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에 만나는 스티븐 킹의 세계 : Book to Film

 

1_ 현존하는 미국 최고 소설가 스티븐 킹 이야기

 

‘살아 있는’ 소설가 중 가장 많은 판매량을 가진 작가(약 3억 5천만 부!)이자 현대 미국 장르문학의 거장 스티븐 킹(1947년생)은 약 60편의 장편과 200편의 단편을 발표했는데, 특히 순수문학이 아닌 호러-공포 쪽으로 대중적인 집필 위주이다 보니 영상화된 작품이 엄청나게 많은 작가이기도 하다. (아마 전 세계적으로도 고전적인 거장들-예를 들어 셰익스피어-를 제외한다면 최대가 아닐까?) 그의 작품 중 극장용 영화가 약 60여 편, TV 영화나 드라마는 30여 편에 달하며,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캐리>,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 로브 라이너의 <미저리> 등은 영화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사실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문학은 언제나 탄생한 지 100여 년 좀 넘은 영화라는 신생 매체의 마르지 않는 원천이 되어 왔다. 미술이나 음악 또한 그런 영향력을 선보이고 있지만, 일정한 ‘이야기’를 갖게 마련인 영화에서 ‘서사’를 제공하는 문학의 존재감은 타 예술 장르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지금도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당대의 소설들의 영화화 시도는 줄을 잇고 있고, 그 파생으로 예전 같으면 아이들 보는 거라 외면하던 DC와 MARVEL 코믹스 또한 ‘00유니버스’란 명칭이 붙을 정도로 할리우드 영화에서 소재로 끌어다 쓰는 중이다. 당연히 미국 당대 최고 흥행 작가 스티븐 킹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영화화 계약이 줄을 잇고, 영화화된 작품들 대해 스티븐 킹 작가 팬들의 가차 없는 평가가 이어진다.

스티븐 킹은 기본적으로 장르문학 작가다. 그것도 에드거 앨런 포나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의 계보를 잇는 공포-환상 문학 계통에 속한다. 그러다 보니 순수문학 계열보다 대중이 읽기 쉽고 시각적으로 이미지화되기 좋은 글을 왕성한 생산력으로 뽑아낸다. 그의 원작을 영상화한 작업에 대해서도 깐깐하게 비평하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세간에서 그의 소설을 가장 잘 영화화한 걸작이라 손꼽는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에 대해서도 자신의 비전과 다르다며 혹평했을 만큼.

그런 스티븐 킹이 자신의 원작을 아무 걱정 없이 맡길 수 있다고 공언한 감독이 있으니, 바로 프랭크 다라본트다. 주로 각본가로 활동하며 간간이 연출도 하는데, 스티븐 킹의 원작 중 3편의 영화화가 그의 대표작으로 불릴 만큼 스티븐 킹 원작 영상화에 일가견이 있다. (그 3편 중 <그린 마일>을 뺀 나머지 2편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영·알·못’이라도 최소한 제목은 들어봤거나, 영화는 보지 않았어도 포스터 이미지는 기억할 명작 <쇼생크 탈출>과 공포영화 팬들에겐 ‘고전’ 반열에 오른 <미스트>가 오늘의 이야기보따리 주제다.

 

"미스트" 영화 포스터 이미지

 

2_ ‘코스믹 호러’의 끝판왕, 광기가 전염되는 세상 <미스트>

<미스트 Stephen King’s The Mist>(2007)는 1985년 출간된 스티븐 킹의 단편 모음집 <스켈레톤 크루 Skeleton Crew>에 첫 번째로 수록된 단편으로, 국내에는 동명의 단편집이 2006년 황금가지에서 상/하로 나뉘어 번역 출판됐다. 스티븐 킹 작품세계의 가장 중요한 주제인 ‘코스믹 호러’가 정말 제대로 구현된 작품인데, 한적한 시골 마을에 정체불명의 안개가 자욱이 뒤덮고, 그 속에서 지구상의 것이 아닌 존재들이 출몰하며 공포가 짙어져 가는 이야기다.

‘코스믹 호러’라는 장르의 특징이라면, 20세기 이후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자 우주 탐험을 통해 그 영역을 확장해가는 와중에 정반대로 인간이 아무리 잘나 봐야 그 실체를 측량할 수 없는 ‘우주의 신적 존재’에게 벌레처럼 보일 뿐이란 숙명적 세계관을 선보인다는 점이다. 영화나 소설에서 자주 눈에 띄는 설정, 인간이 알아선 안 될 금단의 영역에 오만하게 뛰어든 주인공이 인간이 감히 감당할 수 없는 비밀에 접근한 대가로 파멸하거나 큰 봉변을 당한다는 세계관이다.

<미스트>는 바로 그런 세계관이 가장 잘 압축된 작가의 단편 중 하나로 꼽힌다. 프랭크 다라본트는 짧은 원작을 치밀한 각본으로 장편화했다.

자신과 주변의 세계를 전부 다 알고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만만한 믿음이 순식간에 붕괴한 상황에서 인간의 광기와 공포가 어떻게 사람들을 무너뜨리는가를 실감 나는 연출로 그린 <미스트>는 현재 코로나19로 인한 판데믹 상황에서 우리가 뉴스로 접하는 천태만상의 인간 군상을 떠오르게 한다.

영화 속에서 집 수리를 위해 동네 마트를 찾았던 주인공과 어린 아들은 안개와 그 속에 숨어서 출몰하는 괴물들로 인해 다른 주민들과 함께 고립되고 만다. 아무런 소식도 없고 바깥 상황이 확인되지 않는 혼란 속에서 바깥으로 탈출해야 한다, 마트를 지켜야 한다, 갑론을박 점차 대립하는데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성은 힘을 잃고 극단적 선동이 횡행한다.

주인공은 어떻게든 사람들을 돕거나 합리적 사고를 하려 노력하지만, 카모디 부인은 극단적인 종교적 맹신을 설파하며 힘을 얻는다. 급기야 평소 같으면 광인의 헛소리로 치부될 인신 공양을 저지르기에 이른다. 사람들이 이성적 사고를 포기할 때 우연의 일치이지만 카모디 부인이 주장하던 것들이 들어맞는 듯하자, 그녀를 추종하기 시작한다. 배우의 연기가 워낙 뛰어나 카모디 부인이 득세하는 부분부터는 중세 마녀사냥이 저런 식이었겠구나 싶을 만큼 사람이 무서워지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미스트" 영화 스틸 이미지
“미스트” 영화 스틸 이미지

소설과 영화 모두의 결말에서 주인공과 소수의 일행은 광기가 지배하기 시작한 마트를 뛰쳐나와 차를 타고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코스믹 호러 장르에 충실한 작품답게 할리우드식 해피엔딩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의 마무리는 충격적이고 그 때문에 원작의 초월적 해석이라는 견해와 지나치게 극단적인 끝이라는 견해로 영화가 나온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뉘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에게 마음을 둔 관객이라면, 최선을 다해 가족을 지키고 이웃들을 구하려 온갖 애를 쓰고 갖은 궁리를 하는 주인공이 점점 피폐해지면서 절망하는 과정 때문에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테다.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회 체제와 시스템이 붕괴하는 순간 과연 어떤 파국이 올 것인지, 그리고 그 상황에서 인간의 이성과 노력은 과연 제대로 통용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 쌉쌀한 여운과 함께할 것이다. 소설과 영화를 비교해가며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3_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 의지의 찬가 <쇼생크 탈출>

<쇼생크 탈출 The Shawshank Redemption>(1994)은 같은 감독의 첫 번째 스티븐 킹 원작의 영화화이자 감독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너무 유명한 영화라 굳이 줄거리를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 원작은 다른 세 편의 단편과 함께 묶여서 1982년에 <사계> 시리즈로 선보였는데 공포 계열에 속하는 작가답지 않게 비교적 얌전한 대중소설의 형태를 띤다.(그렇다고 내용이 말랑말랑하냐면 그건 또 아니다)

 

"쇼생크 탈출" 영화 포스터 이미지

스티븐 킹이 출판사와 계약한 원고를 마치고 나서 쉬어가는 기분으로 평소 안 쓰던 소재로 후다닥 자유로이 써낸 작품인데 어쩌다 보니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되어버린 중편 소설이다. 영화와 소설의 내용 차이는 거의 없으나, 역시 프랭크 다라본트의 솜씨로 몇 가지 덧붙이거나 영화 버전에 맞게 손본 부분들이 좀 있다.

앞서도 밝혔듯 작가들은 자신의 원작 설정을 훼손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경우가 당연히 대부분인데, 프랭크 다라본트는 원작 내용 수정을 영화화에 맞게 최소화하면서도 오히려 영상 언어에 적합하게 해석하는 재능이 뛰어나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보건, 영화를 본 뒤 궁금해서 원작까지 찾아 읽게 되건 별문제가 없다.

몇몇 인상적인 재해석이나 추가 부분만 소개하자면, 우선 영화에서 주인공이 자유를 갈구하는 마음을 교도소 전체에 공유하려는 ‘치기’로 감옥 도서관(자신이 사실상 건설한)에 기증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레코드를 틀고, 바깥에서 허가되지 않은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교도관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와중에도 미소 짓는 그 인상적인 장면은 감독의 아이디어였다.

또한, 소설에서는 출옥한 ‘레드’가 주인공 ‘앤디’를 만나러 출발하는 장면이 독백으로 마무리되지만, 영상 언어로는 좀 미적지근한 결말이기에 영화에선 둘이 재회하는 ‘지후아타네호’ 해변의 파란 바다 풍광을 적절히 활용하는 재해석을 선보인다. 소설에서는 탈옥을 위한 굴착을 숨기기 위해 당대에 인기를 끌던 배우의 핀-업 포스터를 벽에 붙여 두는데, 이게 감옥에서의 오랜 수감 시간을 상기시키듯 시대별로 바뀌는 게 재미 포인트인데 영화에선 어쩔 수 없이 제외되었다. 늙은 무기수 브룩스의 까마귀 ‘제이크’가 맞이한 운명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소설 원작이 작가의 경향성과 정반대로 인간에게 ‘자유’와 ‘희망’이 어떤 의미인지 상기시키는 인상적인 내용을 영화는 충실히 제대로 표현하면서 보는 재미까지 나무랄 데 없는 수작으로 완성했다. 작가의 비전을 감독이 극대화하는, 사전에 계획된 콤비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원작과 영화를 함께 본다면 스티븐 킹이 왜 감독을 신뢰하고 자신의 원작을 주저 없이 맡기는지 동의가 갈 정도다.

<미스트>를 먼저 언급하고 이어서 <쇼생크 탈출>을 간략하게 이야기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같은 작가의 원작을 같은 감독이 10여 년의 시차를 두고 영화화했지만, 둘 다 이상적인 원작 소설의 영화화에 성공한 수작이라는 것과는 별개로 두 영화는 매우 이질적인 관점과 세계관으로 대조되는 작품이란 점이 흥미로웠다.

 

"쇼생크 탈출" 영화 스틸 이미지
“쇼생크 탈출” 영화 스틸 이미지

<미스트>는 코로나19 창궐과 그 대처 과정에서 최근 겪고 있는 우리 사회 내 극단주의와 이기주의 발호의 위험 상황을 극화한 듯 혼란의 틈바구니를 은유해 보여주는 매력이 일품이다. 반면, <쇼생크 탈출>은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이 뜻을 갖고 희망을 잃지 않으면 가능한 일들에 대한 낙관을 놓지 않는다. 인간의 오만을 징치(懲治)하는 우주적 힘이란 소재를 반복하며 인간 합리에 대한 의문을 던져온 스티븐 킹 또한 인류의 오만을 경계하는 것이지 인간의 가능성을 통째 부정하는 것은 아닐 테니.

코로나19를 상대적으로 잘 견뎌내 왔다고 자타가 공인하던 한국 상황이 8.15를 거치며 급전직하한 요즘 시절은 오히려 올해 봄 대구·경북에서 촉발된 1차 대 확산 때보다 더 우울하고 불투명한 전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람들의 힘을 빼고 고립을 부추기는 중인 바, 상황에 대한 진단과 함께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할 상황에서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긍정의 힘을 골고루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심정의 발로로 이 작품들을 소개한다.


4_ 사회적 거리두기의 구석에서: 북 투 필름을 즐겨보자

2차 재확산과 거리두기 3단계라는 극약 처방의 불안 속에서 다시 개인들은 고립되고 있다. 일탈적 행동은 지탄받지만 통제되지 않는 실정이라 허탈함과 피로를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지라 더욱 그렇다.

이런 와중에 극장에 갈 수 없다면 방에서 넷플릭스 같은 OTT를 활용해 영화를 본다거나, 이참에 읽지 않고 책장에 고이 모셔둔 책의 먼지를 털고 소일하는 행위는 이미 많은 이들이 실행 중이고, 실제로 유용함을 발휘 중이다. 식물을 키워 약간의 먹을거리를 자체 해결하거나 그동안 활용하지 않았지만, 타인과의 접촉을 줄이면서 고립감을 벗어날 산행이나 산책도 활발해졌다.

특히, 극장에서 최신작을 보기는 어렵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를 접할 수 있는 조건에서 영화와 그 원작이 되는 문학작품을 함께 소화하는 북 투 필름 방식의 ‘읽고 보기’는 따로 단품으로 감상할 때와는 다른 차원의 문화적 체험을 선사할 것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봤거나 알고 있는 영화이지만, 그 아직 다 발휘하지 않은 효용을 탈탈 털어내는 계기로 이번 위기도 잘 극복되기를 바라며.

 


작품 정보


미스트 Stephen King’s The Mist


미국, 스릴러·공포, 2007

2008.01.10. 개봉, 125분, 15세관람가

감독 프랭크 다라본트

주연 토마스 제인, 로리 홀든

 

쇼생크 탈출 The Shawshank Redemption


미국, 드라마, 1994

1995.02.04. 개봉, 2016.02.24.(재개봉), 142분, 15세관람가

감독 프랭크 다라본트

주연 팀 로빈스, 모건 프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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