미 수준에서의) 대체 역사물로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후속작인 <세계대전 Z>는 독특하게 (가상의) 르포 형식을 취한다. ‘인류는 느닷없이 전 지구적으로 출몰한 좀비 바이러스와 10년간의 ‘세계 대전’을 벌여 겨우 승기를 잡고, 그 10년 후 재건 과정에서 UN 특별 조사관이 그 대전쟁의 지역-국가별 기록을 작성한 내용이다.

본 작품은 게임 전개하듯 억지를 부리는 통속적인 좀비 판타지물과는 격을 달리하는 완성도와 신선함으로, 역시 큰 인기를 얻은 역대 최대 규모의 좀비 블록버스터 영화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영화는 원작과는 꽤 다르게 각색되었다) 영화는 압도적 스펙터클로 좀비의 공포를 보여주는 데 성공했지만, 각자 셀프 격리된 가운데 힘든 시기를 견디는 이들에겐 원작의 효용에 비길 바가 못 된다. 국내에 출판되어 있고, 중고로도 곧잘 구할 수 있는 성공한 책인지라 몇 가지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2. “대공포”

책의 초반은 좀비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되고 전 지구적으로 확산하는 과정을 서술한다. 중국에서(!) 처음 발견된 좀비 바이러스는 세계 어디나 넘쳐나는 중국인 관광객과 장기밀매를 통해 삽시간에 확산한다. 국경을 봉쇄하니 감염을 숨긴 채 브로커를 이용해 돌파하는 묘사가 일품이다. 중국의 부유층들은 서방세계에는 뭔가 치료법이 있을 거라는 맹목적 믿음으로 유럽 각국의 대도시에 도착하고 호텔 등에서 감염이 폭발하기 시작한다. 광대한 중국 국경을 통해 인접국으로 온갖 방법으로 중앙아시아나 티베트 등의 루트로 감염자들이 퍼져나간다.

초기에 예민한 정보당국이나 전문가들이 이를 경고하지만 무시당하거나 오히려 감금된다. 중국 오지에서 좀비 바이러스 감염자를 보고했던 의사의 에피소드는 곧바로 하늘에서 수십 대의 공안 소속 헬리콥터가 지역을 봉쇄하고 자신을 체포하는 결말로 끝난다. 픽션은 실제로 비슷하게 우한에서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세계는 좀비가 넘쳐나고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는 상태로 치닫는다.

<팔랭스 Phalanx>

미국에서는 브레킨리지 ‘브렉’ 스콧이라는 사업가가 ‘팔랭스’라는 백신이 좀비 바이러스에 유효하다며 팔아치우기 시작한다. (‘팔랭스’는 고대 그리스의 장창 밀집 보병 ‘팔랑크스’이자 현재 미국의 근접방어무기 ‘팔랑크스’로 “방어”의 대명사) 공포에 떨던 이들에게 팔랭스는 생명의 아이템처럼 받아들여졌고, 뾰족한 예방대책이 없었던 각국 정부들도 이 백신을 권장하며 의료보험으로 지원해 주는 등 협조를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이 백신은 그저 광견병 치료 약에 불과했고, 브레킨리지 스콧의 사기극은 언론에 의해 폭로되어 끝난다. 하지만 이미 엄청난 갑부가 된 이 사기꾼은 남극의 러시아 기지를 임대해 도피 후 무사히 살아남는다.

팔랭스가 대성공을 거둔 데에는 ‘퀴즐링’이라는 존재들의 의도치 않은 선전 효과가 지대한 도움이 되었다. 정신적으로 도피하려는 이들이 스스로 좀비 행세를 하며 이웃을 습격하고 좀비처럼 식인하는데, 이런 퀴즐링에게 물린 이들이 좀비로 변이하지 않았다며 팔랭스의 효과를 극찬해댄 것이 주효했다. (‘퀴즐링’은 과거 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웨이의 나치 부역자의 이름을 딴 것) 지금 경북·대구에서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는 가짜 뉴스나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의 악영향과 연관해 생각해볼 대목이 아닐까.

브레킨리지 스콧은 남극에서 좀비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버티고 있으며, 그를 체포하고 징세하기 위해 미국 국세청이 러시아와 협상 중이라는 후일담이 나온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기를 치고 거짓 정보를 퍼뜨려도 법망의 미비로 책임을 지지 않는 세태는 원작 내용보다 현실이 더 지독해 보인다.

<ADS 증후군>

자각 없는 사망 증후군(Asymptomatic Demise Syndrome) 혹은 종말론적 절망 증후군(Apocalyptic Despair Syndrome).

팔랭스 같은 가짜 동아줄이 끊어지고 좀비 바이러스 창궐이 대공포로 이어지면서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정신적 자살이 이어진다. 잠들 듯 숨이 끊어지는 이들이 물리적으로 좀비를 방어하고 있는 안전지대 내에서 속출한다. 이런 증상을 ADS 증후군이라 부르게 되고, 사회 시스템의 재건과 좀비와의 전쟁에서 부족해진 인력 조건을 더욱 죄어들게 만든다.

나라별 대응을 다루는 일화들에서 이런 대중의 심리와 국가별 대처법이 흥미롭게 소개된다. (작가의 고국인) 미국은 당시 대통령이 ‘선거나 민주주의 같은 이상은 개나 줘버릴 상황’이라는 각료들에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긴 고난의 세월을 이기게 해 준 민주주의라는 이상이 필요하다”며 정보를 공개한다. 기존 정치사회적 방식을 지키려는 의지로 혼란은 컸지만, 사회통합이 가능했다고 묘사된다.

반면, 미국인의 평균적 시각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국가들은 독재적 방식이나 종교를 악용해 대중을 호도하거나, 중세적 신정 국가(!)로 퇴보하기도 한다. 미국적 시각이 거슬리지만 다양한 경우의 수를 제시하는 서술은 국제정치학 개론서 예시 수준으로는 충분히 재미난 지점들이다.

 

"세계대전 Z" 도서 이미지
"세계대전 Z" 도서 이미지

3. “전세가 역전되다”

대공포의 시기를 겪은 후 아예 국가가 망한 경우를 제외한 주요 국가와 지역에선 어느 정도 안정을 유지하게 된다. 국가별 방식은 조건별로 다르지만, 크게는 안전지대의 확보와 자원 집중이 핵심이 된다. 그리고 만들어진 영웅이 아닌, 실제 개인과 집단들의 희생과 헌신도 소개된다. 우리가 간과하는 현재 누리고 있는 인프라들을 유지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들이 펼쳐진다.

각국이 고립되고 생존자들이 좁은 안전지대 내에서 갇혀 있는 상황에서 물자 공급을 위한 공수작전과 전문가 파견이 필사적으로 진행된다. 물자 보급 중 비행기가 사고로 추락하면 구조되기 어려우므로 목숨은 건졌지만, 트라우마를 겪는 공군 조종사의 이야기나, 안전지대에 낙하산으로 강하되는 것을 자청해 기약 없는 임무에 투입되었다가 적지 않게 희생된 전문가들의 일화는 현재 방역과 검역 임무를 위해 타지에서 경북·대구로 달려오는 의료진이나 헌신적으로 밤낮없이 일하는 이들과 겹쳐 보이게 마련이다.

<디스트레스 DeStRes, Department of Strategic Resources (전략자원부)>

미국은 자원을 마구잡이로 써대는 것으로 유명한데, 좀비 전쟁 와중에서 캘리포니아와 하와이 정도를 제외하고 전 국토를 좀비 무리에 빼앗기는 지경에 처한다. 그 결과 과거 대공황 당시 뉴딜 정책을 능가하는 강력한 정부 개입 경제정책을 시행한다. 그 기관의 약칭이 디스트레스, 전략자원부다.

이 전략자원부 수장과의 인터뷰 과정에서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과 선택 및 집중의 딜레마가 펼쳐진다. 좀비와의 전쟁에서 비효율적인 최첨단 무기와 군산복합체는 해체되고, 이 과정에서 장군들과 기업들의 저항은 상상을 초월한다. 시행착오도 무수히 뒤따른다. 전장에서 생명을 걸고 맞서 싸우는 군인들의 즉석 발명과 체험에 기반을 둔 의견이 적극적으로 개진, 수렴되어 효과를 거둔다. 자원이 부족해 국가가 주도해 징발과 생산 통제에 나서자 반발하는 기득권층과의 설전이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패와 협상기법들, 넘쳐나던 소비재의 재활용 이야기들이 속속 이어진다.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같은 고급 차들은 정부의 석유 통제로 멈춰서 무용지물이 되고 쇠붙이로 재활용된다.

현대사회에서 직접 생산에 종사하지 않는 사무직-서비스업 종사자의 높은 비율로 전시 생산력이 낮아지자, 일이 없어진 변호사와 연예산업 종사자들은 생산적인 분야에 ‘재배치’된다. 이민자 출신 허드렛일을 하던 이들로부터 재교육을 받는 게 좀비와 맞닥뜨리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었을 거라는 전략자원부 수장의 담담한 인터뷰는, 곧이어 다양한 생산과 육체노동에 투입된 이들 상당수가 오히려 더 직업적 만족도가 높아지더라는 웃픈 이야기로 흘러간다. 재해와 재난 시기 국가의 역할과 공공정책에 대한 초벌 토론 주제 같은 에피소드다.

나라마다 명칭은 다르지만, 국가적 대응전략을 무슨 독트린, 무슨 플랜 식으로 제기하고 집중하기 시작한다. 각국 대전략의 기준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폴 레데커란 정책가가 제출한 레데커 플랜이다. 이것은 과거 악명 높은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로 흑백 갈등이 고조되고, 소수인 백인 정권이 전면적인 흑인 봉기에 직면했을 때 정권을 유지하고 생존하기 위한 일종의 계엄령 같은 ‘오렌지 84 플랜’의 좀비 버전에 가깝다.

극단적인 역량 보전과 효율성 지상주의라 할 이 대책은 군사력과 핵심 지도부를 유지하기 위해 좀비들을 분산시킬 목적으로 여러 안전지대를 배치하고 지원은 하되, 그곳이 무너지더라도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희생자의 관점에서는 살아있는 ‘미끼’를 던져주는 셈이다. 모두를 구할 수 없으니 철저히 효율을 따지면서 선택과 집중을 취하고 포기할 건 포기하자는 간단명료한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식이다. 작품 속에서 한국 또한 ‘창 독트린’이라는 명칭으로 이 정책을 도입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어떤 국가는 레데커 플랜의 본질을 숨기고, 어떤 국가는 원리를 공개한 채 자발적 희생을 선택하라는 식으로 (대신에 가족을 우선 피난시켜주는 조건을 제시하는) 이 정책을 도입한다.

 

"월드워 Z"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월드 워 Z” 스틸 이미지

‘레데커 플랜’의 에피소드는 코로나19 대응 와중에 놓치거나 악용되는 부분들에 대한 우화와도 같다. 특정 신흥종교집단에 대한 강경한 대책이 지지를 받고 있지만, 그 초법적 조치에 대한 인권침해의 우려도 높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키거나 우선 급한 것부터 다수 집단부터 챙기고 보자는 논리에 정당성을 덧씌우기 좋은 주장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구매가 폭증하지만 그 유통을 담당하는 배송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홀대, 공적 시스템 부재로 인한 의료·돌봄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 폐쇄 병동 수용자나 스스로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 및 장애인에 대한 보호 대책 미비,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보 공유 부족 상황 등은 코로나19 대응의 한계를 보여준다.

확산 예방을 이유로 광화문과 종로 등 사회적 발언을 위한 ‘광장’의 역할을 하던 서울 주요 일대의 집회를 불허하면서, 극우단체를 통제하기 위한 형평성 차원이라며 노동자 추모 분향소까지 철거하는 행태는 비판적 성찰의 숙제로 고민되고 반드시 평가해야 할 문제다.

 

4. “전면전”

안정 국면으로 숨을 돌린 뒤, 국토 회복을 위해 대반격을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초반에 대응을 잘한 사례로 작가가 서술하는 나라들은 이스라엘,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리고 쿠바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레데커 플랜으로 설명했으니 생략) 그 외에 희생이나 시행착오는 컸지만 비교적 성공한 사례 중에서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예시로 나온 영국과 인도, 레데커 플랜과 유사한 정책 도입이 원활했던 한국과 독일, 그리고 후반부의 중국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스라엘 사례>

이스라엘은 내전을 겪기는 했지만, 중동이 전후에도 제대로 재건되지 못할 정도로 붕괴된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온전한 상황으로 묘사된다. 현재 팔레스타인을 괴롭히는 상징과도 같은 분리 장벽을 전 국가적으로 둘러싸고 키부츠 집단농장을 작은 요새화된 자급자족 마을로 강화하는 것은 마치 이스라엘의 패악을 옹호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하지만 다른 부분도 꽤나 있다. 작품 속 이스라엘 정부는 과거 그들이 추방했던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인력자원 수급 차원에서) 받아들이고 차별 없이 일자리와 주거 등을 제공한다. 그 과정에서 실제로 현대 이스라엘 유대인들 내에서 ‘유대인인지 아닌지’ 논란이 되기도 하는 흑인 유대인까지 긴급 수용했다는 일화도 등장한다.

그러나 일련의 정책들은 방어 가능한 국경선으로 후퇴를 전제했기에 정착촌 포기와 철수로 이어졌고,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재정착은 이스라엘 내 (‘하레디’라 불리는) 근본주의 유대인들에게 반발을 사 전국적인 내전 상황에 휩싸인다. 하지만 실제 ‘하레디’들에 대한 비판에서 빠지지 않는 부분, 사회에 실질적인 생산이나 기여는 하지 않으면서 종교 교리 공부만 하는 측면 때문에 군대 경험이 없었던 이들의 반란은 실패로 끝났다는 설명과 함께 이스라엘은 살아남는다. (영화에서의 묘사는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는 편이다)

<쿠바 사례>

실제 역사와 비교하면 가장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일종의 ‘대체 역사물’ 이야기다. 미국의 전방위 제재 아래 고립된 섬나라이다 보니 대륙으로 이어진 타국보다 의도하지 않는 초기 전염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했고, 쿠바의 지역 주치의 제도와 이를 뒷받침하는 의료 인력 때문에 소규모 발병도 재빨리 초동대처가 가능했다고 한다.(!)

그리고 외국에서 수많은 난민이 쿠바에 상륙하지만, 사회주의 체제의 동원력으로 이들을 임시 격리에 성공해 통제를 해내고, 노동력으로 활용해 번영을 맞이한다. 풍부한 인력자원의 활용으로 쿠바는 타국의 반격작전에 물자를 지원하고 기지로 활용되는 등 초강대국으로 일어서게 된다. 원작에서 달러의 지위를 쿠바 페소가 대신하는 것처럼 묘사될 정도다.

하지만 쿠바 전체 인구에 맞먹는, 주로 미국에서 온 서구 난민이 쿠바 사회의 일원이 되자 민주화 열풍이 몰아친다. 피델 카스트로는 이를 강경 진압하길 포기하고 오히려 민주 선거를 주관해 스스로 권좌에서 물러난다. 그 결과 쿠바를 제국주의 식민통치에서 해방하고(쿠바 혁명), 외세의 간섭에서 조국을 수호하고(피그만 침공과 미국 주도의 봉쇄 대응), 사회주의 체제를 수호하면서 경제 붕괴를 막고(개혁개방과 친환경 농업 및 무상의료 정책 장려), 좀비 전쟁에서 국가와 국민을 지켜내고(세계대전 Z), 심지어 조국의 민주화를 이룩하는 영웅이 된다.

그래서 실제 현실에선 우상화를 염려해 법으로 금지한 카스트로의 동상이 수도 아바나를 비롯해 여기저기에 세워진 것으로 그려진다. 작품 속 피델 카스트로와 쿠바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묘사는, 저자가 그렇게 진보적이지 않은 미국인이라는 점에서 긍정적 이미지의 정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물론 말미에 쿠바는 새롭게 편입된 사회 구성원들과 급격한 체제 변화로 정치적 혼란과 시위가 끊이지 않는다고 설명되지만, 좀비와의 전쟁으로 제 앞가림 하기도 힘든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거의 유일하게 허용되는 풍경이기도 하다.

 

"월드워 Z"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월드워 Z” 스틸 이미지

5. 현실이 픽션을 초월할 때

현재의 코로나19 ‘판데믹(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에서 실제 위협보다 과잉된 공포와 사회적 혼란, 그리고 마스크 사재기나 거짓 정보 유통, 정치권의 헐뜯기 정쟁들은 실제 현실이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는 진리를 확인해 준다.

결국, 이 신종 바이러스로 인한 공포는 어느 시점에서 일상으로 변모할 것이다. 우리가 그에 익숙해지면 또다시 새로운 전염병이 다시 공포의 대왕처럼 어딘가에서 내려오는 반복이 우리가 맞이할 미래가 아닐까. 극단적인 상황은 공포와 혼란도 낳지만, 의도하지 않게 사회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질문과 변화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 방향은 그 사회 구성원들의 성찰과 토론의 수준에 따라 결과가 정해질 것이다.

맥스 브룩스의 <세계대전 Z>는 흥미로운 그릇이지만, 그 내용은 오류도 많고 미국 중심적이라는 한계가 분명한 작품이다. 하지만 우리가 처한 작금의 난국을 좀 더 객관적으로 그리고 체제 차원에서 조망하면 이렇고 저런 쟁점과 고민이 발생하는구나 하는 생각의 나래를 펼치는 데에는 그럭저럭 쓸모가 있다. 특히 사회적으로 고립된 가운데 불안의 나날을 보내는 개별화된 존재들에게는 더욱 유용할 테다.

 

작품 정보

도서

세계 대전 Z (원제 : World War Z)
지은이 맥스 브룩스, 옮긴이 박산호
출판사 황금가지, 2008, 531쪽, 정가 12,000원,

세계 대전 Z 외전 - 맥스 브룩스 좀비 단편집
(원제 : Closure, Limited and Other Stories from the Zombie Wars)
지은이 맥스 브룩스, 옮긴이 전희경
출판사 황금가지, 2012, 140쪽, 정가 6,000원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 살아있는 시체들 속에서 살아남기 완벽 공략
(원제 : The Zombie Survival Guide)
지은이 맥스 브룩스, 옮긴이 장성주
황금가지, 2011, 364쪽, 정가 12,000원

 

영화

월드 워 Z (World War Z)
감독 마크 포스터, 주연 브래드 피트
미국, 스릴러·SF·액션·어드벤처·공포, 2013, 15세 관람가, 115분

 

"월드워 Z" 영화 포스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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