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선서하세요.”

“선서. 양심에 따라 숨기거나 보태지 아니하고 사실 그대로 말하며, 만일 거짓말을 하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작년 여름, 포항 법원 제1호 법정. 나는 형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내 왼편에는 검사가, 오른편 피고인석에는 한동대 학생처장이 앉아 있었다. 죄명은 명예훼손. 학생처장이 나의 실명과 함께 나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이 담긴 문자를 교회에 퍼뜨렸기 때문이다. 새삼 피고인석에 “국민”으로서 앉아 있는 학생처장의 모습이 묘하게 다가왔다. 2년 전, “국민으로서 얘기하려면 학교 밖에서 해!”라고 소리치던 그날 때문이다.

2년 전 그날, ‘문제’의 페미니즘 강연 시작 여섯 시간 전,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지민 님, 학생처에서 갑자기 들꽃을 불렀어요. 자세한 건 가봐야 알겠지만, 강연을 취소하려는 것 같아요. 어떡하죠?” H의 급박한 목소리가 들렸다. H는 지난 학기 들꽃에서 함께 활동했던 동료였다. H가 나에게 전화를 하게 된 정황은 이랬다. 

점심쯤 학생처에서 강연 포스터에 적힌 담당자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강연과 관련해 할 말이 있다며 주최 단체인 들꽃을 학생처로 소환했다. 생소한 상황에 H와 들꽃 구성원들은 당황한 것 같았다. 학생처에서 대뜸 학생들을 소환하는 일도, 강연 당일에 강연에 관해 할 말이 있다며 학생처로 부르는 일도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들꽃 구성원들은 주변에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전화를 받은 나는 급하게 학교로 향했다.

나를 포함한 여섯 명의 학생이 학생처장실에 들어갔다. 학생처장은 대뜸 “강연? 못 해 그거. 규정에 안 돼”라며 엄포를 놨다. 왜 안 되는지 학생들이 이유를 묻자, 학생처장은 두 가지 이유를 말했다. 오늘 강연이 ‘이단 사상에 근거한 집회’라는 점과 ‘기말고사 일주일 전 행사 금지’라는 학칙을 위배한다는 것이었다. 학생처장은 만약 강연을 진행한다면 징계를 받을 수 있다고도 말했다. 

납득할 수 없었던 나와 들꽃 학생들은 학생처장의 말을 하나하나 반박했다.

 

“오늘 강연은 페미니즘 강연입니다. 이단 사상에 근거한 집회가 아닙니다. 심지어 페미니즘 강연은 지난 2년간 매 학기 열렸습니다.”

“학생처가 제시한 규정 또한 어느 단체나 행사에도 적용된 적 없는 사문화된 학칙입니다.”

“오늘 강연은 한 달 전부터 학교에 신고를 마쳤고, 총학생회로부터 장소 대관을 했으며 강연 포스터에도 학생처의 신고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강연 내용이 무엇이든 이런 식으로 학교에서 검열하고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학생처장은 고압적인 태도로 호통만 늘어놓았다. “지금 동성애나 이런 거, 이건 거의 종교와 대립하는 거야!” “한동대는 반동성애 입장도 표명한 대학이고 목표가 뚜렷한 기관이야.” “학교를 후원하겠다던 많은 사람이 후원을 끊겠다고 했어!”

의도가 뻔히 보이는 학생처장의 말에 쉽게 물러설 수 없었다. 당장 학생처장의 행동을 받아들일 수도 없었지만, 이 상황 자체가 심각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보직 교수가 학생들을 소환해서 강연 취소를 협박하는 일은 그 누구에게도 일어나선 안 될 일이었다. 참다못한 한 학생이 말했다. “교수님, 지금 하시는 행동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 일입니다.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입니다.” 학생처장은 답했다. “너 왜 지금 여기서 헌법 얘기를 해. 여기는 한동대야!”
 

“한동대도 한국 땅입니다. 한국의 헌법과 법률을 지켜야 합니다.”

“왜 헌법 이야기를 하냐니까. 난 지금 한동대 교수로서 한동대 이야기를 하는 거라고!”

“헌법이 학칙 위에 있습니다. 헌법을 지키지 않겠다는 말씀이신가요?”

“나는 지금 교수로서 학생과 대화하고 있는 거야. 대한민국 국민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저는 국민으로서 이야기를…”

“국민으로서 얘기하려면 학교 밖에서 해!”

“학교 안도 한국입니다.”

“학교 안도 한국이지. 그런데 여기는 한동대라고!”


더는 대화가 불가능했다. 결국, 학생처장은 잔뜩 흥분한 상태로 학생들을 내보냈다. 문제가 있는 강연인지 자신이 직접 “모니터링”할 거고, 문제가 되면 징계할 수 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나가는 내내 분함이 풀리질 않았다. 어떻게 2017년에,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이런 일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날 수 있을까.
 

ⓒ뉴담
한동대학교. ⓒ뉴담

그간 학교의 행태가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직전 학기, 학교는 ‘반동성애 대학 선언’을 학교 공식 입장이라며 발표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에는 ‘동성애 바로 알기’라는 대형 특강을 교내에서 열고 600여 명이 넘는 학생들을 듣게 했다. 그 자리에서는 “동성애는 죄”라는 말이 울려 퍼졌다. 매 학기 열리는 수업들도 다르지 않았다. 동성애가 죄라는 말이 매번 빠지지 않고 나오는 수업이 있는가 하면, ‘아내가 남편이랑 섹스를 안 해주니까 남편이 외도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수업도 있었다. 명절을 앞두고는 학교 인트라넷 공지에 서울역에서 ‘반동성애 전단지’를 배포할 아르바이트생을 구인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 글을 올린 사람 역시 한동대 교수였다.

정말 문제는 이런 상황이 문제로 여겨지지 않거나,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이 예민하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분위기였다. ‘아내가 남편이랑 섹스를 안 해주니까 남편이 외도를 하는 것’이라던 교수에 대한 몇몇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때도, 다수의 학생이 교수의 호위병을 자처했다. 호위병들은 ‘우리 교수님한테 감히’라는 인식을 토대로 오히려 문제 제기한 학생들을 비난했다. ‘하나님의 대학’ 안에서 교수와 목사의 말은 곧 ‘말씀’이 되었다. 문제가 일어나도 문제가 되지 않고, 비판을 해도 ‘감히’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서 학생처장도 하던 대로 하던 것뿐이었을지도 모른다. 늘 그래왔고, 늘 그게 통했으니까. 페미니즘 강연 바로 한 달 전에도 학교는 학생들의 세미나를 취소시킨 전력이 있다. 인권법학회에서 주최한 퀴어 신학 세미나였다. 그때도 비슷한 논리였다. ‘한동대는 반동성애 대학이다. 그런 세미나를 할 수 없다.’

2년여가 지나 법정의 피고인석에는 학생처장이 앉아 있었다. “국민”으로서 공손히 앉아 있는 그의 모습. 학교 안에서 학생들에게 호통치며 헌법도 가뿐히 무시하던 그는 잔뜩 움츠러든 채 앉아 있었다. 자신들만의 견고한 성을 만들고 그 안에서 혐오를 재생산하며 종교라는 이름 아래 숨던 그는 이제 ‘대한민국’의 법정에서 자신도 예외 없는 국민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 한동대 부당징계 사건은 ‘징계 무효’라는 승소 판결로 하나의 마침표를 찍었지만, 단지 재판 승소가 끝이 될 수는 없다. 이 사건은 한 개인만의 일도, 한동대만의 일도, 특정 종교만의 일도, 대학이란 특정 공간만의 일도 아니다, 한동대를 비롯한 기독교, 나아가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혐오와 차별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그저 흘러가고 사라지며 없었던 일이 되지 않도록 한동대 부당징계 사건을 구석구석 기록한다.

 

글 _ 지민

한동대 부당징계 당사자. 비혼생활공동체에서 폴리아모리 관계를 맺고 있으며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등에서 활동합니다. 염치 아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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