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경북지역 ‘6.13 지방선거 모의투표’에 참가한 청소년들. ‘6.13 지방선거 청소년모의투표 경북운동본부’가 온·오프라인으로 실시한 모의선거에 경북지역 청소년 2800여 명이 참여했다. 사진 출처 구미YMCA

민주주의 역사는 참정권 확대의 역사

선거를 통해 시민의 대표를 선출하고 선출된 자가 권한을 위임받아 정치적 행위를 대리하는 대의정치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이후 지금은 전 세계적인 정치체제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도 신라 시대 육부촌에 모여 씨족의 대표자가 나라의 온갖 일들을 결정하던 시대에서 지방호족들을 제압하고 강력한 왕권 국가가 지속하다가 일제의 침략과 패망을 거쳐 민주공화국이 탄생하기까지 숱한 민중들의 봉기가 있었고 이는 정치는 누구를 향해야 하는지, 나라의 주인은 누구인지를 부당한 권력에 맞서 피 흘려 물은 우리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세계적으로 선거라는 제도가 생겨나고 형식상 절대 권력은 무너졌지만 인종, 성별, 재산, 교육 정도에 따른 참정권의 제한은 여전하였다. 왕정과 제국주의 시대를 지나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식민지에서 해방된 국가들 대부분은 민주주의, 국민 주권주의, 대의정치의 원리가 구현되는 ‘공화국’ 형태의 국가체제를 선택하였지만, 적지 않은 나라들은 다시 독재자들의 핍박 속에 민주주의를 유린당하며 무늬만 ‘민주공화국’인 체로 긴 시간을 보내왔다.

대한민국정부수립을 위한 법률 제121호

우리나라도 30년 전 오늘, 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 여러 가지 정치 상황으로 인해 군인정치를 종식하지는 못했지만, ‘대통령 직선제’라는 기본적인 시민권을 다시 찾아왔고 실질적 민주주의 대한 열망을 고조시켜 5년 후에는 마침내 문민정부를 탄생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선거권은 1948년, 미군정하에서 정부 수립을 위해 제정한 법령에서 ‘국민으로서 만 21세 이상의 자’라고 규정되어 있고, 또한 ‘친일 부역한 자는 박탈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이 선거권은 1950년 6월 공포된 ‘국회의원선거법’에서 만 20세로 낮추어졌으나 친일 부역자의 선거권을 박탈한다는 조항은 빠지게 된다.

이후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는 전쟁과 독재 정권을 겪었으며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발전 또한 이룩하였다. 그동안 강대국과 권력 야욕에 찬 이들로 인해 민중들이 겪은 수난은 헤아릴 수 없으나, 전쟁의 피해를 극복하고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며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것은 모두 시민들의 힘이다. 그러한 역사는 지금의 대한민국 헌법에 고스란히 남아 주권 재민의 민주공화국을 유지하고 있다.


반세기 동안 단 ‘2살’ 낮아진 선거권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난 뒤 반세기를 넘어오는 동안 ‘주권 재민’의 헌법정신을 구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선거 연령에 의한 차별의 문제이다. 서구사회가 성별, 인종, 재산 등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 참정권을 시민들의 힘으로 하나하나 확보해 나온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시행된 첫 총선거에서 비교적 평등한 참정권을 부여받았다. 70년이 지난 오늘 우리나라는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그때에 비교해 눈부실 정도로 발전하였으며 인권과 복지의 측면에서도 많은 발전을 이뤄냈다. 하지만 유독 청소년과 청년들의 정치 참여에 대한 권리는 1950년 선거 가능 연령 만 20세에서 2005년까지 55년이 지나는 동안 단 ‘한 살’만이 낮아졌을 뿐이다. 그 이후 15년이 지나 지난 연말 공직선거법이 극적으로 개정되면서 다시 ‘한 살’이 낮추어졌다. 다른 나라의 경우를 비교해 보아도 너무나 더딘 속도이며 특히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손쉽게 습득할 수 있는 지금의 정보화 사회 속에 자라온 젊은 세대들을 애써 무시하는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20년째 요구하고 있는 18세 선거권

 

자료 이미지 출처 : 1997년 5월 24일자 한겨레신문 기사

 ‘직장도 있고, 세금도 내고, 군대도 간다! 왜 투표만 안 되나?’

 ‘정당한 참정권을 달라!’

 ‘헌법소원이 이어진다. 노동계·야당도 나섰다.’

작년 선거법 개정을 앞두고 전국적으로 여론의 주목을 받았던 ‘18세 참정권’ 관련 기사가 아니다. 20년 전 한 신문의 기사의 내용이다. 투표하고 싶다고 인터뷰한 열여덟의 청년은 지금 40대 중년이 되었지만, 고작 이제서야 투표일 기준으로 생일이 지난 열여덟 살까지만 투표할 수 있다. 같은 학년에 있는 다른 친구들은 미성숙한 것일까?

지면상 모두 싣지 못하지만 이후에도 대선, 총선,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와 같은 기사는 반복됐다.

99년에는 ‘청소년연대’를 준비하며 ‘18세 참정권 허용’ 운동을 시작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와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정당을 만들어 사회를 비판하고 정치 참여를 이뤄내고자 한다는 ‘99모스키토’라는 연극이 주목을 받고 있다는 기사를 볼 수 있다.

이렇듯 청소년 참정권에 대한 요구는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으며, 청소년 당사자 조직의 결성, 연극이나 음악 등 문화적인 형태로도 표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은 사회문화적 여건이 그때의 상황과 비교해 충분히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청소년 참정권 요구’에 대한 다양하고 대중적인 방식의 접근은 찾아보기 어렵다.


청소년 모의투표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

이러한 흐름 속에서 청소년YMCA가 제안하고 한국YMCA와 시민단체들이 연대하여 진행한 지난 모의투표 운동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지난 두 번의 모의투표를 통해 첫째, 기자회견, 캠페인, 국회 토론회 등의 단순한 형태의 어드보커시 운동을 넘어 청소년 당사자들의 참여를 직접 이끌어 청소년들이 정치적으로 무관심하다는 일각의 우려를 걷어내었다. 약 6만 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선거인단으로 등록하여 약 86%인 5만 1천여 명이 투표함으로써 청소년들이 결코 정치에 무관심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오프라인 투표소가 설치된 한 지역에서는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아 투표할 수 없는 상황의 청소년이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신분증을 가지고 와서 투표소를 다시 찾아와 투표한 사례도 있었다.

 

둘째, 선거권은 정치에 대한 지식을 갖춘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그러한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됨으로써 정치에 관한 관심과 지식을 스스로 함양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계기가 되었다. 선거인단으로 등록하고 투표를 하기 전까지 모의투표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자신이 선택하고자 하는 후보들의 면면과 그들의 정책에 대해 주변의 사람들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시시각각 보도되는 포털과 언론의 기사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 후보는 어떠하고 저 후보는 어떻다는 등의 나름으로 판단 기준을 세워가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일반 유권자들과 별다름없는 행동 패턴을 보여주었다. (모의투표를 알게 된 경로는 뉴스, TV 등 언론 보도가 71.6%로 압도적으로 높다. 대선 후보 정보를 가장 많이 전달받은 매체 또한 언론 보도가 35.7%로 36.4%인 SNS 게시물에 이어 0.7% 차이로 2위를 차지했다.)

셋째, 더욱 깨끗한 정치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선거 연령 하향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분석 개표 결과로 추정해보면, 참여한 청소년들이 후보자를 선택한 가장 큰 기준은 ‘정책’과 ‘토론 태도’이다. 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선 후보를 선택한 기준으로 후보자의 공약이 69.1%, 후보자의 토론 태도가 26.7%로 2위를 자치했다. (지역 연고에 따른 투표행위나 특정 정파적 선택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향후 지역 유권자 수와 비례한 교차분석, 투표자의 성향 파악 등 보다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실제 지난 대통령선거 결과와 모의투표를 비교해보면 1위 후보를 제외하고는 전혀 다른 개표 결과를 볼 수 있었다. 실제 대선에서 득표율 6.5%로 5위를 차지한 심상정 후보가 모의 대선에서는 1위 문재인 후보와 불과 3.12%의 격차밖에 나지 않은 데다 지역별 개표 결과에서는 심상정 후보가 1위를 차지한 곳이 더 많다는 것은 특정 정치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선호만으로 해석하기 어렵다. 보다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대선 기간 동안 보여준 심상정 후보의 성소수자 인권 옹호 행보, TV 토론에서 보여준 정책 위주의 토론 자세 등이 청소년들에게 호감을 얻었으리라 추측된다.


참정권 확대 실현을 위한 과제

민주주의 발달의 역사는 시민권의 확대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시민이지 못했던 여성과 시민일 수 없었던 유색인종들과 그 사회의 시민이어서는 안 되는 소수 종교의 사람들이 같은 사회의 시민임을 인정받기 위한 역사다. 고학력과 경쟁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의 청소년들은 하루빨리 시민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 나은 시장으로의 편입을 위해 사투를 벌여야 하는 시간에 정치적 권리 따위는 나중에 누려도 되는 것으로 사회적으로, 아니 어쩌면 스스로가 억눌러 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제도의 변화를 요구하는 동시에 그들에게 스스로 시민이 되고자 하는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일일 것이다.


1. 정치교육센터의 설치와 정치교육의 제도화 요구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선거연령을 지금보다 낮추 것을 반대하는 응답이 20%~50% 내외로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번 모의투표 운동본부 발족을 준비하기 위해 모인 첫 번째 자리에서 한 청소년활동가의 고백은 우리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사실 우리가 함께 하는 청소년들 회원들조차 그들이 왜 참정권을 가져야 하는지 관심이 없으며, 청소년 참정권 실현에 반대하는 친구들도 적지 않아서 과연 이것을 당사자 운동의 차원에서 추동할 수 있을까”라는 자조 섞인 푸념이었다. 다른 활동가들도 그의 물음에 동의하며 캠페인을 위한 캠페인이 되지 않으려면 그들에게 충분한 정보와 관련 교육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당장은 제도적 보완이 어려우니, 교육 커리큘럼을 만들고 보급하는 일을 동시에 진행하기로 하였다.

이 같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치교육-민주시민교육’을 제도화하고 독일과 같이 ‘정치교육센터’를 설립하여 어릴 때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키워가는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독일 연방정치교육센터는 1952년 설립되어 국민들에게 의회주의적 정부 형태와 민주주의 정치 규칙을 교육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집권 여당의 공약 사항이기도 한 18세 투표권의 확보는 지금 현실화되었지만, 교육체제 안에서의 정치교육의 제도화는 청와대와 교육부, 국가인권위원회 등의 기관과의 협의와 토론을 통해 꾸준히 추진해 나가야 한다.


2. 모의투표 제도의 공식화

역대 선거 통계를 보면 첫 투표권을 행사하는 만 19세의 투표율은 20, 30대보다 높지만 20대가 되면 투표율은 전 세대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나타낸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정치인과 정책에 대한 거리감 즉, 자신의 삶을 정치가 나아지게 하지 않는다는 정치에 대한 불신은 이후 정치 참여에 대한 거부감으로 표출된다. 우리가 진행해 온 모의투표는 앞서 제시한 정치교육의 제도화와 더불어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하여야 한다.

미국의 경우 많은 초·중·고등학교에서 선거에 대해 정책분석을 하고 토론을 거쳐 모의투표를 실시하고 있다. 대선 기간 동안 미국 어린이 잡지 ‘Scholastic News’에서는 전국의 153,000명의 만 6~18세 학생을 대상으로 어떤 후보를 선택할 것인지 모의투표를 통해 결과를 발표하는 등 미국 사회 전체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다양한 방식으로 유도하였다. 최근 통계자료에 따르면 만 18-19세 유권자 중 80% 이상이 자신이 지지하는 특정 정당이 있다고 대답하고 있다. 타 연령대보다 실제 투표율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다수의 청소년들이 명확한 정치적 지식과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더불어 현재 미국에서는 선거연령을 만 16세로 낮추자는 요구도 계속되고 있다.

독일은 교육부가 연방의회 선거 직전 모의투표를 공식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스웨덴 또한 보통선거가 열리는 9월 전에 각 학교에서 모의선거를 실시하며 학생회에서 정당원을 초청하거나 정당에 가입된 학생들이 학교에서 유세를 벌이는 풍경을 볼 수도 있다. 핀란드는 모의투표를 주요 교육과정의 하나로 진행하고 있고, 17세 이상의 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는 코스타리카의 경우는 국가기관의 주도하에 12살 이상 청소년들에게 모의투표 자격을 주어 가장 적극적인 형태의 민주시민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난 대선에서 경기도 수원에 있는 한 고교의 교사는 수업 시간에 대선 ‘모의투표’ 계기 교육을 하려고 교감과 교장에게 결재를 올렸다. 교감 결재는 받았지만, 교장이 끝내 결재하지 않아 결국 포기했다. 경기도교육청이 대선 계기 교육 권장 공문을 학교에 보냈으나 교장에게 가로막힌 것이다. (※오마이뉴스, <교육 선진국은 학교 모의투표 ‘대박’, 한국은 ‘쪽박’>)

이와는 달리 거창 샛별중학교의 경우 학교 차원에서 전교생 177명이 이번 대선 모의투표에 참여하였다. 1위를 차지한 심상정 후보가 당선증을 직접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례를 바탕으로 학교 현장에서 모의투표 활동이 공식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법 제도의 개선과 방식의 논의를 활성화하여야 한다.


3. 정당 활동의 보장 요구

앞서 지적하였듯이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정치 참여에 대한 중요성과 필요성을 교육받아 본 적이 없을뿐더러, 정치의 영역은 자기의 삶과 괴리되어 있음을 어릴 때부터 확인받으며 자란다. 정치는 어렵고 특정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요구를 파악하여 시민들이 더욱 행복한 삶을 누리게 하는 데 목적이 있으며, 이러한 시민들의 요구를 바탕으로 같은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정책을 만들고, 선거를 준비하는 것이 바로 정당이다.

독일은 각 정당에 따라 다르지만 14세~16세, 영국과 프랑스는 제한이 없는 정당도 있지만 14세~15세 이상이면 정당 가입이 허용된다. 핀란드의 경우 15세 이상은 정당의 가입과 정치 활동을 할 있으며, 학교 안에서도 허용된다. 최근에는 대선 후보들이 직접 고등학교에 방문하여 정견을 발표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정치가 학교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는 새로운 방식의 실험인 것이다.

민주주의의 꽃이 선거라고 한다면, 정당의 가입과 활동은 민주주의 정원이라 할 수 있다. 이미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선거 연령을 낮추는 것과 정당 가입 연령은 선거권 연령 보다 낮춰야 한다는 상임위원회 결정을 국회의장에게 보낸 적이 있으며, 정치적 판단 능력을 갖추는 연령이 낮아지는 추세로, 전통사회의 ‘성인’이나 ‘성숙’의 개념을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정당이라는 시민의 자유로운 결사체의 구성원 자격은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개방되는 것이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한다며 정당 가입 연령을 선거권 연령 보다 더 낮추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 보고서, 2012)

우리나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또한 정당법 개정 의견 초안에서 관련 조항을 삭제한 바 있어 아쉽기는 하지만 16세 이상 청소년의 정당 가입을 허용하는 정당법 개정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청소년의 정당 가입과 활동에 대한 긍정적인 논의는 정부기관에서조차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시민사회에서 앞장서 문재인 정부를 비롯한 각 정당들과의 논의를 주도할 필요가 있다.


학교와 지역사회를 정치 참여의 장으로

앞서 보는 바와 같이 학교에서의 정치교육과 모의투표의 시행, 정당 활동의 자유는 많은 국가에서 이미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으며 그 순기능이 확인되고 있다. 일부에서 우려하는 학교의 정치화 또는 학업 분위기의 훼손은 오히려 현재의 입시 위주의 교육체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역설에 불과하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기 위한 존재로서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데에 동의한다면, 학교는 닫힌 교문을 열고 청소년들의 민주시민으로서의 성장에 필요한 이러한 제안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 또한 끊임없이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청소년 정치 참여 방안에 대한 공론화를 시도하여야 하며, 제도권에서 실현 가능한 방안들을 함께 고민하여야 한다. 현재 경기도, 경상남도교육청 등에서 실시하고 있는 민주시민교육을 확대하여 필수 교육과정에 넣고, 정치권과 더불어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번 4월 15일은 선거법 개정 이후 만 18세 청소년이 처음으로 투표권을 가지게 되는 날이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으로 개학 및 수능이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고 있고 지금 선거에서의 정책은 사라져버렸지만, 청소년들의 참정권 확대와 정치교육의 제도화에 관한 토론 그리고 학교 안에서의 정치적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안을 계속 논의해야 한다.


선거권 뿐 아니라 피선거권의 확보 또한 필요해

주지하다시피 18세 이하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를 보장하고 있는 나라들은 현재 93%에 달한다. OECD 가입 35개국 중 만 19세인 유일한 국가였던 대한민국은 이제 겨우 세계적 평균에 도달했다. 물론 피선거권은 지방선거의 경우 만 25세로 10대를 대변할 수 있는 당사자들의 정치활동은 아직도 요원하다. 이웃나라 일본은 작년 헌법을 개정하면서 만 20세에서 만 18세로 선거연령을 인하하였다. 영국은 1969년, 캐나다는 1970년, 미국은 1971년, 호주는 1973년, 독일은 1976년에 모두 만 18세로 선거권을 하향 조정했다. 이 같은 나라들은 선거권과 피선거권의 차이를 별로 두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다른 나라처럼 선거연령(선거권, 피선거권)을 하향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시민사회가 성숙해지고 청소년들의 삶이 갑자기 나아질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의 참정권의 실현을 하루빨리 앞당겨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어떠한 것을 이룩하기 위한 목표가 아니라, 이치에 맞지 않는 현실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굳이 대한민국의 18세가 이행하고 있는 국민의 의무를 열거하지 않아도, 18세가 되면 현재 할 수 있는 여타의 국가적 허용 사례를 애써 나열하지 않아도, 현시대의 상식에 부합하는 법 제도의 개정과 시행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권력을 가진 자들은 그 권력을 나누는 일에 인색했으며 때론 피부색으로, 때론 성별로, 때로는 종족, 재산, 나이 등으로 구분 지어 마치 그것이 정당한 차별인 것처럼 사람들에게 인식시켜왔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가 아니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이 그러했고, 마틴 루터킹의 나라 미국이 그러했으며, 전태일이 죽어간 우리나라 또한 마찬가지였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이미 아메리카 대륙엔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처럼 청소년 참정권 실현의 길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미지의 대륙을 탐험하는 여정이 아니다. 그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그들의 존재 가치를 제도로써 사회적으로 확인시켜주는 일이며 굳이 달걀을 깨어 세워 보이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 따듯한 체온으로 감싸주면 스무 날이 지나 스스로 부화하여 홀로 서게 될 것이다. 달걀은 콜럼버스의 것이 아니다.

 

 

참고 자료

대한민국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
국가인권위원회
청소년인권연대 추진단
한겨레신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EBS 교육대토론



글 _ 구미YMCA 최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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