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잃어버린 손가락
[칼럼] 잃어버린 손가락
  • 김혜나
  • 승인 2020.05.31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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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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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화면을 스치는 손끝의 섬찟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눈이 ‘콘텐츠’를 바삐 좇는 동안 손가락은 부지불식간에 삭제되어 버린 모양이다. 불쑥 다시 제 존재를 알리기 시작한 손가락은 이런 것을 만지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고 항변하듯 때때로 이물감을 전달한다. 손가락들은 코로나19로 촉발된 ‘언택트’ 시대가 찬양하고 갈구하는 디지털에 대해 생각한다. 한 러시아 언론은 가구 인터넷 접속률이 99.5%에 이르는 한국을 코로나19 이후에 살아남을 유일한 나라로 꼽았다고 한다. 손가락(digit)을 잃어버린 백 퍼센트 디지털 세상은 축복일까.

‘기술의 편리함’은 모두가 외는 주기도문의 첫 구절이다. 편리함이 몸을 망친다는 사실은 강박적인 신앙고백 속에 잊힌 지 오래다. 재택근무와 재택수업으로 콘크리트 상자에 틀어박혀 크고 작은 화면만 쳐다보는 시간이 길어지니 눈은 더 나빠지고 요통도 악화한다. 옛것이든 새것이든 기술과 도구는 언제나 편리함을 추구해왔고 그래서 항상 몸을 망가뜨려 왔다. <의자의 배신>에 따르면 일할 때도, 이동할 때도, 쉴 때도 앉는 의자는 ‘불일치 질환’을 일으킨다. 자연 속에서 장엄한 진화의 시간을 통해 형성된 우리 몸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운동량이나 자세와 관계없이 의자에 오래 앉아있는 것이 매우 해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반 일리치가 기술이 ‘좋아질수록’ 더 가난해진다고 말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고층빌딩에서 일하고 자동차를 타는 동안 두 다리는 무능하고 비루해진다. 병원과 학교 같은 도구와 제도에 의존하는 동안 스스로 그리고 함께 치유하고 배우는 능력을 상실한다. ‘전문가’가 제공하는 치료와 교육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결핍과 빈곤으로 느낀다. ‘현대화된 빈곤’은 그래서 경제적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이 새로운 빈곤에 따르면 돈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부자가 가장 가난하다. 

평등을 향한 고귀한 외침은 대부분 ‘의자의 쟁취’를 향해 있다. 그 결과 과거에는 왕과 같은 ‘높으신 분’만 앉던, 권위를 상징하던 의자는 이제 평등하게도 모두에게 주어진다. 온라인 수업에서 ‘소외되는 학생이 없도록’ 각종 디지털 기기가 구석구석 쫓아가 손에 꼭 쥐어진다. 현실과의 언택트와 비현실과의 콘택트가 본격화되는 순간이다. 그 시기가 빠를수록 우울증과 공격성은 더 커지고 N번방과의 거리도 더 가까워질 것이다. 일리치는 모두가 자동차를 타는 평등이 아니라 도로와 차에 위협받지 않고 모두가 두 다리로 자유롭게 걸을 수 있었던 평등한 과거를 가리킨다. 다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방향도 잃은 듯, 이상한 평등을 향해 나아간다. 

그렇게 헤매는 와중에, 문제를 해결한다는 기술이 실은 문제를 유지하고 악화시키는 단순한 현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더 많은 미세먼지에는 더 많은 공기청정기, 나날이 기록을 경신하는 더위에는 더 강력한 에어컨으로 답하듯, 코로나19에는 마스크와 인터넷이 있으면 된다. 그 결과는 뻔하게도 미세먼지와 폭염과 전염병의 악화다. 그래서 대기오염을 유지하기 위한 공기청정기, 불볕더위를 유지하기 위한 에어컨, 전염병을 유지하기 위한 디지털이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기술이라는 부역자는 두둑이 잇속을 챙긴 기업과 함께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한다.

그 대가로 ‘작은 장소’인 몸이 무너져갈 때 자연이 성할 리 만무하다. 유시 파리카는 화려한 첨단 디지털 기기들이 광물과 같은 지구의 가장 오래된 물질로 이루어져 있음을, ‘심원한 시간’의 착취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스마트폰에는 20가지가 넘는 금속이 들어있다. 가볍고 편리한 기술일수록 한없이 무거운 이유다. 언택트 시대에 잃어버렸다는 인간들 간의 콘택트는 이미 자연과의 언택트 위에 만들어진 자폐적 조건이었다. 방향 상실의 어지럼증은 이제 기술과의 콘택트로 나아가며 절정에 달한다. 화면 속에 갇힌 손가락이 점점 더 흐릿해진다.
 

 

글_ 김혜나 대구대학교 연구중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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