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경산지역 장애인들을 분노케 한 사건이 있었다. 

분노의 시작은 경산의 A장애인단체에서 공익캠페인이라며 내건 현수막 문구였다.

‘무단횡단 장애인이 되는 지름길입니다’

장애인을 부정적인 존재로 비유한 이 문구에 많은 당사자가 분노했고, 차별 표현이라고 항의했다. 결국, 항의한 그날 현수막은 즉시 철거되었다. A 단체의 대표도 직접 전화를 걸어 사과했다.

물론, A 단체의 취지처럼 무단횡단의 위험성을 알리고자 하는 의도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나도 중증 뇌병변 장애인이다.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여러 유형의 수많은 장애 당사자들, 당사자 가족, 그리고 지금도 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가고자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관련 종사자분들을 생각하면 이것은 명백한 차별이며, 장애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문구이다.

이유인즉슨 장애는 결코 한 개인이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단지 나 자신의 정체성일 뿐이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 혹은 성별 이외에 내가 가진 여러 정체성, 그중에 하나일 뿐이다.

장애라는 것이 분명 내 삶에 신체적ㆍ정신적ㆍ사회적으로 불편함을 초래할 순 있다. 하지만 장애는  부정되거나 침해되어선 안 되는 인권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장애인이 되는 지름길’이란 표현은 장애인을 부정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단지 무단횡단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한 인간의 존엄한 정체성이 담긴 단어를 꼭 써야 했다면, 장애로 인해 고통받고 있을지도 모를 그 어떤 이에겐 상처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장애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 존엄한 인간으로서 존중받기 위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요즘에는 더욱이 시대착오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요즘은 장애 자부심이라는 말도 있다. 이 이론은 내가 가진 장애가 지역사회와 더 나아가 국가의 사회ㆍ경제ㆍ문화ㆍ정치 전반에 걸쳐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이론이다. 장애가 있는 이들이 장애를 개인이 극복해야 할 것이 아닌 자기 삶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지역사회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자신들의 권리를 당당히, 그리고 지속해서 요구하고 있다.

이런 차별적인 문구가 탄생한 원인은 지자체가 전문성 혹은 관리감독 권한이 약한 민간단체에 장애인의 권리를 떠넘긴 때문이 아닐까? 이것은 단체 대표가 사과한다고 끝낼 문제가 아니다.

한편, 위 단체가 속한 협회는 아이러니하게도 지역의 장애인 이동권을 책임지는 장애인 콜택시의 운영에 관여하고 있다. 장애인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기본적인 입장 고려조차 하지 못하는 단체가 어떻게 장애인의 발이 되는 대중교통사업을 맡을 수 있단 말인가? 지자체는 각성해야 하며, 아울러 장애인 이동권 관련 사업의 민간위탁 문제도 다시금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끝으로, 장애인들은 단 한 번도 지름길로는 갈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다들 각자가 가진 장애의 어려움과 지역사회의 무관심, 지자체의 방관 속에 험하고도 머나먼 길을 돌아왔을 것이다. 현수막의 문구처럼 지역에서 함께 사는 장애인들, 그리고 나를 비롯해 한뜻으로 뭉친 많은 이들도 지름길로 한번 편히 가보고 싶다.

아쉽게도 아직까진 지역사회에 우리가 함께 갈 수 있는 지름길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의 길을 느리지만, 함께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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