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나, 우리에게 돌아온 사월

 

2014년 이후 여섯 번째 사월이 돌아왔다.

하필 그 전날이 21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일이다. 많은 이들이 이제 4.16은 역사의 영역으로 가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필자 또한 그랬다. <당신의 사월>이 처음으로 공개되던 2019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볼 때도 ‘의무방어전’을 하는 심정이었다. 흥미로운 몇몇 장면들, 아는 얼굴 찾아보기, 궁금했던 이들의 후일담 같은 데 반응하면서 영화를 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기준으로) 5년이 지났으니 슬슬 이런 평가와 회고를 중심으로 작품이 나올 때가 되었지, 그리고 내년 봄에 개봉하겠구나 하는 그런 선입견.

얼마 전 글을 쓰기 위해 영화를 다시 보았다. 부산에서 봤던 영화에서 꽤 새로운 장면이 들어가고 편집이 변했다. 극장 개봉을 준비하면서 수정이 들어갔구나 하며 숨은그림 찾기하듯, 수정된 부분을 찾는 따분한 작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점점 영화를 보는 게 힘들어졌다. 전반부의 익숙한 풍경들은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새롭게 느껴졌다. 작년 가을 상영에 들어가지 못했던 부분이나, 아마도 감독으로서 새롭게 추가해야 한다고 결심한 듯한 내용이 여럿,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 지점들은 선거 결과를 기다리는 상황에서 더욱 의미심장한 형태로 작품의 구조를 (현시점에서) 완성해나갔다.

대개 작정하고 처음 영화를 볼 때의 소감과 평가는 크게 바뀌지 않는 편이다. <당신의 사월> 첫인상은 딱 무난한 작품이었는데, 다시 볼 때는 ‘아 지금 꼭 보여주고 싶은 작품이구나!’로 바뀌었다. 흔하지 않은 경우다. 후반 상당 부분이 재편집되었다고 하지만, 감독의 영화적 야심보다는 근래 한국 사회에서 4.16이 받는 저주 같은 현실에 대한 입장으로 느껴졌다. 이는 감독의 의도보다는 사회 현실에 대한 반응으로 보였다. 그래서 <당신의 사월>은 오히려 반년 넘게 지난 지금 더 유용한 영화가 ‘되어버렸다.’

영화는 지금까지 4.16을 다뤘던 영화들이 주로 집중했던 부분을 비껴간다. 2014년 4월 16일, 특히 ‘7시간’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 없진 않지만, 영화의 초점과는 큰 상관이 없다. 우리가 스테레오 타입으로 상상하는, 희생자 유가족이 주인공인 것도 아니다. 대신에 이 영화가 지속해서 호출하는 것은 ‘트라우마’, 그것도 흔히 당사자로 인정받는 이들이 아닌 그 현장 주위에 있던 존재들의 이야기들이다.

 

영화 <당신의 사월> 스틸 이미지
영화 <당신의 사월> 스틸 이미지

진실규명을 요청하며 광화문에서 농성하고 활동하던 이들을 지켜보는 커피가게 주인의 이야기, 4.16 관련 내용을 소개하는 수업 때문에 탄압받는 교사의 이야기, 참사 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가족들과 교류한 어부의 이야기들이 담담하게 펼쳐진다. 처음 4.16을 접할 때부터 영화 속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겪었던 생각의 변화와 체험들이 대화와 풍경으로 펼쳐진다. <당신의 사월>은 제목처럼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2014.4.16. 이후 납득하기 어렵지만 엄연한 현실의 사건을 대하는 한국 사회 구성원들을 호출한다.

과연 나에게 4.16은 무엇으로 이해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영화는 관객인 개별의 나와 너, 집단으로서의 우리에게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제는 잊어야 하지 않느냐는 이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성찰과 질문은 때로는 괴롭고 거북하다. 소리 높여 규탄하거나 공격하지 않는데도 왜 그럴까? <당신의 사월>은 바로 그 지점에 대한 이야기로서 가치가 있다.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평가와는 별개로 애도를 표한다. 그게 인지상정이라 배웠다. 하지만 진영논리가 극단화되면서 상식과 도덕조차 휘발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광화문 일베 폭식 투쟁, 극우세력의 특별법 반대 투쟁, 조사위원회 내 모 정당 추천위원들의 집단 사퇴 등 인간혐오로 치닫는 장면들… 끔찍하지만 그런 순간들도 기억해야 한다. 정의와 용서는 무작정 덮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논쟁적인 부분들이 후반부에 들어가 있다. 4.16의 기억은 자연스레 2016-2017 촛불로, 탄핵과 정권교체로 이어졌다.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그 막판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 후반에 공수가 바뀐다. 광화문 카페 주인은 이후 현재까지 광화문을 장악하고 주도하는 이들을 보며 착잡함과 기괴함을 느낀다. 정권이 교체되었지만 정작 진상조사는 진도가 썩 나가고 있지 못하다. 이 모든 게 수구세력을 몰아내면 해결될 일인지 아니면 다른 고민해야 할 지점이 더 있는지에 대해 <당신의 사월>은 특정한 주의·주장을 펼치진 않지만 ‘여지’를 던진다.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 생각하지만 불편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당신의 사월"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당신의 사월> 스틸 이미지

우여곡절이 있고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있지만, 이 영화는 희망과 치유의 증거들을 소개한다. 유가족을 초청해 4.16 계기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는 5년째가 되니 동료 교사 1명이 함께 하게 되었다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영원히 2014년에서 멈춘 단원고 희생자 또래 학생들이 진솔하게 발언하고 수업에 임하는 모습은 그 희생에 대한 교훈과 변화가 비록 더디더라도 진행 중이라는 기대를 낳게 한다. 많은 게 바뀌었지만 서민들의 삶은 녹록지 않고, 고통의 연대는 미래를 위한 공동체로 전환을 시도하는 풍경도 곧잘 등장한다. <당신의 사월>은 만만치 않은 질문과 함께 억지로 강변하지 않는 방식으로 4.16에 대한 우리 사회의 초점, 태세가 변모해야 할 지점을 제안하는 영화다.

사족으로 덧붙이자면, 4.16 관련해서 ‘7시간’은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지금껏 4.16을 다룬 영상물 중 보다 주목받아온 작품들은 주로 그런 터질 것 같은 질문에 대한 나름의 고민을 담아냈지만, 훗날 부정확하거나 치우쳤다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한 작품도 제법 된다. 그리고 근래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가 4.16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를 질문하는 작업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생충>과 함께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로 올라 작은 반향을 일으킨 이승준 감독의 <부재의 기억>과, 사건 당시 전국에서 모여들었던 민간 잠수사들의 체험을 담은 복진오 감독의 <로그북>, 그리고 이 작품 <당신의 사월> 같은 작업들이 이후 다양한 주체와 배경으로 만들어져 때로는 우리에게 죄의식과 가책을, 때로는 분노와 단죄의 필요를 일깨울 것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진상 규명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성찰 없이 변죽만 울려온 사회적 재난이 어떤 성격으로 이해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던지는 가장 모범적인 영화이다.

 

작품 정보

당신의 사월 Yellow Ribbon

한국, 다큐멘터리, 2019, 86분, 전체관람가

감독 주현숙


24회 부산국제영화제(2019) 경쟁(와이드 앵글-다큐멘터리)

45회 서울독립영화제(2019) 초청(특별 초청_장편)

20회 인디다큐페스티발(2020) 초청(올해의 초점)



 

저작권자 © 뉴스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