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 너머로 띄우는, Message in a Bottle

 

"바다로 가자" 영화 포스터 이미지

1_ 해방 8년사의 비극


2018년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1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이, 2019년에는 2차 북미 정상회담과 최초의 남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남북 관계가 과거 냉전 시대와는 질적으로 달라지는 전기를 맞았다고 믿었다. 1년여가 지난 2020년 6월,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는 현재 상황은 모든 게 2018년 이전으로 회귀해버린 모양새다. 개성 연락사무소가 과시적인 북측의 조치에 의해 폭파되고, 왕래는 어려울지언정 군사적 긴장은 대폭 완화되어 있던 휴전선에도 다시 무력 배치가 시작되려 한다.

많은 이들이 답답하고 속상한 상황이지만 그 누구보다 희망고문에 시달리고 있을 이들이 ‘이북 5도민’, 실향민 1세대일 것이다. 고령이라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에게 장밋빛 전망이던 남북 교류는 어릴 적 떠나온 고향과 생이별한 가족 친지를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을 터, 연락사무소를 통해 상설 이산가족 만남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는 당분간 실현되기 어려울 듯한 우울한 시절이다.

1945년 일본제국의 식민지 강점 상태에서 한반도는 해방을 맞는다. 외세의 지배에서 풀려나 자주적인 독립국가로 자립할 기회가 처참하게 무너지는 연속된 과정이었던 해방 이후 8년여를 ‘해방 8년사’로 지칭해 연구하는 경향도 있다. 당시 한반도 내의 주체적인 역량이 미흡했고, 동서 냉전의 동북아시아 최전선이라는 기구한 지정학적 위치로 새로운 초강대국이 벌이는 ‘Great Game’의 희생양이 된 것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48년 통일 정부 수립이 무산되고 남북은 독자 정부 수립을 감행했지만, 이때만 해도 분단이 고착화하리라고 예상치 않았다. 결정적인 국면은 1950년의 한국전쟁이었다. ‘한민족’, ‘동포’라는 막연하지만 강력한 인식은 이념과 그 뒤에 숨은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제약됐다. ‘통일’이 불온사상으로 통용되는 야만의 시간이 도래하고, 남쪽 절반이 반공 만능주의를 활용한 군사독재의 영향에서 벗어나기까지 근 40년이 흘러야 했다.

한국전쟁이 휴전에 이르기까지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수많은 이들이 위치를 이동하는 순간이 있었다. 남으로 온 이들은 정치적 탄압과 전쟁으로 인한 생존의 문제로 특히 한국전쟁 시기에 대거 발생한다. 38선에서 휴전선으로 물리적 국경이 일부 변경되었고, 한국전쟁의 극단적인 전황 변화로 인해 남한 내에서도 고향을 떠나 대구-부산 일대로 이주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영화 <바다로 가자> 스틸 이미지

특히 1.4 후퇴로, 전선이 남쪽으로 밀려나며 철수한 UN군을 따라 대거 난민이 발생한다. 이들은 황해도 지역에선 수도권으로, 함경도 일대에선 접경 지역인 강원도나 아예 남쪽 영남 일대까지 피난을 내려오다 정착하게 된다. 함경도 단천에서 피난을 와서 부산에 뿌리내린 실향민의 2세가 영화를 전공해 감독이 된다. 이번에 소개할 <바다로 가자>의 김량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2_ 전형적인 구조와 다양한 요소의 안정적 결합

김량 감독의 아버지는 혈혈단신 함경도 고향을 벗어나 국군에 입대했다. 아버지는 자수성가해 기반을 닦고 안정된 노후를 누리는 듯 보이지만 가족들과 별 대화가 없다. 감독은 피상적으로 아버지가 실향민이라는 걸 인식할 뿐, 큰 관심이나 상세한 정보는 갖고 있지 않았다. 영화는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감독은 잘 웃지도 않고 말수도 적은 아버지의 과거를 추적하며 남자 형제들과 조카에게서 그녀와 유사한 여러 체험들, 그리고 실향민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은 아버지와 유사한 다른 실향민 세대들을 발품을 팔아 찾아다니며 메운다. 애니메이션과 재연 연기를 통해 펼쳐지는 이미지의 재현, 내용에 대한 공감대를 획득하기 위한 전문가 인터뷰의 적절한 활용이 가미된다. 70분 조금 넘는 간략한 분량의 장편 작품이지만 퍽 방대한 정보량과 촘촘한 구성이 돋보인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재현 과정에서 요즘처럼 사진과 영상 기록이 넘쳐나는 시절은 의외로 최근 몇 년에 불과하다. 가상의 영화적 현실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내는 픽션 영화와는 다른 지점에서 이미지로 이야기를 전하는 데 제약이 매우 크다. 그렇기에 국내에서는 흔히 다큐멘터리라 하면 실제 촬영한 영상(혹은 사진까지)의 편집만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해외 다큐멘터리는 다양한 방식(낭독, 인터뷰, 애니메이션, 심지어 인형극까지!)을 활용하는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표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김량 감독의 <바다로 가자>는 인상적인 소재와 주인공 소개로 시작해, 그 논리적 근거와 시각적 효과를 위한 전문가의 논증과 관객의 감정을 고양하는 장치를 활용해 서서히 클라이맥스와 결말로 끌고 가는 전통적 전개를 취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애니메이션과 배우 연기에 의한 재연 등의 다채로운 장치를 활용하는 효과적으로 주제를 전달한다.

 

"바다로 가자"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바다로 가자> 스틸 이미지

실향민 당사자들의 이야기에 객관성을 부여하고자 <바다로 가자>는 전문가 인터뷰를 자주 활용한다. 고경빈 남북교류협력재단 前 이사장은 실향민 개별의 추억담을 사회적 집단의 문제의식으로 풀어낸다. 중앙대 법학과 제성호 교수는 실향민들의 권리에 대해 ‘가족권’이라는 개념이 법학에서 존재함을 해설한다. 여기서 화룡점정은 국내에도 번역 출판된 <그들의 무덤은 구름 속에> (출판사 난쟁이, 2009)의 저자 아네트 비비오르카 교수의 등장이다.

제성호 교수는 <바다로 가자>가 좌우 이념 대립의 문제가 아닌 보편적 인권의 문제로 실향민 문제를 접근하고 있음을 ‘인증’하는 역할도 맡은 듯하다. (이 작품은 2017년 통일부 영화제작지원 공모사업 대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무시무시한 이력과는 달리 제성호 교수는 한국에선 사적으로는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정작 법 제도적으로는 미비한 “가족권”에 대해 차분하게 해설하며 실향민의 이산가족 상봉 권리를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국제적으로는 꽤 정착된 인권의 영역이지만 한국전쟁 이후 분단 특수성 때문에 부정당해온 이 권리 개념은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표작 <그들의 무덤은 구름 속에>를 통해 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아우슈비츠 이야기 방식으로 역사수정주의에 철퇴를 내리고 학살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키는 작업을 꾸준히 해온 아네트 비비오르카 교수는 어느새 우리가 익숙해져 버린 분단과 그 파괴적 효과가 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도 유사한 사례조차 없는 보편 인권의 침해와 기약 없는 반인권적 상황임을 사실상 섬에 갇혀 사는 남한의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가족 간의 왕래도 철저히 차단하는 비이성적인 상황이 오래되다 보니 그 상황에 중독되어 비정상이 정상화된 한국의 현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 부분이다.

 

"그들의 무덤은 구름 속에" 도서 표지 이미지


3_ 또 하나의 내전

김량 감독은 부친에게서 끌어내지 못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아버지와 같은 1세대 실향민을 찾아 전국을 누빈다. 특히 함경남도에서 1.4 후퇴 전후로 대거 남하한 실향민들이 집단 정착한 속초 에피소드가 눈길을 끈다. 실향민 1세대들이 2000년대 이후 여러 경로로 북한에 남은 가족들과 교류를 모색하는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그 과정에서 선입견을 깨는 내용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이산가족 상봉 이벤트를 대표하는 하나의 이미지, ‘피는 물보다 진하다’며 수십 년 만에 백발로 만난 부모와 자식들의 원래 일심동체인 것처럼 달라붙은 강렬한 인상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어떤 이는 자식들을 다 키워 독립시키고 길지 않을 여생을 북쪽에 있는 친인척들 뒷바라지에 보내기도 한다. 그런 실향민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다양하다.

2세, 3세로 갈수록 그러한 화학적 결합이 약해지는 게 영화 속에서 한눈에 펼쳐진다. 얼굴도 모르는 친척이 북한에 존재한다지만, 유년기의 체험이 부재한 후속 세대에겐 큰 감흥이 없다. 1세대가 가진 원초적 감정은 공유되지 않고, 부담은 커지는 셈이다. 1세대가 포토샵으로 합성한 상상의 가족사진까지 만들어 뭉클하게 바라보거나, 어쩌다 열리다 마는 북한 관광에 참여해 고향 집을 보고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지만, 이후 세대는 실향민 디아스포라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내켜 하지 않는다.

북에서 남으로 독자 정부 수립부터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내려온 이들에겐 다양한 사연이 존재하지만, 상당 부분 북한 체제와 맞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토지개혁이나 정치적 탄압으로 인한 피해 때문에 남으로 이주한 실향민 대다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별도로, 북한 체제에 대한 분노와 그 반작용으로 남한 내 반공 보수에 대한 지지가 통용된다.

하지만, 그 후속 세대는 남한 사회에서 성장하며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거나 상대적으로 진보적 시각을 가질 수가 있기 마련이니 일반적인 가족 내 갈등보다 몇 배 더 증폭된 ‘내전’을 겪기도 한다. 한 실향민 2세대가 들려주는 형제자매의 비극적 생애는 꽤 충격적이다. 많은 실향민 2세, 3세가 평범한 정신으로 살 수 없었던 부모 세대를 심정적으로 이해는 하지만, 동의하거나 용납하긴 힘들다는 태도를 보인다.

 

"바다로 가자"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바다로 가자> 스틸 이미지

남한 체제와 정부는 그런 상흔에 대해 아무것도 책임지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실향민의 망향가와 이산가족 찾기조차 정치적 도구로 이용해온 것이 남한 현대사의 어두운 이면이다. 좌우 이념 대립으로 인한 갈등과 비극이 가족 내 내전으로 비화하거나 화해하기 힘든 고통으로 치닫는 사연은 우리 주변에 즐비하게 널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전쟁과 학살을 일상으로 경험한 실향민 1세대들에게 반공 보수는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 되기도 했다.

감독 자신도 그런 시간을 어지간히 오래 겪었겠지만 <바다로 가자>는 관찰적 시선을 유지하며 그런 갈등을 동류의 다른 실향민들 인터뷰와 이야기로 풀어내는 객관을 유지하려 참 집요하게 시도한다. 실향민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갈등이 이야기의 전개 기본 축이라는 점에서 <아버지의 이메일>(2012, 다큐멘터리, 감독 홍재희)과도 통하는 구석이 많지만, 객관적 관찰을 통한 주제의식 전달에 집중한다는 측면에서 두 작품은 차별성이 엄연히 존재하고 상호보완적인 감상이 유용한 조합이다. 이념과 국가를 초월해 가족의 생존과 행복을 위해 사선을 넘나드는 탈북민 주인공 가족의 일화, <올드마린보이>(2017, 다큐멘터리, 감독 진모영)도 함께 본다면 좋은 궁합이 나올 것이다.


4_ 이념을 넘어선 인간의 권리

가해자와 피해자가 여전히 존재하는 역사적 비극의 멍에 아래 분단과 실향민 문제를 ‘중립적’으로 다루는 건 쉽지 않은 작업이다. 김량 감독은 난도가 높은 실향민 이야기를 감독의 자전적 경험으로부터 출발해, 남북 정세가 요동치고 실향민 1세대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시점에서 적절하게 선보인다.

영화는 장벽이 없는 ‘바다’라는 공간을 통해 부친의 고향인 함경도 단천으로 갈 수 있기를 바라는 염원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그 당위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이 소박한 당위는 과거 한반도에서 불온 시 되었고, 가혹한 탄압의 대상이었다. 그런 국가폭력의 결과는 살아남기 위해 누구 편에 서야 할 것인가라는 고려와, 그 고려의 결과인 체제 내화로 귀결되었다. 수많은 실향민 가족은 이산의 아픔을 치유하기는커녕, 남북 간 정치적 대결의 미시적 확장으로 가족 공동체 내에서조차 ‘내전 Civil War'을 치러야 하는 이중고, 삼중고에 방치되었다. 그 누구도 이를 책임지려하지 않는다. 그저 고통과 한은 피해 당사자에게 대물림되어왔을 뿐이다.

<바다로 가자>는 실향민 당사자들이 하나둘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는 21세기에 이들의 집단적 고통을 기억하는 아카이브 작업이다. 동시에, 정치와 이념 대립의 허구 속에서 질식되어온 보편적 인권을 단호하게 제기하는 정치적 발언이기도 하다. 당사자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에서 비롯된 감정의 폭풍은 감독이 꼼꼼하게 준비한 다양한 정보와 장치들로 논리적 설득력까지 확보했다. 이성과 감성, 논리와 감정의 조화가 적절히 이뤄진 <바다로 가자>는 남북 관계가 다시 안갯속으로 잠기는 올해 6월, 한국전쟁 70주년에 적절하게 도착한 흥미로운 다큐멘터리가 될 것이다. 실향민 디아스포라에 대한 대중적인 영상 자료로 유용하기 그지없다.

 


작품 정보

 

바다로 가자 Forbidden Fatherland


한국, 다큐멘터리, 2018

2020.06.18. 개봉, 72분, 전체관람가

감독 김량

주연 김주영, 이광자, 조영진, 박미성, 최준우, 홍근진, 김기형, 박경순, 김경재

 

20회 부산독립영화제(2018) 경쟁(메이드 인 부산)

44회 서울독립영화제(2018) 초청(통일 기획전)

16회 서울환경영화제(2019) 한국경쟁

7회 디아스포라영화제(2019) 초청(코리안 디아스포라)

6회 가톨릭영화제(2019) 초청(CaFF 초이스 장편)

17회 서울국제사랑영화제(2020) 초청(이음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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