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 창공, 파티" 영화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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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_ 본격 ‘노동조합 일상물’

“일상물”이라는 표현이 요즘 곧잘 쓰인다. 영화나 드라마, 만화 등 대중문화 장르에서 특별한 극적 전개보다는 작품 속 배경과 등장인물들의 생활상을 펼쳐 보이듯 풀어내는 스타일을 취하는데, 이를 통해 소소한 잔재미는 물론 번잡한 삶에 지친 이들에게 간접적인 슬로-라이프를 선사하는 식이다.

이번에 소개하려는 장윤미 감독의 2019년 작품인 본격 노동 다큐멘터리 <깃발, 창공, 파티>는 노동조합 활동 일상물이다. 이 일상물은 흔히 대중문화에서 통용되는 일상물의 구분과 딱 들어맞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구미의 반도체 생산기업 KEC ‘민주노조’의 1년 사계절 동안의 활동을 극적 사건 없이 담담히 담아내는 형식은 ‘일상물’의 접근 방법과 닮았기에 감히 ‘노동조합 일상물’이라 언급하려 한다.

KEC 민주노조(이하 ‘KEC지회’)는 열심히 투쟁하는 노동조합이다. 159분이라는 짧지 않은 상영시간 동안(가장 처음 소개된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 상영본은 168분이었다) 이들은 회사와의 교섭 투쟁은 물론, 참 열심히 연대투쟁에 나선다. 하지만 <깃발, 창공, 파티>에서 이러한 투쟁은 그 자체로 영화의 색깔을 결정짓기보다는 감독이 보여주고자 하는 21세기 노동조합의 활동 과정의 일부로 포함된다.

이 작품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특히나 ‘민주 정부’가 들어선 후 그 과정에서 일익을 담당했음에도 마치 시민사회 바깥에 격리되어 ‘괴물’처럼 배제당하고 있는 노동운동, 그 핵심인 민주노총 소속 ‘민주노조’의 일상 활동과 사람들의 풍경이다.

근래 접할 수 있는 다수의 노동 다큐는 오히려 사실은 의외적인 경우에 속하는 결사 투쟁의 현장들, 파업이나 농성 풍경을 투쟁 주체들의 인터뷰나 배경 설명과 함께 다루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아니면 21세기 들어 급격히 확산하는 비정규직 문제, 불안정노동이나 플랫폼 노동이라 불리는 새로운 노동 사각지대에 주목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투쟁 현장을 담은 작품들은 절박하거나 알려지지 못한 노동 쟁점을 알리는 대안 언론의 전통적 성격을 띤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영상물로만 노동운동을 접하는 경우 노동운동 활동가나 노조 조합원들은 ‘투사’라는 상징에 갇혀버리는 부작용도 발생한다.

실상 민주노총 소속 노조원은 다양한 갈래와 층위가 있으며 산업별, 분야별, 고용형태에 따라 엄청나게 다양한 분류가 가능하다. 투쟁이 노동조합 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투쟁은 회사와의 교섭 결렬 전후로 시작되며, 그러한 교섭 상황은 해당 노조가 전체 노동자 중 얼마나 많은 비율을 대표하고 제어하는 힘을 가지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그런 통제력을 갖추기 위해 노조는 과거에는 회사와, 현재는 복수노조라는 틀 아래에서 치열하게 매일의 경쟁을 치러내야 한다. <깃발, 창공, 파티>는 보기 드물게 그러한 노동조합의 일상 활동과 투쟁을 아울러 보여주려는 감독의 야심찬 기획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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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_ “파티”의 시간들

<깃발, 창공, 파티>라는 제목은 그 자체로 감독이 이 영화에 담고자 하는 세 요소를 상징하고 있다. 그중 역순으로 “파티”의 부분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KEC지회는 매달 조합원 생일을 챙긴다고 한다. 경조사를 챙기는 노조는 적지 않다. 하지만 여타의 비교적 평온한 일상이 가능한 노조와 달리 KEC지회는 상시적인 투쟁 과정에 처한다. 감독이 KEC지회를 굳이 카메라에 담으려 한 이유인 복수노조 사업장 내 ‘소수노조’라는 상황에도 이런 일상 활동을 꼬박꼬박 챙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는 특별한 설명 없이 KEC지회의 조합원 단합대회로 시작한다. 거의 10분 동안 “파티” 장면이 이어진다. 후반에 투쟁가를 부르는 장면만 아니라면 평범한 회사나 단체의 단결 행사와 별반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부끄러운 나머지 손사래를 치는 이들, 넉살 좋게 장기를 뽐내는 이들과 조합원의 남녀노소 가족이 함께 어우러진다. 그런 흥겨운 풍경 속에서 이들이 팔뚝을 치켜들며 부르는 노래는 ‘파업가’와 ‘철의 노동자’ 같은, 주로 집회나 농성 현장을 배경으로 나오는 곡들이다. 노동조합 내부자나 연대자가 아니라면 이 보기 드문 장면들에서 독특한 인상을 받게 되리라.

그러한 장면들이 저물며 평범한 나뭇잎을 배경으로 <깃발, 창공, 파티> 제목이 아로새겨지고, 아주 간단한 KEC지회 현황에 대한 해설이 깔린다. 영화에서 해설에 할애된 부분은 시작과 끝마무리, 단 2번에 그친다. 영화는, 감독과 감독의 카메라가 회사와 3개의 복수노조가 각축하는 KEC라는 사업장에서 민주노총 KEC지회의 입장에 있음을 명백히 밝힌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이 작품에는 특별한 영웅적 주인공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자주 등장하는 몇 명의 인물들이 있지만,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설명을 위해 맞춤형으로 배치되는 느낌이 날뿐, 주역으로 끌고 가는 형식은 아니다. <깃발, 창공, 파티>는 철저하게 장윤미 감독과 카메라의 시선으로 KEC지회와 그 안의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오히려 감독의 시선이 투영된 카메라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노동조합의 주요 활동마다 설명하는 캐릭터가 돌아가며 역할을 분담하는 방식은 영웅적 주인공이 아니라 KEC지회 주요 활동가들이 하나의 집단-공동체로 보이도록 하는 효과를 낸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극적인 현장이나 매력적인 주인공을 만나는 것으로 절반은 먹고 들어가게 마련인데, 감독은 본래의 의도였을, “민주노조의 일상”을 담아내기 위함에서 절대로 타협하지 않고 시종일관 중심을 유지한다. 이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노동 현장을 다루는 다큐 감독이라면 대부분 노사 대결 구도에서 노동자의 편을 들거나 연대하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든다. 그렇기에 목적성은 기본적으로 전제되어 있으며 노동자 투쟁에 지지하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나 카메라에 담기는 노조 또는 활동가의 유무형의 요청에 흔들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장윤미 감독은 일면식도 없던 KEC지회 노조 간부들과 관계를 다져나가면서도 철저히 개별 창작자로서 본인의 초기 목표를 놓지 않고, 그 지점을 피사체가 된 노동자들에게도 명확히 하며 1년여의 촬영을 진행한다.

노동자와 감독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우호와 연대에 기반을 두는 것이므로, 감독은 마치 없는 것처럼 숨거나 하지 않는다. 간혹 튀어나오는, 감독에게 노조 간부들이 툭툭 던지는 질문이나 발언에 짧게나마 답을 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일부러 존재를 숨김으로써 노조에 정당성을 인위적으로 부여하려는 트릭도 부리지 않는 셈이다. 초반 도입부 “파티”의 풍경은 관객들에게 다큐멘터리 속 등장인물의 다채로운 이면을 관찰하는 잔재미를 쏠쏠하게 안긴다.

이런 효과는 머리띠 두르고 팔뚝을 휘두르며 격한 언동으로 사용자를 규탄하는 ‘투사’의 전형적인 모습 이면에 실재하는 같은 ‘이웃’ 혹은 ‘시민’으로 이들을 재정의한다. 또한, 영화 외적으로는 기업이나 정부의 여론몰이로 ‘괴물’화 된 노조와 활동가에게 인간성을 부여하는 효과가 탁월하다. 무엇보다 피식 웃음이 나오게 할 만큼 웃기기도, 때로는 생각에 잠기게도 하는 틈을 제공한다.

‘공장’ 안 ‘노조 사무실’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고 할까나.

 

"깃발, 창공, 파티" 영화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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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_ “창공”의 순간

“창공”은 KEC지회 몸짓패 이름이다. 영화 속에서 지회 몸짓패의 활약은 공교롭게도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제목으로 “창공”이 들어가게 된 것은 “파티”와 “깃발” 사이의 노동조합 활동 영역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에서 주로 소개하는 “창공”의 영역은 토론과 교육이다. <깃발, 창공, 파티>가 노동조합 활동가 교육 등에 활용될 경우 가장 주목받을 영역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복수노조 시대 소수노조의 교섭과 투쟁 방식에 대한 생생한 준비과정을 활어 급속 냉동시키듯 생생하게 담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또한 <깃발, 창공, 파티> 작품 속에서 가장 이질적이고 ‘튀는’ 캐릭터이지만 없으면 곤란한 ‘배태선 국장님’의 역할이 핵심적이다. ‘상급단체’ 간부인 배태선 국장은 인터뷰나 배경 설명이 최소화된 이 작품에서 다소 이질적이지만 분명한 존재감으로 KEC지회의 활동 방향과 노조를 둘러싼 쟁점을 드러낸다.

영화 속에서 “파티”의 부분이 인간적인 이웃으로서 노동자들을 응시하게 한다면, “창공”에서는 그런 평범하게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이들이 어떻게 “깃발”을 들게 되는가에 대한 중간 경로를 보여준다.

반도체 부품을 만드는 제조업 사업장, 교대제 근무가 기본으로 돌아가니 전체 노조 간부나 조합원들이 모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퇴근 후나 점심시간에 짬을 내서 모이는 간담회나 토론회 또한 대부분 2번씩 잡아야 한다. 회의나 간담회에 참관하는 현장의 조합원도 종종 모습을 보인다. 참석 의무가 없지만 노조 활동이 궁금해 퇴근하지 않고 찾아온다는 것은 그만큼 KEC지회의 노조 활동이 사업장 내 노동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증명이다. 비록 소수노조이고 힘의 한계가 명백하지만 ‘민주노조’를 지지하는 일반 조합원의 존재는 작지만 시사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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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이 가지는 선입견이, 현장 조합원은 고용조건 향상을 기대하는 소박한 이들인데 ‘직업운동권’이나 ‘노조운동가’들이 과격한 정치적 구호로 동원한다는 인식이다. <깃발, 창공, 파티>는 노동조합 간부들의 토론과 대화를 통해 감독의 입장을 대신하는 듯 느껴진다. 지회에서는 여러 계기로 노조 활동을 하게 된 평범한 이들, 특히 과거에는 조합원의 절반 이상을 점유함에도 노조 핵심 직책에는 거의 진입하지 못했던 여성 노동자들이 노조 대표자인 지회장부터 수석부지회장 등 주요 역직을 맡고 있다. 본 작품이 페미니즘적 천착이나 여성노동운동 소개에 초점을 집중하는 경향과는 거리가 다소 있음에도, 근래의 사회적 풍경과 함께 사유할 소재를 풍성하게 제공한다.

4_ “깃발”

과거 촛불시위 등에서 ‘깃발’ 논쟁이란 게 있었다. 시위 주제에 공감한 다양한 시민들이 비폭력 평화시위로 결집해 다수의 여론으로 사회적 힘을 발휘해야 하는데 조직화된 소수가 깃발을 들고 그런 ‘광장’을 주도하거나 상징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대두되었다. 그 후 깃발을 든 이들은 ‘시민’과는 다소 별개의 존재로 인식되는 경향이 생겼다.

하지만 구미공단 안, 그리고 KEC지회가 소수노조로 적대적인 회사와 제1노조 등과 맞상대해야 할 때 이들이 드는 “깃발”은 외로운 섬의 등대처럼 투쟁하고 연대할 때 그 구심이 된다. 배태선 국장과 주요 간부들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전국을 누비는 이런 연대투쟁의 의의를 끊임없이 부각시키고, 그/그녀들이 연대에 힘써야 하는 당위성을 설득하고 토론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연대투쟁의 열성적 참여는 영화 막바지에 한 노조 간부가 낭송하는 마르틴 니묄러의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 낭송으로 이어진다. 감독이 <깃발, 창공, 파티>에서 자신이 발견하고 지지하는 21세기 민주노조의 긍정적인 방향과 역할에 대한 소리는 내지 않지만 확고한 입장 발언인 셈이다. 또한 비정규노조 투쟁 현장에서 가장 자주 불리곤 하는 “비정규직 철폐 연대가”와 “인터내셔널가”가 의미심장하게 배경음악처럼 사운드로 활용되는 것도 인위적인 사운드트랙을 배제한 본 작품에서 주제의식을 드러내는데 확실하게 쓰이는 사례이다.

연대투쟁이 KEC지회가 택한 미래를 위한 투자라면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임단협’) 투쟁전술은 소수노조로서 KEC지회가 살아남기 위한 현재의 싸움이다. 2010년 직장폐쇄와 용역투입 후 회사는 속칭 ‘어용노조’로 불리는 회사 친화적 노조를 후원했고, 제1노조로서 교섭권을 독점하는 다수파로 기업노조가 탄생했다. 그전에 현장 노동자들에게 다수노조로 존재했던 ‘민주노조’는 제2노조이지만 교섭에 참여하지 않으면 노동자들의 임금과 고용조건에 대해 발언권을 가질 수 없고, 교섭에 참여하려 해도 제1노조의 배제에 시달릴 게 뻔한 상황이다. 그런 와중에 회사와 제1노조는 8년째 무쟁의 타결을 자랑스럽게 노사화합의 상징으로 내세우는 실정이다.

KEC지회는 어려움이 많을 것임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교섭 참여를 결정한다. 그저 임금 얼마 올리고 이런 게 아니라 정책적 전망과 계산이 오가는 임금제도와 단체협약이 갖는 파급효과에 대한 해설이 노조 간부들의 토론 과정을 통해 관객에게도 속성으로 교육되는 효과가 전파된다. 이 과정을 통해 현장 노동자 출신의 노조 간부들은 그/그녀들이 그저 피상적으로 갖고 있던 불만과 의구심이 회사에 의해 몇 수는 앞선 작전에 따라 설계됐음을 인식하고, 그에 대항하기 위한 이론과 원칙을 갈고닦는다. 이는 노동자 의식을 체화하는 과정이자, 예전처럼 큰소리치면 올려줄 만큼 올려준다던 과거 시절과는 다른 21세기의 노사 두뇌 싸움의 현장을 관객들에게 각인시킨다. 세상에 공짜로 되는 게 없음을.

작품 후반부에서 이 공동교섭 참여 전술은 짧지 않은 영화에 긴장을 부여한다.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는 제1노조 뒤에 숨은 회사이지 노-노 갈등은 허상이라는 입장에 도달한 KEC지회는 큰 흔들림 없이 자신들이 유일한 사업장 내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민주노조라는 역할을 떠안고 다양한 선전과 투쟁을 구사한다. 식당에서 선전전을 할 때는 선전물과 방송 중 어떤 게 더 유효할지 갑론을박하고, 소식지에 들어갈 문장 하나하나 공들여가며 수정하곤 한다. 2010년 후 잃어버린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KEC지회의 대전략은 영화 후반 제1노조가 일방적으로 체결한 잠정합의안 관련 전체 조합원 투표 과정에서 절정에 달한다. 드라마처럼은 해결되지 않는 결말까지, 영화는 담담하게, 아쉬움이 많을 노조 간부들을 다시 조명한다.

 

장윤미 감독 이미지
장윤미 감독

5_ 21세기 노동운동 공동체의 초상, <깃발, 창공, 파티>의 소우주

<깃발, 창공, 파티>는 노동 영화의 전형으로 통용되던 대안 언론의 역할과 지지 연대의 관점을 명확히 드러내는 유형에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하나의 대상으로 노동의 풍경과 이미지를 활용하는 작품군에도 속하지 않는 독특한 작업이다. 당장 절실한 현장 교육이나 토론 자료로 활용하거나, 투쟁 현장 노동자에게 전의를 고취하는 용도로는 긴 상영시간과 관찰 지향의 접근법 때문에 다가가기에는 부담이 큰 편이다. 영화가 담고 있는 노동의제에 대한 상식이 아예 없다면 해독이 어려운지라 일반 관객에게도 진입 턱이 꽤 있다. 장윤미 감독이 철저하게 작가의 시선으로 <깃발, 창공, 파티>를 이끌고 가기에 도구적 효용으로도, 대중적 문법으로도 약간씩은 거리감 있는 작품이 탄생한 셈이다.

하지만, 실용성(?!)을 빼고 본다면 독립된 영화로서 정체성이 확고하게 완성된 <깃발, 창공, 파티>는 노동 영화의 새로운 지형을 개척하는 선도자로서 훗날 평가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해본다.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우애와 연대의 정서를 품으면서도 그로 인해 창작자가 적정 거리를 두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 긴장을 유지했다. 뉴스 영상과 차별화되지 않는 스펙터클한 이미지나 과도하게 직접적인 인터뷰를 최대한 배제하면서, 끈기 있는 관찰로 얻어진 장면들은 조화롭게 잘 어우러져 있다. 장윤미 감독의 이번 작품은 감독 본인으로서도 ‘사적 경향’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구분되어온 본인의 작품세계를 넘어서는 도전이다.

<깃발, 창공, 파티>에는 감독의 뚝심으로 포착한, 이전의 노동운동을 다룬 작품에서 볼 수 없던 진귀한 순간들이 잔뜩 들어차 있기에 그 효용성에 주목하는 이들이 여럿 될 것이다. 감독은 지금도, 특히 복수노조 관련 임금 및 단체교섭 대응 부분을 따로 교육자료로 활용되도록 편집본을 만들어야 하나는 고민에 빠져 있다고 전해진다.

노동운동에 관심이 있거나, 지금 그 현장에서 활동하는 이들에게 <깃발, 창공, 파티>는 2시간 40분을 투자할 가치가 충분한 미래의 노동 영화 중 먼저 도착한 첫 주자일 것이다.

 


작품 정보


깃발, 창공, 파티 Flag, Blue Sky, Party

한국, 다큐멘터리, 2019, 168분

감독 장윤미

24회 부산국제영화제(2019) 와이드 앵글-다큐멘터리 경쟁

24회 인천인권영화제(2019) 초청(상영작)

20회 인디다큐페스티발(2020) 초청(올해의 초점)

11회 부산평화영화제(2020) 공식 경쟁

 

※ 장윤미 감독 작품 목록

<군대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 (2012, 장편)

<어머니가방에들어가신다> (2014, 단편)

<늙은 연꽃> (2015, 단편)

<콘크리트의 불안> (2017, 단편)

<공사의 희로애락> (2018, 장편)

<깃발, 창공, 파티> (2019, 장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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