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라는 바이러스로부터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위해

 

안녕하세요.
당신의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해서 여기에 편지를 씁니다.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 피해 소식으로 마음 졸이는 매일입니다. 부디 당신도 무탈한 일상을 보내셨길 바랍니다.

굳이 이곳에 편지를 쓰는 이유는, 당신이 뉴스풀 기사를 읽고 제가 신천지 교인인지 수소문했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소식을 접하고, 요즘 코로나19 만큼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또 다른 바이러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혐오’라는 이름의 바이러스입니다.

포털사이트에 ‘혐오’라고 검색해봤습니다. 사전적 정의는 ‘싫어하고 미워함’입니다. 싫어할 ‘혐(嫌)’, 미워할 ‘오(惡)’ 두 한자가 결합된 단어인데, 의미심장하게도 ‘오’라는 한자는 ‘악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글자를 들여다보며, 혐오는 원래 ‘악한 것’을 미워하는 감정을 뜻하는 걸까 궁금해졌습니다. 요즘과 같은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혐오는 ‘악한 것’이 아니라 공포를 총알 삼아 ‘약한 상대’를 겨누는 총구 같았거든요.

 

누군가가 정면을 가리키고 있다. 출처 pixabay
누군가가 손으로 정면을 가리키고 있다. 출처 pixabay

코로나19의 감염이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이 바이러스는 꽤 오랫동안 ‘우한 폐렴’으로 불렸습니다. 이 시기 한국에서는 중국인 여행객과 이주민, 유학생 등에 대한 혐오 발언이 마구 등장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를 조장할 수 있다”며 별도의 정식 명칭을 지정했지만, 지금도 다수 언론에서 이 표현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대구의 감염 피해가 집중적으로 발생하자, ‘우한 폐렴’은 ‘대구 코로나’로 탈바꿈되기도 했습니다. 시민들의 공포와 불안이 커지는 위기 상황에서 특정 국가, 지역, 인종을 낙인찍고 혐오를 부추기는 상황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31번째 확진자가 신천지 교인으로 확인되고 슈퍼 전파자로 온갖 비난을 받았지만, 사실 그도 2차 감염자였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31번 환자에 대한 혐오와 비난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네요. 최근 경북의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이 사회복지시설 코호트 격리 조치에 대해 여러 비판적 의견을 내고 난 뒤에도 비슷한 반응들을 마주했습니다. 코로나 위기 상황을 신천지라는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로 몰아가는 것에 대한 지적이 포함된 게 원인이었습니다. 신천지는 문제가 있으니 내용을 삭제해달라는 요청도 있었고, 당신이 수소문했듯 제가 ‘신천지 교인이 아니냐’는 소문도 더러 들려왔습니다.

신천지의 일상적인 포교활동 등 내부 상황에 대해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 문제가 있다면 그건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일이겠죠. 다만 확실한 건, 이들 역시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최다 피해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천지 교인들을 중심으로 감염이 확산하자, 이들에 대한 갖은 비난과 혐오만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정부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전국 모든 신천지 교인들을 밀접 접촉 여부와 상관없이 자가격리하도록 강제했습니다. 그 사이, ‘신천지’라는 이름이 들어간 가게, 업체 등에 발길이 끊겼다는 뉴스도 심심찮게 등장했습니다. 어떤 아파트는 명칭 변경을 논의하고 있다고 하네요.

낙인의 힘은 이토록 강력하더군요.

만약 31번 확진자가 마스크 착용이나 개인위생 관리에 대한 숙지가 어렵고, 시설을 나와 홀로 살고 있던 발달장애인이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봅니다. 혹은, 코로나 바이러스와 예방책에 대해 제대로 정보제공을 보장받지 못한 이주민이었다면. 그래서 이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일상을 보내다 우연히 다수의 사람들을 접촉했다면. 우리 사회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극단적인 상상이지만, 아마 적지 않은 사람들이 “관리가 안 되는 발달장애인은 시설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이주민에 대한 혐오와 비난을 쏟아냈을지 모릅니다. 지금 신천지 교인들에 대한 분노가 쏟아지는 것처럼 말이죠.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불안과 공포는 쉽게 혐오를 낳습니다. 그리고 이는 사회가 메꾸지 못하는 불안감을 약자·사회적 소수자 집단을 향하게 하고,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곤 합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 역시 감염 공포가 신천지 교인들에 대한 혐오로 번졌고, 코호트 격리시설도 ‘위험구역’으로 지정돼 낙인찍혔습니다. 혐오는 그 대상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정당화합니다. 증상 여부와 상관없이 관계인 전원에 대한 자가격리를 강제하고, 집단시설을 통째로 코호트 조치한 것을 모범사례로 소개하는 것처럼요.

어쩌면 이건 권력을 가진 자들이 약자를 대하는 태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겉으로는 ‘코로나19 총력 대응’을 외치면서 위기 예방에 실패한 자신들의 책임을 지우고, 분노가 향할 곳을 사회적 약자에게 겨눈다는 점에서요. 최근 장애인활동지원사나 간병 노동자가 확진 판정을 받으면 ‘감염을 퍼뜨린 신천지 교인이 아니냐’는 말들이 번졌습니다. 얼마 전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을 때까지 그를 돌보던 간병인이 함께 감염되어 사망한 사건도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돌봄 공백 상황을 최일선에서 책임지는 노동자들에게 우리 사회는 마스크 지급마저 외면했습니다. 돌봄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에 대한 존중이 사라진 곳에서, 이들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 혹은 ‘신천지 교인’이란 의혹의 낙인이 가장 강력하게 느껴지는 건 너무 지나친 생각일까요?

이렇게 말하는 저도 사실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가 급격히 확산할 무렵, 저는 뉴스를 읽다 “31번 슈퍼 확진자가 신천지라고 한다”며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했습니다. 댓글에 신천지 교인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던 기억도 나네요. 의도와 상관없이, 신천지 교인이라는 낙인으로부터 자유로운 저는 그들을 대규모 감염을 일으킨 ‘원인’인 것처럼 몰아가는 데 기여했을 겁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혐오와 낙인의 이면에는 일상에 공기처럼 흩어져 있던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있음을 마주하게 됩니다. 저 역시 ‘젊은 여성’이자 일 시키기 편한 ‘만만한 어린 활동가’의 위치였다가도, 성인·이성애자·비장애인 혹은 조직 내 자원과 정보를 많이 가진 사람으로서 권력을 가진 강자였으니까요.

위기 상황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이 ‘혐오’라는 바이러스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여실히 느끼는 요즘입니다. 문제라는 인식조차 되지 않아서 예방도 쉽지 않네요. 저는 당신이 제가 신천지 교인인지 아닌지 궁금해 하기보다, 우리를 진짜 불안하게 하는 시스템의 공백이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약자의 자리를 지우는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같이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사회적 약자·소수자에게 향하는 혐오와 차별이 문제라고 말하고, 이러한 ‘낯선’ 감수성이 공동체 안에서 진지하게 수용되고, 성찰로 이어지는 과정을 같이 만들어가자고 나와 당신께 당부하며 이 편지를 마칩니다.

 

그래서.

결론은 제가 신천지냐고요?


이것이 이 글을 읽고 남은 질문이라면, 아직 우리에게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뜻일 겁니다. 우리 모두가 ‘혐오’라는 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앞으로도 더 많은 고민을 나눠가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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