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테르 브뢰헬, “게으름뱅이의 천국”, 1567. 출처 wikimedia commons
피테르 브뢰헬, “게으름뱅이의 천국”. 출처 wikimedia commons


‘일상생활의 끔찍함’을 새삼스레 확인하는 요즘이다. 전염병이 가져다준 새로운 일상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리워 마지않는 바로 그 일상 말이다. 쏟아지는 위기와 재난의 이야기들을 헤치고 살금살금 길을 나선 눈동자는 이내 어리둥절해진다. 너무 많은 것이 바뀌고 너무 많은 것을 빼앗겨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어서. 도로와 자동차, 건물들은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꿈쩍도 하지 않고 영영 고정되어 버린 것 같은 고체적 풍경에 숨이 막힌다. 물론 견고한 파이프 속을 부지런히 흘러 다니던 부동액의 유속이 오프라인 세계에 한해 느려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상을 되찾겠다는 강력한 열망은 적어도 지금 당장 파이프가 얼어 거대한 기계를 산산조각 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이미 좀비가 된 기계의 숨통을 끊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국난을 맞이하야’ 학교와 직장에서 만성피로에 시달리던 일상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되찾고 싶은 이상향이 되고, 헬조선은 마음 따뜻한 영웅들이 가득한, 전 세계가 본받아야 할 천국이 된다. 만연했던 단절에 대한 망각 위에서 전례 없는 단절에 대한 환각적 고통이 분출된다. 그리하여 ‘현상 유지’를 위한 총력전이 펼쳐진다. 소란스러운 집단주의적 생산과 소비의 행렬로 빛났던 일상을 절대 잃지 않겠다는 일사불란한 결사가 이어진다.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갔을 약자들이 ‘영생’을 내세운 종교에 현혹된 아이러니는 이런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다. 의미를 상실한 삶에 대한 도착증의 세속적 버전은 병원에 대한 맹신이다. 과학과 기술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고, 병을 예방하고 치료한다는 마스크와 소독제, 각종 의료장치와 의약품들은 어마어마한 쓰레기가 되어 병을 일으킬 것이다. 돼지 열병 때 뿌린 살균제로 임진강에서 고기가 사라졌듯이.

병리적 일상에서 늘 벌어지는 더 많은 고통과 죽음 앞에서는 눈도 깜짝하지 않던 사회가 상대적으로 약한 위협에는 왜 더 크게 반응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그것이 아직은 변칙적이고 예외적이며 외부적인 위협으로 치부할 수 있는 작은 것이라는 점,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일상의 압축판인 비상사태는 역설적으로 체제의 내재적 문제들을 비껴가게 하고 그것을 강화한다. 미셸 푸코는 페스트라는 예외적 상황에서 발전한 규율 메커니즘이 파놉티콘 체제로 일반화된다고 말한다. 페스트와의 전쟁 끝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더욱 투명해진 파놉티콘에서 누릴 ‘자유로운’ 일상이다. 인간의 ‘비필수적인’ 행위를 줄이자 조금 맑아진 공기와 물이 다시 오염된 제 모습을 되찾은 ‘풍요로운’ 세상도 거기 있을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정상상태는 결코 질문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전염병의 기원은 언제나 저 바깥에 있는 야생동물이다. 철새가, 낙타가, 멧돼지가, 박쥐가 무결점의 체제를 위협하는 범인으로 소환된다. 외부의 적과의 결투에서 반드시 이겨 인간에게는 아무 변고도 없어야 한다. 다른 쪽에서는 야생동물의 서식지 파괴, 기후 위기로 인한 생태계 교란과 같은 환경 파괴를 원인으로 지목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인간의 해결책으로 파국을 막을 수 있고, 아직 ‘진짜 파국’은 오지 않았다는 믿음에서는 어느 쪽도 지지 않는다. 자연이 하는 일은 해결해야 할 문제로 여겨진다. 정착 생활과 동식물 사육, 과잉 인구와 같은 전염병의 진짜 기원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핵심은 그대로 둔 채 각성하고 행동하면 세상은 우리의 결단에 감사하며 변화할 것이다. 

자연은 늘 자연의 일을 해 왔고, 지금도 그럴 뿐이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벌과 나비가 날아들듯이, 망가진 환경에서 새들이 침묵하고 역병이 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간이 싸워 이기려는 바이러스와 기생충은 생태계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구성원으로 자연의 균형에 일조한다. 과잉 개체 수를 조절하는 것도 그 역할 중 하나다. 미생물이나 바이러스를 제거하고 차단한 ‘청결하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병에 더 잘 걸리는 것처럼, 바이러스 없는 세상에서는 인간도 존재할 수 없다. 반면 방사능 오염으로 사람들이 떠난 후쿠시마에 북적이는 동물들이 증명하듯, 인간 없는 세상에서는 자연이 다시 번성한다. 제임스 러브록이 인간을 지구의 악성 바이러스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의미에서였겠지만, 인간은 바이러스만 한 존재가 못 된다. 지구의 다른 존재들은 살 수 없게 된 환경에서 병들고 죽지만, 인간은 살 수 없는 환경을 만들고도 병에 걸리는 것을 용납하지 못할 뿐 아니라 빵과 서커스를 돌려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각종 조치는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방식에 의해 유지되어왔는가를 반증한다. 

선한 자들은 승리할 것이고, 우리는 잃어버린 적도 없는 일상을 되찾을 것이다. 이른 축배를 권한다.

 

 

글_ 김혜나 대구대학교 연구중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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