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의 시원한 바람도 짧은 시간에 스치듯 지나간다. 잠시간 스치는 바람에 설레는 느낌이었다. 또한 아침 잠깐의 시간 동안 달콤한 바람을 맛본 것이기도 했다. 이제 곧 시작하겠지. 말매미의 격렬한 짝짓기의 소리와 함께 빛의 세기가 오르기 시작한다.

낮 동안의 무더위에 앞서 여름빛들은 빠른 속도로 온도를 올린다. 우리의 모니터링도 여름이 턱에 차올라 올 때쯤에는 달리 조금은 수그러들 수밖에. 이른 아침의 시간을 더 쓸 수밖에 없는 것을 저 타듯이 내리쏘는 빛들이 느끼게 해준다. 그렇게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다. 산으로 숲으로 말이다. 그렇지, 아직은 냉기 가득한 숲속에서의 걸음을 어슬렁거리게 만든다. 정말 빠른 시간에 우리는 망각에 빠진다. 빠르게 빛살들이 온 대지를 파고들어 타드는 무더위를 만들 것인데. 그래 누구도 살을 비집는 여름빛은 살인적인 빛임에 동의할 것인데 숲에서만큼은 슬렁거려도 되는 시간을 맘껏 즐겨봐도 되는 것을. 좀 더 망각에 빠져 이 숲에서는 허우적거려도 되었던 것일까.

 

▲구상난풀. 나무뿌리에 붙어 균근을 형성해서 자라는 균근식물이다. 그늘지고 부식토가 많은 곳에서 자란다. ⓒ이현정.

함께 한 선생님의 예리한 눈 속으로 구상난풀이 들어왔다. 오호라. 쾌재를 울렸다. 하지만 필요악이었던 망각이었음을. 곧 능선에 올랐을 때 뇌리에 번개가 친다. 진을 치고 있던 빛들은 순식간에 그늘숲에서 살랑였던 우리들의 모든 몸짓이 단박에 빛 속에 오래 머물 수 없음을 뜨겁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래서였을까. 능선에 펼쳐진 조사를 마치려 새액색거리는 내 숨소리와 여름의 강력한 빛에 백기 투항하듯 흐르는 땀방울은 그저 작은 손수건으로 훔쳐내기에 바빠졌다. 그렇게 오늘의 타깃 식물인 큰구와꼬리풀을 만난다. 여름빛에 푹푹 꺼질 것 같은 아니 금방이라도 고꾸라질 것 같다. 더욱이 바위 주변에 펼쳐져 있다. 바위의 열기 또한 피해 갈 수 없었을 것인데. 이들에게도 오래전 망각이 필요했을까. 좀 더 실렁거리며 피워 오를 곳을 찾아 헤맨 곳이 여기였을까.

빙기가 끝나고 따뜻함이 타들어 감으로 바뀔 것을 알고 지금 이곳이 이들의 피난처가 되었나 보다. 이보다 더 강한 빛엔 인간은 모두 당할 것인데. 오늘의 우리들보다 현명했음을, 여름빛에 투항하며 타드는 여름빛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망각이 찾아와도 또다시 기억을. 너무 늦지 않아야 한다. 아니 어쩌면 늦었을까.

 

▲큰구와꼬리풀은 여러해살이풀이다. 경주지역 능선에 생육한다. ⓒ이현정.  
▲큰구와꼬리풀. ⓒ이현정.

글 _  이현정 경주숲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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