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시대, 자연에서 위안을 구하는 이들에게

 

"나무를 심은 사람" 영화 포스터 이미지
“나무를 심은 사람” 영화 포스터 이미지

1. ‘역병의 시간’을 견디기 위한 귀의처는 결국 자연

코로나19로 변모한 세계는 아무래도 그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 인간의 오만을 비웃는 이 신종 바이러스는 아마 오랫동안 인간을 뒤흔들 것이고, 여러 공상과학물에서 미래의 청사진으로 상상되던 2020년은 인간의 역사에서 떼어내지 못한 질병의 기록에 한 획을 긋는 해로 기억될 공산이 크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상징되는 2020년의 신풍속도는 과연 얼마나 ‘사회적 고립’과 다를까?

많은 이들이 고립으로 인한 피로를 호소하는 중이고, 불안정노동에 종사하거나 일상에서 지원 없이는 사회생활이 어려운 장애인, 노약자의 경우 생존의 위협에 처해 있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대중 공간을 피해 산책을 하거나 교외로 몰려가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어내려 노력한다. 마침 4월 초의 바깥세상은 인간들의 혼란과는 무관한 듯 봄을 만끽하며 피어나는 중이다. 결국, 하늘을 찌를 듯 보이던 자기중심주의는 참 초라하고 앙상했던 실체로 드러나고, 해외 단신으로 종종 올라오는, 인간이 사라진 공간에 다시 출현한 자연계의 존재를 보면서 자연의 위력에 감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실 이런 현상은 굳이 코로나19 이후가 아니라도 근대 이후 익숙한 일들이다. 고도로 발전된 과학 관련 종사자들이 오히려 신의 존재를 고민하거나 자연의 위대함에 경외심을 보내며, 철학적 고민과 환경보호에 앞장서는 사례는 아주 흔하다. 그런 유형의 잘 알려진 일화들을 소개하려 한다.


2. 소설과 애니메이션으로 만나는 <나무를 심은 사람>

4월 5일 식목일마다 호출되는 작품이 있다. 소설과 만화영화로 잘 알려진 <나무를 심은 사람>이다. 정작 원작과 애니메이션을 제대로 감상하지 않더라도 문화적 상징의 하나로 국내에서는 인지도를 가질 정도다. 원작 소설은 성인을 위한 동화에 가까운 간결한 분량으로 다양한 판본이 국내에 소개되어 있다. 식목일 전후로 공중파 텔레비전에서 종종 소개되어 애니메이션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만 본 작품은 웹상을 떠도는 동영상(1987년 tv 방영 더빙판) 외에는 현재 별도로 구하기 어렵다. 2007년에 가톨릭 계열의 베네딕도미디어에서 dvd 박스 세트로 출시했으나 절판되었고 별도로 VOD로 온라인 판매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단, 웹상에서는 쉽게 검색해서 볼 수 있음)


2-1. 원작 : 어른들을 위한 동화

원작 <나무를 심은 사람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은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Jean Giono, 1895~1970)의 소설이다. 작가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반영해 20여 년간 다듬어 1953년에 출간되었다. 국내에선 앞서 언급한 애니메이션의 TV 방영과, 원작의 초등학교 5학년 국어 교과서 수록으로 작가는 몰라도 내용과 시각적 이미지는 널리 알려져 있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이 황폐해진 고향 황무지를 되살리기 위해 수십 년간 홀로 나무를 심어낸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워낙에 유명한 작품이라 수십 개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식목과 조림의 현실 사례를 표현할 때 ‘현실판 나무를 심은 사람 ~ ’ 류의 설명이 붙을 정도로 보편적인 상징이 된 ‘고전’이라 하겠다.

실제로 아주 정갈하고 따스한 느낌의 문체와 함께, 굳이 만화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읽는 이의 머릿속에서 그려질 만큼 생생한 표현이 일품이다. <나무를 심은 사람>이 치유에 관한 작품 가운데 첫손에 꼽히는 이유는, 작가 본인의 체험이 기반이 된(1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 주인공 세대의 상처와 그 치유를 위한 노력의 결과물인 자연의 힘을 대비시키는 설정에 있다. 

1·2차 세계대전을 거쳐 작품의 배경이 되는 프랑스의 프로방스 고원지대 또한 인간이 일으킨 비참한 전쟁과 그로 인한 파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 시대의 격랑 속에서 모든 걸 잃은 주인공은 그가 어릴 적 기억하던 숲의 아름다움을 떠올리고 그것을 부활시키는 데 남은 일생을 바친다. 동양의 고사인 ‘우공이산’과 통하는 지점이다.

20세기 과학과 진보를 표방했던 현대 문명이 어떻게 괴물을 낳고 서로를 죽이고 파괴하였는가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주인공의 결단은 한 인간이 남은 인생을 거는 운명의 무게로 자연히 전해져올 것이다. 그렇게 <나무를 심은 사람>은 그 짧은 분량만으로도 현대 문명의 부작용과 대안적 방향에 대한 성찰을 온전히 전하는 ‘고전’이 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나무를 심은 사람>의 주인공 양치기 노인의 ‘현실판’은 세계 곳곳에서 원작과 무관하게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에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들의 평소 소망-은퇴 후 내몽골 사막에서 나무를 심고 싶다-을 기억한 어머니가 12년 동안 2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약 6.7㎢ 면적의 숲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인도네시아에는 산불 후 폐허가 된 마을 뒷산에 과일은 열리지 않지만 물을 보존하는 데 탁월한 반얀 나무를 20년간 자기 힘으로만 심어 숲과 물을 부활시킨 농부가 있다. 인도에도 땅이 메말라 홍수와 가뭄이 교차하던 작은 섬에 40년 동안 나무를 심어 여의도 면적의 2배가 넘는 숲을 가꾸고 희귀동물들의 서식지로 만들어낸 노인의 사례가 영화와 동화로 소개될 정도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런 미담은 <나무를 심은 사람>과는 무관하게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나고 있지만, 그 사례 소개 기사에는 항상 장 지오노의 원작이 함께 거론된다.

 

"나무를 심은 사람" 영화 스틸 이미지


2-2. 원작을 온전히 구현한 프레데릭 백의 역작 애니메이션

장 지오노의 원작은 프랑스 출신 프레데릭 백(Frédéric Back, 1928~2013)에 의해 1987년에 30분 남짓 분량의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재창조되었다. 그리고 원작 못지않은 ‘전설’이 되었고, 이후 누구도 그 위업에 도전할 엄두를 못 내는 중이다.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3부작 이후 다른 누구도 영화로 리메이크할 엄두를 못 내는 것과 비슷한) 물론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있는 ‘조커’ 캐릭터도 있지만 <나무를 심은 사람>은 애니메이션계에서 종사하는 이들에겐 ‘신성불가침’에 가까운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중이다. 너무 허풍이 심한가? 작품을 보고 나면 그런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을 정도로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이 작품은 손에 꼽히는 명작으로 통한다.

우리에게 속칭 ‘만화영화’는 미국과 일본의 것이다. 그리고 그 짝퉁 취급받는 한국 작품이 있다. 가끔 가물에 콩 나듯 소개되는 유럽권 작품들은 생소하기 짝이 없다. 상업적으로 극장에 개봉해 명절이나 방학을 겨냥하는 우리가 익숙한 애니메이션들은 큰 자본과 많은 인력을 활용해 시각적 쾌감과 실사영화에서 보여주기 힘든 이미지를 전하는 데 강점이 있다. 원작 만화를 기반으로 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사례처럼 CG를 활용한 실사영화와 경계가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에 가려진 애니메이션의 장르와 갈래는 수면 아래 빙산처럼 거대하다. 그 가운데 ‘작가주의’ 애니메이션의 경우 높은 예술성을 인정받는 <나무를 심은 사람>의 작가 프레데릭 백은 매우 잘 알려진 작가이다.

프레데릭 백은 이 작품을 만들면서 6년 가까운 작업 기간 동안 어시스턴트 단 1명과 모든 작업을 해냈고, 그 결과로 한쪽 눈을 실명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자신의 애니메이션으로 두 번째 상을 받았다. 

이 작품의 작업 과정에 대해 간단한 예시를 들면 이렇다. 영화나 애니나 1초에 24컷이 돌아가는 활동사진의 원형에서 출발한다. 즉 30분(1,800초)×24컷=43,200장의 원화를 혼자 다 그린 셈이다. 요즘에야 3D 그래픽 작업 프로그램이 발달해 그 정도는 아니지만, 국내 영화제에서 소개되는 5분 내외 분량의 단편 독립 애니메이션을 선보이는데 2~3년이 보통 걸린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것은 극한 직업인 셈이다. 그 시절에야 정말 원화 한 장 한 장 따로 그려내야 했을 테니.

관객의 눈으로 보게 되는 <나무를 심은 사람> 애니메이션은 지금 봐도 경이로운 결과물이다. 버림받은 황량한 땅이 한 인간의 노력으로 숲이 부활하고, 강이 흐르고, 새들이 지저귀며, 사람들이 돌아와 누리는 경과에 대한 상상이 딱 그대로 살아 움직이며 춤춘다. 유화의 느낌으로 기름을 먹인 연필로 한 땀 한 땀 작가가 손수 그려낸 따스한 원색 톤은 원작의 이미지로 독자가 상상했던 원형에 가까운 느낌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장인의 집념이 빛을 발한다.

수많은 이들의 격찬과 호평은 웹상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다. 1987년 작품이지만 지금도 세계 곳곳의 영화제나 회고전에서 <나무를 심은 사람>은 종종 소개되고 있으며, 특히 환경 문제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초급 입문과정에 가까운 명성을 누린다. 그 비슷한 반열로 거론되는 일본의 스튜디오 지브리 거장들, 미야자키 하야오와 故 타카하타 이사오도 경의를 표하는 작품이라면 굳이 더 설명이 필요할까? (프레데릭 백의 작품은 <나무를 심은 사람> 외에도 자연에 대한 예찬이 기본인지라 뭐든 보면 좋다)

 

"제네시스 : 세상의 소금" 영화 포스터 이미지


3. 세계적 사진가, 인간 혐오를 극복하다 <제네시스 : 세상의 소금>

‘세바스치앙 살가두’. 1944년생 브라질 출신 세계적 사진가로, 매그넘 정회원이며 여러 국제기구 특별회원이나 대표를 맡을 정도로 저명한 작가다. 그런 그가 사진기를 내팽개친 시절이 꽤 길었다. 살가두의 사진 인생과 시련, 극복의 과정을 담은 결과물은 그의 자서전과 사진집, 그리고 살가두에 못지않은 세계적 명성을 가진 거장 감독 빔 벤더스의 다큐멘터리로 기록되어 있다.


3-1. 왜 살가두는 사진기를 버렸는가?

그 과정은 국내에 출판된 <세바스치앙 살가두, 나의 땅에서 온 지구로 De Ma Terre A La Terre>(2013)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살가두는 부유한 목장주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마치 체 게바라가 남미 횡단 여행을 통해 인생이 바뀐 것처럼 여행길에서 심각한 빈부격차와 원주민들의 현실을 접하면서 사진을 통한 현실참여의 길을 택한다. 

그리고 사진으로 찍히는 대상, 피사체에 대한 교감과 존중을 깊이 터득한 그의 사진들이 속속 작품으로 탄생한다. 프랑스 유학에서 그의 견문은 더욱 넓어진다. 경제학을 전공해 글로벌 금융 엘리트의 길을 걸을 수 있었지만, 과감히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인생 진로를 변경했을 때 주변 가족들은 목덜미 좀 잡았을 테다. 세계 곳곳의 고통받는 이들과 불평등, 모순을 담은 일련의 사진집들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만 살가두는 점차 인간 이성에 대한 불신에 찌들어간다. 그 결정타는 르완다 내전이었다. 수만의 난민이 정글 속에서 죽어가지만 자국의 이익이나 언론의 구미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방관하는 현대의 야만에 분노한 살가두는 카메라를 던지고 실의에 차 고향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고향 목장도 어느새 황량하게 메말라 있었다.

살가두는 가족들과 오랜만에 시간을 가지며 카메라를 내려놓은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나무를 심은 사람>의 양치기 노인처럼 어릴 적 고향의 풍경을 되살리고자 시도한다. 시행착오도 겪고 시련도 적지 않았지만, 목장이 위치한 계곡이 푸르러지면서 물줄기가 돌아오고 생태계가 복원되는 기적을 체험한 살가두는 다시 카메라를 든다. 그 결과물이 사진집 <Genesis : 세바스티앙 살가도 제네시스> (2013)이다. 살가두의 과거 작품세계와는 다른, 자연 위주(그리고 거기에 동화되어 살아가는 원주민들)의 사진들이지만 대상에 대한 존중과 경외의 감정은 예전 살가두의 작품세계와 닿아 있다.


3-2. 살가두의 작품세계와 삶을 활동사진으로 재현한 다큐멘터리

빔 벤더스의 다큐멘터리 <제네시스 : 세상의 소금>은 살가두가 현재 사진을 찍는 순간에서 출발해 그의 인생 궤적을 쫓는다. 살가두의 자서전 내용을 따라 유망한 국제경제 애널리스트였던 청년 살가두가 성공적 경력을 포기하고 사진가로 두 번째 인생을 결심하게 된 과정과 그의 초반 사진 작업들이 교차하면서 서사의 개연성과 함께 시각적 향연을 선보인다. 

그는 세계 각국의 오지를 발로 뛰며 그곳의 사람들은 물론, 주민들의 얼굴을 낳게 한 구조적 환경까지 담아내려 노력한다. 그렇게 리얼리즘 사진의 거장으로 명성과 영향력을 얻는다. 그리고 냉전 이후 개선되기는커녕, 강대국들이 방치한 내전과 기아를 목도하며 무너져내린다. 그랬던 살가두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목장 계곡에 250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어 숲을 되살리면서 작가 자신 또한 부활하는 과정이 다큐멘터리에 생생히 담겨 있다.

공동감독으로 표기된 살가두의 아들 훌리아노 리베이로와 빔 벤더스는 원래 별도로 분리된 두 개의 영상작업을 통합해 살가두의 인생 여정과 그에 영향을 끼친 정치 사회적 배경에 대한 상세한 묘사 부분은 살가두의 육성 메시지와 인터뷰로, 그의 분신인 사진은 현대 영상기술의 강점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고해상도 이미지로 구현해낸다. 

 

"제네시스 : 세상의 소금"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제네시스 : 세상의 소금> 스틸 이미지

살가두의 사진 인생 전반에서 흑백 명암대비가 강렬한 인물 군상들과 그가 부활하게 된 계기인 자연의 위대함, 그 피조물들에 대한 존중의 현란한 원색이 어우러지는 다큐멘터리 속 시각효과는 마치 미술 갤러리에서 음성해설을 듣는 듯 보는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다행히 살가두의 자서전과 다큐멘터리는 모두 국내에 번역 출간·개봉되어 VOD 등의 2차 매체로 구해볼 수 있다.


4. 고립과 불안의 무저갱에서 탈출하기

<나무를 심은 사람>의 장 지오노는 서유럽에서 2차 세계대전보다 더 파괴적 체험으로 기억된 1차 세계대전의 서부전선 참호전과 그로 인한 자연의 파괴 및 세대 단절의 끔찍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원작을 집필했을 것이다, <제네시스 : 세상의 소금>의 세바스치앙 살가두 또한 세기말, 20세기 내내 가장 문명과 이성이 발달한 시대에 최대 최악의 제노사이드가 끊이지 않는 인간 문명에 절망했다가 겨우 되돌아오는 체험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인간은 왜 과거의 잔혹한 경험에서 배우지 못하는가에 대해 두 작가 모두 깊은 회의에 처했고, 동류인 인간이 아니라 그토록 무시하고 파괴를 일삼던 대상인 자연에 대한 존중과 귀의로 겨우 극복할 수 있었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차가 있긴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이런 궤적을 따르는 이들과 흐름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저 부분적인 치유 방법이 아니라 현대사회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절실함을 확신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코로나19의 사회적 피로가 깊어갈수록 우리는 사소한 꽃과 나무에도 위로받는다. 하지만 그런 위로가 일회성이 되지 않으려면, 자연을 존중하고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 인간의 위치를 새롭게 설정하지 않고서는 제2, 제3의 코로나19가 창궐하지 않을 리가 없다. 문화적 요소를 그저 ‘소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역할과 유용함이 성찰의 여유로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작품 정보


나무를 심은 사람 The Man Who Planted Trees

캐나다, 애니메이션·드라마·가족, 1987, 30분, 12세 이상 관람가

감독 프레데릭 백
주연 필립 느와레, 크리스토퍼 플러머

 

제네시스 : 세상의 소금 The Salt of the Earth

프랑스·이탈리아·브라질, 드라마·다큐멘터리, 2014
2015.02.26. 개봉, 110분, 12세 관람가

감독 빔 벤더스, 훌리아노 리베이로 살가도
주연 세바스치앙 살가두, 빔 벤더스, 훌리아노 리베이로 살가도

67회 칸영화제(2014) 주목할만한 시선 특별상
36회 모스크바국제영화제(2014) 초청(스페셜 스크리닝)
63회 멜버른국제영화제(2014) 초청(다큐멘터리)
62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2014) 관객상
16회 리우데자네이루국제영화제(2014) 초청(개막작)
19회 부산국제영화제(2014) 초청(와이드 앵글-다큐멘터리 쇼케이스)
25회 스톡홀름국제영화제(2014) 초청(다큐매니아)
40회 세자르영화제(2015) 다큐멘터리상
39회 홍콩국제영화제(2015) 초청(마스터)
3회 무주산골영화(2015) 초청(영화 판(場))
0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2015) 초청(산+울림)
15회 서울환경영화제(2018) 초청(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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