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로 스스로를 규정한, 추락한 ‘이카로스’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메인 포스터 이미지


1. ‘옛날 옛적 혁명의 시대’

일본의 19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는 한국의 1987~1991년에 비견된다. 전 세계를 뒤흔든 1968년 전후의 ‘68혁명’ 시기에 막 경제부흥을 이룬 일본 또한 내재된 사회불안이 폭발했고 ‘전공투’(전학공투회의)로 대표되는 일본학생운동의 전성기를 통과한다. 전공투 출신 중 다수가 대학 졸업 후 기성세대에 편입되지만 여전히 상당수는 지속적으로 ‘신좌파’ 운동을 이어간다. 하지만 1970년대 초반 ‘산악 베이스 사건’과 ‘아사마 산장 사건’ 등으로 사회적 지탄과 함께 축소된다. 이런 일본 신좌파 운동의 마지막 불꽃은 현재까지도 일본 도쿄의 항공교통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만든 ‘나리타공항 반대 투쟁’이었다. (이 투쟁은 심지어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무장 투쟁을 목표하던 소수 그룹은 ‘적군파’(연합적군)로 불리는 집단으로 이어지고 그 외에도 다양한 경향의 그룹들이 명멸한다.

1974~75년 사이 일본의 비합법 전위 운동 조직들 중 일군의 노동자-학생 연대 그룹들, “늑대”, “대지의 엄니”, “전갈”로 스스로를 자처한 이들에 의해 미쓰비시, 미쓰이 등 굴지의 대기업들에 대한 연쇄 다발 공격, 속칭 ‘테러’가 일어난다. 이들은 스스로를 통칭해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라 불렀고, 대기업 본사에서 폭탄을 터뜨려 다수의 인명 피해를 일으키면서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안겼다. 이들은 1975년에 대대적으로 체포되었다.

당대 일본 사회를 휩쓸었던 ‘전공투’-‘적군파’ 내에서도 소수 비주류 그룹이던 이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곧 대중들에게 잊혔지만, 대기업을 직격하고 국제연대를 강조한 그들의 투쟁은 긴 파장을 남긴다. 체포된 이들은 사형 선고를 받거나 대부분 무기형 수준의 장기 복역 중이고, 일부는 자결하거나 팔레스타인 등으로 탈출해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등 투쟁을 이어나갔다.

영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바로 그 일군의 ‘00부대’로 스스로를 호칭하던 이들의 과거와 현재를 좇으며 그 의의와 시사성을 조명하려는 야심찬 작업이다.


2. 잊힌 존재들의 현재적 의미를 찾아서


영화는 건설 일용직 노동자를 아버지로 둔 감독이 한국의 현재 건설업 구조를 이식시킨 일본의 건설 하도급 노동의 실태를 다룬 영화 <노가다>(2005)를 제작한 것을 계기로 기획되었다.

감독은 도쿄의 일용직 노동자 주거지인 ‘산야’와 오사카의 ‘가마가사키’ 일대를 촬영하면서 근 한 세기에 걸친 한-일 건설 일용직들의 형성 과정과 노동 환경이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이들의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사회운동 단체들과 교류하면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런 10여 년의 제작 과정을 함축하듯 영화의 도입부는 오사카의 가마가사키 지역에서 출발해 늑대 부대, 대지의 엄니 부대, 전갈 부대로 호칭되던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개별 그룹의 흔적을 따라간다. 각 ‘부대’의 과거 활동을 소개하고 현재 생존자와 지원자들을 만나면서 감독의 카메라는 이들 그룹의 투쟁에서 특이점으로 평가되는, 동아시아, 특히 한일문제의 역사적 연결고리에 대한 고민과 시도를 설명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후반부에서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에 대한 연구자들의 인터뷰와 당사자들의 전후 회고를 통해 도시게릴라 무장투쟁을 추구했던 이들의 활동에 대한 평가도 잇따른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스틸 이미지

영화는 2017년 <늑대부대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처음 소개되었고, 등장인물들에게 많은 일이 일어났던 제작 이후 상황을 반영해 재편집되면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으로 바뀐다. 2019년 새 버전의 영화가 다수 영화제에서 소개된 뒤 개봉에 이른 이 작품이 지금처럼 한일 관계가 극도로 경색된 상황에서 미래지향적 전망 모색에 어떻게 기여할지 흥미로워지는 순간이다. 한국의 독립 다큐멘터리들은 역사와 사회 구조에 대해 천착해 왔지만, 근래에 들어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만큼 학구적인 작품은 흔치 않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스스로 역사를 해석하거나 평가하기보다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행하던 존재들이다. 스스로를 ‘전사’ 혹은 ‘군인’으로 설정했다. ‘반일 망국’을 목표로 하며 여러 번의 ‘선언’과 실제의 ‘공격’(흔히 ‘테러’라 불리는)을 감행했고, 그에 따른 대가를 평생에 걸쳐 치르고 있다. 일본의 사회운동 내에서도 이들 소수 그룹의 폭력투쟁에 대한 시각은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다. 주의 주장을 펴는 것과 그 실행 과정에서 ‘인명살상’이 벌어지는 것은 매우 다른 궤에 속하게 마련이니. 각 부대의 생존자들의 회고담이나 이들에 대한 연구자들의 평가 또한 그들의 당시 주장에 대해 주목하면서도 공통적으로 부정적 평가에 기운다. 일본 굴지의 대기업들에 대한 폭탄 공격의 충격에 비해 실제 그들이 의도했던 효과는 미진했다.

공권력의 가혹한 탄압은 마치 우리의 과거 군사정권 당시 공안탄압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할 정도로 큰 피해를 안겼다. 20대 초중반에 불과했던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구성원들은 사형이나 무기징역에 대부분 처해졌고, 실행에 가담하지 않은 동조자들까지 중형에 처해졌다. 연좌제를 방불케 하는 가족들에 대한 감시와 차별 또한 횡행했고, 견디다 못한 가족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일이 속출했다. 인생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낸 생존자는 60대 중반에 출소 후에도 ‘테러리스트’라는 사회적 낙인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스틸 이미지

하지만 그들을 지원하는 ‘지원자 그룹’은 새로운 가족이 되어주기도 한다. 늑대 부대의 리더였던 다이도지 마사시를 지원하기 위해 번듯한 상장기업에 다니는 지지자는 법적 동생으로 입적해 다이도지 지하루가 된 후 면회를 다닌다. 대지의 엄니 부대원이던 에키타 유키코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 대신에 지원자와 모녀 관계를 형성한다. 부대원의 지인과 지원자 그룹은 이제는 세상에서 잊힌 존재들을 알리기 위해 소식지를 만들고 면회를 조직하고 편지를 보낸다. (그런 서신을 정부는 ‘사형수’란 이유로 전달하지 않는다) 이런 부분은 ‘민가협’이나 ‘양심수 후원회’ 같은 활동을 겪은 우리들에게도 퍽 익숙한 풍경일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과거 젊음의 치기로 성급한 투쟁을 벌이다 실패한 운동가들의 후일담으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읽히기 딱 좋다. 하지만 감독은 고작 그 정도를 보여주려고 10여 년 동안 이 작업에 매달리지 않았다. 후술할 ‘가해자성’에 대한 천착은 이 작품이 보여주는 백미라 하겠다.


3.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현재적 의의


3_1. ‘가해자성’의 긍정이란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를 뒤흔든 ‘68혁명’은 지역별로 다양한 면모를 선보였지만, 후대에는 ‘신좌파’ 대두의 전기로 평가된다.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자면, 제국주의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패망 후 역사에 대한 반성이 두드러진다. (이는 같은 ‘전범국가’ 독일과도 상통하는 지점이다)

당시 일본 경찰 내 공안부는 대부분 일본제국 시절에 ‘비(非)국민’이라 통칭된 반정부 세력을 모질게 탄압하던 ‘고등계 형사’들이 그대로 눌러앉은 수준이었다. 그런 악습을 고스란히 지닌 이들이 교육계나 사회 전반에서 기득권층으로 뿌리내린 채 청산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일본의 신좌파 역시 ‘반反권위주의’를 표방하며 기성세대와 격렬한 충돌을 벌였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각 부대가 그들의 짧은 ‘전쟁’ 시기에 내놓은 성명서나 구성원들의 저술들은 여기에서 진일보한 세계관을 선보였다. 그 점이 바다 건너 한국의 관객들에게도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킬 만하다.

당시 일본 신좌파는 자국 내의 여전히 잔존한 권위주의 체제에 격렬하게 반발했고, 베트남 전쟁이나 팔레스타인 해방전쟁에 연대하고자 했다. 이는 제1세계라 불리던 당시의 자본주의 강대국들에서 일어난 68혁명과 공통된 면모이다. 훗날 ‘적군파’(국제적군)로 불리는 다른 분파도 국제연대 관점에서 여객기 납치 등을 통해 머나먼 외국의 ‘해방투쟁’을 지원하거나 참전하기도 했다. 일정 부분 상대적으로 부유한 자신들의 조건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풍조가 일본의 신좌파 내에서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었으나,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거기에서 더 나아간다.

이들은 당시 소수 고립화되어가던 신좌파 그룹들 가운데 노동운동, 그중에서도 전술했던 산야나 가마가사키 지역의 불안정노동자들과 연계를 맺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근현대 일본 제국주의의 형성 과정과 그 특질의 잔존을 인식한다. 이들의 주요 투쟁이었던 미쓰비시나 미쓰이 재벌에 대한 직접 공격은 ‘정상배’라 불리던 이들 대기업의 과거 탄생과 부의 축적 과정이 일본제국과 궤를 같이 했었으며,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고도성장의 기틀이 된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의 단물을 청산되지 않은 이들 대자본이 고스란히 빨아먹는 현실에 대한 진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런 그들의 정세 인식은 지금 보면 독특한 구호와 주장을 낳기도 했다. 이들은 노동운동 통념에 배치되는 ‘임금인상 반대’를 외치기도 했는데, 이는 일본 국내 노동자의 고임금화가 필연적으로 재벌들의 동남아시아 등 인접국가로의 해외 이전을 낳고, 그 결과 제국주의적 착취 구조가 재현 및 유지된다는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좌파 계열에 속하는 그룹답게,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구성원들이 주목하는 노동의 층위는 가마가사키나 산야 지역에서 그들이 만나고 연대했던 하층 일용직, 요즘 같으면 불안정노동 계층이었으니 이는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방향성이라 하겠다. 당시에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강성했던 ‘렌고’ 등 제도권 노동운동의 자기 이익 향상 중심성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에 현재 일본과 한국에서 주목받는 ‘프레카리아트 운동’과는 친화성을 보여준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스틸 이미지

또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개별 구성원의 출신지인 홋카이도의 경우 근대에 들어 일본이 내부 식민지화한, 본래 아이누 민족의 터전이었으며, 안보투쟁 등에서 주목받던 오키나와의 경우도 동일하게 유구 왕국을 군사적으로 강제 병합했음을 깊게 인식하게 된다. 이들은 사회적 조건은 다르지만 비슷한 시기에 4.19혁명과 6.3 한일조약 반대투쟁에 나섰던 한국의 민주화 투쟁에도 주목하고, 여러 차례 방한하거나 문세광의 박정희 저격 시도를 평가하기도 했었다.(조직력의 한계로 한-일 사회운동 세력 간의 연계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전한다)

이들은 그 결과물로 ‘반일’ ‘망국’을 주요 목표로 내세운다. 이 구호들은 일본 사회의 소멸을 꾀하는 혐일 관점이 아니라 (그들이 판단하기에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일본제국 체제의 해체와 그런 체제를 잉태한 일본 민족국가로부터의 이탈을 목표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판단한 당대 일본은 홋카이도와 오키나와를 영토적으로 내부 식민지화하고, 자국 내 노동자와 빈민을 착취하는 오물더미에 다름 아닌 체제였으며, 수차례의 침략전쟁(청일전쟁, 러일전쟁,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을 통해 동아시아 전반을 수탈해온 부 위에 세워진 사회였다.

이들은 일부러 일제 치하 조선인과 중국인 강제 징용 사건의 주범인 대기업들을 타격하고, 그 ‘작전명’에 그 기업들이 저지른 학살을 상기하는 명칭을 붙이곤 했다. 또한 동시대 국제연대 투쟁을 위해 전후에도 여전히 해체되지 않고 살아남은 이들 대기업이 동아시아 곳곳에서 벌이는 대규모 공사(강제 개발과 노동력 착취가 수반된)에 저항하는 각국의 투쟁 세력을 지원하기 위한 공격도 눈에 띈다. 물론 아주 정교한 연구의 결과라기보다는 마치 한국의 80년대 학생운동의 과잉 이론화 면모와 비슷한 측면이 크긴 했지만, 서구 사회에 비해 식민주의에 대한 고찰이 빈약했던 당시 일본에선 충분히 파격적인 입장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3_2. 우경화되어가는 현대 일본의 기원


그 결과 이들은 스스로 ‘가해자’라는 결론에 도달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서구 역사학계에서 활발하게 연구되던 포스트 식민주의에 대한 접근을 애써 외면해오던 당대(현재도 물론) 일본 사회에선 획기적인 일이었다. 근대 일본은 그 출발부터 자국 내외를 가리지 않고 착취와 수탈을 통해 세워진 체제였으며, 지금의 일본인은 그러한 부富를 누리며 향유하는 존재라는 것을 이들은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착취자와 학살자의 후손이오!’라고 소리 높여 외치는 격이다. 이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기존의 일본 신좌파의 대부분은 그저 순수한 연대, 나쁘게는 시혜적 관점에서 국제연대를 낭만적으로 외치곤 했다. 그렇기에 일본 내에서도 학생운동이나 문화예술에서의 투쟁은 급진적이었으나, 한국의 민주화 투쟁 과정처럼 노학연대 등은 활발하지 못했다. 그들은 일본제국의 식민지로 이주했다가 패전 이후 강제로 귀환한 ‘인양인’, 앞에 언급한 나리타공항 반대 투쟁 과정에서 ‘히키아게샤’들과 만나게 된다.

이들은 일본 내에서 대부분 빈민이었다. 자기 땅을 가질 수 있다는 유혹으로 혹은 먹고살기 위해 군대에 입대했던 이들과 그 가족이었다. 이들은 조선이나 만주로 가서 그곳 주민들의 땅을 빼앗아서 분배해 준 일본 제국의 첨병이 된다. (동양척식회사가 바로 이런 용도로 만들어진 기관이다) 군대에 와서 세끼 배부르게 쌀밥을 처음 먹었다는 일본제국 군인들은 동아시아 곳곳에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패망 이후 천신만고 끝에 일본에 돌아와 다시 하층민으로 전락하고 과거의 ‘부라쿠민’처럼 차별받는 신세가 된다. 이들이 고생해 개간한 땅을 공항 부지로 강제 편입하려던 정부에 맞서 공항 반대 투쟁에 결합하고 나서야 신좌파는 이들의 존재를 통해 역사적 성찰에 이른다.

※ 나리타공항 투쟁을 소재로 한 만화 “우리 마을 이야기”(오제 아키라, 전 7권, 길찾기 출판사)가 국내에 번역 출간되어 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우리 마을 이야기” 국내 정식발매판 표지

동 시기에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좀 더 국제적 연계와 노동운동과의 제휴에 천착한다. 이들은 학술연구가 아니라 그들 투쟁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책으로 연구회 활동을 이어가면서 학습한 근대 일본의 역사에 충격을 받고, 일본의 체제 붕괴를 위해서는 그 체제를 떠받치는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의 대기업들을 직접 공격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실행한 유일한 그룹이다. (한국의 경우, 1987년 이후 대기업 노동운동에 투신한 활동가들의 목표 또한 비슷한 측면이 있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각 부대는 이런 대기업들이 일본제국과 당시 전후 일본을 연결하는 핵심 고리라 규정했고, 과거에 군사적 침략을 경제적 침략으로 고스란히 물려받아 여전히 실행하는 제국주의의 도구라 확신했다. 그렇기에 타도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폭탄을 던졌고 사람들이 여럿 죽어나갔다. 그리고 그들 또한 그 폭발에 삼켜졌다.

영화는 이런 역사적 고찰에서 현재를 조명하기 시작한다. 작품 후반부에서 천황제 반대 시위와 전몰자 추모 신사참배 현장을 비추고, 다시 한일 관계에 대한 부대원들의 서신이나 인터뷰들을 배치해 그들이 도달한 결론과 현재 상황을 비교한다. 전후 일본은 평화헌법 아래 표면적으로 유지되고 있지만, 2차 세계대전 직후 곧바로 벌어진 동서 냉전 속에서 동아시아의 반공 기지로 역할을 부여받은 덕분에 (한국의 친일파 청산 무산처럼) 일본제국의 관료-군대-경찰-재벌-교육 등 사회 전반의 기존 체제와 기득권은 거의 그대로 존속된다.

그로 인해 전쟁은 나쁘지만, 그 전쟁의 피해는 자국의 고통에 한정되는 인식이 보편적으로 수용된다. 마치 태평양전쟁은 그저 미국과 일본 강대국 간의 대결이었고, 그전에 그들이 저지른 무수한 아시아에서의 범죄는 존재하지 않은 걸로 치부되는. 그 결과가 작금의 우경화를 걷는 일본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를 영화는 전달하고자 한다. 일본은 좋은 의도로 아시아를 해방하려 했으나, 힘이 부족해 초강대국 미국에 패전한 것뿐이라는 일본 극우 세력의 인식은 여기에서 출발하는 것이라는. 전쟁이 나서 잿더미가 되고 많이 죽고 다쳤는데 그 원인은 은폐되고, 그저 전쟁은 나쁘지만 뭐 꼭 필요하면 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정상 국가’와 ‘자위군’의 욕망은 그렇게 근거를 얻는다.

감독과 출연자들은 현재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곳곳에서 마찰을 일으킴은 물론 일본 사회의 우경화 팽배에 대한 염려와 성찰을 어느덧 반세기 전 사건이 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이야기를 통해 제기한다.

부대 구성원들은 옥중에서 비로소 자신들의 생각과 행동을 정리할 시간을 가지고 저술 작업에 몰두하거나 늘그막에 출옥 후에도 사회운동을 이어나간다. 물론 그들의 현실은 초라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다수의 신좌파 출신이 자기의 과거를 부정하거나 단카이 세대의 속성(한국 86세대에 대한 비판과 그대로 직결되는)처럼 기성세대가 되고만 것에 비하면 이들은 자신들의 설익었던 투쟁을 반성하는 것과 별개로 여전히 신념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제는 그저 과거의 해프닝으로 단정되곤 하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활동은 오히려 지금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감독의 무언의 발언으로도 해석된다.

 

4. 가장 급진적인 ‘아시아주의’의 변형,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사상


4_1.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만화로 보는 아시아주의의 기원

 

▲“하늘의 혈맥” 국내 정식발매판 표지
▲“하늘의 혈맥” 국내 정식발매판 표지

일본 애니메이션은 한일 관계를 초월해 국내에서 지속적으로 인기를 누리는 서브-컬처이다. 일본 문화계에서 애니메이션 업계는 그중 진보적이고 반골 기질이 강한 걸로 손꼽히는데, 속칭 전공투-신좌파 계열이 학생운동 후 기업이나 공무원 취업이 안 되어 이쪽으로 대거 진출했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있을 정도다.(실제로 상당 부분 사실이다)

그중에도 우리에겐 일본 애니메이션을 상징하는 존재 가운데 하나인,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의 ‘모부’로 불리는 야스히코 요시카즈는 만화가로도 꾸준히 활동 중인데, 그의 근대사 연작이 ‘아시아주의’ 주제를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있어 소개해 본다.

▲“무지갯빛 트로츠키” 국내 정발판 표지

연작의 첫 번째(집필 순서로는 두 번째) “왕도의 개”(2012년 미우에서 전 4권 국내 출간)는 갑신정변과 동학농민전쟁, 청일전쟁과 일본 초창기 산업재해 중 대표적인 아시오 광독 사건 등의 메이지 시대 사건들을 조명하며 일본의 ‘패도’로의 경도를 묘사한다. 연작의 두 번째는 “하늘의 혈맥”(2018년 미우에서 전 4권 국내 출간)이다. 러일전쟁 직전, 만주의 광개토왕릉비 발굴단 일화와 일본 고대사에서 임나일본부설을 연계하는 내용으로 안중근이 등장한다! 집필 순서로는 첫 번째, 시기상으로는 세 번째인 “무지갯빛 트로츠키”(2013년 미우에서 전 4권 국내 출간)는 중일전쟁과 만주국을 무대로 2차 세계대전 직전의 쇼와 시대를 다룬다. 우리에겐 이름은 낯익지만 실체에 대해선 생소했던 만주국을 본격적으로 다룬 드문 작품이다. (메이지 시대와 쇼와 시대를 연결하는 다이쇼 시대, 러시아 혁명에 대한 간섭 전쟁 과정의 ‘시베리아 내전’을 다룬 차기작 “이누이와 타츠미”를 집필할 예정이라 한다)

일본 만화계에서도 가장 좌파적인 작가로 꼽히는 만큼, 이 근대사 3부작을 본다면 우리가 가지는 만화에 대한 편견이 대부분 깨어질 정도로 충격적이다. 전봉준에게 접근하는 일본 비밀결사나 김옥균을 후원하던 일본 유력자들, 안중근의 초창기 ‘친일’적 면모와 손문의 경호원인 일본의 낭인 무사 같은 우리가 상상하기 힘들었던 역사적 사료들이 ‘고작’ 만화에서 재현된다. 대체 2020년 한중일 정세에선 상상하기 힘든 이런 일들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아시아주의”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4_2.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기원, “아시아주의”의 명明과 암暗

 

# 일본은 서양 패도의 번견(番犬)이 될 것인가, 동양 왕도의 간성(干城)이 될 것인가?

- 손문, 1924년에 일본 고베의 현립 고등여학교에서 한 연설 <대아시아주의> 中

19세기 중후반 한중일, 그리고 아시아 각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선 ‘아시아주의’가 각광받은 한철이 존재했다. 서구 제국주의 열강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아시아 각국을 침략했고, 이에 맞서기 위해 국가별 부국강병과 함께 연대를 모색하는 흐름이었다. 그러나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근대사 3부작에서 생생하게 묘사되듯 한중일 3국의 연대는 일본이 패도를 걸으면서 무산된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들어간 1만엔 지폐 이미지
▲후쿠자와 유키치가 들어간 1만엔 지폐.

중국과 조선의 개혁을 방해하는 기득권 세력에 실망한 일본의 아시아주의자들은 오히려 적극적 침략자로 돌변한다. 김옥균을 후원했던, 지금도 일본 1만 엔 권에 얼굴이 실릴 정도로 일본의 대표적 지식인이던 후쿠자와 유키치는 갑신정변 좌절 후 ‘탈脫아亞입入구歐’를 주창하며 ‘아시아 미개’론을 앞장서서 전파하는 제국주의자가 된다. 그러나 자유주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초기 아시아주의에의 희구는 변질되는 과정에서도 이어진다. 물론 제대로 계승되기보다는 허울 좋은 만주국의 이념인 ‘5족협화’와 ‘왕도낙토’처럼 침략을 감추는 표어로만 남았을 뿐이지만. 그런 아시아주의의 급진적 좌파 버전으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 홀연히 출몰한 셈이다.

위에서 인용한 손문의 연설에선 ‘맹자’의 ‘왕도王度’라 표현되었지만, 제국주의 열강의 약육강식 침략 논리에 대항해 아시아의 피압박 국가들이 내부의 평등과 민주화, 외부의 자주적 민족국가의 길을 함께 걷자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왕도의 개” 국내 정발판 표지

메이지 유신을 통해 먼저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이 중국과 조선의 근대화를 지원해 힘을 합쳐 서구의 패권적 태도에 저항하자는 취지는 좋았으나, 어느 순간 이 사상에서 일본이 아시아의 ‘맹주’가 되는 ‘대동아공영권’으로 변신하고 제국주의를 포장하게 된다. 그럼에도 일본에선 이 사상에 입각한 행태가 반복되곤 한다. 제국주의의 치장물이 아니라 그 극점에 위치하는 새로운 아시아주의를 향한 고민으로 탄생한 게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문제의식이 아닐까? 그런 단상을 던져본다.


4_3. 혐일의 시대, 동아시아 민중 연대 상상


일본은 전후 제국주의 침략을 제대로 반성하지 않았고, 미국은 냉전 상황에서 필요에 의해 이를 묵과했다. 한국과 중국은 이를 끊임없이 문제 제기하고 규탄하지만 정작 내부적으로 과거 청산이나 피해자에 대한 지원은 미흡한 편이다. 그러다 보니 그저 정치적 카드로 반일 감정을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에 취약하다. 한국 사회 내에서 반일에 대해 부정적인 이들은 머리로는 반일, 그 외에는 친일이라며 비아냥거리기 일쑤다.

우리는 종종 동아시아(한-중-일) 민중 연대를 이야기해왔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천은 일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한일 노동조합 간 연계는 교사노조나 공공부문 노동운동에서 그나마 이어지고 있고, 현실의 ‘제국’이라 할 미국의 주둔기지 문제로 오키나와 평화운동과의 접점을 찾는 정도에 그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문제 대응, 일본 내 자이니치 차별에 대한 관심 정도가 그나마 시민들에게 피부로 와닿는 이슈들일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명목상 식민 지배는 반세기가 넘게 지나면서 대부분 종식되었으나 실질은 여전히 취약하다. (포스트식민주의 논의는 그래서 유효하다) 열강 대부분에서 표면적 반성과 성찰을 넘어 지금도 여전한 경제적 종속 문제 등에 대해선 언급을 꺼리는 것도 사실이고, 식민지 시절 식민제국의 이해에만 철저히 짜 맞춘 왜곡된 사회경제 구조로 인한 빈곤은 거의 개선되지 못한 상태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예민한 시선으로 1970년대 초반 당시, 일본 제국주의의 잔존한 유산들에 주목하고 자신들의 인생을 걸고 ‘혁파’하려 시도했다. 반세기가 지나 우리들 앞에 뒤늦게 도착한 이들의 이야기는 기이하고 경이로운 발굴의 현장과도 같은 풍경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현재 일본 사회를 조명하는 부분들은 이들의 투쟁에 대한 냉정한 비판과는 별개로 왜 그들이 등장했고 어떤 고민으로 그렇게 불나방 같은 ‘전투’에 뛰어들었는가를 짚어보자는 의미에 더해, 몇 년간 지속되고 있는 한일 관계의 파탄 속에서 이것만이 최선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한국의 시민사회 내부 성찰로 나아가게 해주는 촉매와도 같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스틸 이미지.


5. 늙고 지친 전사들의 품위, 남겨진 숙제

알려지지 않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질 뻔했던 경이롭고 묵직한 주제를 다루지만,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불과 20대 초중반이었던, 이제는 70줄에 들어선 ‘노전사老戰士’들을 조명하는 데 신중하고 섬세한 태도를 취한다.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보를 나열하기보다는 꼭 필요한 만큼만 보따리를 풀어놓고 관객들로 하여금 주제로 나아가게 안내한다. 주인공의 인간미를 강조하기 위함이 아닌, 그들의 현재 늙고 쇠약해진 모습마저 작금 일본 사회의 우경화와 이에 힘겹게 저항하는 진보 양심세력의 초상으로 조명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촬영은 신중하고 사려 깊다. 격렬한 논쟁거리인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이야기를 정중동을 유지하며 마치 다이도지 마사시의 하이쿠(일본 전통시가)처럼 조명한다. 그저 부대원들의 고향이나 관련된 풍경을 보여주는 장면도 허투루 쓰이는 법이 없다. 우리가 코로나19 창궐 이전만 해도 국내 여행 가듯 흔하게 오가던 일본 대도시의 대기업 본사는 영화를 보고 나면 아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영화는 지적인 동시에 논쟁적이다. 영화 내에서 중요하게 토론되어야 할 지점, ‘목적이 정당하면 수단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와 ‘폭력이란 무엇인가?’의 정의는 어느새 일본의 현재를 닮아 가는 한국 내 사회운동에도 시사점과 고민을 안길 법하다. 그만큼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실용적으로 쓰일 구석이 많은 작품이다. 본 작품을 통해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깜짝 놀랄 유물의 발굴 성과를 자랑하는 게 아니라 그 발굴이 현재의 우리에게 왜 유의미한가를 전하려는 간절함에 기원하는 것일 테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자신을 던졌던 이들의 성취와 실패에 대해 후대의 우리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을 보고 나면 따라오는 숙제다. 2020년 8월 20일부터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작품 정보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East Asia Anti-Japan Armed Front


한국, 다큐멘터리, 2019

2020.08.20. (개봉 예정), 74분, 15세관람가

감독 김미례

출연 오타 마사쿠니, 다이도지 지하루, 아라이 마리코, 에키타 유키코 외

 

20회 전주국제영화제(2019) 초청(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 장편)

1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2019) 초청

24회 인천인권영화제(2019) 초청

20회 인디다큐페스티발(2020) 초청(올해의 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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