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라!] “욕창”
[이 영화를 보라!] “욕창”
  • 김상목
  • 승인 2020.07.0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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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와 현대 가족의 데칼코마니

 

1_ 우리 곁에 스며드는 “욕창”의 악취

 

“욕창은 겉에서 봐서는 몰라요, 속이 얼마나 깊은지가 문제거든요”

영화 <욕창>의 전체를 관통하는 대사. 7월 초에 개봉하는 <욕창>은 한국 사회와 현대 가족의 부조리한 부위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끄집어내 감춰둔 욕창을 관객에게 폭로한다.

서울 연신내 호젓한 주택가에서 세 노인이 동거한다. 주인공인 ‘창식’은 퇴직 공무원이다. 창식에게는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된 반려자 ‘길순’이 있다. 창식은 길순을 돌보기 위해 중국동포 입주 간병인 ‘수옥’과 함께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항상 누워지내던 ‘길순’에게 욕창이 발생하고 쉬이 낫지 않는다. 그와 함께 본격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건이 발생하며 마지막까지 영화 속 인물과 관객을 나락으로 끌고가려 한다.

영화에서 정작 길순의 욕창은 한 번도 제대로 클로즈업되지 않는다. 감독이 보여주고픈 “욕창”은 길순의 시들어가는 육체에 번진 상처가 아니라, 겉으로는 별문제 없는 은퇴세대와 가족 간의 묵을 대로 묵혀둔 마음속 “욕창”이기 때문이다. 

<욕창>은 알찬 배우 캐스팅과 영화 속 인물의 관계망, 그리고 각각의 인물이 상징하는 세대와 계층, 성별 역할을 절묘하게 활용해, 한국 사회와 가족의 부조리함을 꽉 눌러 담은 압축 포장 킷에서 하나씩 풀어내기 시작한다.

 

"욕창" 영화 스틸 이미지
“욕창” 영화 스틸 이미지


2_ 캐스팅 첫 번째 : 중년 여배우 전성시대

<욕창>의 촬영은 2018년에 이뤄졌다. 2019년 여러 영화제를 거쳐 2020년 개봉을 맞이한다. 심혜정 감독은 중장년 캐릭터 중심의 배역을 절묘하게 수집해 관객에게 선보이는데, 그중에서도 중년 여성 배우 캐스팅은 유독 돋보인다. 

우선 영화 내내 대사 한마디 없이 몸짓과 눈빛만으로 연기를 펼쳐야 했던 뇌졸중 환자 ‘길순’ 역의 전국향 배우는 그간 영화와 연극, 방송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활약해왔다. 또한, 이 작품에서도 출중한 연기를 선보인다. 말로 캐릭터를 드러내기는 쉽지만, 미세한 신체의 떨림과 표정만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은 자신의 육신을 온전히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전국향 배우는 사건의 출발점인 “욕창”의 기원으로 모든 상황을 출발시키고 마무리해낸다.

 

"욕창" 영화 스틸 이미지 (전국향 배우)
“욕창” 영화 스틸 이미지(전국향 배우).
"욕창" 영화 스틸 이미지 (강애심 배우)
“욕창” 영화 스틸 이미지(강애심 배우). 

중국동포 간병인 ‘수옥’ 역을 맡은 강애심 배우는 연극과 뮤지컬계에서는 당대 정상급의 실력을 뽐내는 스타 연기자다. 영화와 방송에서는 최근에 모습을 선보였지만 ‘배우’들의 ‘배우’ 같은 위상을 가진 바, 영화 속에서도 중국동포로서 때로는 욕망의 주체로, 혹은 그 대상으로 뇌리에 남는 연기를 선보인다. <욕창>이 선보이는 한국 사회의 여러 부조리 가운데 우리 사회가 재외 동포나 이주민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생생한 사례를 보여준다.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극 후반 미묘한 감정선을 표현할 때도, 악다구니를 써가며 천연덕스럽게 감정을 드러낼 때도 저 배우 아니면 누가 역할을 소화할까 싶을 만큼 멋들어진 장면들을 연출한다. 

‘창식’과 ‘길순’의 세 자녀 중 막내이자 유일한 딸인 ‘지수’역은 김도영 배우가 맡았다. 김도영은 오랜 경력의 연기자 출신이자 근래 <자유연기>와 <82년생 김지영>을 연출한 감독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영화에서 지수는 창식과 길순의 세 자녀 중 유일하게 ‘자식 노릇’을 하지만, 뭐든 잘 해내고 떠받치려던 그의 삶 역시 사상누각에 불과했음을 확인한다. 이는 <욕창>의 세계가 노인, 혹은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에게만 가혹한 구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불행을 양산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욕창" 영화 스틸 이미지 (김도영 배우)
“욕창” 영화 스틸 이미지(김도영 배우).
"욕창" 영화 스틸 이미지 (강말금 배우)
“욕창” 영화 스틸 이미지(강말금 배우).

그 외에 비중이 크진 않지만 10대 시절 이후 계속 아버지와 불화 상태인 장남을 대신해 가족과 연결되는 며느리 ‘지영’의 권미아 배우, 단 한 씬에만 등장하지만 “욕창”에 대한 정의를 내려주는 방문간호사 역으로 (근작 <찬실이는 복도 많지>로 주목받는) 강말금 배우, 독립장편영화 <보희와 녹양>에서 주연을 맡았던 ‘지수’의 딸 ‘미라’ 역의 김주아 배우도 주관이 뚜렷하고 능동적인 역할을 도맡아 해낸다.

한마디로 <욕창>의 세계 속 여자들은 영화 속 운명과는 별개로 강력하다. <욕창>은 여성 감독의 세심한 배치로 다양한 연령대, 특히 중장년 배우들의 캐릭터가 효과적으로 구현된 한국 사회 여성 파워의 한 성과이기도 하다.

 

3_ 캐스팅 두 번째 : 무기력한 남성 군상

반면에 주인공 ‘창식’ 역의 김종구 배우를 제외한 다른 남성 캐릭터들은 대부분 무능하고 무기력하다. 김종구 배우 역시 얼굴만 보면 ‘아 저분!’ 하는 탄성을 자아내게 할 검증된 전천후 연기자인데 이번에는 각 잡고 장편의 주연으로 공전 불후의 연기를 선보인다.

<욕창> 작품은 거칠게 뭉뚱그리자면 ‘길순’의 “욕창”에서 시작해 ‘창식’의 욕망이 펼쳐지는 일대기다. 김종구 배우는 ‘길순’에 대한 지극정성과 함께 자녀들에 대한 편애와 차별, ‘수옥’에 대한 일그러진 욕망까지 극 중에서 가장 입체적이자 능동적인 존재감을 마음껏 펼쳐낸다. 영화는 정적인 ‘길순’과 동적인 ‘창식’,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노년 주인공들의 육체와 동선으로 승부를 거는데 김종구 배우는 동적인 부분을 맡아 문자 그대로 열연을 펼쳐 보인다. 배우의 연기를 통해 우리는 한국 사회 내에서 점점 소외되어가는 노인세대의 울분과 함께 그 세대의 한계를 동시에 접하게 된다.

창식과 길순의 아들 둘은 부모의 편애로 인생이 갈린다. 첫째는 아버지의 기대를 받지 못한 정신적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도망 다니는 신세이다. 한 번도 실제 등장은 하지 않지만, 자녀 간 불화의 근원인 ‘창식’이 편애하던 ‘잘난 존재’ 둘째는 아버지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지만, 사업을 말아먹고 해외 도피 중이다. 막내딸 ‘지수’의 남편을 맡은 ‘우재’ 역시 외견상 성공한 사업가이고 아내의 심리를 잘 알지만, 그녀를 진심으로 책임지려하지 않고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는 ‘쇼윈도 부부’의 전형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유일한 능동적 남성 ‘창식’의 행보는 더욱 돋보인다. 아내 길순에 대한 창식의 책임감은 비뚤어져 보일지라도 명확하다. 흔히 말하는 ‘마초’의 면모. ‘가부장’의 권위가 견제되지 않을 때 드러나는 한국 사회의 폭력성은 비슷한 경험을 가진 관객이라면 끔찍한 트라우마를 떠올릴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된다. 두 아들은 권위적 가부장에 짓눌리거나 비위를 맞추거나 하면서 결국 종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막내딸 ‘미라’가 비록 잔혹한 신의 악의로 파국을 맞더라도 타개를 위해 노력을 다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창식’이 극 중에서 보여주는 가장 큰 반전이자 사건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가치관이나 인식에 따라 극명하게 입장이 갈리는 부분이다. 노인세대의 욕망, 100세 시대에 대두될 제2의 인생 측면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 혹은 그 관계의 일방적 접근 방식으로 인하여 불편함과 권력 남용으로 비칠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문제 해결을 정책적으로 토론하기보다 수단이자 틀로서 문제 제기 역할에 더 합당하다고 인정한다면, <욕창>에서 ‘창식’의 행보가 던지는 질문은 매우 유용하고 값진 예술의 역할이지 않을까?

 

4_ 다양한 소재와 배경이 어우러지는 데칼코마니


<욕창>은 가부장제의 현 실태를 “욕창”에 빗대어 풀어내는 이야기 전개와 긴장이 일품이다. 그 행간에 퍽 다양한 소재를 풀어내며 우리 사회의 모순을 파헤치는 재미 또한 적지 않다.

‘폐지 줍는 노인’으로 표준화된 노인 문제가 아니라, 은퇴했거나 앞둔 세대 전체의 쟁점으로 노인 문제를 끌고 오는 힘이 돋보인다. 외견상으로는 연금을 받고 자가 주택을 소유한 이들이라도 피할 수 없는 문제점들을 다양하게 선보인다.

영화 내내 뚜렷한 의미 없이 보행 보조 기구를 이용해 ‘창식’의 주변을 맴도는 정체불명의 노인은 주인공을 비롯한 노인세대 전반이 가진 불안감을 끊임없이 환기하는 유령 같은 존재로 활용되는 영화적 장치의 하나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 부부가 생활하는데 누구 하나 몸져누우면 다른 이도 골병이 드는 상황, 간병인을 구하거나 요양 시설에 들어가려 할 때 내는 비용의 문제, 늘그막에 다가오는 새 출발 혹은 연애의 갈구 등은 실제 이미 대두된 문제지만 선거나 사건·사고 발생 시 대책 홍보와는 달리, 실질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숙제들이다. 

영화는 주인공 가족들과 입주 간병인 ‘수옥’ 사이의 권력관계를 통해 이주민-이주노동자 문제를 상당히 ‘쎄게’ 제기한다. 겉으로 이 가족과 수옥은 영화 후반의 본격적 파국 이전까지는 무척 가깝고 허물없는 사이로 보인다. 

하지만, 딸 지수는 가족들에게 수옥이 비자가 없는 미등록 체류자이기에 상대적으로 싼 임금으로 만족한다는 속내를 공공연하게 드러낸다. 수옥은 중국에 남은 손자까지 억척스럽게 뒷바라지하고 있지만, 이 가족에게 수옥의 그런 사정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직 불편한 일을 맡기기 위한 이용대상일 뿐, 더 나은 조건의 대체재가 나오거나 그들의 이익을 침해할 때는 서슴없이 버릴 수 있는 부품처럼 취급한다. 

영화는 중장년 세대에게 최근 들어 익숙해지는 황혼이혼의 문제나 녀남 중 남성 측의 일방적 이혼 요구, 가부장 권위의 일방통행 등 현대 가족의 전통이 붕괴하면서 겪는 여러 쟁점을 솜씨 좋게 늘어놓고 알맞게 갈무리한다. 그만큼 <욕창>이 사회를 보는 시각과 소재를 다루는 솜씨는 매끈하고 공정한 편이다.

 

5_ 유행과 무관하게, 꼭 필요한 이야기

흔히 독립영화는 젊은 영화인들이 상업영화로 진출하기 전 습작으로 만들거나, 사회운동 혹은 대안 언론의 하나로 현실참여와 사회비판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인식되곤 한다. 상당 부분 사실이다. 하지만 21세기의 독립영화는 주류 상업영화의 제약과 표현의 자유 제한에 속박되지 않으려는 영화인들이 경제적 성공과 명성을 포기하고, 작가로서의 자유를 추구하며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중장년층, 그리고 여성 영화인 중심으로 설정과 작업이 이뤄진 심혜정 감독의 <욕창>은 더없이 섬세한 구성과 풍부한 이야깃거리, 개성 넘치는 배우들의 연기로 사회문제와 이야기의 재미를 모두 구현한 만만찮은 영화다. 색다른 ‘웰-메이드’ 영화를 보고 싶다면 <욕창>이 선보이는 우울한 데칼코마니 풍경에도 한 번 관심 가져주시라.

 


작품 정보

 

욕창 Bedsore

 

한국, 드라마, 2019

2020. 7. 2. 99분, 12세관람가

감독 심혜정

주연 김종구, 강애심, 전국향, 김도영

배급 필름다빈


20회 전주국제영화제(2019) 한국경쟁

19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2019) 초청(심혜정 특별전)

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2019) 한국장편경쟁

19회 전북독립영화제(2019) 국내 경쟁

14회 런던한국영화제(2019) 초청(위민즈 보이시스)

45회 서울독립영화제(2019) 초청(특별 초청_장편)

26회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2020) 심사위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