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이카루스, 미누의 시간들

 

"안녕, 미누" 영화 포스터 이미지


1_ 1992년, 미노드 목탄이 한국 땅을 밟다

1988년을 기점으로 한국전쟁의 잿더미로 기억되던 대한민국은 올림픽을 치르는 국가로 변신했다. 과거 독일로 중동으로 외화를 벌기 위해 낯선 타향에서 천대받으며 고생하던 기억은 자랑스러운 경제성장의 훈장이 되었고, 새로운 기회의 땅 대한민국으로 아시아의 각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국가대표팀으로 왔다가 선수촌을 이탈해 행적이 묘연해진다거나, 관광비자로 입국한 뒤 사라진다는 식의 뉴스 기사가 심심찮게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단일민족국가임을 내세우던 대한민국에는 어느덧 전체 인구의 5% 가까운 외국인 거주자가 생겼다.

네팔의 20살 청년 미노드 목탄 또한 일자리가 없는 고국 네팔에서 갓 성인이 되자마자 이 땅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 찾아왔다. 2주간의 비자 기한이 끝나고 이제 ‘미누’라 불리게 된 그는 한국 사회 내에 스며들었다. 처음에는 식당에서 잡역부로 일했다. <안녕, 미누>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노래 “목포의 눈물”은 식당에서 일하던 시절, 동료 아주머니들에게 배웠다고 한다.

식당을 떠난 미누는 방직공장으로 향한다. 사실 소규모 작업장은 노동법 사각지대이기도 하지만, 고용주에 따라 천차만별인 환경이기도 한데, 미누는 비교적 좋은 사장을 만났던 것 같다. 노사관계라기보다는 형 아우 대가족 분위기로 10년을 한국에서 돈도 벌고 익숙해진 그는 어느덧 자신이 한국인과 진배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2_ 2003년, 밴드 스톱크랙다운

1988년 이후 대한민국에 체류 자격 없이 들어오는 외국인이 급격하게 늘어나자 정부는 1993년 산업연수생 제도를 도입하고, 10년이 지나 고용허가제(EPS)로 제도를 손본다. 그와 동시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외무부 산하 출입국관리소가 대대적으로 단속하기 시작한다.

대개 외국의 비합법 체류자 대책은 신규 유입을 차단하고 장기간 국내에 거주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정착한 이들에게는 영주권에 준하는 조치를 통해 분리하는 방식인데, 한국의 경우 5년 이상 장기 거주자의 경우 정착할 것을 우려해 정반대로 단속하는 특이한 방향을 취한다. 대신에 3D업종의 고질적 인력난 때문에 일정 숫자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방조한다.

이 결과는 오히려 더 파괴적인 상황으로 치닫는다. 국내에 자리를 잡고 이웃이 된, 즉 한국 사회에 일정 부분 동화되어 기반을 갖춘 이들이 단속추방의 대상이 되고 절망감에 11명의 이주노동자가 자살하거나 단속에 쫓기다 비명횡사하는 참상이 벌어져 사회적 쟁점이 되기에 이른다.

미누는 자신이 성실하게 착실히 일하면 이 사회에 자리 잡고 살 것이란 믿음을 부정당한다. 그의 주변 친구와 동료들은 잡혀가고 추방되고 있었다. 이주노동자 당사자 일부와 그/그녀들을 지지하는 사회단체들이 결합해 농성을 시작하게 된다. 미누는 동병상련인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지도부로 활동하며 집회와 활동을 이어간다.

 

"안녕, 미누"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안녕 미누> 스틸 이미지

그런데 투쟁을 진행하는 와중에 기막힌 상황이 발생한다. 같은 이주노동자지만 나라도 언어도 다 다르다 보니 함께 외칠 구호나 따라 부를 노래가 거의 없었다. 가장 대표적인 공통 구호는 “단속추방 반대한다, 단속하지 마라”는 의미의 STOP CRACKDOWN이었다. 그저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해 한국가요를 장르별로 모조리 섭렵하던 미누와 일군의 이주노동자들은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바로 위의 구호를 이름으로. 그렇게 다국적 밴드 “스톱크랙다운”이 탄생한다.

2003년부터 계속 이어진 이주노동자들의 고용허가제 개선 요구 투쟁 한복판에서 밴드는 때로는 우리도 사람이라는 인간 선언을, 가끔은 위선적인 한국 정부와 사회에 대한 포효를 지르며 하나의 아이콘이 된다. 특히 박노해 시인이 과거 1980년대 열악한 노동자 현실을 상징화한 “손무덤”에 가사를 붙인 노래 “손무덤”은 밴드의 대표곡으로 자리매김한다. 한국 사회 경제성장의 주역이면서도 잊힌 존재들인 산재 노동자를 추념하던 노래는 어느새 이주노동자들에게 그대로 대입되었고, 그 절묘한 조합은 노래의 인기를 넘어서는 생명력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그런 상징성 때문에 미누에게 시련이 닥친다. 2009년 그는 거처 바로 앞에서 출입국의 단속에 끌려간다. 많은 이들이 ‘표적 단속’이라고 항의했고, 문화교류 공헌 등을 근거로 탄원도 잇따랐지만 미누는 비행기에 태워져 18년 만에 강제로 고국 네팔로 송환된다. 그렇게 그는 잊힌 존재가 되어간다.

 

3_ 2009년, 18년간의 한국생활 강제 종료

국적상 미누는 네팔 사람이다. 하지만 20살에 떠나 18년 만에 돌아온 네팔은 오히려 그에겐 낯선 타향에 불과했을 테다. 그는 아무 계획도 없이 강제로 고향에 돌아왔으나 이제 네팔의 고향 집이 오히려 이국으로 느껴졌고, 오랜 시간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채 부유하는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마음을 다잡고 네팔에서 정착하기 위해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미누는 이것저것 일을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생계를 위할 겸 잡은 일은, 그를 강제로 내쫓은 한국으로 향하려는 후배 노동자들에게 한국어와 적응을 가르치는 학원 강사 일이었다.

자신을 그토록 내몰았던 한국으로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출발하려는 이들에게 적응법과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미누의 태도는 한국에서 이주노동자 운동 활동가이자 문화적 상징으로 활약했던 모습과는 괴리감이 들기도 한다. 아무리 역전의 활동가라도 개별화되면 인간은 약해지기 마련이다. 오히려 한국에 가는 걸 말리거나 겁을 주는 게 올바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미누에게 한국은 오히려 자리 잡고 정착하고 싶었던 기회의 땅으로 기억되지 않았을까?

영화 <리터니> 스틸 이미지

<리터니 Returnee>(2009, 이마붑 연출)라는 단편 다큐멘터리를 잠깐 소개한다. 이 작품은 미누의 동지들이었던 초창기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조합(STU) 지도부를 맡았다 강제추방된 이주노동자들의 후일담을 다룬다. 방글라데시와 네팔을 찾아가 그들이 재회하고 네팔 대지진을 돕거나 고국으로 귀환한 이주노동자들의 조직을 결성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펼치는 내용이다. 단체 조직으로 함께 하면서 그들은 비록 한국에서의 경험이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그 시절 배웠던 경험을 활용하면서 외로움과 상실감을 이겨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영화 속 미누의 회고나 네팔에서의 삶에서는 다소 부재한 풍경이다. 이는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나 지역 이주노동자센터에서 활동하던 많은 이주노동자가 귀국 이후에 상대적으로 노조나 사회운동이 취약한 자국에서 공통적으로 겪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본 골격이 있어서 그런지 미누는 서서히 활동을 이것저것 모색한다. 공정무역 사회적 기업에서 활동하면서 다시 한국의 모기업과 연결된 그는 생산품을 갖고 한국의 무역박람회에 초청된다. 강제추방 후 5년이 지나면 입국이 가능한 관례와 한국대사관의 비자 발급에 고무된 그는 부푼 기대와 함께 2017년 4월 입국하지만, 출입국관리소에 의해 그날 오후 바로 네팔로 돌아가게 된다.

통상 기준을 벗어난 10년간의 입국 금지, 사실상 블랙리스트가 그에게 낙인처럼 찍혀 있었다. 결국 표적 단속도 실재였다는 개연성이 인정되는 대목이다. 유독 2003년부터 이주노동자 당사자 조직 대표나 주요 활동가들은 단속의 표적이 되었고 강제 연행과 출국 과정에서 정신적 고통을 피력하는 이들도 여럿 나올 만큼 신변의 위협과 공포에 처하곤 했었다. 미누 또한 그날 이후 여러 날 동안 고통스러워했다고, 가족의 증언이 영화 속에서 잇달아 이어진다. 희망 고문도 이런 희망 고문이 없다.

 

"안녕, 미누"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안녕, 미누> 스틸 이미지

특히 개봉 판에서 추가된 장면, 지인과 등산하던 미누가 한국인 중년 트래킹 관광객들과 어울려 술자리에 합석하면서 한국말 잘한다고 칭찬받는 순간은 무척 복잡한 생각이 들게 만든다. 미누는 한국 사람들을 보면 반갑다. 하지만 한국에서 오래 살았다는 이야기나 더 자세한 내용은 절대 드러내지 않는다. 그 순간 미누의 표정을 보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상상하게 되지만, 누구도 그의 마음속을 정확하게 읽지는 못할 것이다. 민박에서 만난 젊은 한국인 남녀에게 한식을 만들어 대접하면서 그는 즐거워하지만, 쓸쓸해 보이기도 한다. 자신이 정착했다고 믿었던 땅,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보다 더 한국 사람 같다는 이야기를 들어왔지만 정작 그곳에 머물 자격은 끝내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미누에게 한국은 어떤 존재로 기억되고 있었을까?

두 세계에서 그는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했고 어디에서도 겉도는 모습이다. 다문화와 세계화를 시대의 대세인 양 외치지만 정작 그 실질은 갖추지 못한 한국 사회의 딜레마를 십자가처럼 짊어진 존재, 혹은 잠수함의 토끼나 광산 속 카나리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순간 미누의 그림자는 한국 사회의 허점투성이 다문화 운운에 생채기를 남기는 증거 그 자체가 된다.


4_ 2018년,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식

1년이 지난 후 <안녕, 미누> 다큐멘터리가 완성되고,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다. 영화제 주관 단위인 경기도 차원에서 탄원이 이뤄졌고, 영화의 주인공인 미누는 2박 3일간의 영화제 참석만 허용되어 다시 한국 땅을 밟는다. 강제추방 후 9년 만의 일이다. 영화제 개막식에서 호명되고 박수도 받았지만, 이틀 후 그는 다시 네팔행 비행기를 탔다.

영화 속에서 대미를 이루는 밴드 멤버들의 네팔행과 오랜만의 재결합 공연 후 미누는 오래간만에 만난 동료들과 마음껏 노래 부른 즐거움에 ‘이제 죽어도 좋아!’라고 소리 지른다. 그 모습은 보는 이들도 흐뭇하게 만들 정도로 영화에 생생하게 담겨있었다. 그리고 이제 영화가 주목받으면 곧 강제추방 후 10년이 다 되어가는 그에게도 좋은 소식이 들려올 수 있지 않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기대가 들 만큼 순풍 같은 상황.

영화는 지금 극장 개봉 버전보다는 좀 더 미누의 개인사와 밴드 활동에 집중된 편이었다. 일단 밴드의 음악이 그저 집회나 시위 때 배경음악 수준이 아니라 기본적인 완성도와 시의성 측면에서 평론의 대상으로 주목받을 만큼 갖춰져 있었다. 픽션보다 더 극적인 주인공 미누의 인생 편린과 어우러져 구호나 논쟁보다는 인간적인 면모를 통해 보편적인 주제 형상화가 이뤄지는, 장점이 많은 작품으로 기억한다. 전작 <바나나쏭의 기적> 등 20년이 넘는 경력의 지혜원 감독이 휴먼 다큐로 빚어낸 솜씨는 주제나 소재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스며들게 하는 방식으로 민감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대중성을 놓치지 않았다.

작품 제작 과정에서 제목이 여러 번 바뀔 만큼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한다. 기구한 역정의 이주노동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네팔로 찾아가 만난 미누의 한국과 네팔을 교차하는 삶에 초점을 맞춰 <4천 킬로미터의 우정>이라는 ‘가제’로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영화 속에서 가슴 아프게 묘사되는 2017년 입국 실패 이야기였다. 이후 가슴 벅찬 귀국 드라마로 예상하고 미누와 동행했던 감독에 의해 <히말라야 한국행>으로 바뀐 데 이어, 그를 위로하듯 네팔로 날아간 밴드 멤버들과의 감동적인 공연 현장이 추가되면서 <빨간 목장갑>으로 또 제목을 교체했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아는 <안녕, 미누>로 완성되었다.

주인공은 물론 감독 또한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었던 이런 바람 잘 날 없던 제작 상황은 결국 원래 예상보다 훨씬 풍요로운 이야기가 더해져 세상에 미누를 알리게 되었다.


5_ 3일간의 한국행, 그 한 달여 후

하지만 영화제가 끝나고 채 한 달이 지날 무렵, 비현실적으로 들릴 소식이 도착했다. 미누가 귀국 후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급사했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밴드 공연을 성황리에 마치고, 현실에서는 비록 며칠이나마 자기가 주인공인 영화가 수천 명 앞에서 소개되는 기적 같은 일을 겪은 그가 ‘이제 죽어도 좋아!’라고 외치던 게 마치 예언적 징후처럼 되어버린 기막힌 우연이었다.

지혜원 감독은 곧바로 네팔로 날아가 장례식에 참석했다. 대체 대한민국이 미누에게 해준 게 뭐가 있길래 그는 그토록 외사랑을 이 나라에 보낸 것일까? 그저 정부는 그를 버렸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고 성인으로 살아갔던 이 땅에 무한대적 애착을 가졌던 것일까? 아니면 조금 과도한 해석일 수도 있지만, 어릴 적 살았던 가난한 저개발국 네팔보다 한국 사회에서 자리 잡고 싶었던 코리안 드림의 발로였을까? 영화만 봐서는 정확하게 해석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이 그에게는 늘 풀리지 않는 매듭처럼 자리 잡고 있지 않았을까? 비극적 영웅 혹은 무결점의 성자 같은 존재가 아니라 지극히도 인간적인 그의 영화 속 면모가 더욱 거짓말 같은 돌연한 죽음으로 완성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함부로 넘겨짚어 본다.

전혀 예상치도, 원하지도 않았던 추가 촬영을 마친 감독은 1년 후 개막작으로 소개되었던 <안녕, 미누>에서 미누 사망 후 추가 편집된 버전으로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추모 상영이 이뤄졌다. 그리고 코로나 사태로 다소 지연되었지만, 영화제라는 한정된 공간을 넘어 극장 개봉을 추진하게 된다.


6_ 2020년 5월 개봉을 맞이하며

그런 곡절을 겪으며 <안녕, 미누>는 2020년 5월 27일, 극장 개봉을 맞이했다. 추가 장면이 들어가고 재편집을 진행하면 대개 영화가 원래보다 길어지게 마련인데 특이하게 이 작품은 오히려 1분이 줄었다. 미누의 비극적 죽음에 대한 추모의 감정이 들어갔음에도 영화는 신파로 흐르지 않는다. 그의 사망 정보는 간단한 자막으로 처리되며, 장례식 장면 또한 마치 자료화면처럼 들어가 있다. 사망 전 마지막 대외 활동인 셈인 2018년 DMZ 영화제 장면은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감독의 절제력이 대단함을 느낄 수 있다.

대신에 수미상관의 편집이 눈길을 끈다. 미누의 “목포의 눈물”이 개봉 버전에서는 처음은 밴드 공연을 통해, 마지막은 원래 처음에 들어갔던 부분으로 시작과 끝을 장식한다. 웬만한 한국인 가수보다 더 구성진 육성으로 들려주는 “목포의 눈물”은 영화 속 밴드 공연에서 가장 자신 있게 내지르는 “손무덤”과 함께, 누구보다 한국에 애착을 갖고 더불어 살고자 했던 생전 미누의 소박한 소망을 상징하는 것처럼 들린다.

영화 전반부에 다양하게 삽입된 실제 투쟁이나 공연 영상 자료화면은 좀 더 정갈하게 편집되었다. 주로 지인들의 인터뷰가 들어가던 자리에는 실제로 한국의 이주노동자 운동이나 지원 활동 단체 활동가들의 짧은 쟁점 해설과 견해 표명이 들어갔다. 미누라는 인물을 통해 한국 사회 이주노동자의 역사와 쟁점을 풀어내려는 감독의 사명감 같은 편집 지점들이다. 휴먼 다큐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도, 고인에 대한 추모와 함께 그의 삶을 제대로 알리고픈 감독의 염원이 느껴지는 대목들이다.

 

"안녕, 미누"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안녕, 미누> 스틸 이미지

영화는 처음 버전에서부터 꾸준히,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목장갑을 강조한다. 미누는 자신이 한국에서 땀 흘려가며 공장에서 일하던 시절의 상징인 목장갑을 밴드 공연에서 보컬로 나설 때도 자주 착용하곤 했다. 단 한 번 가능했던 멤버들과의 네팔 공연에서도 그는 목장갑이 없으면 안 되지! 호탕하게 웃으며 장갑을 낀 채 힘차게 노래를 불렀다.

목장갑은 한국적 노동의 현실이자 미누를 비롯한 이주노동자들에겐 잊히지 않을 한국에서의 (좋건 나쁘건) 추억일 것이다. 감독은 집요하게 목장갑을 미누 자신으로 형상화하는 데 카메라를 맞춘다. 스스로 자기 영화의 주인공을 이해하는데 최적의 매개물이라는 확신이 느껴지는, 카메라로 담는 이와 찍히는 이의 우정과 고민이 느껴진다.

<안녕, 미누>는 지금껏 적지 않게 등장한 한국 사회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 가장 대중적으로 접근한 영화다. 또한, 관련 쟁점에 대한 입문용으로 나무랄 데 없는 정보량을 가진 작품으로 우리 앞에 전모를 드러냈다. 영화 속 미누의 밴드 동료들이 그의 추방을 개탄하며 외쳤던 ‘다문화 다문화 그러는데 1년에 하루 축제 열어서 먹거리랑 전통의상 펼치는 게 다문화인가요?’라는 분노의 일갈을 <안녕, 미누>가 좀 더 사회적으로 전하길 바란다. 코로나19로 촉발한 이 역병의 시대, 오히려 국가 간 교류가 끊어지고 외부자에 대한 공포가 차별과 혐오로 치닫는 시국에 <안녕, 미누>는 좀 더 적극적으로 소개될 필요가 있다.

 

 

작품 정보

안녕, 미누 Free Minu

한국, 다큐멘터리, 2018
2020. 5. 27 개봉, 89분, 12세관람가

감독 지혜원
주연 미누

10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018) 개막작
44회 서울독립영화제(2018) 초청
16회 서울환경영화제(2019) 한국경쟁
7회 디아스포라영화제(2019) 초청
11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019) 초청
13회 이주민영화제(2019) 초청
벨기에 밀레니엄 다큐멘터리영화제(2019)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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