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으로서 호소할 사람이 경주시민밖에 없다”
“유가족으로서 호소할 사람이 경주시민밖에 없다”
  • 김용식
  • 승인 2020.04.02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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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살인진압 책임자 공천 규탄 기자회견 열려

 

용산참사 살인진압 책임자 김석기 후보 공천 규탄 기자회견

1일 경주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용산참사진상규명및재개발제도개선위원회(이하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1대 국회의원 선거 경주시 선거구 후보자로 미래통합당이 용산참사 책임자 중 한 명인 김석기 의원을 공천한 것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석기 후보 선거 사무소 앞에서 열린 이날 기자회견에는 약 100여 명의 경주시민과 용산참사 유족, 시민사회 단체 회원이 참석했다.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조희주 대표는 “경주시민들이 정말 많이 와 주셔서 고맙다. 김석기가 더 이상 국회로 진출할 수 없겠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용산참사 아니 용산학살 11년이 되었다. 경찰청 인권침해조사위원회는 국가책임이라고 했다. 용산학살 당시 김석기는 경찰청장 내정자였다. 기동대장 등이 무리한 진압이라고 건의했음에도 강경 진압을 했다. 무리한 진압으로 6명을 학살했다. 4년 전에도 국회에 진출했는데 다시 국회에 보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유가족과 함께 이 자리에 왔다”며 경주시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 줄 것을 요청했다.

정태영 시민은 “미래통합당이란 정당이 미래가 있는 정당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경주지역 대표를 뽑는데 무슨 호떡 뒤집는 것도 아니고 이리 뒤집었다, 저리 뒤집었다 뭐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지난 총선 때도 용산참사 유족들이 내려왔는데 또 오셨다. 우리 경주시민들이 막아야 할 일들을 유족들이 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는 미래통합당 공천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게 해야 한다. 미래통합당에 경주시민의 힘을 보여주자”라고 말했다.

유가족 전재숙 어머니는 “유가족으로 호소할 사람들이 경주시민밖에 없다. 이 자리에 서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김석기를 내몰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이 자리에 왔다. 2009년 살고 싶고 살아보고 싶은 사람들을 경찰청장 내정 하루 만에 밀어붙였다. 김석기는 지금도 용산과 같은 일이 있다면 똑같이 하겠다고 한다. 그런 사람을 국회로 들여보내서는 안 된다. 10년 동안 김석기 얼굴만 보면 오한이 난다. 경주시민들께서 유가족의 목소리를 헤아려 달라고 간곡한 목소리로 말씀드린다”라고 호소했다.

 

용산참사 유가족 전재숙 어머니
경주시민에게 호소하는 용산참사 유가족 전재숙 씨.

용산참사 당시 철거민 측 변호인을 맡았던 권영국 변호사는 “‘사람이 있다, 우리도 사람이다’라고 외치는 이들에게 경찰특공대를 투입해서 잔인하게 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경찰청장이 오로지 권력에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의 본문을 망각했다. 사람을 죽여 놓고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사람은 국민을 대표할 자격이 없다. 죄가 없어서 처벌받지 않는 것이 아니다. 공소시효에 숨어서 처벌받지 않고 있다”며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명희 여성노동자회 회장은 기자회견문 낭독을 통해 “김석기 국회의원의 경주 공천 소식을 접한 용산 유가족의 피 끓는 호소를 외면할 수 없기에 이 자리에 모였다”며, “사과도 없이, 반성도 없이 자신을 성찰하지 않고 권력만을 추구하는 자들을 심판하고, 국가권력에 희생된 용산참사의 희생자들과 유족들의 아픔을 잊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집회를 마친 후 유가족 전재숙 씨는 “김석기가 공천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지금까지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기자회견인데 100명이 넘는 경주 분들이 참석해 주셔서 고맙다”는 말로 경주시민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김석기 국회의원은 2009년 용산참사 당시 진압 책임자인 서울경찰청장이었으며, 경찰청장 내정자 신분이었다. 지난 3월 6일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회에 의해 컷오프 된 뒤 최고위원회의 결정으로 경선에 올라 3월 26일 경주시 선거구에서 재공천을 받았다.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는 윤명희 경주여성회 회장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는 윤명희 경주여성노동자회 회장

* 용산참사는 2006년 서울 용산 재개발 계획이 수립된 후, 2008년 7월부터 시작된 용산 4구역에 대한 강제 이주와 철거가 발단이었다. 철거가 시작되자 용산 4구역 세입자들과 전국철거민연합회 회원 30여 명은 2009년 1월 19일부터 용산 4구역 남일당 상가 건물에 망루를 짓고 농성을 시작했다. 경찰은 농성 시작 만 하루가 지나지 않은 1월 20일 새벽 경찰특공대를 투입하여 강제 진압에 나섰다. 강제 진압 과정에서 큰불이 나면서 6명(농성자 5명, 경찰특공대원 1명)이 죽고, 23명이 다치는 참사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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