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어제 일 같아요”
“아직도 어제 일 같아요”
  • 김연주
  • 승인 2020.05.02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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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건우 학생의 꿈은 간호사였다. 건우 학생의 이름이 새겨진 고등학교 교복. ⓒ정지영.

4월 23일 오전 10시,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1호 법정. 고 김건우 학생의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교사 A 씨에 대한 선고 재판이 열렸다.

A 씨는 2019년 3월 25일, 건우 학생이 읽은 라이트노벨이 ‘선정적’이라며 얼차려를 줬다. 같은 반 학생에게 더 야한 장면을 찾아보라며 책을 건넸다. 모욕감을 느낀 건우 학생은 따돌림을 당하게 됐다고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학교에서 투신해 숨졌다.

선고에 앞서 신진우 판사는 합의할 생각이 있느냐고 피고 A 씨에게 물었다. A 씨는 “없다”고 대답했다. 곧이어 재판부는 피고에게 ‘징역 10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40시간의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아동 관련 기관 5년간 취업 제한’이 더해졌다. A 씨는 법정 구속됐다.


“잘 해결되면 좋겠습니다.”

2차 공판에서 A 씨가 피고인 마지막 발언 때 했던 말이다. 재판이 열리는 날 법원에서 여러 번 마주쳤지만, 유족들은 ‘A 씨가 인사를 건넨 적은 없다’고 했다.

벌금 700만 원을 검사가 구형하자 유족은 분노했다. 1심 판결에서 ‘무혐의’ 혹은 구형량보다도 낮은 형이 내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족은 피고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촉구하는 탄원서 493장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탄원서에서 건우 학생의 이모 B 씨는 ‘(피고는) 피해자에게 직설적으로 죽으라고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진정성 있는 사과 없이 선처만을 바라고 있다’라며 ‘피고인이 다시는 교단에서 제2, 제3의 피해자를 만들지 않길 바란다’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외삼촌 C 씨는 ‘가해 선생님 외 학교장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도 외면하며 이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고 있는 듯하다’라며 ‘교사의 무책임한 말과 권위적인 행동으로 미래와 꿈을 잃어버린 영혼에게 위로가 되는 판결을 해달라’고 탄원했다.

판결문에서 신진우 판사는 ‘유족이 엄벌을 탄원’하고 ‘피고의 죄질이 무거운 점’, ‘피해 회복을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을 하지 않은 점’을 이유로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또한, “피고가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로서 보호하는 피해 아동에 대하여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 행위를 하였다”고 인정하며 양형기준에 따른 권고형(중한 유기·학대)에 가중요소를 반영했다고 밝혔다.

유족의 증언에 따르면 건우 학생의 장례식장에 온 교사들은 뒷짐을 지고 ‘병풍처럼 서서’ 빈소에 조문 오는 학생들을 일일이 살폈다. 조문 마치고 나가는 학생을 교사 서너 명이 에워싸고 ‘빈소 분위기가 어떤지’ 물었다. 건우 얘기를 아무한테도 하지 말라고, 카톡이나 SNS에도 올리지 말라고 ‘입단속’ 했다. 학교 관계자는 A 씨를 불러서 ‘절대 잘못했다고 말하지 마라, 죄송하다고만 해라’라고 미리 지시했다. 재단 이사장은 장례식장을 방문했지만, 빈소에는 들리지 않고 교사들만 만난 후 돌아갔다.

학교 관계자들은 “사고를 숨기기에 급급”했다. 유족은 한 달 넘게 화장을 미루며 사고가 있던 날에 대한 설명과 진심이 담긴 사과를 요구했다. 청와대 청원과 학교 앞 피케팅을 하면서 시간은 어느덧 1년이 흘렀다. 그러나 교사 A 씨는 침묵했다. “잘못했다”라는 말은 끝내 듣지 못했다.

건우 학생의 아버지 김상철 씨는 “오늘 판결이 우리 생명을 구했다. 판결에 감사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사건 담당 검사의 소개로 올해 초부터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건우가 떠난 후, 학교와 교육청은 유족에게 심리 상담 지원에 대해 안내하지 않았다. 건우 학생의 고모는 ‘매일 밤 약이 없이는 동생이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건우 학생의 어머니 정지영 씨와 형 D 씨도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

“오늘 벌금형이 나면 재판정에서 항의하려고 할 말을 생각해서 왔는데, 실형 선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건우 학생의 형 D 씨가 말했다. 동생 장례식 때도, 화장한 후 Y 중학교에 갔을 때도 말을 아꼈던 그는 동생과 함께한 날들이 “아직도 어제 일 같다”고 했다.

“며칠 전 꿈에 건우가 찾아왔어요. 동생에게 괜찮냐고 하니까 건우가, 나는 괜찮은데 형은 괜찮냐고 물어오는데…… 눈물이 핑 돌았어요.”


2020년 1월, 새해를 맞은 정지영 씨는 아들 건우가 가고 싶어 했던 고등학교의 교복을 사서 포항 시내 육거리에 있는 마크사를 찾았다. 마크사 주인은 “1번으로 와서 이름 새긴다”며 학교 배정이 끝났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날 재판이 끝나고 정지영 씨는 말했다.

“이제 중학교 교복을 태울 수 있을 것 같아요.”

포고 김건우. 노란 명찰을 새긴 격자무늬 고등학교 교복 상의는 하얀색 셔츠와 함께 건우 방에 걸려 있다.

 


 

<고 김건우 학생의 이모가 쓴 탄원서 전문>

 

존경하는 재판장님


탄원인은 위 사건의 피해자 망 김건우의 이모입니다.

2019년 3월 25일 믿기지 않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조카가 학교에서 떨어져 경북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 중이라고 생명이 위독하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니 깨지고 부러진 채 피를 흥건하게 흘린 조카는 잠든 듯이 숨을 거둔 뒤였습니다. 죽은 아이를 쓰다듬으며 흘린 피를 닦아주며 울부짖던 제부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일 년이 지난 지금

학교는 진정성 있는 사과도 사건에 대한 설명도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며 피해자와 피해자 유가족을 기망하고 있습니다.

사건 당일 피고인 김00는 수업 시간에 자습을 강행하였고, 건우에게 15세 이상 구독 가능하며 현재 청소년 사이에서 인기 높은 라이트노벨을 선정적이며 야한 성인물로 취급하여 학우들 앞에서 비난하였습니다.

또한 본인이 야한 성인물이라고 판단한 도서를 같은 반 학우에게 던져주며 더 야한 장면을 찾아보라고 지시까지 하였습니다.

피고인은 반 친구들 앞에서 피해자에게 죽고 싶을 만큼 치욕적인 모욕을 주었고, 정신적으로 충격을 주는 정신적인 학대 행위를 하였습니다,

성인물이 아니라고 설명하려는 피해자를 무시하고 교단 앞에서 약 20분 엎드려뻗쳐를 시켜 물리적인 처벌을 가해서 두 번씩이나 조카의 자존감을 짓밟았습니다.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직설적으로 죽으라고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진정성 있는 사과 없이 선처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말에는 힘이 있고, 혀에는 칼이 있다고 합니다.

피고인은 말로 보이지 않는 칼을 피해자에게 휘둘러 결국 피해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학교에서 교장과 교사는 교육 기본법 등 관련 법에 따라 학생을 부모 등 법정 감독 의무자를 대신해 보호감독할 의무가 있습니다.

보호의 의무가 있는 교사가 보호해야 할 학생을 죽음으로 내몰고 유가족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주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피고인의 선처를 바라지 않습니다.


피고인이 다시는 교단에서 제2, 제3의 피해자를 만들지 않게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엄벌을 처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20년 4월 2일

위 탄원인 정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