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연극 전태일’의 현장을 찾아서

 

‘2020 연극 전태일’이 코로나19의 삼엄한 수비를 뚫고 결국 대장정에 나섰다. 매일 터져 나오던 수도권의 산발적 감염 소식 속에서 6월 구로 초연을 치러내고 7월 4일 경산시민회관 공연을 막 마쳤다. 이제 안동으로 향한다. 이 장기 불황에 관의 지원 없이 자발적 우정과 연대로 밥을 모아 전태일처럼 뚜벅뚜벅 걷는다.

사막 같은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고 싶다고 제작진은 말한다. 이 공연에는 젊은 예술 노동자들의 땀냄새가 짙게 배어 있다. 16명의 배우는 두 달 동안 ‘연극 전태일’의 장면들을 만들어왔고 무대마다 온 힘을 다하고 있다. 마이크 없이 대강당에서 치러낸 경산 공연 뒤풀이 사진 속에 배우들의 볼은 홀쭉해져 있다. 엄격한 거리두기 지침으로 좌석이 3분의 1만 허락되고 발열 체크와 문진표 작성 등 번거롭고 열악한 공연 환경 속에서 어쨌든, 경산 공연 좌석은 사람들로 띄엄띄엄, 꽉 들어찼다. 

10명이 전태일 역을 나눠 맡았다. 여성이 셋, 남성이 일곱. 여럿이 돌아가면서 전태일 역을 하니, 그의 삶의 순간들이 더 잘 들여다보인다. 이 서사적 ‘거리두기’ 장치는 보는 내내 관객을 새로 시작하게 한다. 나는 장면마다 다른 전태일에 집중하기 위해 더 몰입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당시 평화시장 10대 여공들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청소년의 귀가를 권하는 라디오 방송이 나와도 집에 가지 못하는 여성노동자들은 몇 날 며칠 밤샘 노동에 시달리며 잠 쫓는 약에 기대어 조악한 도시락마저 수돗물로 대신하며 깡마른 발육기를 보냈다. 먼지 구덩이 다락방에서 몇 년 동안 폐병 걸리도록 일하다가 피를 토하고 쓰러지면 해고! 

이런 여공들에게 반가운 휴식시간이 있었다. 바로 공장에 전기가 나가 몇 시간 동안 들어오지 않는 정전! 연극에서도 형상화되었다. 동료가 피를 토하고 해고된 후 그 자리에 앉아 1번으로 일해온 ‘표독미싱사’는 깊은 기침을 한다. 마스크를 쓴 시다들에게 겉멋만 들었다며 “공순이 주제에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는 대로 받고 먼지 나면 마시”라고 타박하며 시다들의 마스크를 벗기자 전기가 나간다. 이때 시다들은 창문을 열어 빛을 들인다.

창문을 열어젖힌 1번 시다가 기침하는 표독미싱사를 걱정하며 챙기자, 결국 미싱사는 시다의 이름을 묻는다. 기적적인 통성명 끝에 표독미싱사는 자기 이름을 말하지 못한다. 이름을 소개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 2020연극 전태일 ‘네 이름은 무엇이냐’. 사진=2020연극전태일추진위원회.

연극의 제목은 “네 이름은 무엇이냐”이다. 이 연극은 서로의 이름을 묻자고 한다. 단 하루도 일을 쉴 수 없는 물류센터 일용직 노동자들의, 무급휴직에 이어 권고사직을 당하고 있는 이웃 사람들의, 그리고 이 재난 속에서도 기능경기대회를 준비하다 세상을 떠난 고등학생의, 일터의 갑질과 성추행에 시달리다 세상을 등진 스물두 살 여성노동자의, 매일 죽는 일터의 사람들의 이름을 묻는다. 연극의 장면들은 50년 전 평화시장의 순간들을 묘사하지만, 끊임없이 지금 여기의 고민을 상기시키고 자극한다. 

코로나19로 정전된 세상에서 우리는 힘겹게 길을 찾고 있다. 무대 위에는 잔뜩 주눅 든 시다들이 앉아 있고 그 앞에는 무엇이 즐거운지, 맘보춤을 추는 전태일의 뒤태가 보인다. 무대 위의 전태일들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냐고. 연극을 보고 나오면 눈시울이 붉어진 사람들과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어디에 계시든, 연극 전태일의 대장정 한 지점에서 서로 만나 이름과 안부를 물어보시기 바란다.

 

글 _ 강성규 전교조대구지부 성서지회. ‘태일과 함께 그늘을 걷다’ 저자.

 


※ 이 글은 교육희망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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